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시장에 발을 들인 르노삼성 SM6는 2016년 한국 중형 세단 시장의 판세를 크게 흔들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르노 탈리스만을 기반으로 한 완전 신형 모델의 우아한 디자인과 풍부한 편의장비를 내세우며 중형 세단 시장을 공략했다. SM6는 수 십 년간 왕좌를 지켜온 쏘나타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SM6와 신형 말리부가 투입되기 이전 중형차 시장은 그야말로 쏘나타 독주체제였다. 쏘나타는 2015년 한국에서만 10만 8천 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연간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연간 판매량 기준 기아차 K5가 58,619대를 기록하며 2위 자리에 올랐으나 쏘나타와의 격차는 약 5만 대였다. 그리고 SM5가 23,866대의 성적을 기록하며 뒤를 이었고, 말리부는 16,382대를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5년 국산 중형 세단 시장은 20만 7300대가량이 판매되었고, 그중 쏘나타가 절반을 상회하는 52.3%의 점유율을 보였다. 여기에 K5가 합세하면 현대차 그룹의 중형 세단 시장 점유율은 무려 80.6%에 달했다.
그러나 대격변을 이룬 2016년은 내용이 많이 달랐다. 말리부의 세대 변경과 완전 신모델, `SM6`의 출현으로 중형 세단 시장은 22만 7,342대를 기록하며 종전보다 2만 대 이상이 증가한 형세를 보였다.
그리고 쏘나타는 신흥 세력의 거센 공세에 잠시 숨을 돌려야 했다. 물론 연간 판매 측면에선 점유율 36.1%로 1위 자리를 지켰으나, SM6와 신형 말리부가 출시 시기 때문에 1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쓰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독주 체제가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더군다나 영업용 판매량을 제외한 자가용 시장에선 SM6가 1위 자리를 빼앗았다.
코드네임 LF로 개발된 7세대 쏘나타는 '본질로의 회귀'를 외치며 점잖아진 외모를 갖췄다. 여기에 성능 향상보다는`최적화`에 신경을 쓰다 수치 상의 성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개선이 크게 없다 보니 쏘나타는 선대 모델 대비 판매량 측면에서 폭발적인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7개의 쏘나타' 전략이나 파격 할인으로 2015년에 내수 시장 1위를 달성하기도 했으나, YF 시절 보여주던 '포스'는 다소 사그라들었다.
물론 이는 상대적으로 SUV를 비롯한 크로스오버 모델들의 득세로 인한 반사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싼타페나 쏘렌토 등과 같은 중형 SUV들이 부각되기 시작하며 중형 세단들이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SM6와 신형 말리부의 시장 투입은 간만에 중형 세단 시장 볼륨 상승을 이뤄냈고, 판세가 굳어져 재미가 없던 시장의 흐름도 바꿔놓았다. 특히 화려한 디자인을 내세우며 시장을 잠식해갔던 SM6 덕에2017년도 제법 흥미진진한 중형 세단 시장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올해 판매량 추이를 들여다보면 SM6와 말리부가 쏘나타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던 2016년과는 상당히 다른 형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가 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라이즈'를 내놓으며 다시금 독주 체제의 재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쏘나타는 부분변경 모델의 신차효과를 통해 판매량을 대폭 증가시켰고 현재까지도 월간 6~7천 대가량의판매량을 기록하며 순항 중에 있다. 아울러 쏘나타 뉴 라이즈 출시 직후부터 여타 모델들과의 격차가 대폭 커지더니, 현재까지도 좀처럼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10일간의 연휴 탓에 영업일수가 크게 줄어들었는데도 쏘나타는 되려 판매량 상승을 이루며 나머지 세 차종의 합산 판매량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쏘나타 7,355대 vs SM6 + K5 + 말리부 6,608대)
또한 르노삼성과 한국 GM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작년부터 꾸준히 앞서오던 기아차 K5에게도 판매량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10월에는 되려 판매량이 역전을 당해 각 기업의 주력 모델들 실적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와 같은 K5와의 판매량 역전 현상으로 보아 할 때, SM6와 말리부의 판매량 저하는 단순히 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건만으로 볼 수 없다.
올 1월부터 10월까지의 중형 세단 누적 판매량은 16만 7,538대로, 작년 동 기간 합산 판매량인 18만 6,507대와 비교하면 1만 9천 대가량이 하락한 셈이다. 또한 SM6의 2월, 신형 말리부의 투입이 4월에 이뤄졌음을 감안하면 중형 세단 판매량은 생각보다 수요 감소가 큰 편이다.
그 와중에 쏘나타는 새로운 택시 모델의 투입과 더불어 영업용 시장에서 독점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고 있어 중형 세단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줄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분전하는 듯 보인다.
SM6는 르노삼성자동차의 메인스트림 모델로 오랫동안 활약했던 SM5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모델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굉장히 치명적이다.
SM5가 '가성비'를 강조한 중저가형 차량으로 포지션 변경을 이룬 뒤의 판매량이 어느 정도 상승하긴 했으나, 대세에는 미미한 영향만을 끼칠 뿐이었다.
국산차 브랜드 중 점유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르노삼성은 '6' 시리즈 듀오의 활약으로 작년 10월 시장 점유율을 두 자릿수까지 끌어올렸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또한 한국 GM도 스파크, 말리부, 트랙스 등의 고른 선전으로 작년 10월, 시장 점유율 13.2%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신형 크루즈의 출격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실적에 여전히 모델 수명주기가 싱싱한 모델들의 수요 감소는 뼈아프게 다가오며 점유율은 절반가량으로 주저앉았다.
결과적으로 중형 세단 시장 볼륨이 줄어들었어도 현대차는 그 반사 현상으로 다른 곳에서 늘어난 수요를 넙죽 잘 받아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력 모델이 무너지는 순간 브랜드의 점유율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여타 업체들은 동일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웃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세그먼트에서 킬러 타이틀을 가진 대형 브랜드의 힘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