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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의 로마서
1. 로마서
로마서는 바울 서신 중 최대의 서신으로 불리며,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심을 갖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경건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스펜너(spener)는“성경이라는 가락지의 보석”과 같다고 평했다. 이러한 로마서를 연구하는데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로마서는 신약성경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眞髓)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며 해석해 주고 있다. 로마의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저스틴의 편지, 폴리캅의 편지, 힙포리투스(Hippolytus)의「이단 비판」등에서 로마서를 많이 인용 발췌하고 있다.
2. 로마교회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곧 로마교회를 대상으로 쓴 서신이다. 로마교회는 로마시에 세워졌다. 본래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로 시작된 로마가 세워진 기원은 자세한 역사적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B.C. 753년에 세워졌다고 본다. 이 로마는 신약시대에 이르러서 로마 제국의 중심으로서 인종과 종교의 국제 도시라고 할 만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사원(Temple)만도 420개가 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폼페이의 팔레스틴 점령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바울 당시 로마는 영국에서 아르비아에 이르는 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로마는 당시에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세계의 중심지였으며,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대로 로마는 도로 시설이 잘되어 있었으며,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러한 로마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로마교회로 불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로마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로마카톨릭교회와 신교의 학자들 간에 심한 이견의 대립을 이루고 있다. 로마카톨릭교회는“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는 사도행전 12장 17절에 근거하여 로마교회의 기원을 말한다. 여기서 ‘다른 곳’은 다름 아닌 바로 로마임으로 로마교회는 A.D. 42년에 베드로가 세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사도행전 2장 10절을 들어 로마교회의 기원을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라는 견해를 갖고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주장에 반박한다. 이곳의 내용을 보면 오순절 때 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어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는데, 그 중에“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 있었다고 기록된 것을 보아 로마교회는 이들에 의하여 세워졌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행 8:4)1) 중 로마에 들어간 성도에 의해서 로마에 교회가 세워지는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의해서 이건 간에 로마로 돌아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개종한 경건한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로마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을 것으로 본다. 그에 따라서 바울이 그의 로마서를 쓸 무렵에는 로마엔 이미 번성한 믿음의 공동 사회, 곧 로마교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 로마교회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나, 일반적으로 고찰해 볼 때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에서의 로마교회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방인의 성격을 가졌고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소수라고 본다.
그럼에도 이 교회를 향하여 바울이 서신을 써서 보내야 할 필요를 갖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한 반목은 없었으나 서로를 비판하고 경멸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서가 쓰이기 얼마 전에는 로마정부 당국자와 충돌이 생겨서 성도들은 의심을 받고 있는 형편이기도 했다. 이는 황제에 대한 반역의 죄목이었다.2) 몇 년 후에는 네로 황제가 로마시의 화재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씌워 핍박을 시작했으며, 이때 베드로와 바울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 로마서의 기록자 ‘바울’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는 바울이다. 여기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으며, 이견이 없다. 로마서를 시작하고 있는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하며, 그 첫 단어를‘바울’로 자신을 확인시키고 있고, 그 사람은 분명히 기독교 공동체의 초기 시작으로부터 알려진‘사도 바울’이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그가 베냐민 지파인 유대인임에 따라 히브리식인 사울이었다(행 8:1; 9:1; 13; 9). 그는 소아시아 지역인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출생하였으나 그를 낳은 부모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알 수 없다. 사울이 출생한 다소는 소읍이 아니었다. 다소는 상업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와 아덴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중요한 대학 도시들 중에 속하였다. 사울은 그의 부모가 유대인이며 부친이 바리새인임에 따라 아들인 그 또한 바리새인이었기에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모세의 율법과 함께 유대적 전통을 비롯하여 바리새인으로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그런 그는 또한 부모가 로마 시민권을 가졌음에 따라 그 또한 자연스럽게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이 있었다. 바울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가짐에 따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사울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가는 중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을 정하심에 따라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며, 이후 사울이란 이름에서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렇게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다소에서 출생하여 바리새인으로서 유대교의 지도자층에 있으며 그의 집에서와 동족 간에서는 셈어인 히브리어와 함께 당시 팔레스틴의 언어인 아람어를 사용하면서 또한 다소 사람들이 사용하는 헬라어에도 능숙하였다.
바울이 사도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이 모두를 갖춤에 있는 준비에 있게 된 것은 그가 팔레스틴과 이방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만남에 거리낌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 자유한 상태에 있게 하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셈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능숙하여 구약성경에 능통하여 로마서를 비롯한 모두 14권의 신약성경을 헬라어로 기록함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적 섭리에 따른 것이다.
한편, 로마서의 기록자는 사도 바울이긴 하지만, 바울은 교회, 곧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쓰는데 있어서는 대필자를 사용하였다. 바울은 그가 쓴 서신 14권을 친필로 쓰기도 하였는가 하면(고전 16:21; 갈 6:11; 골 4:18; 살후 3:17; 몬 1:19), 사서(司書) 곧 대필자를 사용하기도 했다(롬 16:22). 바울이 대필자를 사용하여 자신을 대신하여 서신을 쓰게 한 것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갈 6:11)라고 말하고 있는 큰 글자로 써야만 했던 것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안질환이나 또는 시력 저하 등의 상황으로 눈의 상태가 몹시 안 좋은 상태에서도 친필로 서신을 쓰고 있으나, 도무지 직접 글을 쓸 수 있는 눈의 상태가 아닐 때는 그가 불러주는 말을 받아서 쓰도록 대필하게도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육체의 가시로 표현할 만큼 몸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갈 4:13, 15).
4. 로마서의 기록 연대와 장소
로마서가 기록된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건해가 있다. 이 서신은 바울 사도의 제3차 전도여행 중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쓰인 것으로, 기록 장소는 고린도인 것으로 본다. 로마서의 기록 연대에 대한 견해가 여럿인 것은, A.D. 53-58년 사이로 추정하는가 하면, A.D. 55-56년 사이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A.D. 5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타당한 것은 A.D. 57년인 것으로 본다. 바울은 이 해 겨울에 그의 제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의 시기에 있었다. 이때 그는 고린도에 3개월간 체류하는 마지막 때에 있었는데, 로마서는 이때 기록되었다(행 20:1-6). 이 사실은 로마서의 내용으로 보아서도 확인된다.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헌금을 전달하려는 중이었다(롬 15:25-27). 바울은 이 헌금의 중요성을 고린도전후서에서 각각 강조한 바 있다(고전 16:1-4; 고후 8-9장). 그러므로 로마서는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후 얼마 안 되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 교회로 떠나려는 찰나에 있기 때문이다(롬 15:25). 바울은 이 일이 끝나는 즉시 로마제국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서바나(스페인)에 전도하기를 원했다(롬 15:23-29).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있는 중에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5. 로마서의 기록 목적과 특징
로마서가 기록된 동기와 그에 따른 목적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 자체의 특별한 상황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바울이 처한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세계의 수도인 로마의 일반적인 위치에서 찾아야 한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끈질긴 반대에 대항하여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항하여 오직 믿음으로 그의 구원의 복음을 변호해야만 했었다. 그는 그 싸움을 힘들게 싸워나갔으며, 그리고 그는 이겼다. 그런 그는 그 이김을 통해서 새로운 수고의 지역으로 그의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우선 자신이 싸워온 결과인 믿음에 의한 구원의 복음을 요약적으로 정리하여 진리의 체계를 정립할 필요를 가졌다. 그에 따른 기술(記述)을 해 나가는 것이 로마서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이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인 모든 그리스도들의 믿음을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께 뿌리 내려 굳건하게 하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로마서가 기록된 동기와 목적의 또 하나는 기록한 로마서에서 해 주고 있는 말을 통하여 바울은 교회 전체에서 뿐만 아니라 아주 특정적으로 로마에서 무엇인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바울은 로마 제국의 가장 서쪽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서바나(스페인)에 가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로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그들의 협력을 얻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서바나에 복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 도시만이 활동 기지가 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한 안디옥은 서바나로부터는 너무 멀었다. 오직 로마만이 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바울에 의해 설립되지 않았었고, 사실 그는 로마의 그리스도인인 믿음의 형제들과 개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또한 사귐이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로마가 서바나에서의 복음 전파를 위한 활동 기지로서 바울을 도울 수만 있다면, 그 교회가 바울의 복음의 충만한 해석으로 무장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복음의 진수를 진리 체계를 통해서 자세히 설명하여 알려주고자 하였다.
더욱이 바울은 결코 로마교회 내부의 일이 무지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방문이 가까이 다가옴에 있어서 그들에게 복음이 지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를 희망하였고(롬 1:11), 또한 여느 서신에서도 그러했듯이, 그러나 여느 서신에서 보게 되는 내용은 아닐지라도 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어떤 잘못들을 고치고, 특정한 위험들에 대항하여 그들의 믿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것에서 로마서는 다가오는 로마 방문을 염두에 두고서 쓴, 율법의 그리고 유대 백성의 주장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가진, 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대한 해석의 특성을 띠고 있다. 그러한 것에서 로마서는 구약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인용되고 있으며 많은 구약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죄, 율법, 할례, 이스라엘,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 생명, 소망, 믿음 등을 다루게 되는 많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6. 로마서의 내용에 나타나고 있는 주요 주제들
로마서의 내용에 나타나고 있는 주요 주제들을 로마서를 구성하고 있는 전체 문맥의 파악에 의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Ⅰ. 로마서 서론 : 1:1-17.
1. 인사에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1:1-7)
2.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믿음을 통한 구원의 능력에 있는 로마의 성도(1:8-17)
Ⅱ. 로마서 본론 : 1:18-15:13
1. 인간의 실상(1:18-2:29)
(1)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된 인간(1:18-32)
(2) 유대인의 죄(2:1-29)
2. 이신칭의 또는 이신득의(3:1-5:11)
(1)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의(3:1-4:17)
(2) 믿음에 의한 의의 설명(4:18-25)
(3) 믿음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5:1-11)
3. 대표 원리에 의한 그리스도 설명(5:12-21)
(1)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5:1-11)
(2) 첫 번째 사람 아담을 통해서는 죄가, 두 번째 사람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의가 온 세상에 미침(5:12-19)
(3) 율법의 가입과 하나님의 은혜의 더함이 가져온 각각의 결과(5:20-21)
4. 세례(6-8장)
(1) 그리스도와의 연합(6:1-14)
(2) 옛주인인 율법에 속한 자가 아닌 새주인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6:15-7:25)
(3)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율법의 성취(8:1-30)
(a)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8:1-4)
(b) 양자의 영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단번의 구속이 지닌 의미(8:5-17)
(c) 구원의 첫 열매인 성령(8:18-30)
(d)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큰 확신의 믿음(8:31-39)
5. 구원론적인 하나님의 섭리(9:1-11:36)
(1) 이스라엘의 선택과 유기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9:1-10:21)
(2)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11:1-36)
(a)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에 있는 참이스라엘(11:1-10)
(b)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11:11-24)
(c)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심오한 하나님의 섭리(11:25-36)
6.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12:1-15:33)
(1)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12장)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권면(13:1-15:13)
Ⅲ. 로마서 결론 : 15:14-16:27
1.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15:14-21)
2.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을 알림(15:22-33)
3. 주의 복음 안에서 함께 도우며 믿음의 동역에 있어온 형제와 자매를 소개하며 교 회가 그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문안할 것을 부탁함(16:1-24)
4. 로마서의 맺음 말 : 복음의 계시에 대한 기원의 찬양 (16:2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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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 8:1-4. “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2)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가 쓴 「클라우디우스의 생애」에서의 한 유명한 한 구절은 일찍이 적어도 A.D. 50년에는 로마에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들이 크레스투스(Chrestus)의 선동 아래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로마로부터 쫓아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소동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을 배척하는 유대인들 간의 논쟁으로 인한 소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있은 복음 전파에 의해 로마로부터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개종자들이 로마로 돌아가 로마교회를 이루었으며 이 수는 점차 더해져 A.D. 50년 시점에 이르러서는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에 큰 위기 의식을 가지며 적대 행위를 노골적으로 가져나가며 배척의 행위를 취하였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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