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네… 전세가 고요하다
[봄 이사철인데도… 전세금 상승 주춤, 5년만에 최저]
1. 이미 너무 오른 전세
아파트 전세 5년간 40% 올라, 이제 더 이상 오를 것도 없어
2. 이사 대신 재계약
이사해 봐야 돈만 더 들어 "재계약 비율 40% 넘을 듯"
3. 너도 나도 半전세
오른 전세금 감당 못해 일부 금액은 월세로 납부
-그래도 세입자는 괴로워
재계약하면 보증금 상승… 지난달 전세자금 보증액 1조2255억 사상 최대
요즘 전세 시장이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다. 봄 이사철을 맞았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세난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지표상으로도 상승률이 높지 않다. 올 들어 2월 말까지 전국 전세금은 평균 0.5%(국민은행 조사) 오르는 데 그쳤다.
2009년(-1.5%) 이후 2월 말까지 누적 기준으로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국토교통부도 "2월부터 전ㆍ월세 거래량이 늘고 있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가격이 크게 오르지는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전세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고 말한다. 지표와 체감 경기에 온도 차가 있는 것이다. 전세 시장은 정말 안정된 걸까? 봄 이사철인데도 비교적 잠잠한 이유는 뭘까?
①오를 만큼 올랐다
지표만 보면 전세금은 지난해부터 상승세가 꺾였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전세금은 2008년(1.7%) 이후 2009년(3.4%), 2010년(7.1%), 2011년(12.3%)까지 3년 연속으로 상승률이 매년 커졌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3.5%로 둔화됐다.
전문가들은 전세금이 오를 만큼 오른 것 아니냐고 본다. 전세 수요가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가격 상승 여지는 많이 줄었다는 것.
실제 전국 전세금은 2008년 이후 5년간 평균 30%, 아파트는 40% 안팎 뛰었다. 2008년 초 2억10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현재 2억7300만원으로 6000만원쯤 올랐다. 서울 강남권 일부 아파트는 전세금이 3.3㎡당 2000만~3000만원 선으로 웬만한 지역의 매매가를 넘는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는 8억5000만원 수준이다.
전세금 2년 주기설도 나온다. 전세금이 2년 단위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는 것. 실제 2006~2007년 강세를 보였던 전세금은 2008~2009년에 약세로 돌아섰다. 2010~2011년 다시 급등했던 전세금은 지난해 주춤했고 올해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는 국내 전세 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2년 후 재계약 시점에 세입자들이 싼 집으로 이동하거나 가격을 시세보다 낮춰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②전세 재계약 늘어
서울 서대문구의 전용면적 84㎡ 빌라에 사는 여모(34)씨는 최근 보증금 3000만원을 올려 2억3000만원에 전세로 재계약했다. 그는 "주변 시세가 2년 전보다 5000만원쯤 올랐다"면서 "옮겨봐야 비용만 더 들고 전세 물건도 별로 없어 집주인과 협의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재계약이 늘어나는 것도 전세금 상승세를 꺾은 이유 중 하나다. 전세 재계약은 통상 주변 시세보다 10~20%쯤 낮은 선에서 이뤄진다.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재계약을 선호한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새로 찾는 시간과 비용을, 세입자는 이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올해 전세 계약 중 재계약 비율이 30~40%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재계약이라고 해도 세입자 부담은 작지 않다는 것. 상당수 세입자는 오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대출 창구를 찾고 있다. 실제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세 자금 보증액은 1조2255억원으로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③급증하는 반전세
이른바 '반전세'로 불리는 보증부 월세의 증가도 전세금 상승세를 둔화시키고 있다.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것을 반전세라고 한다. 집값이 오르지 않고 금리가 낮다 보니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매월 현금이 들어오는 월세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전체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월세 비중은 2011년 33%, 지난해 34%에서 올해는 43%로 껑충 뛰었다. 일부 전문가는 "지역에 따라서는 이미 월세 비중이 전세를 추월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어차피 전ㆍ월세 물건이 한정된 상황에서 월세가 늘어나면 전세 매물이 더욱 부족해져 가격 상승 압박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금 상승세 둔화의 또 다른 이유는 주거의 하향 이동이다. 치솟은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에서 수도권 외곽으로, 아파트에서 빌라나 연립주택 등으로 이사하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실장은 "수치상으로 전세 시장 움직임이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세입자가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면서 "최근 임대차 시장 구조 변화에 맞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값 대비 전세금, 10년만에 최고
전세금이 오를 만큼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다. 지난 2월 현재 전세금 비율은 전국 63.9%, 서울 55.7%다. 전국은 2003년 4월(64.8%) 이후 최고치, 서울은 2002년 11월(56.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광역시가 78.2%로 가장 높았다. 경북(75.5%), 대구(74.8%), 울산(73.0%), 전남(72.8%), 전북(72.1%) 등도 70%를 넘었다.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금호타운2차 105㎡는 매매가와 전세금 격차가 4000만원에 불과하다. 매매가는 1억8000만원 안팎인데 전세금이 1억4000만원으로 전세금 비율이 80%에 육박한다. 봉선동 D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전세금이 뛰면서 매매가 턱밑까지 올라왔다"면서 "워낙 많이 올라 요즘엔 상승세가 주춤한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도 전세금 비율이 60%를 넘는 지역이 적지 않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6곳이나 된다. 성북구가 63.8%로 가장 높다. 관악·서대문·중랑·동대문·구로구 등도 60%를 돌파했다. 성동구 금호동 푸르지오 전용면적 84㎡의 경우, 매매가는 4억6000만원이지만 전세금은 3억3000만원으로 전세금 비율이 71.7%다. 다만 집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강남권은 전세금 비율이 낮았다. 강남구가 44.0%로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낮았고, 강동·서초·송파구도 50% 안팎이었다.
과거에는 전세금 비율이 높아지면 매매가도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 전세금 비율이 60%를 넘고 금리가 낮으면 차라리 집을 사자는 심리가 발동하면서 거래가 늘고 집값도 올랐던 것. 지방은 70%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매매 수요로의 전환이 활발한 분위기는 아니다. 전세금 비율이 80%에 가까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아파트는 지난 1월 2건이 매매된 이후 거래가 끊어졌다.
전세금 비율이 높은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주택 경기와 투자 심리가 워낙 위축돼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곧 발표할 부동산 대책 내용과 실물경기 회복 속도에 따라 세입자들이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설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