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노인 다섯이 사량도 섬에 가기로 한 날이다. 카메라와 짐벌을 가방에 넣고 부전역으로 간다. 울산에서 내려온 친구를 태우고 넷은 서울 친구를 맞이하려 김해공항으로 간다. 오월의 싱그러운 바람은 하늘만큼이나 푸르다.
고교 졸업 후 오랫동안 모임을 하던 친구들이다. 모두 여덟 명인데 하나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다른 하나는 거동이 불편해서, 또 하나는 사정이 있어 빠진다. 이제 사는 게 조심스럽다. 누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하면 뜻을 한 곳으로 모우기가 쉽지않다. 다들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어차피 악명높은 사량도 능선을 타고 동쪽에서 서쪽까지 가는 길인데 억지로 못할 일이다. 살면서 형편을 살피지만 갈 놈만 가는 비정함이 따라다닌다.
살짝 곁눈질로 얼굴을 살핀다. 머리는 하얗게 서리가 앉아있고 주변머리는 반들반들하다. 고성 가는 길에 삼천포를 지난다. 점심 먹을 시간이라 길가 횟집에서 멸치를 주문한다. 하나는 운전하고, 또 하나는 술만 먹으면 가렵다고 한다. 셋이서 오후에 할 산행이 걱정은 되지만 소주 두 병을 날름 비운다.
오월의 산은 푸르다. 키가 높고 낮은 산은 서로 바라보고 어깨를 걸치고 사람처럼 살아간다. 먼 산은 희미하게 하늘과 맞닿아 있다. 차 속에서 하는 이야기는 증권 시세부터 죽은 사람을 소환도 했지만 기억은 없다. 카페리는 바람을 싣고 건너편에 있는 섬으로 간다. 사람보다 차 배삯이 더 비싸다. 낮은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다.
숙소에 짐을 푼다. 윗섬과 아래섬을 연결한 사량교(蛇粱橋)를 지나 섬 일주도로를 자동차로 돈다. 다리에서 내려 내일 상도 능선을 타기 전에 하도의 칠현산에 오른다. 영도 봉래산에서 본 바다가 좋아서 얼른 꼭대기로 오르고 싶다. 산길은 예사롭지 않다. 그냥 오르는 산이 아니다. 비탈진 산길은 옆에 선 나무를 잡고 불쑥 나온 바위를 딛고 오른다. 육지의 큰 산과는 다르다. 작은 고추가 맵다. 날이 어둑어둑하고 산행이 조심스러워 꼭대기를 남겨 놓고 내려온다.
아침 여섯 시 반에 기상나팔을 분다. 일곱 시에 예약된 식당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7시 40분, 진촌 면사무소에서 261미터 옥녀봉을 공략한다. 해발에서 출발하는산 길은 가파르다. 돌아가는 길은 없고 정면으로 돌파를 한다. 로프와 사다리타기는 유격코스를 방불케한다. 입에서 ‘유격 유격’소리를 내면서 한발 한발 내딛는다. 옥빛인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은 다도해를 만든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바위는 둥근 바위는 없고 이빨이 빠진 톱날을 닮았다. 옥녀봉의 전설만 듣고 걷기가 힘던 친구 한명은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먼 길이나 산행길은 억지가 통하지 않는다.
서쪽 끝 수우도 전망대까지 동서 능선을 타고 가야한다. 두 개의 출렁다리를 건너 303미터 가마봉으로 오른다. 겨울 초입에 경주 남산 고위봉에 만난 바위와는 또 다르다. 바위가 판상 구조랄까. 얇은 판이 겹겹이 붙어있는 구조에 뾰족뾰족하게 서 있다. 이런 지형의 산은 처음이다. 칼 능선을 타는 등산은 옛날 이야기이다. 우리에게는 무리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또 한 사람이 산행을 그만두고 대항으로 내려간다. 그 시간대에 그 코스로 다니는 사람이 없어 간신히 내려와 먼저 내려온 사람을 만났다. 이제 셋만 남았다.
10부 능선을 따라 400미터 달바위봉을 찾아간다. 엉덩이를 바위에 붙이고 손과 발로 내려온 길을 네 발로 다시 오르기를 하다가 철재 난간을 잡고 위험구간을 지난다. 반대편에서 오는 여자 등산객에게 “오던 길이 어때요.”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면서 우리 행색에 안쓰러운 듯 대한다. 흔히 보는 아줌마지만 강해 보였다. 우리같이 나이가 든 사람은 없다. 일단 봉우리에 올라섰다. 종주거리 6.5키로, 6시간은 우리 기준이 아니다. 작은 생수병 하나, 스테미나 바와 도시락은 턱없이 부족하다. 앞으로 가야하는 표시판에 종착지 돈지까지는 1.7키로, 금북개까지는 1.1키로 되어있다.
고성 용암포에서 풍양호를 타고 사량도 내지항에 도착했다. 섬 반대쪽에 있는 금평항 진촌 면사무소에서 옥녀봉을 넘고 산줄기을 따라 가마봉, 달바위봉 지나 내지 선착장이 가까운 금북개로 내려오면서 힘던 산행과 헤어진다. 아침 7시 40분에 시작한 산행은 오후 3시에야 끝이 났다.
세상은 나이가 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달갑게 보지 않는다. 집 안에 있으라고 한다. 다녀봐야 얼마나 더 다니겠어. 한 번 가면 다시 올 기회는 없다. 또 다시 오기는 어렵다. 온 김에 보고 가야한다.
첫댓글 지리산 옥녀봉을 만나고 가마봉도 타고 옥빛 바닷길을 헤치고 돌아오신 노익장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원로청년 여러분,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