개역성경은 번역상의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조선 말기까지 명맥을 이어온 가사문학의 4.4조 율격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읽을 때마다 노래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마태복음 5장의 전반부입니다. 3절부터 10절까지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암송하여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며 명상하기에 좋은 구절입니다. 새해 아침에 이 부분을 읊조리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을 읊조릴수록 입에서 풀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초식동물이 푸른 풀밭에서 싱싱한 풀을 뜯으며 행복한 본능에 취하는 느낌입니다. ‘행복한 본능’이란 초식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강탈하여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육식동물의 탐욕과 공격본능을 스스로 거세하고, 연약한 상태로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의 자리에서 자족하며 감사하는 본능적 감각 말입니다.
육식동물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자를 정복하고 파괴해서 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방식입니다. 타자를 죽여서 나를 살리는 것이 육식동물의 존재방식이고 그것이 이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원리는 힘입니다. 힘으로 타자의 소유와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 육식동물이 지배하는 세계의 작동 원리입니다.
제국주의는 육식동물의 탐욕과 야수성을 가진, 인간이 빚어낸 세계 현상입니다.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타자와 그의 세계를 침탈하고 그 대가로 자기는 부와 평안을 누리려는 야만의 지배체제가 제국주의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제국주의가 발흥하기 이전에도 이미 제국주의적 야수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고 이들의 동물적 야수성에 높은 지능까지 탑재되어 있으니 가장 잔혹하고 야만스러운 육식동물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육식동물의 최상위에 위치할 때 세계는 무모해지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신약성서는 이러한 제국의 지배체제 아래서 탄생한 문서들입니다. 특히 산상수훈은 오직 힘과 권력만이 이 세계의 작동 원리라는 제국의 야만과 폭력 앞에, 압박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예수는 이들이 힘이 없어서 착취당하고 고통당하는 존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존재라면 언제든 힘과 권력이 주어지면 같은 방식으로 타자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바라고 강조한 인간과 세계는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공존과 평화의 연대였습니다. 힘이 있으나 그 힘을 포기한 존재, 타자의 생명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존재, 타자에 대한 이해와 긍휼로 충만한 존재, 타자를 깊이 품을 줄 아는 관용과 용서와 화해의 존재 들이 만들어가는 나라를 ‘하나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기 포기의 절정을 십자가에서 보여줌으로써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이 땅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인간을 살해한 처형 도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숭고함을 전해주는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즉 예수는 자신이 초식동물의 행복한 본능을 설교하고 그 설교를 실천함으로써 이 땅에서 살아가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나라를 이 땅에서 경험함으로써 궁극의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들은 탐욕으로 타자의 생명을 빼앗아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는 육식의 욕망을 포기한 초식동물들입니다. 제국의 변방에서 초식동물처럼 빼앗기고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산상수훈에 담겨있습니다. 이 복음의 이면에는 힘을 숭상하지 말라, 힘으로 지배하는 자들의 통치 원리에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제자를 부를 때 “나를 따르라”고 한 것은 이 세계의 지배원리를 거부하라는 뜻입니다. 힘을 숭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초식동물의 행복한 본능으로 존재의 풍성함 가운데 초대한 것입니다. 타자의 생명을 강탈하기 위해 야수의 눈을 번득이며 공격본능으로 근육을 긴장시키는 육식동물이 되지 말고 푸른 풀밭을 유유자적 거닐며 행복한 본능에 젖어 풀을 뜯는 초식동물이 되라는 뜻입니다.
푸른 풀밭을 거니는 마음으로 산상수훈을 읊조리며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면 입 안에서 싱싱하고 향기로운 풀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에 푸른 풀밭의 이미지가 영혼 깊이 맑은 물처럼 흘러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첫댓글 하나님 나라는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합니다..
산상수훈을 다시 깊이 묵상해봅니다~^^
그리고 시편23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