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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위로
클래식 음악으로 불리는 서양 고전음악을 좋아한다. 몇십 년째 좁고 얕게 즐기는 수준이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공연장을 찾는다. 신년 음악회 티켓을 예매했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지휘자가 입장하길 기다렸다.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지휘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는 지휘봉 대신에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연주하겠다며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치지 말고 묵념을 해 달라고 말했다. 곧이어 감미롭고 부드러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홀 전체에 퍼져 나갔다.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살아난 음표들이 천천히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객석에 앉은 생면부지의 청중들이 한마음이 돼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강요나 억지가 아닌 감미로운 음악의 권유였다. 이날 연주된 곡은 영국에서 추모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9번 ‘님로드’였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는 성서의 말씀이 선율로 들린 순간이었다.
정혜덕 작가
신앙의 기본, 주일성수
며칠 전 106주년 3·1절이 지났습니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난 대한독립 만세운동이라 3·1절로 기념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1919년 3월 1일은 무슨 요일이었을까요. 정답은 토요일입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만세운동을 하기로 했던 날은 3월 3일 월요일 고종 황제의 장례식날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관이 나오는 덕수궁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건 왠지 부담스러워 날짜를 하루 앞당겨 3월 2일 주일에 만세운동을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을 차지했던 기독교 대표들이 주일성수를 위해 하루 더 당길 것을 제안하면서 3월 1일 토요일이 만세운동 날짜로 정해졌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신실한 기독 선열들은 목숨 건 중대한 일 앞에서도 신앙의 기본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일을 성수하고 있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김민철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교향곡의 심벌즈
안톤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은 80분간 연주됩니다. 그런데 이 연주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악기가 있습니다. 48분쯤 지나 2악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심벌즈입니다. 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단 한 번의 등장과 함께 끝납니다. 80분 내내 연주하는 악기들에 비하면 심벌즈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향곡에서 필요 없는 악기는 없습니다. 모든 악기가 각자의 자리에서 연주될 때 교향곡은 완성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열심’이 아니라 교향곡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피는 지혜입니다. 작곡자이자 지휘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들어갈 타이밍을 살피는 지혜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두드러지게 한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임을 감추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도 도망가고 누구도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지 못할 때 그는 빌라도에게 당돌히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막 15:43) 하나님의 교향곡을 위해 준비한 심벌즈가 아닐까요.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안개 낀 안경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받는 훈련 중 하나는 안개가 가득 낀 것 같은 안경을 쓰고 비행하는 것입니다. 이 안경은 앞이 잘 보이지 않게 제작된 특수 안경입니다. 이런 훈련을 하는 이유는 비행기 운항 중 구름에 둘러싸여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오직 조종석 앞에 나타나는 계기판과 지상 관제탑에서 보내주는 명령에 의해서만 비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조종사가 계기판의 수치를 무시하거나 관제탑을 불신하고 자기 느낌과 판단만으로 조종한다면 이 세상에 안전할 비행기는 한 대도 없을 것입니다. 조종사와 관제탑의 관계는 생사를 함께 나누는 신뢰와 믿음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내가 삶의 주인인 양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따라 인도함을 받는 삶이야말로 최고이자 최선의 길입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존중과 배려의 향기
며칠 전 10년 가까이 한 보험사에 들었던 자동차보험을 다른 보험사로 옮겼다. 나를 담당했던 보험설계사 K씨에게 미안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그분은 항상 전화로 친절하고 정확하게 내 일을 도와주었다. 한번은 사고 누적으로 보험료가 크게 올라가자 일 년 동안 다른 보험사로 옮겼다 오라고 제안했다. 한 명의 고객이 아쉬울 텐데 K씨는 내 편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 K씨와 통화하며 옮긴 것에 양해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SNS로 작은 선물과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노동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사도 첨부했다. 고객을 돈벌이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섬겨주어 고맙다는 뜻이었다.
K씨는 자기도 교회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안전 운전과 건강을 기원하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K씨는 한 번도 무리한 요구나 말을 한 적이 없다. 항상 존중과 배려하는 분위기로 대화하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도인 직장인 K씨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이효재(일터신학연구소장)
민노아 선교사의 열심
민노아(Frederick S Miller) 선교사는 1892년 조선 땅에 온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입니다. 1904년 청주 지역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한 그는 우리 찬송가에 실린 5곡을 작사했고 수많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귀한 사역을 33년이나 이어가 ‘충북 선교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이분의 업적 중 하나는 건축 사역입니다. 선교부 사무실, 병원, 성경학교 등을 위해 만든 6채의 근현대 건물은 현재에도 잘 보존돼 사용될 만큼 역사적이고 건축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 후원이 있었어도 100여년 전 6채의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일은 돈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정작 그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간절한 기도와 인내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사랑의 본질은 인내입니다.(고전 13장) 더 이상 참기 힘들다며 포기하고 싶고 자존심 상하는 일을 수도 없이 만나겠지만 그럼에도 참고 견디는 과정을 통해 문은 열리게 돼 있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늘도 그런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분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실제보다 열두 살 어린 기분으로 산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3월 10일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는 진정 봄이 된 듯합니다. 이곳 김포는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 청년기본법은 만 19~34세 국민을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법적인 구분일 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사회적 의미의 청년 나이는 34세를 넘은 지 오래라고 합니다. 그래서 충남의 한 농촌에선 만 60세가 안 된 주민도 청년회 가입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몇 살이라고 느끼시나요?”
40세 이상의 중년층과 노년층 약 5,000명에게 이와 같이 질문한 결과, 실제 연령보다 어리게 대답한 사람일수록 일상생활 동작의 기능 저하가 더디게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독일 노인학센터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입니다.
생각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나는 젊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도 완화됩니다. 게다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열심히 관리하게 되면서 실제로도 더 자주 젊음을 느끼게 되고 점점 더 자신이 젊다고 믿게 됩니다.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지요. “병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음에 관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남덴마크대학교에서 쌍둥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70세 이상의 쌍둥이 1,826명을 7년에 걸쳐 추적 조사했습니다.
피험자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양한 연령층에게 보여주고 인물의 나이를 추측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이 더 높고, 수명과 깊은 관련이 있는 백혈구의 텔로미어도 길었습니다. 실제로 더 오래 산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습니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인데도 겉모습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젊어 보이는 외모’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바로 유전자가 아니라 평소 생활 습관과 환경입니다.(출처;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 지소연)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아브람을 따라 길을 떠났다.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다.(창12:4)
●우리는 사랑으로 기억을 채우며 산다.(이고은)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리막길 중년 남성, 생활체육을 시작하라
40대가 되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적표 체육 과목에 ‘우’가 찍히기 시작했던 운동치라서 다른 참석자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코트에 선 지 만 2년이 됐습니다. 등산과 헬스장 출입을 제외하면 이 정도로 꾸준히 운동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남과 어울려 뛰는 걸 왜 이제야 했을까 후회가 됐습니다. 중장년에 걸맞은 삶의 태도를 가지는 데 타인과 함께하는 생활체육이 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겸허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간 해왔던 일로 약간의 인정도 받고, 경제력과 인맥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사회적인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대신 공 잘 못 치고 나이만 든 중년 남성이라는, 냉혹한 생활체육 세계에서 가장 기피되는 대상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문한 사람들이 실력이 쑥쑥 늘면서 잘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자연스레 만날 일이 사라지는 경험도 겪곤 했습니다. 함께 칠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코트를 구하는 성의가 필요했고, 좋은 매너는 필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테린이(테니스와 어린이의 합성어로 입문자(入門者)를 의미)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너그러운 태도로 함께 어울려 준 선배 동호인들 덕분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긴요했습니다. 신체 능력이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멘털입니다. 어느 날은 내가 생각해도 잘 칠 때가 있지만, 또 어느 날은 실수를 연발할 때가 있습니다. 꼭 중요한 순간에 실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 풀릴 때 마음까지 흔들리면, 그날 경기는 산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습관은 현실에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선수와 동호인들이 정신적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지 다룬 ‘테니스 이너 게임’이란 책을 2022년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며 몇 번을 읽었다고 추천한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상황에 부딪히면서 중년 남성이 상실하기 쉬운 사회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어울린 사람들도 2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파트너를 구하다 보면 진상이라 할 만한 경우도 가끔 만납니다. 그럴 때 바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부드럽게 상황을 풀어가야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고려해야 합니다.
테니스가 준 가장 큰 선물은 늘 강인하고 뛰어나야 한다는, 자신의 성공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덜어낼 기회를 줬다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인 발전과 단단한 내면에서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걸 늘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감정 노동이라 할 만한 행동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은퇴 나이가 계속 늦춰지는 시대에서, 조직이나 직업에서 한 사다리를 쭉 올라가는 삶만 살 수 없습니다. 오래 살고, 오래 일해야 하는 시대에 내가 가진 기득권은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직업을 찾는 과정은 사회생활을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기 십상인 중년 남성입장에서, 원활하게 다른 사람과 일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익히는 건 자격증이나 전문 지식보다 더 중요합니다. 생활체육은 몸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기에, 건강뿐만 아니라 경력을 지키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요즘 누군가 “제2, 제3의 인생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볼 때 “남과 어울려 함께 하는 운동을 시작해 보세요”라고 답하는 이유입니다.(출처; 에스프레소, 조귀동)
물맷돌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95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3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수정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7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0절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장 63절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누가복음 4장 41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요한복음 7장 26절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사도행전 11장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26장 28절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베드로전서 4장 16절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과 바나바가 1년간 안디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성도들의 행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먼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세상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불렀습니다.
마틴 루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과 왕들에게
굴하지 않고 꿋꿋이 신앙적 신념을 지키며 개혁을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성도들이 아닌 세상 사람들이 먼저 불러주었던 호칭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해지고 몇 안 되는 성도밖에 없던
시절에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예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디서나 예수님 이야기만 하며 복음을 전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해도 오직 예수님밖에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세상 사람들이 먼저 성도들을 향해 붙여준 호칭입니다.
성도의 삶이 말씀을 따라간다면 이를 가장 먼저 알고 인정해
주는 것은 바로 세상 사람입니다.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다시 빛처럼, 소금처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예수쟁이라고 불릴 만큼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하소서.
사람들이 나를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출처 :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로렌즈 수도사 이야기
로렌즈 수도사는 어느 날 문제가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그곳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나와서,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를 보고,
‘나이든 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새로 들어온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노 수도사는 이 수도원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단지 ‘네’라고만 대답하고, 곧장 식당으로 들어가,
묵묵히 한 달, 두 달, 석 달 계속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 동안 젊은 수도사들의 멸시와 천대와 구박은 대단했습니다.
석 달이 지났을 때 감독이 감사 차 그곳에 왔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그의 방문으로 쩔쩔매었습니다.
감독이 ‘원장님은 어디 가셨나?’하고 묻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원장님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은 아연실색해서,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서,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 수도원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내드리는 법을 배웠다.
그분의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그릇으로 말이다.
바로 겸손과 순종의 삶으로.’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가복음 10장 43∼45절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828
꿈 파네(cum Pane)
1930년대 미국 내에서는 경제공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맸으나,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었고, 가난과 궁핍을 벗어나기도 힘들었습니다.
한 청년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청년의 주머니에는 동전만 남아 있었는데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빵 한 덩어리를 샀지만 이걸 먹고 나면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청년은 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인을 보았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든 청년은 자신이 가진 빵을 반이나
잘라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청년은 노인이 빵을 허겁지겁 먹을 줄 알았는데, 옆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소년에게 받은 빵의 반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굶은 듯깡 마른 구두닦이 소년은 노인과 청년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빵 냄새를 맡았는지 어디선가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와
구두닦이 소년의 다리에 매달려 낑낑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자신이 받은 빵을 조금 잘라
강아지에게 주었습니다.
빵의 맛을 본 강아지는 이제 가장 큰 빵을 들고 있는
청년에게 와서 다시 낑낑거렸습니다.
청년은 강아지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마음이 들어
남은 빵을 조금 떼어 강아지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개 목걸이에서 강아지 주인의 주소를 확인했습니다.
청년은 강아지를 안고 주인을 만나러 찾아갔습니다.
강아지 주인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너무 기뻐했으며
청년에게 고맙다며 사례금을 주고, 심성이 좋은 사람이라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며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영어로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컴퍼니는 라틴어 '꿈 파네(cum Pane)'가 어원으로 여기서 꿈은
'함께'라는 뜻이고 파네는 '빵을 나누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컴퍼니는 '함께 빵을 나누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스웨덴 속담에
"서로 나눈 기쁨은 두 배나 기쁘고
서로 나눈 슬픔은 절반 밖에 슬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826
삶의 가혹한 규칙
1. 아무도 당신의 변명에 신경 쓰지 않는다.
2. 상한 마음, 빈 지갑, 배고픈 배가 당신에게
가장 좋은 교훈을 알려줄 것이다.
3. 진정으로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이루기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4. 당신이 개선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당신을
붙잡으려 할 것이다.
그들을 뒤에 남겨 두라.
6. 지속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지름길은 없다.
7. 당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당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라.
8.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다.
9. 친구나 가족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고 대신 그들에게 주라.
10. 결코, 절대 관계를 구걸하지 마라.
11. 배우고, 돈을 벌고, 일어나서 당신의 제국을 정복하라.
12. 사람들은 삶을 힘들게 배운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은 잃을 것이 더 이상 없다.
강해지고 왕이 되라.
HARSH RULES OF LIFE
1. Nobody cares about your excuses.
2. A broken heart, empty wallet, and hungry stomach will
teach you the best lessons.
3. Everything genuinely valuable is hard to accomplish
otherwise, everyone would have it and it wouldn't be valuable.
4. People will try to hold you back when you start to improve.
Leave them behind.
6. Consistent hard work is the only road to success
there are no shortcuts.
7. Protect those behind you, respect those beside you.
8. You are exactly where you deserve to be.
9. Don't lend money to friends or family give them instead!!!
10. Never, ever beg for a relationship.
11. Learn, cash in, get up and conquer your empire
12. Men learn life the hard way.Those who resist are ready to
take anything.Those who have lost everything have nothing left to
lose.Toughen up and become a king.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824
양식을 주소서
누가복음 11장의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은 그리스도인에게 단순한 ´음식´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음은 릭워렌(Rick Warren) 목사님이 말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의 4가지 의미」입니다.
1.세상에서 해야 할 일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을 때 저절로 얻게 되는 양식이 아닌, 일을 통해 얻는 양식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
몸을 위한 양식이 필요하듯 영을 위한 양식이 필요하며 이 양식은 곧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3.가족과 성도와의 고제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과 동역자들과의 교제 또한 삶에 필요한 양식입니다.
4.구원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며 자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통해 얻게 된 구원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필요한 것을 채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으십시오. 아멘!
주님, 이 어려운 때에도 매일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식사할 때 일용할 양식으의 의미를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북녘 지하교회 성도들의 헌금
『북한에서 극동방송이 잘 들기고, 또 몰래 방송을 듣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을 통해 입증된 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인편을 통해 북한 내에서 방송을 잘 듣고 있다는 편지도 간헐적으로 전해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선교에 있어서, 복음 전파에 있어서 극동방송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베드로와 형제들´이라는 이름으로 편지는 물론이고 중국 돈 500위안의 헌금이 당도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에게 후원을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후원을 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극동방송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북녘땅뿐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마음의 감동을 받고 갇혀서 숨죽여 아버지(하나님)를 찾는 이곳 형제들의 마음을 담아 작은 헌금을 드리오니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이분들의 헌금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받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의 소원대로 이 헌금이 생명 살리는 일에 특히 북녘 동포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될 것입니다.』 -「김장환 목사의 인생 메모」중에서
˝극동방소을 듣게 하세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금 생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극동방송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아나운서들이 선포하는 이 방송 문구가 국내의 청취자들뿐 아니라 북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지고 있고, 실재가 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구원받는 사람이 많기를 기도합시다. 아멘!
주님, 하루속히 복음으로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루에 잠시라도 북녘 동포들의 구원과 자유를 위해 기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지금 있는 것으로
오스트리아 빈의 한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레스토랑은 전 유럽의 전도유망한 음악가들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한 거지가 들어와 사람들에게 성냥을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절했고 고급 레스토랑에 거지가 어쩐 일이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거지는 결국 단 하나의 성냥도 팔지 못했습니다.
빈손으로 나가던 거지는 문 옆의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금’이라고 쓰여 있는 모금함을 보고는 자기가 가진 성냥 하나를 넣고 나갔습니다. 돈도 못 벌고 수치까지 당했지만 지금 있는 것으로 누군가를 돕기 위한 마음의 성냥 하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은 폴란드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파데레프스키(Paderewski)였습니다.
파데레프스키는 자기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을 그때 얻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누구나 당장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거지의 성냥 한 갑을 통해 배운 파데레프스키는 훗날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정계에 진출했고 폴란드 초대 총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여유의 차이는 마음의 차이에서 옵니다.
줄 수 있는 것은 주고, 도울 수 있는 것은 기꺼이 돕는,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아멘!
주님, 어려운 아웃에게 나의 가진 것을 나누어 주님을 빛나게 하소서.
내가 어려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경이 가르치는 대화법
비대면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줄어들며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는 서로 소통하며 교제해야 합니다.
다음은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로운 7가지 대화법」입니다.
1.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 전에 대답하지 않는다(약 1:19).
2. 서두르지 말고 깊이 생각한 뒤 대답한다(잠 29:20).
3. 사랑을 담아 진실되게 말한다(골 3:9).
4. 의견을 전달할 때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롬 13:13).
5. 부드럽고 친절하게 응대한다(엡 4:26).
6. 상대방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똑같이 대응하지 않는다(벧전 2:23).
7. 상대를 책망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격려함으로 세워준다(살전 5:11).
어렵다고 포기하면 교제를 통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유익들을 얻지 못하고 점점 더 먼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를 성경을 통해 배우고 힘들어도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참된 행복의 비결입니다.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통하고, 뜻을 합치며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참된 교제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마음을 주시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성내지 않게 하소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지혜롭게 대화하며 서로 교제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나를 위해 오신 주
생계가 어려운 한 청년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구걸을 해도 별 소득이 없어 배를 곯고 있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덩치의 한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사실 남자는 청년의 처지가 딱해 여러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전해주려고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덩치를 보고 겁을 먹은 남자는 바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의 딱한 처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남자는 바구니를 들고 청년을 따라 뛰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바구니에 먹을 것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어느 골목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틴 루터가 여러 신학자들과 나눈 대화록 ‘탁상 담화’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든 예화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와 자비, 축복을 베풀려고 다가오시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오해하며 외면하고, 때로는 도망칩니다.
성경의 모든 계명과 율법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지 징계를 위함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담긴 바구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큰 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사랑을 가득 품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오해하지 말고 속히 받으십시오. 아멘!
주님,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을 못 받은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과 나 사이
미국의 청소년들과 해외 선교에 일생을 바쳤던 짐 월튼(Jim Walton) 목사님이 콜롬비아 라바사바의 원주민들을 위한 신약 성경을 번역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은 대부분의 성경을 원주민어로 무리 없이 번역하고 있었지만 십자가의 구원을 설명할 ‘화평’이라는 단어의 대체어를 찾지 못해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추장이 어떤 사람의 실수에 대해 크게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너와 한마음이 아니다. 마음이 가로막혀 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불화’의 반대말을 물어보면 ‘화평’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장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마음일 때는 어떤 상태입니까?”
“당신과 내가 한마음이라는 것은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뜻합니다.”
원주민어로 한마음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의 뜻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한마음이 아니라는 뜻을 원주민들은 잘 이해했고 목사님이 번역한 성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뚫려 있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죄로 인해 다시 가로막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과 화평케 될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을 온전히 전하게 도우소서.
주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죽음을 준비하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원조 최권능 목사님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복음을 전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복음을 외친 최권능 목사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하늘에서 어서 오라는 전보가 왔구나.”
비슷한 시기에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이 전하신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죽음에 대한 3가지 사항’입니다.
1.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과 양심을 따라 행동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2. 사망이 슬픔만을 남기지 않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소망이 없기에 죽음은 슬픔만을 남기지만 영광의 천국으로 떠난 성도의 사망은 오히려 기쁨을 남깁니다.
3. 재물을 하늘에 쌓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재물을 쌓아둔 사람은 땅에만 연연하게 됩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 천국을 준비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영원한 소멸이 아닌 영생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슬픔과 눈물이 아닌 기쁨과 소망을 남깁니다.
진정한 고향으로 떠날 그날을 준비하십시오. 아멘!
주님,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잘 준비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 세상을 떠난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섬기는 사람의 자세
유목 민족인 베두인(Bedouin)은 사막을 떠돌며 살았기 때문에 시간관념이 매우 느슨했습니다.
약속은 ‘해가 뜰 때, 해가 뜨거울 때, 해가 질 때’와 같이 두루뭉술하게 잡았기에 같은 말로 약속을 해도 모이는 시간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황량한 사막이기 때문에 언제 만나자는 약속도 정확히 지킬 수 없었고 약속을 지키든 못 지키든 그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져 지금도 아랍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들은 시간 약속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시간 약속을 느슨하게 정하고 때때로 어겨도 큰 문제 삼지 않는 아랍 사람들 때문에 현지 선교사들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선교사님이 이 문제에 대해서 한 성도에게 힘든 심정을 토로했는데 그 말을 들은 성도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우리에겐 한 가지 철칙이 있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늦게 나와도 되지만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든지 먼저 나와 있어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의 자세는 항상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모임과 약속을 떠올려봅시다. 하나님과 우리, 우리와 다른 사람들 누가 섬기는 자입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듯 사람들을 섬기는 겸손한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을 가장 으뜸으로 섬기는 삶이 되게 하소서.
항상 예배시간 전에 예배당에서 예배를 위해 준비하는 정성을 들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3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행 11:26, 26:28 / 벧전 4:16).
바울과 바나바가 1년간 안디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성도들의 행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먼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세상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불렀습니다.
마틴 루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과 왕들에게 굴하지 않고 꿋꿋이 신앙적 신념을 지키며 개혁을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성도들이 아닌 세상 사람들이 먼저 불러주었던 호칭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해지고 몇 안 되는 성도밖에 없던 시절에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예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디서나 예수님 이야기만 하며 복음을 전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해도 오직 예수님밖에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세상 사람들이 먼저 성도들을 향해 붙여준 호칭입니다.
성도의 삶이 말씀을 따라간다면 이를 가장 먼저 알고 인정해 주는 것은 바로 세상 사람입니다.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다시 빛처럼, 소금처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예수쟁이라고 불릴 만큼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하소서.
사람들이 나를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참여하는 예배의 기쁨
구약시대에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모두 참여자였습니다.
모세의 때에도 그랬고 에스라의 때에도 그랬고, 모든 회중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따라 때로는 기뻐함으로 춤을 추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세 시대가 되자 회중은 구경꾼이 됐습니다.
성직자들은 성도들이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통제했습니다.
찬양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성경도 특권 계층이 아니면 읽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종교개혁이 일어나 회중들은 자유롭게 예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누구나 장소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다시 한번 예배에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신학자들은 오늘날의 회중을 ‘비평가’로 정의합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찬양팀의 선곡, 실수, 목사님의 설교를 즉각적으로 판단하며 예배를 마치 관람하는 듯한 성도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올바른 대상과 주님을 향한 우리의 진심입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는 형식과 규모에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모든 예배를 온전한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님께 집중하십시오. 아멘!
주님, 오직 저의 중심을 주님께 드리는 참다운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예배 때 오직 주님께 받은 은혜와 복만을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시간의 소중함
10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싶으시면
명퇴 하신 50대 가장에게 물어보십시오.
4년의 세월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싶으시면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에게 물어보십시오.
1년이 얼마나 귀중한 세월인지 알고 싶으시면
방금 성적이 나빠서 유급 당한 학생에게 물어보십시오.
1달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싶으시면
1달 먼저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십시오.
일주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주간 잡지 편집장에게 물어보십시오.
1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애인을 기다리는 총각에게 물어보십시오.
1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방금 기차를 놓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십시오.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사고의 순간, 간발의 차이로 살아난 생존자에게 물어보세요.
100분의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십시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진 매 순간이 바로 당신의 보화입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598
지하실 벽의 글
독일에 있는 어떤 집의 지하에 히틀러의 세력을 피하여
숨어 지낸 유태인이 있었다.
후에 그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하실 벽에다
다음과 같은 용감한 글귀를 새겨놓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 데 귀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분노를 녹이시고 좌절감을 해소하시고
외로운 가슴에 사랑을 채우시고 어린 아이들이 모래 위에
남긴 자국을 파도가 씻어 버리듯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웅덩이에서 당신의 절망을 끌어내시어
아름다운 새 길을 가게 해 주시고,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산을 넘게 해 주십니다.
당신이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나는 하나님께서 소년을
위대한 어른으로 죄수를 선량한 시민으로 알콜 중독자를
교회의 장로로 변하게 해 주시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도 태양이 있음을,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나는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596
절대적인 순종
어느 날 한 청년이 성 프란시스 형제 회에 가입하고자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형제회 위원들에게 수도원에 들어가 함께 수도하며
전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위원들은 이 열의가 가득한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란시스는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한 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프란시스가 이런 엉뚱한 과제를 준 이유는, 청년이 상식에
맞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에 합하지 않는 요구라 할지라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지배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6장 16절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594
불행이 곧 행복
배 한 척이 파선하였는데 선원 중 한 명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극적으로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인도에서 살아나기 위해 땀 흘려 나무를 모아 거의
한달 만에 살 수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만들었습니다.
이 오두막집이야말로 무인도에서 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깊은 숲에 들어갔다가
해질 무렵 다시 자기 오두막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애써 지은 오두막집이
불 길속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이 고독한 섬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인 집이 불타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는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큰 좌절과 쓰라림으로 무너져 내려 그 자리에
그냥 멍하니 주저앉았습니다.
땅거미가 진 후 그는 나무 잎사귀들을 모아 해변 가에 가서
임시 잠자리를 만들어 잠을 청했습니다.
오랜 날들을 땀 흘리고 애써서 만든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절망적인 가슴을 안고 깊은 고통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쯤 갑자기 인기척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는데,
눈을 떠보니까 놀랍게도 배 한 척이 도착해 사람들이 막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는 배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들은 이 섬 앞을 지나가다가 불타는 집을 보고
‘누군가 구조 요청을 하고 있구나’하고 이 섬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집이 불타는 것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이 불행한 사건 뒤에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극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잠언 5장 21장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592
용서받아야 할인간
어느 날 존 웨슬레는 사람들에게 용서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그 자리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던 아주 거칠고
난폭하기로 소문난 한 장군이 웨슬레 앞에 나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러나 나는 죽어도 나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때 웨슬레는 그 장군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장군님, 그렇다면 장군님은 앞으로 죽어도 죄를 짓지 마셔야 합니다.”
또한 존 웨슬레가 길을 가다가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웨슬레는 그 친구가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원수로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웨슬레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가?"
그러자 그는 “그럼!"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웨슬레가 이제 그만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권면 했지만 그 친구는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좋네. 그럼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게.
하지만 자네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네.
앞으로 자네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 짓을 해서는 안되네.
혹시 그 상대가 자네처럼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일줄 누가 알겠나?"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590
아일랜드 켈트족의 기도문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May there always be work for your hands to do
당신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May your purse always hold a coin or two.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May the road always rise up to meet you.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기를.
May the wind be always at your back.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May the sun shine warm upon your face.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The rains fall soft upon your fields, May a rainbow
be certain to follow each rain.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고
May you be poor in misfortune, Rich in blessings,
적을 만드는 데는 느리고, 친구를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Slow to make enemies, And quick to make friends.
이웃은 당신을 존중하고, 불행은 당신을 아는 체도 하지 않기를.
May your neighbors respect you, Trouble neglect you.
당신이 죽은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 전에 이미 당신이
천국에 가 있기를.
May you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행복한
날보다 더 나은 날이기를.
May the saddest day of your future be no worse. Than the
happiest day of your past.
그리고 신이 늘 당신 곁에 있기를.
May God always be with you.
출처 : 아일랜드 켈트족의 기도문
김용호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6588
실패의 의미
실직한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가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미래는 두려웠고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평상시와 같았습니다. 아들 녀석은 퇴근한 아빠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두커니 아들의 게임 화면을 쳐다보는데, 화면에 ‘실패(Fail)’라는 단어가 영어로 올라왔습니다. 아들이 게임에서 진 겁니다. 그런데 아들 얼굴을 보니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전의를 다시 불태우는 모습이었습니다.
“너 혹시 fail이라는 영어단어를 모르니?” “아니요 알아요. 실패라는 뜻이잖아요.” 아빠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뻐하지?” 아들이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게임에서 실패는 ‘한 번 더 해보라’는 뜻이잖아요. 다시 새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아들의 말에 아빠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철없는 아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실패란 다시 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들의 말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솟아오르는 것만 남았습니다
봄을 대표하는 절기는 우수와 경칩입니다. 우수는 ‘얼음을 녹이는 봄비가 내린다’는, 경칩은 ‘얼음이 깨쳐 나가는 소리에 놀란 개구리도 뛰쳐 나온다’는 절기입니다. 우수도 지나고 경칩이 다가옵니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라고 합니다. 용수철도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라고 부릅니다. 봄과 스프링, 두 단어 모두 솟아오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봄은 솟아오르는 계절입니다. 봄에 솟아오르는 대표적인 것은 새싹입니다. 봄이 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발아해서 땅을 뚫고 솟아오릅니다.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확실히 느낍니다. 새싹이 올라오고 나면 쑥도 올라오고 냉이도 올라옵니다. 곧 둔덕과 야산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을 맞아 우리의 신앙도 새싹과 같이 솟아올라야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새싹과 같이 싹을 내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욜 2:2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깨를 활짝 펴고 솟아오르는 믿음으로 새봄을 맞이할 때입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입과 귀의 비용
한 분이 저를 찾아와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은 것뿐이어서 인사를 받아도 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도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한편으론 인사를 받아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내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을 찾으려 합니다. 이야기를 꺼낼 때 상대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내 얘기를 잘 들어줄 대상을 만나는 건 행운입니다. 물론 남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건 쉽지 않습니다. 참견과 평가, 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게 어렵기 때문이죠. 그러니 대부분은 꺼내놓아야 할 이야기를 가슴에 담은 채 살고 있습니다. 마음에 병이 드는 이유입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우선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만큼 먼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결단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입 비용’과 ‘귀 비용’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마음 열고 이야기하고 싶은 만큼 먼저 들어준다면 갈등이 큰 우리 사회의 긴장감도 꽤 낮아질 것입니다. 시편 66편 1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윤동주에 사과하다
이달 초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同志社)대학을 방문했습니다. 도시샤대는 1875년 기독교인 니지마 조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 종합대학입니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조그만 예배당이 보였습니다. 방학이라서 예배당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스테인드글라스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교회당 옆 뜰에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윤동주 시비에는 그의 대표 시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비 옆에 도시샤대 설립 150주년 행사가 열리는 2월 16일 윤동주 학생에게 명예문화 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윤동주 학생은 1942년 도시샤대학 문화부 영문학과에 편입학했고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습니다. 서거 80주기를 맞아 명예문화 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 16일 500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학위 수여식이 성대하게 진행됐습니다. 대학 측은 “당시 시대의 추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윤동주라는 한 학생의 소중함을 지키지 못했다”며 일본 정부가 자행한 폭력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집사
어느 마을에서 큰 잔치를 벌이며 사람마다 포도주를 한 병씩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잔칫날이 되어 사람들은 가지고 온 포도주를 한 항아리에 부었지요. 잔치가 무르익자 함께 잔을 높이 들어 축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이 마신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맹물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람들이 모두 나 하나쯤 물을 섞어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처럼 흔한 것이 ‘집사’랍니다. 교회에 가면 너도 집사, 나도 집사, 모두 집사라지요. 사람들은 집사직을 평신도의 의무방어 직분 정도로 가벼이 여깁니다. 너무 흔해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집사직은 교회의 모든 직분의 알짬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자신을 집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더 높으냐며 다투는 제자들에게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눅 22:27, 새번역)고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섬기는 사람’이라고 번역한 그리스 말 ‘디아코노스’가 바로 집사입니다.
집사는 예수님을 따르는 직분입니다. 집사들이 바로 서면 한국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서재경 원로목사(수원 한민교회)
나의 힘 되신 여호와여
남유다의 웃시야왕은 16세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졌고 그 이름이 널리 애굽 변방까지 알려졌습니다.(대하 26:8) 요즘처럼 정보가 쉽게 퍼지는 시대도 아닌데 그의 이름과 명성이 알려지게 된 비밀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대하 26:15) NIV 성경에는 ‘그가 강성해질 때까지 엄청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표현돼 있습니다.
비록 말년에 교만해져서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지만 웃시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높여주셨습니다. 웃시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관심을 쏟습니다. 더 많은 힘을 갖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가 우리 삶의 주인이고 내 힘의 근원인지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그분이 우리의 이름도 높여주시고 우리에게 힘도 허락해주십니다. 이처럼 귀한 믿음의 고백이 날마다 우리 안에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