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칠판/ 박미자
제트기 한 대가 머리 위로 휙 지나갑니다
새하얀 분필로 밑줄을 그었습니다
마음에 새겨야 할 말 잊지 말란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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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김경아
산을 뚝 잘라내어
직선 도로 가물가물
양분된 경계 철망
아기 노루 갇혀있고
엄마는
가고 없으니
저 고아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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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김동관
칼 갈아 드립니다
깃발마저 고요한
지상의 마지막 업
벼린 날을 세운다
닳도록 스산한 눈빛
5월 장도 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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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짜노/ 김승재
이름도 성도 모른
타관 땅 뒷산에서
참깨 들깨 노는 자리 아주까리 끼어들어
우짜노
메마른 땅에
텃세도 심한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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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 없이/ 김정수
밤늦게 잠을 불러 강가에 가 앉으면
물돌이 집 그 여자 달 둥실 걸어놓고
온종일 달려 온 강물에 혼잣말로 마음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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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류현서
별이 빛을 쏟는 것은 가없는 내리사랑
아들의 귀갓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밤새워 빛을 뿜는 건 어머니의 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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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박영식
삭아진 불씨처럼
온기를 잃은 세상
한지에 수묵 배듯
가슴 저민 종 울림에
너와 나 마음의 벽이
헐어지고 있었다
둥 하고 살을 풀면
비천상이 하늘 날고
한 소리 무늬 지면
연밭에는 꽃이 벌고
짙푸른 열원 앞에는
쌍무지개 떴었다
쇳물에 몸 던져진
슬픈 전설 사랑 앞에
에밀레 에밀레로
천년 울음 쏟아놓고
이제는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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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뒤편/ 심석정
몸을 온통 녹여버린
누구의 심장이기에
산하를 불태우며
저토록 젖어드나
만수위 위태위태한
그대 깊이 다 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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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촌/ 이영필
연습생처럼 지친 뼈들
저녁이면 찾아든다
제각각 비번으로
고독을 채운 가슴
불빛이
옮겨 다니며
기댈 방을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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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미디어아트/ 전영숙
통유리 화폭에다 쪽물을 뿜어놓고
수시로 바꿔 가는 영상을 돌려본다
맞춤형 그림 한 점을 결제하는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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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정도영
담묵이 그린 듯한 갈숲 너머 노는 물오리
잔잔한 바람결에 윤슬이 반짝이고
빛바랜 세월의 흔적 어룽어룽 흔들려
빠안한 물밑에는 여유로운 등지느러미
한 컷 한 컷 눈동자는 셔터를 눌러댄다
마음이 무료한 날에 탁본이나 뜰 듯이
둑방길 걸어가는 아름다운 사람들
대숲엔 빗소리가 때 낀 마음 씻어주고
저 멀리 푸른 태화루 액자처럼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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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신륵사/ 조경애
남한강 꼬리 물고 돌아보는 봄바람이
조용한 나무들을 흔들다 잠잠하고
하늘에 초록 유리창 열고 있는 잎새들
낮달이 졸다가는 돌탑 위 얹은 믿음
별자리 세다 잠든 아가 보살 꿈을 따고
쇳조각 청동 물고기 우주 향해 헤엄친다
이놈아 밥값 해라 공양간 연기 외침
싸리비 들은 선승 한판 춤 휘젓는다
대낮에 보름달 뜬 듯 흙마당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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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추창호
하루가 방점을 찍는 서녘 하늘에
그 누가 남겼을까 물빛보다 더 고운 채운
한 생애 끝나는 날이 저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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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한분옥
이따금 목청 높은 뻐꾸기도 풀어놓고
그래도 성이 안 찬, 함월산 기림사는
고욤 꽃 떨어지는 소리
사락사락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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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함께 가는 길
울산시조 제29호/ 울산시조시인협회/ 2024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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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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