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출연 크레이그 셰퍼(노먼), 브래드 피트(폴), 톰 스커릿(맥클레인 목사) 외
원작 노먼 맥클레인
개봉 1993.04.24
강물이 흘러가고, 주름진 손의 늙은 낚시꾼이 미끼를 준비하면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Long ago when I was a young man, my father said...”
이어지는 십여 컷 흑백 사진 뒤, “나의 아버지는 목사이자 플라이 낚시꾼이었다”라는 멘트와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산악을 따라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북서부 몬태나- 어느 시골 마을의 전경이 카메라에 담기면 관객들은 청량감 속에서 영화에 빠져든다.
근엄한 목사인 아버지는 어린 형제를 늘 강가로 데려갔다. 예수의 제자들 중엔 어부가 많이 있었다며, 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송어 낚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들도 강을 좋아했다. 형 노먼은 아버지가 내주는 작문 숙제가 끝나면 동생을 데리고 강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에게 강은 맑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어느 날 폴이 지겨운 귀리죽을 거부한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귀리를 먹었다. 8살짜리 아이가 그 전통을 바꿀 순 없어.”
굳은 얼굴을 한 아버지의 설득에도 폴은 끝내 귀리죽을 먹지 않는다. 둘의 기-싸움에 엄마와 노먼이 눈치를 본다.
"형은 커서 뭐가 될 꺼야?"
"목사. 아니면 권투 선수. 넌?"
"프로 플라이 낚시꾼."
"그런 직업은 없어."
노먼은 조용한 아이였다. 반면 동생 폴은 강인했고, 내면 깊숙한 곳에 열기를 담고 있는 아이였다. 풀밭에 누워 낄낄거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내레이션은 어린 형제를 청년기로 데려간다.
야밤에 동네 친구들이 2층 방의 형제를 불러낸다. 뛰어내리고, 외벽을 타고 내려가고. 레드포드 감독은 둘의 성격을 친절히 비교해준다. 사고를 쳐야 청춘이다. 어른들 몰래 술 마시는 정도론 젊은 혈기를 달랠 수 없다. 폴이 도발한다. 꼬임에 넘어간 청춘들이 보트를 훔쳐 강으로 향한다.
“하나님, 마리아, 요셉. 난 못해.” 폭포와 급류에 겁을 먹은 떨거지들은 빠지고
“그럼 맥클레인 형제만 남았군.” 폴이 형을 쳐다본다. 떨떠름한 표정의 형이 마지못해 동생과 함께 보트에 오른다. 보트가 뒤집어졌지만 형제는 용감하게 미션을 성공한다.
집으로 돌아온 형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주먹질을 한다. 도발은 역시나 동생의 몫. 노먼이 싫어하는 정어리를 샌드위치에 쑤셔 박는다. 쌍코피 터지는 싸움에 엄마가 잠을 깨고, 형제는 아침 댓바람부터 아버지의 맞춤형 설교를 듣게 된다. 싸움의 마무리는 내레이션이 맡는다.
'누가 더 강한지 궁금했다. 유년시절의 의문은 때가 되어야 풀린다. 그리고 더는 궁금하지 않다.'
형제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 자신들만의 리듬으로 송어를 낚을 수 있게 된 1919년 가을. 노먼이 천리 떨어진 다트마우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연기를 뿜으며 출발하는 동부행 열차,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폴,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아빠와 엄마. 그렇게 내레이션은 또 그들을 6년 후로 데려간다.
형이 돌아왔다. 아버지와 장래에 대한 면담을 끝낸 노먼이 멋진 슈트 차림으로 동생이 근무하는 신문사로 들어선다. 헤이, 브라더~ 폴은 주머니(?) 술부터 건넨다. ‘약해졌네’ 한마디에 형이 원샷을 한다. 다음 행선지는 당연히 마음의 고향- 블랙풋이다. 형제의 낚시 장면이 오래 이어진다. 형이 떠나있는 동안 동생의 낚시질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없는 동안 남자가 됐구나.’ 세 살 터울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감상에 관객들도 화답한다. ‘당연하지. 브래드 피트잖아.’
독립기념일 축제, 노먼의 눈에 춤추고 있는 여자가 들어온다. 클럽-춤은 아니고, 동네에서나 그냥저냥 먹히는 막춤이다. 그녀의 이름은 제시 번스.
“익스큐즈~ 같이 출래?”
“됐고, 음료나 좀 갖다 주세요.”
뻘쭘해진 노먼. 다행이 차인 게 아니다. 그녀는 정말 목이 말랐다. 시원하게 들이키는 제시. 말주변 없는 노먼은 잔이나 치운다. 미룬 숙제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다음날 통화를 해야 하는데 엄마가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그래도 눈치가 있다. 너 써라. ‘우리 장남 연애 하나?’ 퇴장하면서 기웃거린다. 맞다 여자다. 기억 못하는 제시에게 음료를 가져다 준 남자라고 상기시켜주는 노먼. 불꽃놀이 때문에 통성명도 못하고 헤어진 결과다. 빙충맞은 웃음의 노먼. 콩깍지가 맞다.
연애를 시작한 노먼과 제시가 동생 커플과 클럽에 간다. 폴의 여자는 인디언 메이벨. 안타깝지만 이 클럽은 인디언 출입금지다. ‘비켜~’ 폴이 밀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뭔가 터질 분위기다. 웨이트리스는 인디언 여자에게 주문도 받지 않는다. “위스키, 더블로” 돌아서는 웨이트리스에게 인디언 여자가 툭 지른다. 알코올 다음엔 춤이지. 폴 커플이 살사(?)로 스테이지를 장악한다. 끈적한 블루스 타임엔 노먼 커플도 나간다. 그렇지 역시 블루스를 춰야...
노먼이 경찰서에 들어선다. 폴 커플이 지하 유치장에 갇혀있다. 클럽에서 결국 어느 놈 이빨을 부러트렸다. 인디언 여자는 술이 덜 깨 뻗어있다. 여자의 다리를 카메라가 훑고 지나간다. 발목이 질질 끌려도 인디언 여자는 깨지 못한다. 형제는 여자를 바래다준다.
아이들은 먹고, 어른들은 말편자나 던지고, 노인들은 졸고 있는 야외 피크닉. 폴과 체인징 파트너 한 노먼은 제시를 만나러 간다. 제시는 오랜만에 방문한 뻥쟁이 오빠- 닐에게 남친을 소개한다. 건성으로 인사를 건네는 여친의 오빠 닐과 느닷없는 낚시 약속이 잡힌다.
약속 당일 알코올쟁이 닐이 술집에서 후린 여자를 데려온다. 남녀는 이미 술에 절어있다. 동행한 폴이 몬태나에서 지각하면 안 되는 세 가지(교회&직장&낚시)를 말해주지만 먹힐 리가 없다.
시원한 맥주 생각에 잠시 낚싯대를 접고 차에 돌아온 맥클레인 형제. 그러나 보이는 건 흩어진 빈 병과 올 누드로 뻗어있는 남녀뿐이다. 여름 땡볕이 남녀의 등짝과 엉덩이를 달구고 있다. 형제는 씨익 웃으며 돌아선다. 2도 화상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닐. 못났어도 오빠라고 제시가 열을 받는다. ‘저렇게 되도록 내버려뒀냐’ 표정이 매섭다. 그래도 남친을 바래다주긴 한다. 다만 철로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고 운전이 험할 뿐이다.
닐이 돌아간다. 환송장엔 노먼도 나간다. 제시가 불렀다. 화해의 제스처다.
“오빠가 나중에 다시 오면 또 만나줄 꺼지?”
제시가 눈물을 흘린다. 노먼이 닦아준다. 폴과 마찬가지로 닐 역시 가족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노먼에게 시카고대학으로부터 교수자리를 제안하는 편지가 온다. 노먼이 제시에게 시카고로 가자고 한다. ‘Would u merry me?’와 비슷한 의미다. 감격한 제시가 남친을 꼬옥 안아준다.
“WE HAVE NO BANANAS TODAY...”
유행가 한가락을 흥얼거리며 폴은 사랑의 열병에 전염된 형을 요상한 클럽에 데려간다. 그런데 이번의 클럽도 분위기가 요상하다. 인디언 출입금지는 아니지만, 도박꾼들을 위해 술을 파는 하우스다. 그리고 아무도 폴을 반기지 않는다. 이곳에서 폴은 매너 고약한 불청객이다. 싸늘한 시선에 쫓겨 밖으로 나오지만 폴은 미련이 남았다.
“넌 덫에 걸렸어.”
“아임 파인. 내 덫이야. 내 빚이고.”
열 받아 떠나는 형에게 폴이 달려간다. 낼 새벽 낚시가자고. 그리고 하우스로 뛰어간다.
약속은 6시30분인데 폴이 오질 않는다. 다행이 7시 조금 못 돼 폴이 귀가한다. 형은 몰래 안도의 숨을 뱉는다. 노먼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시카고대학에서 교수 자릴 제안했다고 밝힌다. ‘위 아 프라우드 오브 유’ 우유 건배에 이은 식사를 마치고 3부자가 또 낚시를 간다. 이번엔 형이 먼저 낚았다.
“미끼가 뭐야?” “번연벌레” “땡큐, 시와 송어의 교수님”
담배를 나눠 피는 형제.
“제시에게 청혼할 거야. 시카고에 같이 가자. 거긴 신문사가 열두 곳도 더 있어.”
“알잖아, 내가 몬태나를 떠날 수 없는 거.”
아버지와 형이 풀섶에 앉아 막내의 낚시질을 보고 있다. 폴의 낚싯대에 대물이 걸렸다. 잠기고 쓸리고 (영화 상) 2분 가까운 싸움에서 폴이 허벅지만한 송어를 건져 올린다.
“넌 훌륭한 낚시꾼이야.” 아버지가 말한다.
그 환상적 장면과 이후의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뭉뚱그려 형- 내레이터는 이렇게 표현한다.
‘모든 법칙에서 벗어난 예술작품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수도 없다.
경찰서를 빠져나온 노먼이 힘없이 귀가한다. 폴이 권총 손잡이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말을 잇지 못하는 부모. 엄마가 쓰러질 듯 2층으로 올라가고 아버지가 겨우 묻는다.
“그게 다니?”
“손목뼈가 완전히 부러졌어요.”
망연한 표정으로 한마디 더 묻는다.
“어느 쪽?”
“오른 손요.”
이후로도 아버지는 여러 번 물었고,
노먼이 “폴은 분명히 훌륭한 낚시꾼이었어요.”라고 말하자,
“아름다운 아이였다.” 한마디 덧붙였다.
그게 폴의 죽음에 대해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폴의 죽음이 엔딩을 재촉하고, 카메라는 영화의 주제와도 같은 아버지의 설교 장면을 비춘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어린 형제가 블랙풋에 낚싯줄을 던지는 장면이 지나가고, 늙은 노먼이 혼자 미끼를 준비하면 내레이터의 긴 독백이 이어진다.
‘(이해 못했어도)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간다. 어둔 계속에 홀로 있으면 모든 존재가 희미해져 영혼의 기억에 합쳐진다. 블랙풋 강물 소리와 네 박자 리듬 속에서...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흐르는 강물처럼.’
명작의 조건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래 기억되는 작품
-다시 보고 싶은 작품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
-말(감상 후기)이 필요 없는 작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그렇다. 적어도 내겐.
첫댓글 아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영화인데 말이죠
잘읽었습니다
당시 브래드 피트가 대세긴 했죠~
자꾸 '가을의 전설'이 오버랩 됩니다 ㅎ
가을의 전설. 막장 내용과는 달리 아름다운 영화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