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 김훈 / 해냄
1910 경술년 생인 아버지(마동수)와 1953년 생 아들(차세次世)에 관한 소설이다. 부자(父子)가 태어난 년도가 심상치 않다. 함께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차세의 형과 어머니의 삶도 기구하다.
아버지는 큰 아버지의 인도로 중국으로 갔으나 자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다 국내로 들어 왔으나 국내에서도 자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 부산 피난민 촌에서 병원에서 나오는 군복을 세탁하는 일을 하다가 같은 일을 하던, 흥남 부두에서 남편과 아이와 생이별한 이도순을 만나 부부의 연으로 살아간다. 두 아이를 낳고도 집은 잠시 들리는 곳 이상의 의미가 그에게는 없었을까? 두 아들은 그렇게 가정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 간다.
차세의 형, 장세(長世)는 군에서 월남전에 차출되고, 베트남에서 무공훈장을 받고 현지에서 전역한다.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미국인과 괌 등지에서 사업을 한다.
차세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 시절 입대를 한다. 박정희의 죽음이 있었던 해, 그는 상병이었고, 그 즈음 휴가 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다. 몸을 구부린채 주검이 지나간 경술년생 아버지의 몸은 관으로 들어가고자 관절이 꺽이고 허리가 꺽인다. 평생 반듯한 삶을 경험하지 못한 그는 그렇게 못박힌 관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겨울 땅을 가르고 차가운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삶처럼 그의 죽음도 그렇다. 병원에 있던 어머니도 괌에 있던 형도 참석하지 못한 장례식에는 상해 동지라는 자만이 빈소를 시끄럽게 만들뿐…
"니가 힘들겠다."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장세가 차세에게 하는 말이다.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사는 삶이, 스스로 뭔가를 이루기에 벅찬 삶이 힘들겠다는 이야기다. 장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에게는 독백으로 들리는 이유다. 장세는 그중에서 적어도 몇 가지 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삶을 관통하고 과거의 얽매임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가난, 가족, 전우, 국가 등등, 그것은 차세가 형을 만나러 괌에 왔을때 느낀 다음의 감정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
문득 태어난 자리에 묶여서 살아간다는 것이 가볍고 하찮게 느껴졌다. - 284쪽
3년형을 받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형, 장세의 이야기는 마친다.
그럼 차세의 삶은 어떠한가? 차세의 삶에서 작가는 희망을 부여한다고나 할까? 그래, 희망이다. 그 희망은 "박상희"라는 이름으로부터 시작한다. 차세의 여친이었고, 아내가 된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까지, 단란한 한 가족을 이루게되는 희망의 이름인것이다. 그녀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보통 가족임에 틀림없다. 상희의 부모는 집안이 한미해서 기댈 곳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그녀의 가족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남루하니까 저쪽이라도 힘이 있어야해. .... 쯩[證]이 없으면 줄이라도 있어야지. - 197
상희는 어떤 여자인가?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상희 가족도 초라하다고 했지만, 그 시대에 미대를 다녔다는 것으로 그녀 부모님의 자녀 사랑은 짐작할 수 있다. 차세가 군에 있을때 보낸 편지를 보면 시간의 흐름을 그림에 담고자 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때는 공원으로 데려가 나무를 만지게 하고 그 느낌을 마음속에 저장했다가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원장에게 경고를 받는 마음이 따스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차세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조금 어렸을때 부부학교에서 부부의 역할에 대해 몇 개월을 점검한 적이 있다. 배웠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지금은 세상에서 뵐 수 없는 강사의 의지이기도 하다. 강의가 아니라고 해서 "워크샾"이라 볼렀던 것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강의를 시작할때면 항상 "나는 카피 copy 되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의 구호로 시작했던 것 같다.
마장세의 삶은 아버지 마동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카피된 삶 그것이다. 그러나 차세는 상희와 한 가족을 이루면서 아버지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듯 하다. 그 과정을 글로서 지켜보는 것이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마차세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전두환 시대에 언론이 통폐합되면서 직업을 잃은 차세를 보면서, 낙담으로 인하여 혹여 아버지의 길로 들어갈까 가슴 졸였다. 그리고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고 한다. 혹시 교통사고? 상희가 자궁암 검사를 하러 간다. 오! 암이 이 가정에 들어오는가? 비행기를 타면 .... 그야말로 나는 새가슴이 되어 간다.
다행히, 차세 가정은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이면서 소설은 마친다. 다행이다. (2017. 6. 6 평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