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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發作)적 비상계엄은 결국 망상적 행동의 결과
보수 논객 조갑제(趙甲濟·80)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2·3 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쉼
없이 이어왔다. 3년 전 대선에서 “이승만·박정희를 잇는 윤석열”이라며 윤 전 대통령을 매우 좋게 평가했던
조 대표는 왜 3년 만에 자신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을까. 단지 ‘비상계엄’이라는 하나의 사건 때문일까.
지난달 30일 조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지난달 30일 조갑제(80) 조갑제닷컴 대표가 중앙일보 VOICE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선 이후 보수는 사분오열(四分五裂) 상태다. 모든 지역·연령·계층에서 ‘궤멸’과 ‘분열’이 진행 중이다. 이게 필연적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조 대표는 “‘보수’라는 큰 덩어리를 정당·세력·유권자층으로 자세히 나눠야 ‘보수
궤멸’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가 생각하는 보수의 층위는 무엇일까. 각 보수의 각 층위는 대선
이후 어떤 변화를 이어가고 있을까.
조 대표는 1970년대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박정희 유신부터 5공 군사정권을 온전히 겪었다. 기자로서 핍박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엄혹한 그 시절에 대한 조 대표의 평가는 대체로 후하다. ‘윤석열의 계엄’과 ‘전두환의 계엄’
‘박정희의 군부독재’는 다른 의미일까. 만약 달리 평가한다면 그 구체적인 이유는 뭘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친위(親衛)쿠데타 실패라는 윤 전 대통령의 무능(無能)”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 거라고 예상할까.
목차
1. ‘축소 지향’의 보수, 궤멸은 당연한가
2. 대선 패배, 계엄 말고 보수가 놓친 것은…
3. 윤석열 향한 날 선 비판, 과거에 칭찬한 이유는···
4. 윤석열의 쿠데타, 전두환의 쿠데타
‘축소 지향’의 보수, 궤멸은 당연한가
대선 패배 이후 ‘보수의 궤멸’ 이야기 나온다.
보수라는 말을 여러 의미로 쓰지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보수 정당으로서 국민의힘, 언론·지식인 또는 단체를 포함한
조직된 보수를 칭하는 보수 세력, 그리고 보수(유권자)층을 구별해야 한다. 현재 ‘보수의 궤멸’이라고 말할 때,
그건 ‘국민의힘의 궤멸’을 의미한다. 보수층은 건재하다. 다만 국민의힘을 따라가며 보수 세력도 지금 위기에 처했다.
‘보수 궤멸’이란 말이 나온 건 윤석열 전 대통령 집권 후 여러 ‘반(反)보수적’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보수를 배신한 사람이다.
‘보수를 배신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보수의 첫 번째 기준은 사실이다. 둘째, 법치. 그다음에 자유 보호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사실에 맞지 않는
정책’을 계속 펴다가 자멸했다. 보수 언론과 보수 지식인들이 그걸 견제·비판해 막아야 했는데, 오히려 ‘박수부대’를
자처했다. 그래서 현재 윤석열, 국민의힘, 보수 세력이 함께 묶여 ‘동반 투신’ 중이다. 그걸 바라보는 보수층의 마음은
복잡하고 분열돼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층은 축소와 분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보수 지지층이 한없이 쪼그라든다.
수도권과 경상도가 보수를 지지하면 (선거에서) 이긴다. 지난 총선이 단적인 예다. (수도권이) 국민의힘 지지를 철회한
셈이 됐다. 경상도만 남았다. 경상도는 또 경남과 경북이 다른데, 대구·경북이 고립된 형국이다. 대선 이후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김문수 후보 득표율의 절반밖에 안 된다. 연령층으로는 70대만 남았다. 젊은 사람,
중산·중도층을 놓쳤다. 자영업자,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를 이루는 63%의 ‘생활인층’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점점
내려간다. 국민의힘은 한국 사회 중심층을 잃고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그게 (현재 지지율) 20%의 실체다.
“보수의 축소는 인구·세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다. 50대 이상 유권자 비중이 늘고 있다. 최근 약 3년을 보면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0.73%포인트, 약 23만 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연합된 지지 기반을
아끼며 서서히 늘려갔어야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런 대전략을 만든 이준석 대표를 ‘내부 총질’한다고
몰아내는 정치적 실수이자 오판을 했다. 결국 20%대 지지율을 갖고 계엄 선포라는 ‘자폭’을 했다. 일련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이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박수부대’를 자처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3년간의 이런 ‘반(反)보수적 배신’이 결국 계엄 선포라는 ‘막장 드라마’로 이어졌다.
중도층 외면에는 전광훈 등 세력 탓이 크지 않나.
전광훈은 윤석열의 ‘아바타’, 추종자 아닌가. 계엄 이전에도 그들은 광화문에서 집회했다. 또 보수 언론이 그들을
응원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거짓말’이 아니라 ‘의혹’이라고 썼다. 기자들이 ‘의혹’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인다.
‘의혹’은
취재해 보니 거의 90% 사실이지만, 명예훼손을 피하기 위해 쓰는 말인데,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것’도
의혹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의혹’이라는 ‘월계관’을 씌우고 언론과 지식인이 합작해 그 세력을 키웠다. 국민의힘만
반성하라고 할 게 아니다.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그렇게 윤석열 지지자들은 일종의
‘컬트(cult)’ 그룹이 돼버렸다. 광장에 모여
온몸에 ‘STOP The STEAL’이란 구호를 감는다. 한 손엔 태극기, 다른 손엔 미국 성조기를 든다.
태극기는 이해가
가는데, 성조기를 왜 드나. 거기에 이스라엘 국기도 든다. 그것도 개신교가. 이스라엘이 개신교 국가인가.
이스라엘은 약 73%가 유대교다. 약 18%는 이슬람교다. 기독교는 약 1.9%다. 이걸 합쳐 놓고 보면 괴기 영화이자
좀비 영화다. 어떻게 전한길이라는 선동가를 영웅 취급하며 전면 인터뷰를 싣나. 그걸 반성 안 하면 보수 문제를
아무리 논해도 헛돈다.
대선 패배, 계엄 말고 보수가 놓친 것은…
계엄 외에 보수가 이번 대선에서 놓친 점은.
한국 보수 정당은 ‘안보’를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당장 오늘 밤에 김정은이 핵미사일 버튼을 누를 때 북한엔 이걸
막을 사람이 없다. 7분 만에 서울 상공에 핵폭탄이 터진다. 어쩌면 우리가 안전하게 사는 건 김정은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한국인들은 지금 요행수(僥倖數)로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에 방어막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드 배치를 막는 세력도 있었다. 진짜 보수 정당이라면 이런 걸 문제 제기하고
유권자에게 호소해서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안보 문제를 이야기하면 표가 되지 않는다’며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안보 문제를 등한시했다. 선심성 공약, ‘퍼주기’, 포퓰리즘으로 가면 민주당과 다를 게 없다. 결국 보수
정당은 한·미 동맹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안보 문제를 정치의 제1 주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의 자격을
원천적으로 잃고, 좌파 정당에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지금 국민의힘은 ‘껍데기’ ‘가짜’ 보수 정당이
되어간다. 안보 조건을 보면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더 위험하지 않나.
대선 패배가 국민의힘에 정치적 자양분이 될 가능성은.
실패할 때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보수 지식인 행태를 보면 이번 패배로 더 내려앉을 것 같다.
철학적인 반성은 없다. 기술적인 반성만 한다. (정치인으로서) 인생관, 세계관, 자신의 근본적인 가치 체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안 보인다. 재기의 기미가 안 보인다. (다만) 보수층은 또 다르다.
김문수와 이준석의 대선 득표율을 합쳐 봤을 때, 보수 재건이 가능할 거란 의견도 있다.
김문수를 찍은 보수와 이준석을 찍은 보수가 다르다. 이준석의 득표율 8.34%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비상계엄에 반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를 찍은 이들 중엔 계엄에 찬성하고 음모론에 편승한 사람도 있다. 완전히 질이
다르다.두 득표율을 합산하는 건 모집단이 잘못됐다. ‘계엄’과 ‘부정선거’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나눠야 한다. 이번
대선은 기존 보수·진보라는 기존 틀로 볼 게 아니라 헌법과 사실을 존중하는 ‘맨정신파’의 압승으로 보는 게 맞다.
윤석열 향한 날 선 비판, 과거에 칭찬한 이유는···
윤석열을 세게 비판하는데, 대통령 후보 시절엔 칭찬을 많이 했다.
2022년 3월 9일(20대 대선)까지는 칭찬했다. 그때까진 ‘이재명 후보보다 윤석열 후보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부턴 잘할 때와 못할 때를 나눠 평가했다. 기자는 원래 그렇다. 절개를 지키는 선비가 아니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잘못해도 칭찬해야 하는 건 의형제한테 해야지. 기자로서 어느 쪽이든 항상 비판을 받았다. 사실대로 글을 쓰면 꼭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대로 썼다고 박수 쳐주는 경우는 없다. 그런 직업이 아니다.
강성 보수층 비난도 많이 받았을 텐데.
많이 받았다. 나를 지지했던 사람이 비판하기도 하고, 나를 비판했던 사람이 지지하기도 한다.
이런 역전 현상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일어났다. 또 사무실이 광화문에 있고, 예전엔 광화문 집회에 나가서
마이크 잡고, 연설도 자주 했다.
계엄 사태 전엔 주로 연세 드신 분들이 인사했는데, 요새는 그들 중에 원망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30~50대
직장인들이 인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을 따라가면 지지자와 반대자가 뒤바뀌는 경우가 있다.
엄 사태 이후
한국의 변화는 ‘세상이 바뀐다’는 표현도 성립된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보수는 헌법 수호 세력이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이게 헌법에 다 담겼다. 쉽게 말하면 보수는 호헌(護憲)
세력이다. 그런데 계엄 이후에 ‘일부 보수 세력’은 헌법에 도전하는 세력이 됐다. 심하게 말하면, 헌법 파괴 세력이다.
그래서 윤석열을 변호하는 건 헌법과 맞지 않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공격하며 “해산”을 주장한다.
나중엔 ‘국민 저항권’을 꺼냈다. ‘음모론 보수’는 헌법 파괴 세력이 되고, 헌법 파괴 세력이라고 욕했던 진보좌파가
헌법수호 세력이 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중대한 변화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이제 좌·우,
진보·보수라는 개념으로 한국 여론 구조를 가르는 건 잘 맞지 않다.
민주당의 ‘사법 장악’ 우려도 나오는데, 호헌(護憲)일까.
삼권분립에 반할 소지가 크다.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검찰 개혁’을 말하더니 이제 ‘언론 개혁’이라고 한다.
정권이 언론 개혁하면 독재라는 이야기 아닌가. 언론 개혁을 왜 권력이 하나. (언론) 스스로 해야지. (그리고) 민주당
정권은 역대 최강의 정권 아닌가. 총리를 포함해 장관 후보자 18명 중 8명이 민주당 의원이다. 당이 내각을 장악한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민주당의 통제력은 굉장히 강해질 거다. 그리고 민주당에 회비를 내는 당원이 100만 명이
넘는다. 이런 나라는 드물다. 또 굉장히 열성적이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토호(土豪)당’ ‘웰빙(well-being)당’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싸우는 정당’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능력 면에서 (민주당에) 상대가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손님’이고, 결국 ‘주인’은 정당이다. ‘윤석열 계엄을 편든다’는 건 윤석열이라는 역사의 패배자 앞에 (줄)서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보수 정당 말고,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은 앞으로 100년 동안 집권하지 못할 것 같다.
윤석열의 쿠데타, 전두환의 쿠데타
12·3 계엄에 ‘윤석열’ 개인의 인성은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계엄의 약 70~80%는 윤석열이라는 한 개인의 성격과 관계된다고 본다. 특히 김건희씨와의 이상한 관계… ‘두 사람이
정신적인 관계에서 갑과 을이 아니었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국민 대부분이 지적했던 김건희씨 문제점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인데, 이건 밝혀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사고 치는
대통령을 막기가 힘들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비상계엄령 선포는 일종의 ‘사고’다. 제도적으로 막아야 했는데,
국무회의가 제도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당 개입이 필요했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한 사람도 안
했다. 앞으로 개헌을 한다면 대통령이 ‘사고’를 못 치게 막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윤석열의 쿠데타와 전두환의 쿠데타에 대한 평가는.
그건 완전히 다르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12·12 사건’으로 군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5·17 계엄 확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통해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6개월 동안 지속한 상당히 긴 과정을 말한다. 전두환은 당시
실력자가 아니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실력자였다. 그런데 이번 계엄은 다르다. 윤석열 본인이 국군통수권자였다.
쿠데타는 기존 정권을 뒤엎는 쿠데타와 자신의 권한을 더 강화하기 위해 야당, 2인자를 제거하는 ‘친위(親衛) 쿠데타’가
있는데, 윤석열의 계엄은 친위 쿠데타였다. 군대를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다. 실패할 수가 없는데 실패했다. 그만큼
무능하다는 뜻이다. 또 군대에 안 가서 ‘총’을 잡는 게 얼마나 엄숙한 일인지, 군대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선택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앞으로 남자의 경우, 현역 근무나 기초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만 대통령
선거에 나올 수 있게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군대에 안 가면 배울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달리 봐야 한다는 건가.
(기자는) 사안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사실대로 기술해야 한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980년대를 이끈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집권 당시에 벌인 헌법 파괴, 유혈 사태와 함께 12년(1980~92년)간 대한민국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를 함께 봐야 한다). 12년간 한국 경제의 평균 성장률은 10.1%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북방 정책을 통해 한국인 활동 공간을 세계로 넓혔다. 노태우 정부 시절,
한·중 수교가 오늘날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지 않나. 또 두 사람이 합의한, 합작한 ‘6·29 선언’, 이후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오늘도 우리는 6공화국에 살고 있다. 이런 제도, 경제를 만든 부분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 과정 문제와 이걸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법적 판단과 달리 평가해야 한다는 뜻인가.
사람을 평가할 때 우선 법률적 평가가 있다. 법률적인 평가에서 ‘쿠데타는 헌법 위반’이다. 그다음 정치적 평가가 있다.
이것의 핵심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이득인가, 손해인가’다. 그리고 또 다른 평가는 법률적, 정치적 평가 위에 놓인
역사적 평가다.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경우 쿠데타를 일으킨 잘못이 있지만, 한국을 발전시킨 공(功)이 있다. 그걸
상쇄하면 공이 더 많다고 본다.
윤석열의 계엄도 후대에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거라 보나.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려면 12월 4일 하야(下野)해야 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나가서 거짓말, 남 탓, 부하 탓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지금도 계속 법과 싸운다. 검찰총장 (출신)이 ‘법꾸라지’ 노릇을 하니 인간적으로 경멸하게 된다.
박정희와 이승만, 전두환도 마찬가지인데, 욕먹을 행동은 했지만 인간적인 경멸을 살 만한 행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경멸’과 ‘욕’은 다르다. 비판(욕)은 그 사람의 정책을 논하는 것이고, 경멸은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놓고
평하는 것이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8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