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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닮고 싶은 예수 - 조이 도우슨 지음 예수전도단
사역에서 닮고 싶은 예수
나는 예수님의 삶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가 하나님이 말하신 삶의 청사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발견하고는 섬뜩 놀라곤 한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보이신 삶은 모든 그리 스도인을 위한 본보기로서 인간 역사에 유일무이하다. 우리는 그분의 삶을 훑어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을 근거로 그분의 삶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이해해야 하며, 그분의 삶의 원칙들을 우 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꾸준히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의 음 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즉시, 기쁨으로, 마음을 다해 그분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 면 우리는 점차 그분을 닮아갈 것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회개를 통해 제거해야 할 불신의 거대한 돌덩이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돌덩이다.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나오기 전에 예수님이 뭐라고 말하셨는가? 돌을 옮겨 놓으라. 그러면 내 영광을 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통해 우리 마음속 불신의 돌덩이를 옮겨 놓아야 한다. 그래야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실제로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드실 능력이 예수님께 없었다면 그분은 결코 우리에게 그렇 게 하라고 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건 부당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자로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 아들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신성의 기능까지 내려놓으셨다. 그러나 신성의 본질은 유지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둘째,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셨다.
셋째, 예수님은 사탄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오셨다.
넷째,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다섯째,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세 가지 사역을 하셨다. 첫째, 회당에서 가르쳤다. 둘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의 마음과 몸과 정 신과 의 필요를 만족시켰다. 셋째, 제자를 삼고 그들을 양육하셨다.
우리가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 삶이 예수님의 삶과 일치하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입체로 본 그리스도의 생애』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많은 수고를 들여 사 복음서에 서술된 특정 사건과 예수님 생애의 중요한 면 모두를 뽑아내고, 그 사건 당시에 예수님 행 동의 한 측면을 보여 주는 진리를 하나하나 결합했다. 마태복음 11장 1절, 누가복음 9장 6절, 마가복 음 6장 12- 13절이 어떻게 입체적으로 결합되는지 살펴보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 고 그곳을 떠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고 전도하셨다. 제자들은 나가 각 촌을 두루 다니며 곳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을 고쳤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전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 을 발라 그들을 고쳤다.
아름답지 않은가?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주옥같은 장면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일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단호하셨고, 순종하셨다
예수님에게는 아버지께 받은 임무를 성취하려는 강한 의지와 성실성, 단호함, 그리고 강한 목적의식과 순종이 있었다. 예수님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에서 엇나가지 않으려고 하셨다. 예수님 은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한다고 하셨다. 또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기다려서 보고 듣고 난 후에야 행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이러한 겸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삶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
겸손은 아버지를 대하시던 다섯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께 전적으로 복종하셨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복종하신 첫 번째 공적 행동은 물 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으신 것이었다. 이 복종의 행동 직후,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강림했으 며, 이것은 그분이 공생애를 위해 성령으로 능력을 입는 표적이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처럼 물세례 를 받지 않은 채 나가서 사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하나님은 거룩한 이시기 때문에 더러운 그릇을 채우시지 않는다. 죄는 아름다운 주님과의 친함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기 때문에 우리는 삶 속에 아직 다루어지지 않 은 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예수님은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존하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언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나 님 앞에서 몇 분간 기다린 후 이내 포기해 버리곤 한다. 정말 애처롭기 짝이 없다! 이것이 바로 교회 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능하며 예수님을 왜곡되게 보여주는 이유다. 나는 오늘날 그리스 도의 몸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죄 중 하나는 추정(presumption)의 죄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한 목적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왕의 오심을 미룬다. 이것에 관해 다윗이 어떻게 말했는지 아는가? 다윗은 우리가 알다시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뛰어난 지도자 지만, 시편 19편을 보면 그의 가장 큰 죄 가운데 하나는 추정의 죄다. 그의 생애를 연구하면 여러 경우에서 이 죄로 인한 참담한 결과가 있었음을 발견한다.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presumptuopus sin: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죄라는 뜻과 추정, 어림짐작의 죄 라는 뜻이 모두 포함됨 -역주)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 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편 19:13).
인생 후기에 다윗은 추정의 죄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평생 동안 영적 지도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 죄가 초래하는 참담함을 빈번하게 봐 왔다. 언젠가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한 사람이 기억난다. 아주 유명한 교회에서 6년을 섬겼는데, 그때가 제가 그리스도를 섬긴 시간 중 가장 비참한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가 비판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교회가 국제적으로 하나님께 크게 사용되고 있음도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그 교회에서 일해 달라는 초청에 응하기 전에 하나님이 뭔가 명확한 방법으로 말하셨나요? 이를테면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라고 할 만한 간증이 있나요? 그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그 중대한 사역을 맡은 이유가 뭐죠? 목사님께서 부탁하셨거든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 답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주는 강한 권고가 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 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편 62:5).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 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미가서 7장 7절).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도다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 라 (시편 81:11-13).
셋째, 예수님은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셨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과 실제로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순종에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성경적 순종은 즉각적인 순종이지 지연된 순종이 아니다.
성경적 순종은 부분적 순종이 아니라 전적인 순종이다.
또한 성경적 순종은 기쁨과 입술의 찬양을 동반한 순종이다.
나는 비합리적이고 피할 수 없는 압력들이 끊임없이 내 위에 쌓이고 가차 없이 나를 억누르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날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낮에 나는 무릎을 꿇고 기 했다. 주님, 제게 가르치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즉시 응답하셨다. 네가 주변의 압력이 심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하는 중이다. 그 시절에 나는 앞으로 내가 국제적으로 여행하고 가르치며 책을 쓰고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 압력이 하루 종일 계속되리라 보고 주님의 은혜를 받겠습니다. 그 무자비하고 예기치 못한 압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혀 경감되지 않았다. 대단했다! 그러나 나는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께 제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십니까? 라는 백만 불짜리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일이 잘 조정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할 일이 생기거나 상황이 어려울 때, 잠시 멈추어 하 나님께 이 질문을 해 보라. 그리고 그분이 대답하실 때까지 계속 기다려라. 하나님이 내게 많은 답을 주신 이유는 내가 이것을 나의 삶의 방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기를 좋아하신다.
넷째, 예수님은 기도하는 삶을 사셨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왜 그리 중요하며, 겸손과는 어떤 관 련이 있는가? 기도란 모든 상황 속에 예수님을 초청하고, 예수님이 모든 상황을 자연적인 것에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바꾸어 모든 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예수님은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우리가 정말로 간절히 그분을 필요로 하는 증거는, 우리가 항상 그분께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우리 상황을 자연적인 것에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시도록 구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기도가 없는 데는 어떤 이유가 깔려 있을까? 바로 교만이다. 기도가 없다는 말은 저는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 라는 뜻이다.
다섯 째,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귀하게 여기셨다. 예수님은 겸손과 단순함을 설명하기 위해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을 예로 드셨다. 한편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깊이 염려하셨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실족케 하는 자들에게 가장 엄한 심판을 내리셨으며, 어린아이들을 멸시하지 말라는 경고 도 하셨다. 남편과 나는 존과 질을 기르면서, 또 여섯 명의 손자손녀와 증손들을 돌보면서, 우리가 그 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되게 보여 준 행동이나 말을 한 것을 깨달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 것은 잘못된 거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 았으면 해.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든 우리를 용서해 주렴. 때로는 여러 해가 지나서야 그것을 깨달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깨닫자마자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늦게 사과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예수는 솔직하고 투명하셨다
예수님의 삶은 전혀 숨길 것이 없는, 펼쳐 놓은 책과 같았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고 말하셨다. 진리를 말하기로 결심하면 변명을 생각해 낼 필요가 없다. 물론 어떤 때는 침묵이 가장 현명한 대답이 되기도 한다. 한편 진리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 의 말은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기록한다. 진리는 은혜 가운데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을 친 것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 말에는 무미건조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예수님은 어떤 위선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위선보다 더 예수님을 화나게 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자 신의 삶의 방식이 아닌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짜다! 우리가 진리를 얼마나 유창하게 전 달하느냐에 관계없이 거기에는 기름부으심이 없다. 권세가 없다. 성경에서 많은 구절을 인용하고 진리 를 말한다 해도 그 진리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권세가 없는 것이다. 위선이란, 사실은 그렇지 않 은데 그렇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을 당시의 모든 선생과 구분 짓게 한 것이 있다. 성경은 예 수님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세 있게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내 친구인 국제 YWAM의 창시자 로렌 커닝햄과 저명한 국인 성경교사 캠벨 맥알파인과 협력해 사 역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셋은 영적 지도력에 관한 집회에서 강의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들과 협력하 여 일하는 것은 내게 큰 특권이었다. 한번은 강의를 하기 직전에 친구 캠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말을 준비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가 물었다. 조이, 이 말 이 당신 삶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그럼요. 그는 말했다. 그러면 준비가 끝난 거네요. 나는 그날 내 에 엄청난 위로가 왔음을 기억한다. 하나님 말씀은 곧 내 삶이었으며,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은 혜와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권세 있게 말했다.
마태복음 10장 26절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 라 고 말한다. 누가복음 12장 2절에도 똑같은 말이 있다. 나는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할 때 면 내 이 떨리고 내 몸이 떨리는 것을 경험한다. 당신은 이 말을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사는 방식이 바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 바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필요와 고통을 긍휼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진리로 가득 찬 머리만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지니셨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 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9:36). 잃어버린 자들에 대해 마음에 부담을 지닌 사람은 그들 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잃어버린 자들에 대해 부담을 지닌 마음은 그들을 위해 중 보하고, 그들을 위해 울고, 그들의 삶에 개인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포기하려 한다.
친구관계에서 닮고 싶은 예수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아주 깊고 친한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는 것이다. 그리고 슬픈 소식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친하심을 연구하면 할수록, 나는 이 놀라우신 분께 더 매료된다. 하나님이 인자이신 예수님께 허락 해주신 친구관계에 관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세 가지 중요 사항이 있다.
첫째, 예수님의 친구관계에는 몇몇 부류가 있었다. 둘째, 그 부류마다 친함의 정도가 있었다. 셋째, 예수님의 친구는 남자와 여자 를 다 포함했다.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에게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아버지 하 나님이 우리의 친구관계를 계획하시고 준비하신다고 기대해도 좋다.
친구들을 용서하셨던 예수님, 때로는 친구들을 꾸짖기도 하셨던 예수님. 예수님은 친구들을 보호하고 보살피셨으며 진리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친구들을 격려하시고 친구들의 고통을 이해하시며, 우리에게도 이러한 우정을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와 친한 관계를 맺으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 요한복음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다가 돌아서고 난 후 예수님이 가까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 기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고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표현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 7: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으며 (아 6:3).
영혼 구원에서 닮고 싶은 예수
나는 유명한 성경교사이자 저자던 한 분의 간증에 큰 향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훨씬 더 자주, 잃어버린 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내 믿음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답변이 아닌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혼을 향한 부담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혼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첫 번째 전도 전략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 전 략은 각 개인에게 다가갈 가장 현명한 방법에 관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방법에 민감했던 것 이다.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길가에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질 을 때, 예수님은 시력의 회복이라는 그의 육체적 필요를 먼저 채워 주셨다. 그리고 그 소경은 즉시 예 수님을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그와 같은 방법이 세계 전역에서 얼마 나 훌륭하게 사용되어 왔는지 모른다. 사마리아인의 지갑 등 세계 전역의 YWAM에서 실행하는 수많 은 자비사역, 전 세계의 수많은 고아원과 에이즈 사역 등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젊은 부자 관원에게는 다른 방법을,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또 다른 방법을 취하셨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그저 혼자 짐작하지 말고, 각자에게 맞는 특별한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함을 말해 준다. 우리가 예수님의 방법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오직 성 령님만이 각 사람의 가장 필요한 부분을 아시며, 우리가 궁핍한 혼들과 만나는 순간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정말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초자연적인 일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신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세 번째 전도 전략은,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간의 상호작용에서 가 장 훌륭한 본보기가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심으로 써 문화적, 인종적 장벽을 뚫고 나가셨다. 우리 삶의 본이신 예수님은 사회적 수준이 다른 이들도 동 일하게 편히 대하셨으며,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긴장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전략은,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것이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는 것이 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그분께 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아셨 고,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 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 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실제적으로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길 내내 우리를 시험하신다. 그것은 모두에게 진정한 제자가 되 는 과정이다.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에서 친해질수록 시험도 더 커진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말을 연구해 보면 아주 명백히 드러난다. 욥, 아브라함, 모세, 요셉, 다윗, 마리아(예수님의 어머니), 한나, 에 스더, 다니엘, 바울, 그리고 사도 요한이 견뎌 냈던 엄청난 시험들을 보라.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으 로 의롭고 공정하시므로, 그들의 보상을 주제로 책을 써도 될 것이다.
▶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 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