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정신과지나영마음이흐르는대로 p279-281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상대적 빈곤, 상대적 자존감 저하 등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이 ‘상대적’으로 못하다고 느끼는 데서 우울을 겪는다. ‘나는 왜 이리 못났을까?’,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잘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급기야 타인의 화려한 SNS는 그러한 우리의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이 촉발되는 상황과 반응이 각각 다르듯이 우리의 타고난 재능과 취약점, 또 경험과 배움으로 익힌 강점과 약점도 판이하게 다르다.
영어 표현 중에 “comparing apples and oranges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한다)” 라는 말이 있다. 즉, 사과와 오렌지처럼 서로 전혀 다른 대상을 비교한다는 뜻이다. 사과는 사과와, 오렌지는 오렌지와 비교해야 함이 맞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의 특성, 제각기 살아온 경험이 하나하나 다르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은 사과를 오렌지와 비교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이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두 가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데, 남이 더 잘난 것 같아서 비참하게 느껴지거나 아니면 내가 더 잘난 것 같아서 교만해진다는 것이라고(‘비참’과 ‘교만’의 앞 글자를 따면 ‘비교’가 된다). 두 경우 모두 내 삶의 가치와 질을 떨어뜨리고, 나의 성장에 해가 될 뿐이다. 우리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줄일 수 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모여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다 보면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들과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미국을 흔히 ‘멜팅 melting pot (이것저것 넣어 다 같이 녹이는 솥)’이라고 부르듯이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살고 있다(물론 이로 인한 갈등도 있지만). 마치 미국이라는 큰 솥에 각종 야채, 고기, 소금, 후추, 마늘, 양파, 파가 섞여 들어가 자신만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감칠맛 나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만약 여기서 서로 타고난 맛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기보다, 소금이 후추보고 너는 왜 그리 맵냐든지, 후추가 소금보고 너는 왜 그리 짜냐고 불평한다고 생각해보라.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갈등 상황에서 서로 화를 내고 미워하며 괴로워하게 될 뿐이다. 이렇듯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의 성향을 '다르다'고 보지 않고 '틀렸다'고 보기 시작하면 갈등이 커진다. 나아가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길 수 있다. 또 달리 보면 타인이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기를 바라거나,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남을 질책하는 것도 모순이다.
요즘 정신과를 찾는 많은 사람이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우울해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때 우리 각자가 타고난 맛이 있고, 각각 얼굴과 지문이 다르듯이 결국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 만큼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저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그 어떤 사람도 동일하게 태어나지 않았으며, 또 서로 헤아리기 어려운 과거가 있으니 말이다. 남이 나와 많이 다른 것을 ‘틀렸다’며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보듬어 안아준다면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또 남도 단 하나뿐인 유일한 사람임을 존중해주면서 모두가 나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곧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의 재료를 공생과 조화의 재료로 승화시킬 수 있는 현명한 자세 아닐까.
* 화가 나면 열까지 세라 (따뜻한 편지 2302)
어느 학자에게 골칫덩이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 현명하고 이해력이 높아 스승의 가르침을 금세 습득하는 뛰어난 제자였지만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금방 흥분하고 자제를 하지 못해 다른 사람과 주먹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고민하던 스승은 어느 날 그 제자를 불러 나무 상자 하나를 제자에게 맡겼습니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은 오래전부터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도자기가 들어있다.
너는 내가 누구보다 믿고 아끼는 수제자이니 한 달간 그 도자기 상자를 맡기려고 한다.
한 달 동안 그 도자기 상자를 절대로 몸에서 떼놔서는 아니 될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의 보물을 보관하게 된 제자는 한 달 후 다시 도자기를 돌려주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은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도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참았던 것 같은데 그 연유가 무엇이냐?” “혹시 싸움이 벌어지면 품속에 잘 보관했던 스승님의 보물이 깨질까 두려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참을 인(忍)’을 종이에 크게 써서 주며 말했습니다.
“칼날 인(刃) 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놓여있다. 너의 마음속에는 이 도자기를 보관한 상자보다 훨씬 무겁고 날카로운 칼날이 있다. 이러고도 네가 깨닫지 못한다면 그 칼날이 너를 심하게 찌를 날이 올 것이 분명하니 내 심히 두렵구나.”
스승의 깊은 사랑과 진의를 깨달은 제자는 ‘참을 인(忍)’이 써진 종이를 항상 몸에 지녔고 이후로는 술을 먹더라도 경거망동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참을 인(忍)의 칼날은 참지 못하는 자를 가장 먼저 찌릅니다. 하지만 그 칼날을 잘 사용하면 온갖 미움과 증오 그리고 분노까지도 잘라버릴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힘보다는 인내심으로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 에드먼드 버크 –
* 12.20 생활성서 소금항아리 2022-12-20
루카 1,26-38절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기쁨의 이유 : ‘기뻐하시오! 은총을 입은 당신!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네는 인사말을 제가 번역한다면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이 인사말을 계속 되뇌다 보면 성모님뿐 아니라 주님과 함께 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은총을 가득히 입었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그래서 오늘 하루도 정말 큰 기쁨 속에 살아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성모송은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바칠 때마다 성모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은총을 입은 이로서 함께 기뻐하는 기도 말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우리가 바치는 성모송은 이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이렇게 끊어서 기도를 하다 보니 마치 성모님께서 여인 중에 복되신 이유가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모송 첫 부분의 진정한 의미는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은총을 입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그 의미를 생각하며 성모송을 바친다면 매일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을 떠올리며 기쁨에 넘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총을 가득 입었습니다. 주님께서 기꺼이 우리와 함께 계셔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