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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들
갈3:1-7 딤전1:18-20 벧후2:17-22 요일2:15-17
어제도 광화문에서는 이재명 방탄을 위해 야당과 반정부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윤석렬대통령탄핵 집회가 열렸는데 참석인원은 1만명정도가 모여서 탄핵을 외쳤는데 바로 거기서 600m 떨어진 동화면세점앞에서는국민혁명회장인 전광훈목사를 중심으로 20만명이 모여서 윤석렬대통령 지키기를 외치면서 집회가 있었는데 이런 집회의 근본은 이나라를 주사파세력에게 내주어 공산화하는 것을 막고자 하기 위함이다. 2019년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된 이후 25·26대 한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지난 문재인정부때 문재인이 이나라를 북한이 원하는 연방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광화문집회를 통해 건국 이승만대통령이 세웠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세우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교계인물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에서만 보수 진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도 이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와 남북이 연방제로 통일하자는 진보세력이 지금 한국교회를 분렬시키고 있다. 현재 한기총지도부는 범죄자 이재명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는 것을 보노라면 이렇게 교계가 저래도 되는가 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알다시피 문재인 주사파 정부와 싸워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도 전광훈목사가 이끄는 광화문세력의 역할이 컸던 것만도 사실이다. 한편 그와는 다르게 소강석 목사야 말로 윤석렬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전형적인 주사파목사로 그는 주변목사들에게 윤석렬대통령 탄핵집회에 나갈 목사들이 새에덴교회로 오면 100만원씩 준다는 문자를 보낸 적도 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겠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만 보수 진보로 나눠진게 아니고 종교계도 또 세대간 갈등역시 보수와 진보 즉 자유대한민국과 주사파들이 외치는 북한과의 연방제 즉 사회주의로 가자는 이념이 팽배히 맞서고 있다. 전광훈목사가 현재 광화문집회를 이어가는 것은 소위 진보성향의 목사들이 추구하는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평화협정을 통하여 주한미군 철수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로 가도록 사주하는 것들을 막고자 그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연방제 통일이 아닌 자유통일로 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건국정신에 일치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윤석렬대통령을 뽑았는데 아직 임기가 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야당과 좌파단체들은 대통령탄핵을 외쳐대고 있으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이나라가 다시는 대통령탄핵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고 연방제통일이 아니라 복음통일로 하나되는 우리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신앙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교 130년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부흥도 놀라웠지만 그에 따른 이단세력도 왕성하게 번성하는 나라였다. 지난 10월 30일에는 청주 신천지교회에서 신천지수료식을 했는데 2019년부터 한해 10만명 이상이 수료식을 한다는 것이니 이단의 세력이 이렇게 팽창한다는 것도 한국교회가 지금 보수 진보하며 대치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들 졸업식에 동원되는 전세버스만 2500대가 주차를 하니 전국이 들썩였던 일들이 기억난다. 교주 이만희가 세운 신천지는 이만희가 보혜사 성령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들만이 가게될 새 하늘과 새 땅인 신천지라고 속이지만 신천지의 뿌리는 이단의 원조인 전도관 박태선 장로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만희는 박태선과 유재열 밑에서 듣고 배웠던 것을 중심으로 신천지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박태선이 창시한 천부교는 6.25한국전쟁이 끝난 후 대다수 고달픈 인생을 살던 1955년 서울 남산집회를 시작하면서 종교계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기독교계 신흥 종교이었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대다수의 천부교인들은 “그 당시 한국 기성교인 중에 한 번이라도 천막집회에 참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기성교회의 목사들 2000여 명이 박태선 장로에게 안찰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한국기독교연합회(N.C.C.)는 박태선 장로의 새로운 신앙운동이 ‘사이비’ 종교운동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1956년 3월 15일 경기노회에서도 박태선 장로를 이단으로 규정해 버렸다. 박 장로를 따르던 사람들은 원효로에 있는 박 장로 자택에서 ‘전도관’을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그 후 전도관수는 전국적으로 300여개나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박태선이는 자신이 호세아14장에 근거하여 이슬성신을 처음 내리는 ‘감람나무’이고, 이사야 41장에 ‘동방’, ‘땅 끝’, ‘땅 모퉁이’로 묘사된 것을 인용해 자신이 동방의 의인으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온 감람나무 하나님’임을 발표하면서 전도관이라는 명칭도 천부교로 개칭하였다. 박태선 장로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대형집회에서 이적을 행하였던 것을 인정하더라도 나중에 그의 모습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자신을 육신으로 온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십자가를 지우고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 상을 지붕위에 단 것이며 전도관에서 부른 찬송이 박태선을 찬양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자칭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박태선도 인간인지라 1990년 2월 7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혼이 불타는 지옥에 가서 고통받고 있으리라고는 말할 필요가 없다. 감람나무 박태선이나 신천지 교주 이만희를 향해 사도바울은 뭐라고 이야기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봤다. 마침 갈라디아서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종교하나 잘못 선택하여서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땅에는 제2의 박태선같은 이만희, 문선명 등 자칭 하나님이라는 거짓 종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인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아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는데 바울이 떠나온 후 지금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들려지는 말로는 갈라디아교인들이 율법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해 지혜가 없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너희가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고 근심어린 마음으로 갈라디아서를 기록 하였다. 우리들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갈3:11)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신앙인들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시작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떠나 내가 하나님이 되는 순간 사단의 미혹을 받기 때문에 미련한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미련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사단에 속아 거짓된 인생으로 전락되는 것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22)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그러면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어리석은 자의 특징(1)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침마라톤은 출발할 때 1등하는 것이나 반환점 돌을 때 1등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골인점에서 1등이 진짜 일등이다. 인생마라톤이라는 이 말은 과거 하나님의 은사를 많이 받아 병고치고 은사체험하고 기적을 행하였더라도 현재의 신앙상태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등잔불이 계속 타려면 기름을 계속 공급하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성령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앙이 좋을 때는 은혜가 넘쳐나지만 죄짓고 회개 하지 않아서 성령 떠나가면 비참한 인간이 되고 만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듯이 우리들도 불순종하여 성령님이 떠나가면 결국은 비참한 인생이 된다. 비참한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는데 살전5:19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소멸치 말라) 하였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가 성령을 소멸하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비극이라고 하였다. 사람이란 육체가 살아있는 이상 자기 자존심, 자기 이론, 고집같은 것이 완전히 소멸치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믿어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영광을 누리려고 할 때 한순간에 성령님이 떠나면 자신의 모습은 이전과 같은 세속적인 인생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갈라디아교인들도 바울이 있었을 때는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인데도 바울이 떠나간 후에는 다시 옛 모습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성령받고 다시금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금방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으면 며칠짜리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사람이 어느 날 옛 사람으로 변하였다면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베드로후서에는 이런 사람에 대해 명확하게 기록해 났다.만일 성도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는데 세상의 오염으로 다시 말려들어 정복되면 마지막 끝이 처음보다 그들에게 더 나쁘니 이는 마치 개는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고 씻긴 돼지는 진창속에 딩군다하는 잠언에 따라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때로는 우리들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의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사도야말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복음을 전하면서 엄청나게 고난을 받았다. 바울은 예수님 믿기 전에는 예수믿는 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하였는데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는 매 맞고 빌립보감옥에도 가이사랴 감옥에도 로마감옥에도 갇혔고 로마에서는 가택연금도 받았고 루스드에서는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에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도 있었고 셋째 하늘 낙원에도 올라갔던 것같이 우리에게도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날마다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에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나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왜 육체에 빠졌습니까? 바울이 떠나자 유대주의와 싸워 이길 능력이 없으니까 고난받는 것이 두려워 타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과 고난은 은혜를 유지하는 안전 방패막이 된다. 주님을 위한 훈련과 고난받는 것을 싫어하면 성령님이 떠나고 사단이 틈을 탑니다. 훈련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꼭 이렇게 해야하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삶도 편하지 않다는 것은 612개의 율법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보다 몇 십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더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면서도 힘들어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의 영광과 공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힘들다 하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들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더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은 천국이라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들은 돈과 시간, 에너지는 세상을 위해, 죄 짓는데 모두 심판거리로 사용되지 않을까 합니다. 갈라디아교인들도 바울과 함께 있을 때는 조금만 고난받아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바울이 떠난 후에는 율법으로 선한 행위로 살면 힘들어도 불평이 없는 것은 자기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썩어질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면 고생해도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
(3) 믿음을 떠나 율법으로 돌아감 너희가 지금 은혜를 받은 것이 믿음으로냐? 율법으로냐? 과거에는 음란, 거짓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율법을 지키다가 믿은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은 것이냐?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전처럼 죄만 짓고 살았던 인생이 예수님을 믿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은지?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율법을 행하여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았느냐? 아무 종교의식도 행하지 않고 예수를 믿음으로 너희의 인생이 변화되었는가? 너희들이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는데 내 고집과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마치 낡은 가죽부대에 갇혀있는 인생과 같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살이 강한 곳에 가만히 서있을 수 없듯이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며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이에 비해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은 갈수록 인격이 성숙해지는 사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느 기간 동안 성령의 역사로 수렁에서 건져냄을 받게 되었어도 떠날 때는 교회를 욕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육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교회가 웅장하고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틈새로 안주하는 종교인들도 많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받은 은혜를 유지만 해도 귀한 일꾼이 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현대판 홍길동이라 불리기도 했던 대도 조세형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 저택만을 대상으로 수억원대 금품을 털어서 일부 금품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해 현대판 홍길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대도였습니다. 조세형은 1983년 4월14일 서소문 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구형공판에 출석한 직후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한 후 구치소 환기통을 뜯어내고 법원담을 넘어 유유히 사라지면서 그의 탈주가 몇 시간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결국 1년 뒤에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형을 마친 후 1998년 11월에 출소할 당시 당담 검사였던 정홍원 전국무총리가 그에게 성경책을 주면서 전도하였기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결혼도 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등 착실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조세형이 잠시나마 회심하게 되어서 신학공부한 후 목사 인수를 받아 2000년에는 범죄특강이나 간증을 다니는 등 '범죄예방 전도사' 라는 별명도 얻었던 조 씨는 2000년 11월 신앙 간증 차 일본에 갔다가 다시 빈집에 들어가 금품을 털다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을 복역한 후 2004년 3월 귀국했지만 조세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며 귀국한지 1년 후 다시 모 치과의사집에 침입하여 절도행각을 벌였다가 경찰에 검거되는 등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리다가 2013년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 강남의 아파트를 털다가 현장에서 검거되기도 했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한 때 개과천선하여 좋은 성도가 된 줄 알고 기뻐했는데 이렇게 다시 대도가 된 조세형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우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을 성경을 통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사울 왕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고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선망과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 1절은 “그 때에 사무엘이 기름 한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입 맞추며 이르되 주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자신의 상속백성을 다스릴 대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이 아니냐”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용감한 투사가 되어서 쳐들어오는 암몬족속을 멸하고 해방을 갖다 준 위대한 장군이요, 임금이었던 사울이 왜 타락했을까? 왕인 사울에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푹 빠져 버려지게 되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난 후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와서 그를 점령하매 악령에 몹시 시달렸고 자기 신하 겸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자 10년 동안이나 골몰하였으며 결국에는 블레셋과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이 적이 쏜 화살에 중상당한 후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병기 든 자가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니 이에 사울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더 나아가 사울의 세 아들도 길보아산 전투에서 그 날 함께 죽었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던 왕이 한날에 그의 세 아들과 전투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이 바로 사울 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중에는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사람으로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신뢰하여 돈궤를 맡겼는데 가룟 유다는 점점 탐욕으로 돈주머니에서 돈을 훔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5-6에 보면 “5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므로 가방을 맡아 그 안에 든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더라”고 했습니다.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그는 또 안목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로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예수님을 경배했을 때마다 그는 예수님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 독립을 가져와 영웅이 되고 싶은 불순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안목과 정욕의 시험에 빠져서 그는 하늘나라보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그 가운데서 자기가 영웅이 되는 것을 정말로 세상 부귀영화를 꿈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겠다고 하니 분노했고 그 분노가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해서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되었습니다. 정말 은 30냥이 필요해서 판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욕하기 위해서 종을 사고 파는 금액인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겠다고 작정한 후에 가룟 유다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매 그가 예수님을 팔았던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야말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 로렌드 힐이 어느 날 길 가다가 돼지 떼가 한 사람을 따라가는 광경을 목격해서 호기심에 그 뒤를 따라가 보았는데 돼지가 모두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힐 목사님은 돼지를 이끌고 온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콩이 담긴 바구니를 가지고 걸으면서 콩을 조금씩 떨어뜨리면 돼지들이 그 콩을 주워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자신도 모르게 도살장으로 얌전하게 들어옵니다. 마귀의 수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성도들 주위를 맴돌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자랑이라는 콩을 떨어뜨려서 경계하지 않고 주워 먹는 사람은 지옥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마귀마귀는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8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마귀의 제일의 무기는?
(1) 이번 한 번만 중세 유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악마의 두목이 작은 악마들에게 '인간을 파괴하는 무기'에 대한 현상 공모를 냈는데 1등으로 당선된 묘안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번 한 번만 하고 절대 안 할 자신이 있다.'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여기에 대하여 자신이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한 번의 선만 무너뜨리면 조만간 자멸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마귀가 당신을 공격할 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성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2) 마귀를 대적하는 말씀들 :(벧전5:8-9) 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사울 왕의 문제도 가룟 유다도 마귀가 유혹할 때 사단아 물러가라고 대적을 안했고 마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따라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근신(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는 것)하는 것이다. 마귀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약함을 이용해 넘어뜨리기 위해 틈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귀는 끈질긴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은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깨어 있음으로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깨어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 마귀를 대적하라. 당신과 같이 유혹 당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고 주를 의지하여 마귀와의 싸움을 이기라.(시44: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이 말씀은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하나님을 통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전쟁의 궁극적인 승리가 되심을 기억하라. 믿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자신감을 갖고 마귀를 밀치고 이긴다는 것이다.(대하20:15)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기독교인이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시험과 도전에 직면했을 때 나는 안된다는 회의감이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은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으며 당신이 중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라. 사단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처 입히는 것이다. 만약 마귀가 당신의 믿음을 파괴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굉장히 아프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용기를 갖고 대적하라.(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구절 중 또 한 가지는 바로 이런 말씀이다.당신이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갖고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 실 수 없다.당신이 그분을 의지하고 믿는 한 그분은 당신을 실망시키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마귀와 더 쉽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마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주변에 방패를 두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마귀와의 전쟁이 우리 삶의 일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무기가 되게 하고, 당신 안에서 끊임없이 싸울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육체의 일로 시험 당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는 예수님이 40주야 금식했으니 얼마나 주리셨을 때 사단은 배고픔부터 해결하라고 했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사단이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권능을 사용해서 돌로 떡을 만들어 굶주림부터 채우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적했습니다. 마귀는 그 다음 안목의 정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했다. 마태복음 4장 5-6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하나님 말씀을 갖고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대로 순순히 높은 꼭대기에서 뛰어 내렸던 것이 아니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단호하게 말씀으로 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마귀가 세상의 부귀영화로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나에게 절하면 세상 부귀, 영화, 권력을 다 주겠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 안 믿는데도 왜 세상 부귀, 영화, 권세를 다 얻습니까? 마귀는 세상 임금이라 마귀를 따라가서 절하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되 그 대신 영혼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영혼을 바치면 마귀는 자기에게 바친 영혼은 영원한 지옥불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공짜로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시험한 것도 그것입니다. “네 영혼을 내게 맡겨라!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부귀, 영화, 공명을 주겠다” 사울도 거기에 굴복했고, 가룟 유다도 굴복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대도 조세형이가 당한 시험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것은 조 씨는 예수를 믿고 거듭났지만 신앙이 미숙해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할 때 마귀를 대적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조 씨에게 육신의 정욕으로 다가와 ‘야∼ 쉽게 돈 버는 것 알지 않느냐. 네가 담만 뛰어 넘으면 하루 저녁에도 수억씩 손에 쥐지 않았느냐? 지금 돈이 필요하지? 그가 마귀를 대적했으면 ‘마귀야 기록 하였으되 도적질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그랬더라면 그 마귀는 물러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 씨는 대적하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듣고 담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사람이 쉽게 돈 버는 것에 물이 들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그는 또 안목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마귀가 속삭입니다. “너는 절도 전문가 아니냐? 너 벼락같이 담을 뛰어넘어 창문을 털고 들어가서 훔친 과거 있지 않느냐?” 마귀가 꾀니까 자기도취에 빠져서 “그렇지! 내 기술을 당할 자가 누구냐?”고 또 마귀는 이생의 자랑으로 꾀었습니다. ‘야∼너는 보통사람 아니다!너는 대도 영웅이야, 영웅!’사람들이 홍길동 같은 사람이라고 하잖아!그는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마귀의 속삭임에 우쭐했습니다. ‘그렇지 나는 영웅이지. 나는 온 천하가 다 아는 현대판 홍길동이야’ 그런 착각에 빠져서 그는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교회마다 다니면서 간증까지 했던 그가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육체로 마치고 만 것입니다. 조씨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냐고 탄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알려주고 있습니다.(밷후2:19-22) 19 그들이 저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자신들은 부패의 종이 되었으니 사람이 누구에게 정복되면 바로 그 사람에게 속박되느니라. 20 만일 그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안에 말려들어 정복되면 마지막 끝이 처음보다 그들에게 더 나쁘니 21 그들이 의의 길을 안 뒤에 자기들에게 전달된 거룩한 명령에서 돌아서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 그들에게 더 나았으리라. 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씻긴 돼지는 진창속에서 뒹군다, 하는 참된 잠언에 따라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도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것입니다.
(3) 복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긍휼히 여겨 복음 사역자로 세우시는 복음의 은혜와 영광을 밝히면서 그로 하여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처음나타나는 현상은 나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자백이다. 오직 우리들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서만 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복음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도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도 처음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그러니 복음을 만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막 산다면 이전에 바울처럼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산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거장 불의 사자인 김익두목사 역시 안악골 호랑이였었다. 그는 부잣집에서 잘 자랐으나 아버지 돌아가시고 자수성가 하였으나 사기를 당해서 거지꼴이 되면서 매일 술 마시고 깡패가 되어 온 마을을 괴롭혔던 자였다. 술에 취해 할머니들이 물건을 파는 것들을 발길로 차고 주막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술값을 내라고 하자 홧김에 술상을 엎어버리고 소란을 피우고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누가 저놈 죽여버리면 좋겠다. 저런 놈은 세상에 필요 없는 놈이야! 할 정도로 청년 김익두는 사기 당한 분노로 세상에 해악을 끼쳤던 사람이었다. 당신은 김익두처럼 깽판을 치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아닌가? 사람은 복음을 만나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도 예수를 만나게 된 후에는 자신이 죄인 중에 우두머리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딤전1:15). 예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익두는 깡패생활을 하다가 선교사를 만나 전도지를 읽게 된다. 인생이란 풀과 같고 그 영광이 꽃과 같으나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며칠 후 친구가 선교사가 와서 부흥회를 하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소안론 선교사가 예수를 전하였다. 김익두는 복음을 듣자 자신의 죄가 깨달아지면서 이제 그 안에 빛이 들어오니 지난날 모든 것들이 자신의 죄임을 처절히 자백하게 되는 것이다. 소안론 선교사는 기도해주었다. 하나님이여 죄인이었던 김익두를 용서해주시고 앞으로 하나님의 귀한 종 불의 사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회개의 기도가 있느냐? 바울도 그랬다. 바울은 나를 보게 된 이후에 깨닫는다. 16절 내가 나된 이유는 예수님이 먼저 내 안에서 오래 참아주심을 보이사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생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내가 긍휼을 얻었다는 것을 깨닫는 감격에 휩싸여 감탄을 하게 된다.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17). 아멘. 김익두는 이후 자신을 위한 장례식을 열었다. 사람들에게 김익두가 죽었다고 부고장을 돌렸다. 사람들이 와서 김익두가 죽었다니 너무 기쁘고 행복했는데, 갑자기 김익두가 나타난 것이다. 여러분 제 장례식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의 깡패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김익두입니다. 그동안 저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김익두와 같은 나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날 살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는 고백으로 예배드릴 때에 그 감격이 터져나오는가?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라. 그분이 나를 얼마나 오래 참아주시는지를 다시 고백하라. 회개하라 성령의 조명을 받으라. 바울과 디모데가 그랬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이 교훈으로 계속해서 명령한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 선한 싸움은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전쟁에서처럼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내가 전쟁 중의 병사임을 잊어버린다. 내가 전쟁하는 병사. 나를 이 복음에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이 감격에서 이 고백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려는 악한 영적 세력과 대립하는 병사임을 잊게 만든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서 파선된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딤전1:20)라는 이들은 원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믿음과 양심을 잃어버리고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 한번 복음의 은혜를 맛보고서도 믿음을 져버린 결과 그들에게는 사탄에게 내어준 것이다. 교회에서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교제를 금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양심과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도 사탄에게 내어주는 꼴이 되어버린다. 김익두는 가끔씩 옛 깡패 기질이 불쑥 되살아나려고 할 때가 있었을 때마다 자신을 향해서 야 이 죽은 김익두야!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아직 울려 퍼지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살아나려고 하느냐? 아직은 때가 아니다 죽어 있어라!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싸움을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믿음과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끝까지 지속해야 한다. 벌써2024년 마지막 12월 한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는가 자문해본다. 아니다. 선한 싸움을 포기하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면 지금 회개하고 선한싸움에서 승리하도록 하자.
4.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산길 위태로운 절벽에는 철책을 쳐놓았는데 만약 철책을 넘어가면 낭떨어지기에 떨어지거나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막기 위한 철책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으면 안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계명의 철책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으면 우리는 크게 상처를 입거나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보호받기 위해서 율법과 계명이란 철책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는 계명의 철책을 뛰어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끌려서 그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인 철책을 무시하지 말고 뛰어 넘지 않았으면 보호를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무시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89:31-32) 31 내 법규들을 깨뜨리고 내 명령들을 지키지 아니하면 32 그 때에 내가 막대기로 그들의 범법을 벌하며 채찍으로 그들의 불법을 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죄악에서 돌아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로 그들이 돌아서도록 채찍으로 다스리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항상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하여 영적으로 소생하여서 성령님과 교통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주는 데로 다 넙죽넙죽 받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가져오는 것은 대적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있고 성령이 충만하고 흉악한 자를 대적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의 소리, 안목의 정욕의 소리, 이생의 자랑의 소리로 속삭입니다. ‘내말 들으면 너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고 재미를 볼 수 있다고 그럴 때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외우면 그 마귀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유혹의 소리를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압도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귀의 이 목소리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찬송과 기도와 말씀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귀의 유혹이 있을수록 항상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은 시험에 안 드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라’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큰소리 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조 씨와 같이 그런 시험에 다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심판하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시험에서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회개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없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듦으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있고 성령이 충만하고 흉악한 자를 대적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의 소리, 안목의 정욕의 소리, 이생의 자랑의 소리로 속삭입니다. ‘내말 들으면 너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고 재미를 볼 수 있다고 그럴 때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외우면 그 마귀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도박하던 사람, 옛날에 주먹쓰고 싸움하던 사람, 도둑질하던 사람, 음란한 사람이 그것을 씻고 나왔으나 마귀는 그 약점을 알기 때문에 또 와서 유혹을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마귀가 뛰어넘지 못하고 나도 뛰어넘지 못하게 말씀과 계명의 철책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계명의 철책을 쳐놓고 내가 뛰어넘어가지 않으면 마귀도 뛰어 넘어오지 못합니다. 마귀가 오면 단호하게 이 철책에 서서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도적질하지 말라. 기록하였으되 간음하지 말라. 기록하였으되 탐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마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무기를 갖고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간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항상 믿음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