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과는 달리 대사들은 돈벌이에 종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러한 과정을 이미 통과하였다.
그들의 삶은 봉사에 있을 뿐으로, 오로지 남을 도와 주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가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대가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사람들에게 옷이나 먹을 것 등을 주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대사들은 봉사자다.
대사들은 분명히 세상보다 위에 있어 세상에 주고 있으나,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있다.
대사들은 봉사를 한다고 해서 특별히 사람들을 찾아나서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대사들을 찾아가는 것 같지도 않다.
대사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난다.
그들은 상념의 방사를 통하여 도와주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한두 사람이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집단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전 세계에 완전한 상념을 방사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상태를 치유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대사들은 말하기를,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생필품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받고서야 비로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대사들이 설교한거나 종교를 조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속에 있는 대사를 알아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람들은 대사들의 도움을 받으면 즉시 상태가 좋아진다.
그런데도 대사들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도운 것이지 자신(대사)들이 도와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도와준다 해도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대사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올바르게 고쳤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즉, 도움을 받은 사람이 속에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것이 나타났을 뿐이다.
따라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꼭 외부에 호소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종(servant)은 그만한 보수를 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봉사하는 행위를 돈벌이에 사용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봉사하는 행위는 더 높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즉 종이 아니고 대사 수준으로 올라와야 한다. 물론 대사는 가장 큰 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전부 봉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봉사만이 그들의 삶이며, 하고 있는 일의 전부이다.
** 생명은 그저 끊임없이 진행하는 것이지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익은 생명의 진행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일 뿐이다. 생명은 생명이 진행하면서 생명을 어느 정도 표현했는가, 생명의 질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생명을 표현한다는 것도 자기의 제한된 생각이 투영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
단순히 필요하다고 해서, 편리하다고 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타협해버리면 그 힘에 어긋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