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히 12:5~11
제목: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 기독교는 고난의 시간이 저주가 아니라 성도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는 신앙입니다. 오늘의 묵상에서 ‘유다 백성이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사건’의 복음적 교훈을 뒷받침하는 핵심 성경 본문들을 먼저 읽어 보고 성도들이 영적 확신을 갖는 강력한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인내하시고 자비가 많은 분이시지만 죄에 대한 공의와 심판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자녀들인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손에 넘기셨는지 설명하는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 대하36:15.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공동: 돌이킬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시게 하고 말았다) |
15절의 사신들은 선지자들을 의미하는데요. 당시에 활동했던 에스겔, 예레미야, 다니엘이나 하박국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변자로 활동했습니다. 선지자의 히브리어 ‘나비’의 용례는 출4:15~16과 7:1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cf) ‘로에’와 ‘하지’는 선견자로 번역됩니다.
출4:15.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NASB: you will be as God to him) 출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공, 현: 대변자)가 되리니 |
위 구절은 모세가 바로에게 하나님으로 서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데요. 그들 사이에는 중재자 아론이 있었습니다. 아론은 모세가 그에게 한 말을 바로에게 말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약의 경륜 시기에 하나님께서 사신(선지자)과 대변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말씀하셨으나 선지자를 비웃고 욕하며 박대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도전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징계나 심판이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분노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배려를 거부한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공의로운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성도와 자녀들은 징계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도 느끼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 저주가 아니라 교육적 훈련임을 보여주는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 히12: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현대: 진짜 아들)이 아니니라 |
하나님 아버지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징계는 멀고 깊게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결과입니다. 부모의 합당한 훈육을 받고 자라난 자녀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적응을 잘 하고 강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난봉꾼인 도널드 트럼프와 대선 후보 간 경쟁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힐러리는 트럼프의 여성 편력을 약점으로 파고들었지만 트럼프는 힐러리의 남편은 트럼프보다 더 추악하고 많은 성추문이 있다고 반격을 했습니다. 빌 클린턴은 의붓아비에게 분노의 폭력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친 아버지에게 사랑의 징계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 모두의 시기에서 빌 클린턴은 성추문 등 품행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천하의 호색한, 난봉꾼인 트럼프에게 남편의 약점으로 수치를 당한 힐러리는 당일 밤에 남편 클린턴과 심하게 부부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부모의 징계는 자식이 사랑하는 친 자식이기 때문에 행하여지는 것이고 가정 교육상 훈련의 일환입니다. 사생자는 그런 사랑의 훈육이 없기 때문에 망가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의 아버지께 불순종의 대가로 징계를 받고 죄의 문제를 청산하는 것이 더 유익입니다.
● 히브리서 말씀은 육신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를 구분해서 말씀합니다.
| 히12:9.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유익이 되도록 징계) |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징계한다고는 하지만 성정이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여 실수나 감정으로 징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징계합니다. 성화의 원인은 칭의(稱義)인데, 칭의의 결과인 성화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화를 결정적 측면과 점진적 과정의 측면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징계는 단회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가 되었을 때 그 단계에서는 징계가 없을 것입니다. 징계는 교육적 훈련입니다. 교육은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교육을 굵고 짧게 받고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의 효과와 설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현대: 결국) 선을 이루느니라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에는 당연히 사랑의 징계가 포함됩니다.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혼냈을 때 부모의 마음이 불편하여 자식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인간 육신의 부모처럼 연약한 분이 아니시지만 징계 받는 자녀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주시하고 보호하시며 함께 하십니다. 고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임마누엘).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고난 받는 백성들의 곁으로 직접 찾아가시는 분임을 증거합니다. 아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겔 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얼마 동안)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
하나님은 장소에 매이지 않으시며, 바벨론이라는 고난의 현장에서도 우리의 ‘성소’가 되어 주십니다. 이러한 임마누엘의 복음이 온전히 성취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구약의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누리는 자유, 은혜입니다.
| 눅4: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the year)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의 포로 된 신분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포로 시기는 이스라엘에게 죽으라고 준 시련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중에 인생의 포로기 같은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일이 안 풀리고, 관계가 깨어지고, 영적으로 메마른 광야에 서있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포로로 끌려간 그 척박한 바벨론 땅에도 함께 계셨음(임마누엘)을 기억합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에서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정결하게 연단하십니다. 슬퍼 보이는 징계의 결과로 우리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12:11). 이를 믿고 피곤한 손과 약해진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납시다. 아멘!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본문만 읽고 시간이 나면 댓글의 주석을 읽어야지요^^
<호크마 주석: 히브리서>
=====12:5,6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 본문은 '아들들인 너희에게 말한 권면을 완전히 있었느냐?' 라는 의미의 수사학적 의문문이다. 이물음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훈련과 교육의 측면에서 부과된 고난의 바른 개념을완전히 잊어버렸음을 확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비난하고 있다. 다음에 언급되는 인용문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인내해야만 했던 고난이 훈련의 성격을 띤 것임을 진술하고 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본문은 잠 3:11,12의 인용이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행위에 대한 의도를나타내는 바,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고난을 통해서 훈련시키심을 시사한다. '징계하심'에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데이아스'(* )는 꾸짖음, 교정, 징벌과 같은수단을 통해서 교훈하시며 교육하시는 것을 의미한다(신 8:5). 하나님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와 같이 자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뜻에 순종하도록 함으로 목표에 도달하도록 훈련시키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임을 나타내어 '아들됨'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과 사랑을 시사한다(Bruce, Hewitt,Morris). 한편 본문의 '내 아들들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에 무'(* )이나 인용문인 70인역 잠 3:11에는 '휘에'(* , '아들아')로 되어 있어 본문에 인칭대명사 '무'(* , '나의')가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우'가 없는 '휘에'는 잠언 전체에서 교사가 학생을 부를 때 사용된 표현이다(Lane, E.Ahlborn). 저자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70인역에 '무'를 삽입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새 언약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을 강조하고 있다(Bertram, Bornkamm).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 '너희가 참음은'의 헬라어 '휘포메네테'(* )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직설법으로 이해하여 개역성경 본문처럼 해석한다(Hewitt). (2) 혹자는 명령법으로 이해하여
'너희는 징계를 참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Morri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명령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본문은 아버지로서 자녀를 징계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임을 말하는 수사학적표현이다. 아들이 아버지와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은 아버지가 그 아들을 진정한 아들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통해 징계를 하신다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아들로 인정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을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로 하나님의 아들됨의 증거임을 깨달아 기뻐해야 한다.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징계를 받지 않는 경우를 통해서 징계가 아들됨의 증거임을 반증한다. '사생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도이'(* )는 노예나 첩의 아들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로 모든 사생아를 의미한다. 또한 '참 아들이 아니니라'의 헬라어
'우크 휘오이'(* )는 서자(庶子)를 가리킨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는 서자이며 사생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도 될 수가 없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의 징계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과 상속자로서의 특권적 위치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께서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 '영의 아버지'는 '육체의 아버지'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하늘 세계가 복종하는 초월적인 분 즉 하나님을 가리킨다(Kuss, Lane).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키고 헌신을 요구할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소유하신 분이시다. 저자는 최고의 권위를 소유하신 영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틀 대조함으로 자녀들이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당연히 복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살려'의 헬라어 '제소멘'(* )은 생명으로의 초대를 의미하는 것으로(신30:11-20) 종말론적 구원을 즐기는 것과
연결된다(10:38,39, Peterso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지라도 좌절하여 배교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담대히 나아가 복종함으로 온전한 구원을 소유하여야만 한다.
=====12:10
본절은 '호이 멘 가르...호 데'(* ... , '저희는 ...오직 하나님은')라는 단어의 대비를 통해 육신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의 비교를 나타내고 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 '자기의 뜻대로'는 육신의아버지의 징계가 자녀에게 유익을 끼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것으로 징계의 불확실성을 시사한다. 또한 '징계하였거니와'의 헬라어 '에파이듀온'(* )은 미완료 시상으로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가 불완전하여 반복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저희' 곧 육신의 아버지가 행한 징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유익을 끼치는지 조차도 불확실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하였다(9절).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 하나님의 징계는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Bruce).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징계하시는 목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영적인 성숙과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심을 시사한다. '거룩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테토스'(* )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내는 것으로(Morris, Procksch)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완전하여진다(Bruce, Lane).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훈련의 성격을 띤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속성인 거룩함을 공유할 수 있도륵 하신다. 한편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성화를 이루는데는 인내를 통해서 믿음을 보존함으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미래에 있다(Lane,Michel, Hughes, Peterson). 훈련의 성격을 띤 고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실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종말론적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 저자는 '프로스 토 파론'(* , '당시에는')과 '휘스테론'(* , '후에')을 대비 시켜서 하나님의 징계가 그 당시에는 어려움과 슬픔을
어려움과 슬픔을 가져다주지만 궁극적으로 놀라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의의 평강한 열매'는 평강과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의미한다(Lane). '평강과 의'는 종말론적 구원의 선물로서(Michel) 미래에 소유하게 될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흔적이다(Peterson).
좋은 설명입니다. 묵상 본문과 논지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호크마 주석: 역대하>
====6:15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 여기서 '아끼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말'(* )은 '동정하다', '용서하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뜻으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셨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선택된 백성들이 계속해서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는 오랫동안 참으시고, 파괴하고 심판하시기를 인내하셨다는 의미이다(Keil, Zockler). 부지런한 그 사자들을...보내어 - 이러한 표현 형태는 예레미야에서 도 자주 발견된다(렘 26:5; 29:19; 35:14, 15). 한편 여기서 '사자들'이란 '선지자'들을 가리키는데, 당시에 활약했던 에스겔(b.c. 593-570), 예레미야(B.C.627-580), 다니엘(B.C. 605-530), 하박국(B.C. 612-589)등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도 있었을 것이다(Curtis).
====36:16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가 너무 극심하여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상태에 이르렀음을 가리킨다(왕하 24:4).
한편, 여기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부득이하게 내려 갈 수 밖에 없는 경우를 우리는 성경 다른 부분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21:18; 잠6:15; 29:1; 렘 8:15; 145:19).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위한 징계 의미로서의 심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크마 주석: 출애굽기>
=====4:15절
그 입에 말을 주라 - '(내가 네게 제시하는) 메시지를 그에게 전해주라'(Modern Language Bible, convey to him the message)는 뜻이다. 결국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핵심을 전해주면 아론이 그 메시지를 능력있게 백성들과 바로에게 전할 작정이었다.
=====7:1절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 여기서 신( , 엘로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는 바로에 대한 모세의 우월성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비록 땅에서의 바로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하늘에 속한 권세를 소유한 모세는 오히려 그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바로를 가볍게 압도하며 호령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일 배후에는 모세를 강하게 하시고, 모세를 그 어떤 권위보다 탁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내재해 있음은 물론이다(3:14). 한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神)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요 10:35).
대언자 (* , 나비) - '영감에 의해 말하다'란 뜻의 '나바'에서 온 말로'예언자'를 가리킨다(KJV, RSV, prophet). 여기서는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고 그 뜻을 풀어 설명해 주는 '대변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공동번역, 대변자; Living Bible, spokesman). 출애굽은 하나님의 주권적 단독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인간의 협력이 결코 무시되지는 않았다.
네, 최후의 순종은 인간이 해야겠지요.
<호크마 주석: 에스겔>
=====11:16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된 자들에게 직접 '성소' 자체가 되신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구약 시대에서 하나님의 성소가 장막이나(출 25:8, 9;40:1-35) 솔로몬 성전(왕상 6:1-38)과 같은 가시적 건물 모습으로 나타나는 관례에 비춰볼 때 특이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다스리시고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는 처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본 구절이 영적 성소에 대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 포로로 잡힌 자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그들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잠간'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함께하시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바벨론에 영원히 머물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 가나안 땅에 돌아오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고레스 왕 때 바벨론 포로들이 귀환해 학개 선지자의 권면으로 새로운 성전을 건축한 사실에서 성취되었다(스 1:1-11;학 1-3장). 한편 신약적 차원에서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사람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 자신이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 되셨으며(요 2:21),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서도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 되신다(계 21:22).
@장코뱅 오늘 바이블 캔버스(출애굽기25장)을 읽으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징계와 연단이 하나님의 친 자녀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좌절하지 말고 믿음에서 견고히 견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멘!
청교도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의 임재는 성도에게 가장 큰 보화이며,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이 영혼의 참된 안식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심(임마누엘)을 믿습니다. 아멘!
아멘!
마지막 내용을 똑같이 타자치며 제 마음을 담아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정결하게 연단하십니다. 슬퍼 보이는 징계의 결과로 우리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12:11). 이를 믿고 피곤한 손과 약해진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납시다. 아멘!"
아멘 🙏
사생자는 올바로 훈육해주는 아비가 없어서 한참 훈육을 받으며 교정하면서 자라나야 할 시기를 다 놓쳐버려서 올바르고 단단한 어른이 되지 못해 불행이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친부의 사랑의 매, 마땅히 받아야 할 훈육과 같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징계의 나중 결과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하였으니 소망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고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섬겨주시는 장코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댓글과 격려의 내용에 공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