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신 성대 논설위원이 12.23일 올린 컬럼입니다. 위대한 國父 이 승만 대통령의 진면목을 크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내용이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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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말. 조정은 계몽운동과 체제개혁을 요구하는 개화파들이 사회불안을 야기한다며 독립협회를 해산한다. 1899년 1월 만민공동회를 이끌던 배재학당 출신의 이승만이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갇힌다. 연이어 몇 차례 정치적인 사건으로 이상재, 이준, 양의종, 등 많은 개혁파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그러자 아펜젤러, 벙커, 언더우드, 게일, 헐버트 선교사 등이 감옥에 기독교 서적과 교양 서적을 넣어주어 감옥 안에 도서실이 꾸며졌다. 그리고 1902년 10월에 감옥서장 김영선의 배려로 이승만, 신흥우, 양의종이 주관하는 학교가 감옥 안에 설립되었다. 그 속에서 정치범들은 닥치는 대로 책을 빌려 읽었는데 특히 한글과 한문으로 된 《신약성서》를 집중적으로 많이 읽었다.
배재학당 시절 기독교를 접했던 이승만은 1902년 크리스마스 때 감옥 안에서 세례를 받고 크리스찬이 되어 전도를 시작했는데 이상재, 이원긍, 홍재기, 김정식, 유성준 등 40명 이상의 동료 죄수와 옥리까지 개종을 시켰다. 이들 대부분은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석방되었는데 이승만도 1904년 8월 특별사면령을 받아 5년 7개월의 옥고를 마치고 풀려나왔다.
감옥에서 나온 후 유성준, 이원긍, 안국선 등은 게일 선교사가 시무하던 연동교회로, 이준은 상동교회로 출석하였고 이상재, 신흥우, 김정식 등은 황성기독청년회(YMCA)를 통해 기독교 신앙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승만은 그해 11월 민영환과 한규설의 주선으로 한국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1905년 2월 이승만은 조지워싱턴대학 장학생으로 입학, 8월에 드디어 루즈벨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독립 보존을 청원하였지만, 러일전쟁으로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게 되면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907년에 조지워싱턴대학 학사를 취득하고 이어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10년 미국 유학 5년 만에 프린스턴대학에서 <미국 영향 하의 중립론>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국제적인 인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승만이 천재라 한들 미국인도 쉽지 않은 이런 일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그가 감옥에서 5년 7개월을 그냥 썩혔더라면? 출옥 다음 날 이승만을 만난 윤치호는 일기에 “오늘 4시에 거의 6년 간 투옥되었다가 어제 석방된 이승만을 방문하였다. 그는 훌륭한 청년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영어 실력은 크게 향상되어 영어로 말할 수 있고,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라고 기록하였다.
마침 이승만이 프린스턴 재학시절 총장이던 우드로 윌슨이 1910년 뉴저지주 지사로 선출되고 이어 1913년 제3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로 인해 이승만은 자연스레 미국 연방정부 및 주류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되어 한국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엊그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연방의회에서 한 연설을 두고 미국은 물론 세계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침략자들과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를 제공해준 미국 의회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그의 영어 연설에 의원들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그의 영어가 바이든 대통령, 해리스 부통령, 펠로시 하원의장보다 더 낫다는 평도 있었다.
세계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젤렌스키의 미국방문을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낸 윈스턴 처질과 비교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1954년 7월 28일 미국 의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행한 영어 연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작금에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젤렌스키가 처한 상황은 2차 대전 때 독일과 싸우던 처칠보다 소련, 북한, 중국과 전쟁을 치르던 이승만의 입장과 더 닮아있다. 기실 전쟁 수행 하나만 본다면 처칠이나 이승만이나 그 훌륭함에는 경중을 따지기 힘들겠지만 일찍이 다 썩은 봉건왕조에서 국민 계몽하다 옥고를 치르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건국을 완수하고, 또 경제 기적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인생 전체의 업적을 두고 비교해본다면 이승만 쪽이 몇 배나 더 무거울 것이다.
아무튼 젤렌스키의 이번 방문으로 미국과 세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 러시아의 공산 침략을 물리치고, 나토 가입의 꿈을 이루어 진정한 자유독립 국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내친 김에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황당한 조약(세계 최약소국과 세계 최강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이뤄내고 세계 최강의 미군을 거의 무상 용병으로 주둔시킨 이승만의 외교술을 배웠으면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영어 연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저렇게 영어가 되는 대통령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했겠지만, 정작 우리는 젤렌스키보다 더 영어에 뛰어나고 외교에 천재적인 위대한 대통령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제발이지 다음 대통령은 막말이나 욕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어가 되는 사람을 뽑았으면! 역사를 제대로 아는 대통령이었으면! 글로벌 매너까지 갖추어 바닥까지 떨어진 국격을 선진주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면!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어떤 결말로 끝나든 훗날 우크라이나 지폐에 젤렌스키의 초상이 들어갈 것이다. 대한민국 지폐에도 이승만을 비롯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 초상이 들어가는 날이 오기를! 그런 게 진짜 ‘역사바로세우기’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