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춘천호반 길
최봉호
출근하면서 보니 청사 입구 화단에 눈이 많이 쌓여있다. 주말에 내린 폭설이 아직 녹지 않고 여전히 많이 쌓여 있다. 삼 층 사무실에 들어서 직원들과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한 직원이 다급하게 다가와 말했다.
“팀장님, 그제 토요일 오후에 한00 직원이 죽었어요.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가 미끄러져 가로수를 들이받았대요. 그 직원은 즉사했고, 아버지는 중상을 입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해요”
그제 토요일 한시, 일과가 끝나자마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등 다급하게 청량리역으로 달려가는 그녀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직원은 재학생 때 시험에 합격하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해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새내기였다. 매주 토요일이면 일과가 끝나자마자 만사 제쳐놓고 퇴근해 춘천 고향집으로 가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역으로 마중 나가 픽업해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하나뿐인 딸이라 예쁨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날이었다. 한 가지 달랐던 것은 며칠 동안 눈이 많이 왔고, 도로는 추위로 빙판길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춘천 호반 길을 달리던 차가 그만 미끄러져 가로수를 들이 박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생을 달리했고, 아빠는 크게 다치게 되었다.
과장은 퇴근 후 선약이 있다면서 상가에 가기 어려우니 팀장이 가보라고 했다. 밤 아홉시 경에 춘천 상가에 도착했다. 여름 같았으면 그렇게 깜깜하지 않았을 터인데, 겨울이라 도착하니 주위가 매우 어두웠다. 영정사진이 있는 방에 들어서니 소복을 입은 어머니는 혼이 빠진 것 같이 보였다. 남편은 중환자실에 있고 딸 장례는 치러야 하니 정신이 있을 리 없겠다. 하룻밤사이에 백발이 되었다는 고사가 떠올랐다. 얼마나 원통하면 하룻밤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쉬겠는가.
“아이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좋아했는데, 시집도 못가고 죽고 말았으니 어떡해”
지금도 그 넋두리가 귀에 맴돈다. 문상을 마치고 앉아 있는데 오빠라는 청년이 다가와 물어본다. 내일 화장하고 골분을 소양강에 뿌릴 건데, 같이 갈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순간 춘천 시내에 숙소를 잡고 하는 게 오히려 번거롭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답하고 자리를 빠져 나왔다. 자정 경에 서울 집에 도착했다.
화요일 출근하니, 그 직원 책상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사람은 없고 그 자리에 꽃이 대신 인사하고 있다. 그나마 이~삼 일이 지나니 누군가가 그 꽃다발을 치워 버렸다. 전도가 창창했던 한 직원이 그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짝을 찾아 영혼 결혼을 시켜 주었다고 한다. 저승에서나마 짝을 찾았으니 덜 외로울 것이다. 겨울눈과 빙판길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