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으악새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은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로 시작되는 ‘짝사랑’이란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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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짝사랑'의 가사내용
1.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 목이 맵니다.
2.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 가을인가요.
잃어진(잊혀진) 그 사랑이 /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섰는(서있는) / 임자 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 맴을 돕니다.
3. 아~ 아~ 단풍이 흩날리니 / 가을인가요.
무너진 젊은 날이 / 나를 울립니다.
궁창을 헤매이는 / 서리 맞은 짝사랑.
안개도 후유 후유 / 한숨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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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복수가 부른 노래로 지금도 애창되는 곡이다. 그렇다면 이 ‘으악새’는 과연 억새가 맞는 것일까?
억새의 옛말은 ‘어웍새’이며 사투리가 ‘웍새’ 또는 ‘으악새’다. 한때 사전에도 ‘으악새=억새의 사투리’라고 돼 있었다. 따라서 이 노래에 나오는 ‘으악새’가 ‘억새’라는 게 대체적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의 2절 ‘뜸북새 슬피우니~’에 비춰 ‘으악새’를 새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왜가리의 방언이 ‘왁새’이므로 ‘으악새’는 ‘왁새’를 길게 발음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990년대 들어 대부분 사전이 ‘으악새=①억새의 사투리 ②왜가리의 사투리’라고 올렸다.
하지만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엔 ‘으악새’가 아예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따라서 사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졌다. 다만 작곡가인 손목인의 저서엔 작사자에게 ‘으악새’가 뭐냐고 물었더니 “고향 뒷산에 오르면 ‘으악, 으악’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으악새’로 했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만약 이게 맞다면 최소한 노랫말에 나오는 ‘으악새’는 새가 되는 것이다.
● <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작고한 원로가수 고복수의 <짝사랑>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이 가요는 노랫말 그대로 ‘으악새가 슬프게 우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온 모양이구나’ 하는 애달픈 내용으로 이 노래를 알고 있는 기성세대라면 가을날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애창하는 사람들도 정작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새 이름에는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뻐꾹뻐꾹 뻐꾹새, 뜸북뜸북 뜸북새, 지지배배 제비는 물론 종달종달 종달새가 그렇다. 그러니 혹 으악으악 하고 우는 새가 아닐까, 그래서 으악새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조류 도감에 <으악새>라는 새는 없다.
그렇다면 어찌 된 것일까.
이에 식물학자들이 나서서 <으악새>란 <억새>의 다른 이름이라 주장했고, 실제 경기도 방언으로 <억새>를 종종 <으악새>라 부른다고 국어학자들이 뒷받침까지 했다.
갈대와는 달리 생김이 좀 억세서 <억새>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식물인 <억새>가 슬피 운다? 매우 시적인 표현이라는 해석까지 더해지면서 작사자의 문예미학적 표현의 재능까지 찬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으악새>는 <억새>일까?
이 의문이 풀리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3년 11월 27일. 이 노래 <짝사랑>의 작곡자인 손목인 탄생 100년을 맞아 그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다. <손목인의 가요인생>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작곡자 손목인이 전하는 작사자 박영호의 작사 배경이 재미있다. 일제 강점기 KAPF(조선예술가 프롤레타리아 동맹)에서 활약한 적이 있는 박영호는 촉망받는 시인이었으나 KAPF가 해산된 후 가요계의 작사자로 변신을 해서 성공을 했는데 한국동란 중 아깝게 40을 갓 넘긴 나이에 고인이 되었다.
손목인이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영호 왈, 뒷산에 올라갔는데 아래쪽에서 으악, 으악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했단다. 아주 시큰둥한, 요즘식으로 말하면 쿨한 대답이었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1절과 2절의 가사가 댓구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1절 :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2절 :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으악새와 뜸북새의 댓구. 그러니 으악새는 갈대인 <억새>가 아니라 진짜 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으악 으악 하고 울었다는 이 새는 어떤 새일까?
이번에는 조류학자들이 나섰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류도감에는 <으악새>란 새가 없다. 그렇다고 작사자 박영호가 발견한 새로운 종일까? 아니다. 바로 왁왁거린다고 해서 <왁새>란 이름이 붙은 우리나라 새 <왜가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왁왁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왁새>. 이 새의 울음 소리를 듣는 이에 따라 '왁왁'이 아니라 '으악으악'으로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박영호가 강원도 통천 출신이라는 것, 작사 당시에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경계에 있었다는 것, 그 계절, 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가 <왜가리>라는 것 등등을 통해 으악으악 울었다는 새 이름을 박영호가 몰랐기에 그냥 자신의 귀에 들린 울음소리 그대로 <으악새>라 했을 뿐 실은 <왁새> 혹은 <왜가리>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새 이름을 모르고 그냥 소리나는 대로 노랫말에 적은 박영호. 이를 두고 억새라고 주장하며 문예미학적 평가까지 했던 문학연구가들. 그러나 어쩌랴. 작사자가 작사 배경을 설명한 것이 알려지면서 머쓱해버리고 말았다.
그냥 으악으악 우는 새가 아닐까, 했던 많은 대중들의 상상이 맞았던 것이다.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그냥 으악으악 우는 새이다.
누구 귀에는 왁왁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새.
공식 명칭은 <왜가리>라는 것뿐이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것, 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짝사랑>도 들어보자.
기억해두자.
으악새 → 왁새 → 왜가리
박영호가 새 이름을 정확히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 아~ 왜가리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그냥 몰랐던 것이 훨씬 더 낫다.
이 참에 <억새>라는 갈대도 구경하고 <왁새>라는 별칭이 있는 <왜가리> 구경도 하며 노래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