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도 바쁘게 지냈습니다. 월요일에 저희 교회에서 있었던 계삭회를 잘 마쳤습니다. 여선교회 회원들의 사랑의 수고로 특송도, 간식도, 식사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을 마치고 화요일은 오랜만에 집사람과 산책을 했습니다. 분주한 일상이 많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수요일에 집사람 작은 아버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기는 하셨어도 추석은 지내시겠거니 했는데 너무나 일찍 떠나셨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저희는 수요예배를 마치고 목요일에 올라갔습니다. 문상을 하고 저는 어머니 치과 예약도 있고 아이들 때문에 그날 내려왔다가 금요일 아침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이미 화장이 끝나서 납골당에 안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댁에 가서 마지막 위로예배를 함께 드리고 점심식사를 하고 집사람과 함께 내려왔습니다. 정말이지 2주 사이에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목요일에 내려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서산에 있는 치과를 갔습니다. 원래 지난 29일에 예약이 됐었는데 삼촌의 장례 때문에 연기가 돼서 목요일이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서 일찍 내려와 간 것입니다. 어머니가 진료를 받으시는 동안 소파에 앉아서 비몽사몽간의 단잠에 빠졌는데 초등학교 5-6학년쯤 돼 보이는 남학생이 우연히 치과에서 자신의 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서 인사하는 소리에 깼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인사를 하는 학생의 이를 살피시면서 잘 관리하라고 격려하시자 그 아이는 교장 선생님도 이런 곳에 오실 줄 몰랐다며 신기 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뵐 때는 전혀 그렇게 안 생기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 어려운 말들을 하는지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싶었습니다. 저 같으면 교장 선생님은 커녕 선생님만 뵈도 숨거나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할 텐데 말입니다. 저만 그런 건지 세상이 바뀌었는지…….
드디어 교장 선생님이 자신은 진료를 다 받았다고 하시면서 아이에게 치료 잘 받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마지막 반응을 기대했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지는 못하더라도(아직 그런 예의까지 기대하는 건 그래서) 저는 ‘안녕히 가세요’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끝까지 저와는 달랐습니다. 아주 씩씩하게 큰 소리로, ‘낼 봐요.’ 하는 것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직 제 귀에 익숙한 말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교장 선생님이 이런 곳에 오시다니, 놀랍네.‘ 교장 선생님이 치과에 오신 게 놀랄 일인지 ’낼 봐요.‘가 놀랄 일인지 참으로 헷갈렸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어떠한 맘으로 보고 생각 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암튼 저뿐 아니라 그날 여러 사람이 그 아이 때문에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