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외 1편
김 혁 분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한 마리 노루처럼, 사내가 뛰어들었다 급브레이크에 얽힌 길, 속도에 치인 차들이 뒤죽박죽 멈춰 섰다 튕겨나가 흩뿌려진 피, 화禍의 발화점은 찰나에 어긋난 순간이다 붉디 붉은 꽃이 피었다 만개한 꽃花 위로 나비떼 마냥 눈꽃이 휘날린다 몇 개피의 연기로는 끊을 수 없어, 숨겨두었던 담배에 불火을 붙였다 새해 벽두부터 허옇게 분출되는 화. 한 방의 어퍼컷에 어질 숨을 토해낸다 반짝 불꽃이 스러졌다 우왕좌왕 눈 위에 찍히는 등산화靴자국들, 앰뷸런스 소리에 뒤얽혀 사내의 피투성이 맨발이 수습되었다
미로 속, 공동으로 설치한 추상화畵가 널브러졌다
혓바늘
입안에 불쑥 솟아오른 바늘, 외톨이로 살았다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집 밥이 그리워 입안에서 겉도는 타향, 음식의 맛을 잃었다 입안은 온통 서걱이는 모래 바람이 분다 둔감해진 입맛을 되짚으며 자꾸만 매운맛을 탐 한다 조금만 매워도 타오르듯 화끈거리는 입안, 말더듬이가 되어가고 있다
말을 잃은 혀끝 꺼끌꺼끌 고향을 향한다 어머니의 질박한 손, 간기로 절어버렸는가 찬마다 짜디짠 쓴맛이다 간국의 짠, 그렁한 국물을 마신다 밥상머리 바싹 당겨 앉은 엄니, 쭉쭉 찢은 신짠지를 얹어주신다 되돌릴 수 없는 엄니의 손맛, 고향엘 가도 고향은 없다 입 안 가득 버석이는 쓴 입맛을 다신다
김혁분 충남 보령출생 ─2007년 애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