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회사의 OO 기념일! 휴일이다.
월급은 안올려주면서 OO기념일이라고 놀라니.. 놀 수밖에..
이날 고독길을 왔었다.
외롭다는 고독길을 4명이서 등반을 하니 전혀 외롭지 않았다.
왜 . 도데체 왜! 고독길이라고 이름을 붙일걸까?
그날 등반을 하던 동일이는
인수봉 정상에 서서 한마디 일갈했다.
졸업하고 처음 올라본 인수봉이다!
"회장님!"
"담에는 귀바위 한 번하고 싶어요!"
'어 그래?"
"그래, 담에 귀바위 한 번하자"
'"종근이가 선등설꺼야 그러치?"
"네 회장님..."
뭐 요즘 인공등반 강사노릇하는데,
사실 인공등반은 자유등반보다 덜 어렵다.
단지 힘이 든다는거..
그렇게 다시 고독길을 올라서 귀바위를 하기로 정해졌다.
날짜는 3월 25일.
그날 저녁 폭설이 내렸다.
이런 된장. 3월의 폭설이라니....
그러고 나서
일주일이 흘렀다.
3월 24일 오후쯤
동일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낼 못온단다.
난, 너때문에 고독길, 귀바위가는건데 니가 안오면 안된다면서...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영철성 전화!
" 낼 가는거 맞어?"
"네, 맞지요"
도선사 입구에서 만나서 하루재로 오르는 길.
역쉬나 앞선 사람은 성질급한 회장님!
나와 영철성은 뒤 따르면 쉬엄쉬엄 하루재로 올랐다.
오름길에 만난 웬 아짐씨!
" 야, 너 영철이 맞지!"
" 아하하하 너... 구나"
어색한 영철성의 웃음뒤로 황당 무개 어색한 표정!
일어나지 말아야 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표정이었다.
아니, 뭐 아는척 다해놓고 그런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 워쪄라고...
옛 애인인데 지금 올라가는 그 무리중에 남편이 있으면 어떻하냐는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머릿속에 두고 올라가는 영철성님의 얼굴!
잠시 영철성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실없는 웃음을 몇번 보이면서 경찰구조대까지 올라간 영철성은 내가 화장실에 간뒤로 회장님과 그 여인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었다.
구조대 앞에서 잠시 쉬는 동안 난 화장실에 다녀오고 다시 고독길 어프로치로 올라갔다.
역쉬나 걸음이 빠른 회장님은 앞서서 오르시고,
영철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면서 영철성님의 요즘여자 이야기에 귀 귀울이고 있었다.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췬구 부인 이야기에서부터, 아까 인사를 나눈 그 여인과의 옛 추억등...
첫 아이를 낳은 옛 여인은 영철성님이 그리웠던지 잠깐만 만나자는 기별을 보냈고
이에 화답한 영철성은 춘삼월 봄바람처럼 아련한 추억을 만들었노라고...
아~~~ 이것이 그 옛날 성현들이 말씀하셨던 봄바람이었던가?
이런 저런 이야기속에서 고독길 어프로치를 하던 무렵,
갑자기 영철성님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로 코 앞에서 ,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구간에서 영철성님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라졌다가 회장님의 성화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버뮤다 삼각지대를 돌아서 나타난 영철성,
그리고 고독길 초입에서 오랫동안 떨고 계셨던 회장님!
회장님은 이미 벨트를 차고 계셨고,
"영철이 너 어디갔다 왔어?"
영철성 曰 " 형님 있잖아요,, 오다가 여자를 만났는데...."
회장님은 관심없다는 듯 내가 막 벨트를 꺼내 다리를 넣을 즈음 자일도 없이 출발하셨다.
일명 프리 쏠로!
영철성도 급히 벨트를 꺼내 들고
"우리도 자일없이 갈까?"
" 줄 매고 가시죠!"
겁이 많은 나는 안전벨트를 허리에 감으면 자일을 매지 않고는 평지도 못걸어갈 정도로 안전벨트에 단단히 중독된 것이다.
내가 출발하려 할 때 즈음 회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첫 핏치 출발했지만 무브가 지난 번과 달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여기서 떨어지면 조금 아프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갑자기 겁이 난다.
물론 떨어질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회장님이 막상 눈앞에서 안보이니 겁이 난 것이다. 어렵지 않은 난이도 이기에 극복하고 나아갔다.
지난 번 고독길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모든 핏치가 다 그렇듯 딱 한 동작만 해결하면 어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핏치마다 회장님은 자일도 없이 먼저 오르셨고, 두번째, 세번째 핏치가 되었다.
두번째 핏치를 마치고 자일을 사리고 조금 걸어 올라가니 회장님께서 세번째 핏치를 출발하고 계셨다.
출발준비가 끝난 내 모습을 보고 영철성이 확보준비를 하고 있는데 회장님 曰
" 종근아 니가 올라와라!"
아무 생각없이 " 네~~ 회장님"
대답과 동시에 출발했다.
조금 가파른 크랙에 캠을 하나 꽂고 회장님 있는 곳까지 올라섰다.
그러자 캠을 하나 달라시는 회장님!
등반선 옆에 비켜서 계셨던 회장님은 머리위에 캠을 꽂고 내 자일을 통과시켰다.
회장님이 서 계신 바로 위는 지난주에 내렸던 눈이 아직 녹지 않고 바위를 덮고 있었다.
회장님을 뒤로하고 왼쪽 손가락 굵기의 크랙에 쌓인 눈을 손으로 치우며 크랙을 잡고 발을 옮겼다.
손 홀드는 크랙으로, 발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슬랩을 밟으며 서너번 동작을 옮겼고 적당한 크기의 크랙에 캠을 하나 더 꽂으려고 왼손을 크랙에 넣고 발에 힘을 주었다.
캠의 사이즈를 맞추는 동안 뒷쪽에 있는 왼발이 미끄러질 것만 같아 서둘러 캠을 꽂아보는데 그만 주르르륵....
가파른 면을 딛고 있던 왼발이 미끄러졌다.
처음엔 천천히 미끄러지더니 내려갈 수록 속도가 났고, 한참을 떨어졌다.
마음속으로는" 확보를 보고 있는 영철성이 줄을 놓친것 같아 야속했다."
떨어지면서 바위면에 손도 대 보았고, 뒤로 떨어질 때는 등에 맨 배낭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에 새 배낭 찢어질까봐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데...
엉덩이가 많이 아프다.
누워있으니 일어나기 싫어진다.
눈을 떠보니 영철성의 얼굴이 보이고, 참 많이 내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몸에 묶인 자일은 하늘로 향하고 있었고, 회장님 머리위에 꽂았던 캠은 온데간데 없고 내몸은 회장님보다 더 아래, 영철성의 발 위에 있었다.
마침 첫번째 캠은 빠지지 않고 날 매달고 있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내가 바위에서 미끌어져 영철성있는 곳까지 내려왔는데,
두번째 캠이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종근아 다시 올라와!"
" 네, 잠시만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올랐다.
회장님 머리위에 다시 캠을 꽂고, 세번째 캠을 꽂으려던 자리엔 내가 꽂다 말은 캠이 너무도 멀쩡하게 꽂혀있었다.
깊이가 깊지 않아 못 미더웠던 캠은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왜 그 캠을 못 믿었던 걸까..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캠 설치하는 방법부터..
그렇게 세번째 핏치를 끝내고 호랭이굴을 넘어서니 귀바위 바로 밑이다.
회장님 曰
"야 너무 춥다, 귀바위 할꺼야? "
" 시작하면 끝내야되, 못한다고 하면 안되..."
귀바위 바로 아래서 바라보는 영봉과 도봉산쪽 풍경은 눈보라와 어우러져 환상속에 있는 듯 했다. 더구나 그 고도감이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내 머릿속에 가득찬 귀찮음으로 "담에 하시죠!" 라는 말이 혀끝에서 맴도는데,
회장님은 "야 빨리 건너가"
귀바위 인공 첫핏치로 건너가라는 회장님 지시에 영철성이 먼저 건너가고, 회장님 나 이런 순서로 건너갔다.
인공등반 핏치에 귀바위를 올려보니 촘촘히 박힌15개 남짓 볼트와 행거가 보인다.
인공등반 다 까먹었다는 영철성님 말씀. 별거 아니라는 회장님의 독려성 발언을 뒤로하고 내입에서는 " 담에하시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마침 눈보라가 거세지고, 시간도 오후 3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하강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회장님께서 하강루트를 찾는 잠시 동안 영철성은 하루재 올라올때 만난 그 아짐마 이야기를 했고, 난 회장님의 하강모습에 눈을 돌렸다.
귀바위테라스쪽으로 팬드럼해서 올라가서 의대길로 하강할까 하고 회장님은 하강루트를 찾아봤지만 하간용볼트가 보이지 않아 올라왔던 길을 다시 올라 영자크랙쪽으로 올라가서 인수변형길로 하강하기로 했다.
영자크랙 아래에서 첫번째 하강을 하고 줄을 빼려는데, 이런 된장! 자일의 마지막 5m 정도가 바로 머리위 3m 높이 위의 크랙사이에 박힌 커다란 촉스톤에 걸리고 말았다. 아무리 당겨도 눈앞의 자일은 빠지지 않고...
할수 없이 회장님의 확보를 받으면서 다시 올라가 바위 밑 틈으로 기어들어가서 캠 두개를 꽂아 확보를 하고 난 후 자일 끝에 신치를 달아 촉스톤 바위 위로 던져 올려보았다. 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돌릴 수 없이 손목힘으로 자일을 몇번을 던져 올리니 자일이 촉스톤위로 올라섰고 반대편에서 자일을 당기니 자일이 빠져 나왔다.
두번째 하강은 60m 자일 두동을 묶어서 하강을 했다. 첫번째로 내려섰던 회장님曰
"자일이 짧으니까 알아서 해!"
이 무슨 황당한 지시란 말인가?
내가 하강을 하다가 다시 멈춰서 보니 회장님은 궁형길 옆의 넓은 크랙 약 10m를 클라이밍 다운으로 하강하고 계셨다.
한 번 미끄러져 추락을 해본 내 엉덩이는 두번째 엉덩방아를 모면하라고 내 머릿속에 지시를 했고, 하강하던 난 급히 쌍볼트 있는 곳까지만 하강하고 멈춰서서 하강완료를 외쳤다.
영철성이 하강준비하는 동안 회장님은 무사히 오아시스에 안찾하셨고, 이내 영철성도 내려왔다.
" 어느 자일을 댕겨야 하죠?"
"응 빨간거"
네,, 빨간 내 자일을 당기는데 뭐에 걸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반대편 자일을 당겨도 움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
자일 두동이라서 그런지 같이 힘을 써봐도 꼼짝하지 않았다.
할수없이 ..내가 다시 올라갔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주마 한쌍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한쪽 자일을 고정하고 주마질로 한참을 올라가서보니 이런, 빨간쪽이 아니라 회색 자일을 당겼어야 했다.
다시 하강.
회색 자일을 힘주어 당기니 쑥 빠진다.
처음 빨간 자일을 당기다가 회색 자일을 당겼을때는 아마도 매듭이 걸려 있었던 듯하
고, 주마질 하는 바람에 걸렸던 매듭이 빠져나온 것 같다.
그렇게 자일 소통이 안되어 한차례 더 씨름을 하고 난 후 오아시스에 닿았더니 바람도, 눈보라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봄날의 오후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회장님, 나 영철성 순서로 하강을 하고 장비정리를 하는데
그때까지도 영철성은 아침에 만난 그녀의 환상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무료한 중년의 나이에 다가온 옛 추억에 못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신 회장님과 살아오면서 스쳐 지난 여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재로, 도선사로 내려섰다.
뒷풀이 남문포차에는 규필성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규필성을 만난 영철성 첫 마디
영철성 : " 야 , 그때 개(그아이) 오늘 또 만났다."
규필성 : "응 누구? '
영철성 : " 왜 있잖아 그때 OOO OOO 에서 만나 개, 그여자 !"
규필성 : "뭐 ? 야 이 인간(여기서는 영철성을 지칭함) OOO OOO 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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