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약국 문턱은 들고나는 사람들로 반질반질 닳았다. 강남의 약사는 여느 학부모 못지 않은 입시 정보력을 자랑한다. 여의도 증권가 약사는 아침부터 술 깨는 약 준비에 바쁘다. 약국은 그 동네를 닮아 '동네약국'이라고 불린다. 지역 문화가 묻어나고 동네 사람 냄새가 독특하다. 서울 동네 일곱 곳에 자리 잡은 특색있는 약국 얼굴을 그려봤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대학동 원룸촌 ②압구정 성형외과거리 ③창신동 봉제골목 ④대치동 학원가 ⑤대림동 중국인마을 ⑥여의도 증권가 ⑦명동 쇼핑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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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주 기자 |
"성형 아니면 여기 올 이유가 없어요. 여긴 성형하는 분들 밖에 없어요."
강남구 압구정동 성형외과거리에 위치한 A약국 약사의 첫마디다. 그는 성형수술 직후 약국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얼굴에 익숙해져 있었다.
약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수리부터 턱까지 얼굴을 붕대로 꽁꽁 싸맨 여성 환자가 약국에 들어왔다. 코에 부목을 한 여성 환자도 그 뒤를 이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여성들은 퉁퉁 부은 얼굴과 누런 멍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고 약국을 찾았다.
약국에는 성형 수술 후 붓기를 빠르게 지울 수 있는 페이스라이너를 비롯해 각종 붓기 케어 제품이 즐비해 있었다.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 '성형 1번지'라고 과시하는 듯 했다.
한 여성은 호박즙과 붓기 케어 제품을 한 움큼씩 집어 들었다. 또 다른 여성도 호박즙을 잔뜩 집어 든 채 바세린 거즈와 일반 거즈를 찾았다. 약사나 환자나 이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A약국 약사는 "보다시피 붓기 케어 제품이 잘 팔린다"고 말했다.
"맨날 얼굴에 붕대 감고 오는 사람들을 보니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요즘은 코를 수술하면 귀에 유리병 같은 걸 달고 오는데, 우리에겐 일상적이죠." 살짝 긴장한 표정을 한 기자에게 약사가 웃으며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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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성형외과 거리에 즐비한 관련 병의원 |
성형병원과 미용병원 분리, 약국도 특화신사동 성형외과거리에는 성형 병의원과 약국이 몰려 있다. 병원은 눈 성형 전문, 코 성형 전문, 양악수술 전문, 안티에이징 등 '전문'이라는 간판을 내세웠다.
이 거리 중심에 위치한 약국과 이면 도로에 자리잡은 약국의 환자 특성은 달랐다.
중심거리 약국은 대규모 성형 병원과 콤비를 이뤘다. 주로 젊은 여성 환자들이 얼굴과 가슴 성형을 목적으로 찾았다.
반면 이면에 있는 약국들은 40~50대 중년 여성 환자가 많았다. 이들을 겨냥한 주름 개선, 미용 등 안티에이징 병원이 자리 잡았다.
안티에이징 전문 병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B약국 약사를 만났다.
"약국마다 끼고 있는 병원이 다르잖아요. 우리 약국에는 눈, 코 성형보다 안티에이징 성형을 하고 오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요즘은 어머님들이 리모델링을 많이 해요. 성형외과거리 안쪽에 있어서 광고보다는 입소문을 타고 오시죠."
약사는 "딸이 성형하는 거 봤다가 엄마도 하고, 엄마가 성형하러 왔다가 딸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약국에 오시는 분들 연령대가 20~50대로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압구정역 인근에 있는 C약국 약사의 이야기다.
"이곳 병원을 찾는 연령대가 너무 다양해요. 중학생이면 쌍꺼풀부터 시작해 고등학생이면 코를 한다든지, 대학생이면 양악을 한다든지, 연세가 드신 분들은 미용성형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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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거리에 맞춰 특화된 약국들 |
'관광 성형' 사라진 성형거리...약국 불경기 극복 안간힘신사동 성형외과거리는 그 명성이 예전만 못했다. 골목에 위치한 D약국 약사의 설명이다.
"여기 분위기가 옛날과 좀 달라졌어요. 전에는 화려한 아가씨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직장인이나 취업준비생이 더 많아요. 그만큼 성형이 대중화 됐다고 봐야죠."
도로변에 위치한 E약국 약사도 "외국인들이 많이 줄었다. 중국인도 한 두 명 올까 말까 하고. 3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성형이다 뭐다 많았는데 이제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비해 외국인 환자가 20~30% 줄었다는 게 지역 약국가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경기가 안좋다보니 약국도 변할 수 밖에 없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불경기를 극복하는 약사가 많다.
"경기가 많이 어려워졌지만 그나마 붓기나 멍 케어 제품, 피부미용 비타민제가 잘나가요. 보통 손님들이 다른 약국엔 없어도 이 동네 약국에선 붓기약을 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저는 붓기 약에 플러스 알파로 약을 조합해요. 다른 곳이랑 똑같이 팔면 안돼요. 붓기약에 제가 개발한 약을 조합해 제품화해요."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D약국의 이야기다.
압구정 약국이 다른 동네에 비해 무난하다고 약사가 말했다. 재방문이 없다보니 '단골'이라는 개념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 만큼 약사와 환자 사이에 '정'도 없어 아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