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삶, 수필적 삶
지구문학 게간평
권대근
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생은 자기 표현이다. 산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수필가는 각자 자기의 개성적인 언어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뜨겁게 사는 사람은 뜨겁게 표현하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사람은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요,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붓 가는 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 문학으로서의 수필이다. 문학이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성찰을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수필에서는 시나 소설에서처럼 특별한 기교를 요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수필도 문학의 한 장르인 이상, 창작상 표현을 위한 무기교의 기교가 필요하다. 음식을 만드는 경우에도 요리사의 솜씨가 없이는 요리가 제대로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필창작에도 기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수필문장은 설명되기보다는 표현되어야 한다. 수필다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성이라든지 예술성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계간평은 문학성을 관점으로 해서 선정된 우수 작품들의 수필미학을 발견하고, 아울러 구성론의 관점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대상 작품은 문상기의 <지렁이 울음소리>, 이 달의 수필로 뽑힌 주진호의 <아기와 의인>, 경길수의 <사진으로 보는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 이오순의 <이 풍진 세상> 네 편이다.
문상기의 <지렁이 울음소리>는 교감의 중요성에 대해 쓴 수필이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수필은 소재가 우선 참신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지렁이’와 ‘울음소리’를 연결해 복합명사화하고 이를 제목으로 정했다. 서두의 회화체 표현도 무거운 분위기를 가라앉혀주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자연과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탄력성 있게 전해줌으로써 읽는 사람의 기분을 밝게 할뿐더러 흥미를 더해주고, 나아가 삶의 의미까지도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다. 이 분의 수필을 읽으면, 흙의 생명력이 주는 청신한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지렁이의 합주가 들여오는 농장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어 하는 작가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해져오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다.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고 느껴질 대, 영혼 깊숙이 고여 있던 사랑의 샘이 메말랐다고 느낄 때, 외로움이 가슴을 짓누를 때, 한적한 시골로 가서 한밤중에 홀로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는 작가의 시심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참신한 표현은 비단 소재나 표현 자체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글을 쓰는 문체에서도 얼마든지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참신한 표현을 쓸 수 있다. '식물'과 '사람'이 영혼으로 대화하는 과정을 예시를 통해 생동감 있게 구체적으로 잘 그려내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 작품은 주제 의미화에 성공하고 있다. 작가는 비록 식물이지만 지극한 사랑을 기울이면 그 보이지 않는 몸짓과 소리 없는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장춘 박사에 얽힌 삽화를 소개하는데, 이는 이 수필의 구체화를 위한 최적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짐'으로 끝을 낸 결구 표현은 진부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유의했으면 한다.
주진호의 <아기와 의인>은 유아의 천진한 심성으로 복귀하여 무위의연의 사회를 이룰 것을 주장한 노자의 어록에서 수필의 모티브를 얻어, 자기 정화와 사회적 역할의 극대화를 주제의식으로 내세운 중수필이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노자의 어록은 물론 예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공자, 아브라함의 어록까지 주로 성인들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작가는 ‘소돔성’ 최후의 비극을 도덕성의 결핍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악의 예시로 ‘소돔성’의 타락을 활용하여 지나친 자료 인용으로 인해 강화된 논리성을 약화시키고, 희미해진 수필의 문학성을 강화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성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의인의 출현을 기대한다. 주장의 설득을 위한 적절한 근거의 차용, 주제 간접화를 위한 예시의 활용과 비유 기법의 사용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작가의 주제 전달성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수필의 특성이 무거운 칼럼으로 흐르고 말았다. 수필은 의미를 재구성하는 시간을 독자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수필이 주제 중심의 문학적 특성을 가진다 해도 ‘전달성’은 자칫 잘못하면 문학성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구성의 치밀함은 돋보이지만, 제재를 함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멋을 우려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수필에서의 함축이란 그 언어를 통해 연상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한자를 쓰지 않아도 문맥을 통해 글의 의미가 이해되면, 한자 병기는 자제할 일이다. 오히려 한자는 글에 상처가 될 수 있다.
경길수의 <사진으로 보는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이란 작품은 테마특집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 코너에 실린 수필이다. '자연 보호의 중요성'이라는 편집 의도를 충족시키는 수필이다. 작가는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을 보면서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생각을 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청진 지역 지리산에 올라 철쭉꽃에 취해 자연을 만끽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천국을 맛보는 경험이 아닐까.’란 대목을 보면 이 수필의 주제가 자연 예찬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 다음 단락을 읽으면 작가의 메시지가 바로 읽힌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논리가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작가는 그 근거로 수원에서 제주도로 연결되는 주변 산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 수필의 요지는 이러한 자연 파괴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은 아직까지 그 자연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것이다. 올해는 꼭 바래봉에 올라 철쭉꽃 여인이 되어 천국을 맛보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꼭 이루어질 기대해 본다. 꿈에 전제된 것은 꿈을 이루어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범한 자연 소재이지만, 이 글은 자연보호라는 소망을 삶과 결부시켜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에 문학적 향기를 지닌다. 수미상관의 구성적 전략이 돋보인 수필이다.
이오순의 <이 풍진 세상>은 작가의 사회적 인식이 비교적 잘 드러난 수필이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문학인 이상, 수필도 사회 문제를 눈 감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 수필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매스컴의 각광을 받은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 기자의 눈이 아니라 작가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 있어 관심을 끈다. 돈을 바라고 하는 투쟁이라는 외부인들의 오해 때문에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노인의 입에 문 담배가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담배를 홱 집어던지며 침을 뱉어냄으로써 이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대추리 노인의 묘사에서 우리는 작가의 집필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사회 문제화된 '이슈'를 제재로 해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이해’와 ‘관심’ 촉구하는 주제를 잘 겨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지 않는다’의 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다'의 눈이다. 작가는 ‘대추리'는 이 시대의 어려운 현실 배경이 되기에 충분하다. 고향을 잃게 될 노인의 불안한 심사를 수필에 담아 우리로 하여금 삶의 터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짚어 보게 한다. 주민들을 돕겠다고 나선 이념 세력들 때문에 노인의 정당한 목소리가 소란 속에 묻혀버린다는 작가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갈등으로 춤추는 분쟁 지역을 취재하는 언론인, 정치꾼 사람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싶다. 이 수필의 가치는 지배적인 이념의 문제를 작품 배면에 깔아두어 문학적 방식으로 풀어낸 데서 찾을 수 있다. 주제 간접화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수필에서의 주제는 다 읽고 난 뒤에 감지되도록 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수필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수필은 문학적 방식으로 쓰여져야 할 글이다. 그것이 문학적 방식인가 아닌가는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처럼 추상적인 표현인가 아니면 구체적 형상을 통해 자기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나타내는 표현인가 하는 점에 따라 구분된다. 지면 관계로 함께 조명해보지 못한 좋은 작품도 있었음을 밝힌다. <지구문학>에 실리는 작품의 수준이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여기에는 수필 쓰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기여한 바가 크리라 본다.
옛날의 선인들은 자기 성찰적인 글쓰기를 중시하였으며, 수필적인 방식을 통해 선비 정신을 길렀다. 오늘의 우리 수필가들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얻은 감동과 반성을 구체적 형상으로 제시하여 자기 발전의 초석으로 삼아야겠다. 유경환은 철학을 만나는 삶이 수필을 쓰는 사람의 삶이어야 한다고 했다. 철학은 회의로부터 출발한다. 삶의 바다에 낚시 바늘 같은 물음표를 던지지 않고서 어찌 고도의 세련된 지적 통찰의 수필을 쓰겠는가? 인식과 형상이 조화된 본격수필을 다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