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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장코뱅 추천 3 조회 327 26.03.14 07:36 댓글 2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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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3.14 08:20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26.03.14 16:14

    네, 알겠습니다. 본문만 읽고 시간이 나면 댓글의 주석을 읽어야지요^^

  • 작성자 26.03.14 08:22

    <호크마 주석: 히브리서>

    =====12:5,6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 본문은 '아들들인 너희에게 말한 권면을 완전히 있었느냐?' 라는 의미의 수사학적 의문문이다. 이물음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훈련과 교육의 측면에서 부과된 고난의 바른 개념을완전히 잊어버렸음을 확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비난하고 있다. 다음에 언급되는 인용문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인내해야만 했던 고난이 훈련의 성격을 띤 것임을 진술하고 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본문은 잠 3:11,12의 인용이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행위에 대한 의도를나타내는 바,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고난을 통해서 훈련시키심을 시사한다. '징계하심'에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데이아스'(* )는 꾸짖음, 교정, 징벌과 같은수단을 통해서 교훈하시며 교육하시는 것을 의미한다(신 8:5). 하나님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와 같이 자기 백성을

  • 작성자 26.03.14 08:22

    지극히 사랑하셔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뜻에 순종하도록 함으로 목표에 도달하도록 훈련시키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임을 나타내어 '아들됨'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과 사랑을 시사한다(Bruce, Hewitt,Morris). 한편 본문의 '내 아들들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에 무'(* )이나 인용문인 70인역 잠 3:11에는 '휘에'(* , '아들아')로 되어 있어 본문에 인칭대명사 '무'(* , '나의')가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우'가 없는 '휘에'는 잠언 전체에서 교사가 학생을 부를 때 사용된 표현이다(Lane, E.Ahlborn). 저자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70인역에 '무'를 삽입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새 언약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을 강조하고 있다(Bertram, Bornkamm).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 '너희가 참음은'의 헬라어 '휘포메네테'(* )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직설법으로 이해하여 개역성경 본문처럼 해석한다(Hewitt). (2) 혹자는 명령법으로 이해하여

  • 작성자 26.03.14 08:23

    '너희는 징계를 참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Morri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명령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본문은 아버지로서 자녀를 징계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임을 말하는 수사학적표현이다. 아들이 아버지와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은 아버지가 그 아들을 진정한 아들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통해 징계를 하신다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아들로 인정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을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로 하나님의 아들됨의 증거임을 깨달아 기뻐해야 한다.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징계를 받지 않는 경우를 통해서 징계가 아들됨의 증거임을 반증한다. '사생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도이'(* )는 노예나 첩의 아들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로 모든 사생아를 의미한다. 또한 '참 아들이 아니니라'의 헬라어

  • 작성자 26.03.14 08:23

    '우크 휘오이'(* )는 서자(庶子)를 가리킨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는 서자이며 사생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도 될 수가 없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의 징계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과 상속자로서의 특권적 위치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께서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 '영의 아버지'는 '육체의 아버지'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하늘 세계가 복종하는 초월적인 분 즉 하나님을 가리킨다(Kuss, Lane).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키고 헌신을 요구할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소유하신 분이시다. 저자는 최고의 권위를 소유하신 영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틀 대조함으로 자녀들이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당연히 복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살려'의 헬라어 '제소멘'(* )은 생명으로의 초대를 의미하는 것으로(신30:11-20) 종말론적 구원을 즐기는 것과

  • 작성자 26.03.14 08:24

    연결된다(10:38,39, Peterso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지라도 좌절하여 배교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담대히 나아가 복종함으로 온전한 구원을 소유하여야만 한다.

    =====12:10
    본절은 '호이 멘 가르...호 데'(* ... , '저희는 ...오직 하나님은')라는 단어의 대비를 통해 육신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의 비교를 나타내고 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 '자기의 뜻대로'는 육신의아버지의 징계가 자녀에게 유익을 끼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것으로 징계의 불확실성을 시사한다. 또한 '징계하였거니와'의 헬라어 '에파이듀온'(* )은 미완료 시상으로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가 불완전하여 반복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저희' 곧 육신의 아버지가 행한 징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유익을 끼치는지 조차도 불확실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하였다(9절).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 하나님의 징계는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Bruce).

  • 작성자 26.03.14 08:24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징계하시는 목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영적인 성숙과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심을 시사한다. '거룩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테토스'(* )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내는 것으로(Morris, Procksch)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완전하여진다(Bruce, Lane).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훈련의 성격을 띤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속성인 거룩함을 공유할 수 있도륵 하신다. 한편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성화를 이루는데는 인내를 통해서 믿음을 보존함으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미래에 있다(Lane,Michel, Hughes, Peterson). 훈련의 성격을 띤 고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실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종말론적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 저자는 '프로스 토 파론'(* , '당시에는')과 '휘스테론'(* , '후에')을 대비 시켜서 하나님의 징계가 그 당시에는 어려움과 슬픔을

  • 작성자 26.03.14 08:24

    어려움과 슬픔을 가져다주지만 궁극적으로 놀라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의의 평강한 열매'는 평강과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의미한다(Lane). '평강과 의'는 종말론적 구원의 선물로서(Michel) 미래에 소유하게 될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흔적이다(Peterson).

  • 26.03.14 14:33

    좋은 설명입니다. 묵상 본문과 논지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 작성자 26.03.14 08:33

    <호크마 주석: 역대하>

    ====6:15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 여기서 '아끼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말'(* )은 '동정하다', '용서하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뜻으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셨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선택된 백성들이 계속해서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는 오랫동안 참으시고, 파괴하고 심판하시기를 인내하셨다는 의미이다(Keil, Zockler). 부지런한 그 사자들을...보내어 - 이러한 표현 형태는 예레미야에서 도 자주 발견된다(렘 26:5; 29:19; 35:14, 15). 한편 여기서 '사자들'이란 '선지자'들을 가리키는데, 당시에 활약했던 에스겔(b.c. 593-570), 예레미야(B.C.627-580), 다니엘(B.C. 605-530), 하박국(B.C. 612-589)등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도 있었을 것이다(Curtis).

    ====36:16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가 너무 극심하여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상태에 이르렀음을 가리킨다(왕하 24:4).

  • 작성자 26.03.14 08:34

    한편, 여기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부득이하게 내려 갈 수 밖에 없는 경우를 우리는 성경 다른 부분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21:18; 잠6:15; 29:1; 렘 8:15; 145:19).

  • 26.03.14 15:09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위한 징계 의미로서의 심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 작성자 26.03.14 08:36

    <호크마 주석: 출애굽기>

    =====4:15절
    그 입에 말을 주라 - '(내가 네게 제시하는) 메시지를 그에게 전해주라'(Modern Language Bible, convey to him the message)는 뜻이다. 결국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핵심을 전해주면 아론이 그 메시지를 능력있게 백성들과 바로에게 전할 작정이었다.

    =====7:1절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 여기서 신( , 엘로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는 바로에 대한 모세의 우월성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비록 땅에서의 바로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하늘에 속한 권세를 소유한 모세는 오히려 그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바로를 가볍게 압도하며 호령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일 배후에는 모세를 강하게 하시고, 모세를 그 어떤 권위보다 탁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내재해 있음은 물론이다(3:14). 한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神)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요 10:35).
    대언자 (* , 나비) - '영감에 의해 말하다'란 뜻의 '나바'에서 온 말로'예언자'를 가리킨다(KJV, RSV, prophet). 여기서는 모세에게

  • 작성자 26.03.14 08:36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고 그 뜻을 풀어 설명해 주는 '대변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공동번역, 대변자; Living Bible, spokesman). 출애굽은 하나님의 주권적 단독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인간의 협력이 결코 무시되지는 않았다.

  • 26.03.14 14:52

    네, 최후의 순종은 인간이 해야겠지요.

  • 작성자 26.03.14 08:38

    <호크마 주석: 에스겔>

    =====11:16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된 자들에게 직접 '성소' 자체가 되신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구약 시대에서 하나님의 성소가 장막이나(출 25:8, 9;40:1-35) 솔로몬 성전(왕상 6:1-38)과 같은 가시적 건물 모습으로 나타나는 관례에 비춰볼 때 특이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다스리시고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는 처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본 구절이 영적 성소에 대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 포로로 잡힌 자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그들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잠간'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함께하시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바벨론에 영원히 머물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 가나안 땅에 돌아오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고레스 왕 때 바벨론 포로들이 귀환해 학개 선지자의 권면으로 새로운 성전을 건축한 사실에서 성취되었다(스 1:1-11;학 1-3장). 한편 신약적 차원에서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사람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 자신이

  • 작성자 26.03.14 08:38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 되셨으며(요 2:21),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서도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 되신다(계 21:22).

  • 26.03.14 15:15

    @장코뱅 오늘 바이블 캔버스(출애굽기25장)을 읽으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 26.03.14 14:36

    징계와 연단이 하나님의 친 자녀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좌절하지 말고 믿음에서 견고히 견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26.03.14 16:13

    아멘!

  • 26.03.14 15:17

    청교도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의 임재는 성도에게 가장 큰 보화이며,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이 영혼의 참된 안식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심(임마누엘)을 믿습니다. 아멘!

  • 26.03.14 16:15

    아멘!

  • 26.03.14 16:20

    마지막 내용을 똑같이 타자치며 제 마음을 담아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정결하게 연단하십니다. 슬퍼 보이는 징계의 결과로 우리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12:11). 이를 믿고 피곤한 손과 약해진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납시다. 아멘!"

  • 작성자 26.03.14 21:45

    아멘 🙏

  • 26.03.14 21:22

    사생자는 올바로 훈육해주는 아비가 없어서 한참 훈육을 받으며 교정하면서 자라나야 할 시기를 다 놓쳐버려서 올바르고 단단한 어른이 되지 못해 불행이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친부의 사랑의 매, 마땅히 받아야 할 훈육과 같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징계의 나중 결과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하였으니 소망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고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섬겨주시는 장코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26.03.14 22:09

    좋은 댓글과 격려의 내용에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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