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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문자
시기 | 기원전 3100년경 ~ 기원전 1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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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 지역) |
특징 | 표의문자-단어문자 표음문자-음절문자 표음문자-자모문자 |
언어 | 수메르어 아카드어, 아시리아어, 바빌로니아어, 히타이트어,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히타이트어 우가리트어 |
인류의 문명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크게 네 지역이 꼽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곳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Μεσοποταμία, Mesopotamia)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강과 강 사이’라는 뜻으로, 오랫동안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이곳은 대체적으로 현대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은 이 지역을 가리켜 ‘섬’이라는 뜻의 ‘자지라(جزيرة, Jazira)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알 자지라’라는 아랍 방송국의 이름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알 카에다, 알 지하드 등 아랍어에서 쓰이는 ‘알’은 영어의 정관사 the에 해당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릴 만큼, 땅이 비옥하고 강수량이 풍부하여 기원전 약 4,000년경부터 인간이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나오는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창세기 2장)라는 구절에 따라, 에덴동산이 이 근처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이 땅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탄생했다. 1년을 열두 달, 하루를 24시간으로 하는 태음력과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나누는 60진법, 원을 360도로 나누는 것은 모두 수메르 문명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까지 알려진 문자 중 가장 오래된 ‘문자’인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가 생겨났다.
‘설형(楔形)’이란 ‘쐐기 모양’이라는 뜻으로 그 글자의 모습이 마치 쐐기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선수가 한 골을 넣어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우리가 흔히 ‘쐐기를 박다’라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쐐기’는 일종의 나무못인데, 나무를 V자 모양으로 깎아서 나무로 짠 물건의 틈새를 박아 연결 부분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데 쓰인다.
글자를 쓰기 위해서는 종이와 펜 등 필기도구가 필요하다. 설형문자를 쓰는 데 종이 구실을 한 것은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이며, 펜 구실을 한 것은 갈대 줄기나 뼈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갈대 등의 끝을 다듬어 뾰족하게 만들어서 누르거나 새겨서 쓰면 점토판 위에 자국이 남게 되며 이것이 문자가 된 것이다. 문자의 모양이 쐐기를 닮게 된 것도 바로 점토판과 갈대 줄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며, 설형문자에 곡선이 거의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필기도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쓰기가 끝나면 점토판을 햇볕에 말려 보관했으며, 중요한 것들은 가마에 구웠는데 이렇게 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심지어 큰 화재가 나더라도 이 점토판은 불에 굳어져 더 단단해진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수많은 설형문자 점토판이 남아있다. 고대 이집트의 필기재료였던 파피루스가 쉽게 파손되기 쉬운 것과 대비된다. 또한 후대에는 석판이나 금속판이나 바위, 금속, 상아, 유리, 밀랍 등에 새긴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
설형문자로 된 자료는 수메르어를 기록하는 데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루크(성경에는 에렉으로 표기)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문자를 사용한 수메르인들은 원래 바빌로니아 지역의 토착민이 아니었으며, 그 기원이 어디인지 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또한 그들의 언어였던 수메르어도 현재 알려진 어떤 언어와도 관련을 맺고 있지 않는 고립어로서, 이 지역 인근에서 사용되는 여러 언어들이 셈어족이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것과 대비된다.
기원전 2500년경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문자는 이 지역 북부에 살던 아카드인에게 차용되며 이를 아카드 설형문자라고 한다. 아카드어는 셈어족에 속하는 언어였는데, 이때부터 설형문자는 서아시아 일대의 공용문자가 되어 아카드어에서 갈라진 언어인 바빌로니아어와 아시리아어 등 그 지역의 공용어였던 셈어족의 언어를 기록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수메르어는 단음절로 된 언어로서 낱낱의 설형문자는 주로 단어문자로 사용되었는데, 아카드에 차용되면서 음절문자로 바뀌게 된다.
또한 설형문자는 기원전 6세기경 이 지역을 다스렸던 페르시아어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란 지역에서 사용되던 엘람어, 현재의 터키 지역에서 사용되던 히타이트어 등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표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이후 설형문자는 기원전 1세기 중엽 그리스 알렉산더 왕의 원정과 더불어 전래된 그리스 문자나 아라메아 문자의 보급으로 점차 잊힐 때까지 3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용된다.
설형문자의 발달 과정 중에서 기원전 15세기경에서 14세기 중반까지 오늘날의 시리아 라타키아 북쪽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도시왕국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문자는 특기할 만하다. 이 우가리트 설형문자는 아카드의 문자를 받아들여 변형시킨 것인데, 겉모양은 설형문자이지만 다른 설형문자와는 달리 30개의 자모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자는 나중에 살펴볼 원시 시나이 문자나 원시 가나안 문자보다는 후대의 것이어서 최초의 자모문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하나의 문자가 단어문자가 음절문자를 거쳐 자모문자로 발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른 시기의 문자라는 점에서 아주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남긴 많은 문서들은 그 주제나 내용이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과 많이 비슷할 뿐더러 그들의 언어 역시 히브리어와 아주 가까운 것이어서, 성경의 역사를 이해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가리트는 기원전 1200년 경 그리스 본토에서 들어온 해상민족에 의해 멸망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1920년대 우연한 발견을 통해서 다시 역사의 중심부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후 가나안 북부 지역의 역사를 새로 써야만 했다.
설형문자의 원래 모습은 그림문자였으며, 이후 위에서 아래로 쓰던 필기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으로 바뀌면서 문자의 모양이 90도 회전하였다가 점토판에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쐐기 모양으로 변하였다. 문자의 수는 초기에 1,800개 정도 사용되었으나, 다시 800여개로 줄어들었다가 이후 바빌로니아에서는 570개 정도가 되었으며, 후기 아시리아에서는 350개 정도로 감소되었다. 고대 페르시아 설형문자는 글자의 획도 간략해지고, 자수도 42개로 정리된다.
이처럼 문자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 문자의 성격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설형문자의 초기 단계에서는 하나의 단어를 하나의 문자로 기록하는 단어문자였으므로, 사용되던 단어의 수만큼 문자의 수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음절문자의 경우에는 해당 언어에서 사용되는 음절의 수만큼, 자모문자의 경우에는 그 언어에서 사용되는 소리의 수만큼만 글자 수가 필요하게 되므로 그 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금이야 누구나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서, 문자를 알고, 사용하는 것을 특별한 기술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모두가 알아야 할 기본적이고 당연한 능력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예전에는 글자를 아는 것이 고급 기술 중 하나였으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권위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이는 한자로 쓰인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벼슬길에 올랐던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자가 처음 생겨날 당시에는 왕조차도 읽기, 쓰기 등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신전의 제관들과 의사, 상인, 서기(書記)들이며, 특히 서기 계급의 위력은 아주 대단했다. 기록을 맡아 하는 서기들은 설형문자를 읽고 쓰는 법은 물론,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기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기술을 익혀야 했고, 그렇기에 서기는 때로는 글자를 모르는 신하들이나 심지어는 왕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당시의 서기 학교터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선생이 쓴 글씨와 학생이 쓴 글씨가 나란히 적혀 있어 설형문자 쓰는 법을 어떻게 가르쳤는가도 알 수 있다.
문자는 기본적으로 상거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서 발생한다. 설형문자 역시 처음에 신전에 바치는 공물이나 농부들이 서로 물물 교환한 물건들의 양이나 수를 세고 기록하기 위한 기호로 사용되었다. 보리, 맥주, 소, 양 등 사물은 그림으로 그리고, 숫자는 짧은 선이나 원의 반복으로 표시했다. 이처럼 사물의 모양을 본떠 눈에 보이는 생김새를 적은 문자를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형문자에는 한자가 있으며, 이른 시기의 설형문자 또한 상형문자에 속한다.
상형문자의 초기 단계는 사물을 그대로 모방하지만, 점차로 문자의 추상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메소포타미아 동쪽과 북쪽에서는 자그로스 산맥이 있어 인간이 쉽게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산’을 나타내는 글자는 ‘경계, 동쪽’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고, 이후 ‘낯선 땅, 외국, 외국에서 온 노동자’ 등의 뜻으로 확장된다. 마찬가지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는 ‘이삭, 농사일’ 등의 뜻으로, ‘사자’를 나타내는 글자는 ‘힘, 용맹함, 살육, 공포, 폭군’ 등으로 의미로 추상화의 단계를 거친다.
상형문자는 그 문자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표의문자(表意文字; 뜻글자)이다. 표의문자인 상형문자는 수많은 기호나 그림을 그려야 표현하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각 대상마다 하나의 그림을 필요로 한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의 수만큼 글자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수천, 수만 개의 글자를 따로따로 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여기에서 귀로 들리는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表音文字; 소리글자)가 발생하게 된다. 설형문자 역시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변하게 된다. 이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여 보자.
초기의 설형문자에서 ‘화살’을 나타내는 말은 화살 그림의 상형문자 ‘티(ti)’였다. 그런데 나중에 ‘생명’을 나타내는 단어를 그릴 필요가 생겼지만, 생명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생명을 나타내는 수메르어 역시 그 발음은 [티]였기에, 화살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를 가져다가 생명을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즉, [티]라는 소리값을 가진 상형문자는 처음에는 화살의 모양을 본떠 만든 단어문자였지만, 아카드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모양과는 관계없이 [티]라는 음절을 나타내는 음절문자로 바뀐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소문’이라는 단어를 문자로 표현하려고 할 때 이를 직접 그리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소의 그림과 문 그림을 이용해서 ‘소문’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때 ‘소문’을 구성하는 두 글자 ‘소’와 ‘문’이 가진 원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그 발음인 [소]와 [문]만을 빌리게 된다. 이처럼 일단 어떤 문자기호가 특정한 발음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된 이후, 그 문자기호는 어느 경우에든 그 발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즉, 소 그림은 언제나 [소]라는 발음만을, 문 그림은 언제나 [문]이라는 발음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문자가 단순히 대상을 표상하는 표의적 방법에서, 그 대상의 소리를 옮겨 적는 표음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레부스(rebus) 원리라고 한다.
설형문자로 적힌 기록은 대부분 행정 기록과 상업적 목적의 장부 기록이지만, 발음, 기호 모양, 의미 등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한 단어목록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사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설형문자로 이루어진 작품 중 유명한 것은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시가로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 가량 먼저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시가는 처음에는 수메르인들이 채록하였고 이후 아카드인들은 체계적으로 정리한 작품으로서, 우루크의 강력한 왕이며, 3분의 2는 신, 3분의 1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길가메시에 관련된 무용담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작품에는 먼 옛날에 신들이 대홍수로 인류를 멸망시켰지만 정직한 인물 한 명을 선택하여 거대한 나무 방주를 만들게 하여 인류와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외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의 여러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창세기 6~9장)는 물론 그리스 신화와도 많은 부분 유사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며, 모든 이야기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우리에게 “눈에는 눈, 귀에는 귀”라는 구절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 역시 설형문자로 적혀 있다. 기원전 1790년경에 이루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왕인 함무라비가 제정한 것으로, 현무암으로 된 돌기둥에 당시 언어인 아카드어의 법전이 설형문자로 쓰여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담이지만, 탈리온 보복법 즉, “눈에는 눈, 귀에는 귀”라는 이 법전의 정신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잔인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잘못을 저질러도 크게 앙갚음을 받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눈에는 눈으로만 보복할 것이지 그 이상의 보복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내 상처 하나에 사람 하나를, 내 생채기 하나에 아이 하나를 죽였다”(창세기 4장) 참고.
중세 때부터 부유한 유럽인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 하나쯤은 집에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했을 만큼, 설형문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고고학 방법론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어서, 독일인 그로테펜트(G. F. Grotefend, 1775∼1853)가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설형문자를 거의 해독하는 데 이른 것은 1802년이었다.
이후 설형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은 이란의 베히스툰(Behistun, 오늘날의 비시툰) 마을에 있는 거대한 비문이다. 영국군 장교이자 외교관인 롤린슨(Henry C. Rawlinson, 1810∼1895)은 비문이 조각되어 있는 자그로스 산맥 절벽으로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매달린 채 한 글자씩 종이에 옮겼다. 10년여의 노력 끝에 온전한 사본이 만들어졌고, 그는 1847년 이 비문이 고대 페르시아어, 바빌로니아어, 엘람어의 3개 국어로 되어 있으며, 기원전 5세기경 만들어진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1세의 전승기념비문이었음을 밝혀냈다(다리우스 1세는 구약 성경 에즈라기에 자주 등장한다).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아라메아어가 공식 언어였지만, 바빌로니아어 같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언어들 역시 문학, 종교, 과학 분야에서 계속 사용되어 왔다.1)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해”를 설형문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는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발음은 [ze-ki-ongu]이다. ‘za.e’는 ‘너, 당신’이라는 뜻이며
는 ‘ki.aĝ2’는 ‘사랑하는’이라는 뜻이고
는 ‘gu10’는 ‘나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수메르어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매우 한정된 문맥에서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주인이나 상위자는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지만, 아랫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이 단어를 쓸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신은 인간은 ‘사랑’할 수 있지만, 인간은 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인간은 신을 경외하거나 존경할 수 있을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설형문자 - 인류 최초의 문자 (세계의 문자 사전,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