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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교회 표어가 목양 목표가 ‘우리는 교회입니다’입니다. ‘우리는 교회다’라는 이 주제에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담겨진 많은 의미를 제가 교회의 조직표를 나눠드릴 때 여러분에게 다 드렸는데 제가 교육자들에게 물었더니 모르더라고요. 아마 여러분도 조직표 안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잘 모르실 것 같아서 제가 한번 여러분이 따라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크게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교회다
우리는 전도하는 교회다
우리는 함께하는 교회다
우리는 성장하는 교회다
우리는 부흥하는 교회다
우리는 하나인 교회다
우리는 예배하는 교회다.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는 교회입니다’라는 표현을 정하고 한 해 동안 기도하고 달려가 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는 정말 교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주간이었습니다. 아마 16년 동안 어쩌면 가장 많이 교회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제 고민을 좀 이렇게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유튜브를 분석한 자료들이 유튜브 어플에 이렇게 있어요. 깔고 이렇게 봐야 보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보면 잘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자료 중에 시청자 연령층이 이렇게 다 분석이 되어 있습니다. 34세 이하가 4.5%, 35세에서 44세가 9.5%, 45세에서 54세가 25.4%, 55세에서 64세가 30.8%, 65세 이상이 29.7%로 돼 있어요.
여러분이 느끼셨던 것처럼 34세 이하가 너무 적어서 저는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일주일 내내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여러분 34세면 젊은이도 아니긴 해요. 이미 직장을 다니고 세상을 알 대로 아는 친구들이라서 젊다고 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어요. 어떻든 34세 이하의 친구들이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 대해서 크게 호감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홍보가 덜 됐거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어떻든 그 이상의 연령층보다는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다.
우연치 않은 계기에 이웃한 교회에게 이 자료를 이렇게 나눴어요. 그랬더니 그 교회도 이제 유튜브를 운영하니까 그 교회도 이제 분석한 자료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 교회는 오히려 34% 이하가 거의 34세 이하가 거의 제로였어요. 제로 그리고 저보고는 4.5%면 엄청 많은 거니까 오히려 성도들을 칭찬해 주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어떻든 거기에 관한 대화를 마무리 지었어요.
그렇게 보면 그 교회보다는 숫자가 많지만 어떻든 모든 연령층에 비해서 현저히 숫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당연히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우리가 우리 교회가 변해야 어떻게 또 하지만 저도 교회니까 목사가 변해야 34세 이하의 세대들이 교회로 시선을 돌릴까 어떻게 하면 34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예수님이 전부라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구주라고 고백한 일들이 나의 목양지에서 일어날까 하는 이런 고민으로 정말 한 주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가족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잠깐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이 시간의 시간에 제가 물었어요. 우리 교회가 가장 먼저 했으면 하는 일 사역 하여튼 그것이 뭐냐라고 물었어요.그랬더니 딸이 주저하지 않고 예배라고 답했어요.
예배 그때까지 제 고민은 이런 거였어요. 젊은 친구들을 많이 교회에 유입되게 하기 위해서 1층에 젊은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멋진 카페를 생각했어요. 저희가 위치도 좋잖아요. 그리고 1층이 좀 도로에서 한 1.5mm 높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창을 내면 정말 뷰도 기가 막힐 만큼 좋은 공간이에요. 저는 그래서 그것을 털고 밖으로 창을 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기 드나들면서 커피를 마실 공간을 만들어 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플러스 거기에다가 저희가 새벽 기도실도 공간이 넓잖아요. 오래된 곳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곳을 다시 멀티플렉스 실리로 완전히 바꿔서 젊은 세대들이 마음껏 예배하고 오락하고 교제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예배라는 답을 듣고 나니까 부끄러운 거예요. 물론 딸 우리 딸 혼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떻든 젊은 친구들이 진짜 교회에 원하는 건 예배구나 이 생각이 듭니다. 좋은 시설 큰 규모의 교회보다 정말 젊은 친구들이 찾는 건 예배구나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의 짧은 대화에서 교회의 가치라는 것을 가치는 예배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가치가 예배라고 제가 얼마나 자주 이곳에서 말씀을 선포했고 여러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히려 봉사자의 삶을 살아요.
여러분 봉사자의 삶이 우선일까요? 예배자의 삶이 우선일까요?
당연히 예배자의 삶이 우선인 거예요. 우리는 기도를 응답받으려고 했지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고 날마다 새벽 제단을 쌓는 건 하나님께 응답을 위한 것이었지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더 잘 예배하기 위해서 새벽 제단을 쌓은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도였지만 하나님이 왜 나를 구속하셨는지,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망각하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냐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케 하기 위해서 우리를 죄로부터 부르셨다는 거예요.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예배자의 삶이 가장 우선이어야 되는 거예요.
봉사가 가치 없다는 게 아니에요. 기도가 가치 없다는 게 아니에요. 예배가 가장 큰 중심이자 목표라는 뜻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봉사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예배 때 졸아요. 물론 봉사해 주는 건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예배자의 삶을 놓친다는 건 불행한 일이에요.
어떤 사람은 기도를 참 열심히 해요. 그러니까 예배를 통해 말씀에는 은혜 받지를 못해요.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도 은혜 받아야지만 진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드려야 할 곳은 이 예배 시간인 거잖아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역사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제가 본격적으로 말씀을 전하기 전에 부탁드릴 게 있어요. 우리 교회 성도들은 상대적으로 상대적으로 어떻든 저의 목양이나 목회적인 방향을 잘 따라오는 교회예요.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빈말은 잘 못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서 빈말은 못해요. 이게 좀 문제긴 해요. 빈말을 해야 목회를 잘하는데 제가 빈말을 잘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정말 잘 따라오는 교회예요. 그래도 좀 더 부탁드리고 싶어요. 예배의 순서가 바뀌어도 여러분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더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 일이 있어도 여러분 좀 참아주십시오. 악보가 뜨지 않고 앞으로 여기에 가사만 적혀 있어도 때로는 조명이 다 커지지 않고 무대에만 조명이 커져도 때로는 내가 모르는 찬양이 나와도 제가 권면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예배자가 되십시오.
만약에 여러분의 기호에 맞춰진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예배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내 기호에 맞춰진 예배를 좋은 예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나에게 맞춰진 예배가 진짜 그게 하나님께 드린 예배일까요?
사람들이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해야 되고, 사람들이 내 기호를 상하지 않게 해야 되고, 사람들이 내 성향을 건드리지 않아야 돼 그게 좋은 예배일까요?
진짜 좋은 예배는 나에게 맞춰진 게 아니라 하나님께 맞춰진 예배가 진짜 좋은 예배인 거예요. 예배는 나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를 예배하는 예배에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를 예배하는 예배에서는 나의 성격을 경험하고 나의 못남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경험할 수 없어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향해 질 때 예배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에서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오잖아요. 기도 중에 내 병이 나았으면 기도 중에 내 마음이 다시 평안해졌으면, 기도 중에 예배 중에 우리 삶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예배 중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으면 그러니까 이런 기대감으로 예배의 자리에 와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 예배 안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충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목표가 된 예배는 결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목표가 된 예배에 대해서만 예배에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서 수단도 중요합니다. 수단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수단을 바꾸고 싶다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목적인 거예요. 예배의 수단의 목적이 가려지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예배의 목적 대신 하나님을 향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예배가 온전해지고 우리 예배가 합당해지고 우리 예배가 은혜롭게 되길 원한다면 예배가 예배의 목적이신 하나님을 향해야 돼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한두 가지 질문을 하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여러분은 예배자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어떤 행사에 참여하듯이 예배에 참석하려고 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배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예배자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 예배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 예배자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사람, 예배자는 하나님이 전부인 사람이 예배자인 거예요. 우리가 이런 마음과 이런 자세로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가 전부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거예요.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아직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까지 우리가 하나님이 전부가 아닌 거죠. 아직까지 예배가 전부 이거 아닌 거예요.
우리는 자꾸 예배의 어떤 불편함들을 주변에서 찾으려고 그래 원인을 우리 교회는 이래서 우리 교회는 저래서 내 옆에 사람 때문에 누구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이렇게 핑계 대고 예배에 은혜 없음을 잘 무마하고 이렇게 넘어가요.
여러분 이게 과연 옳은 태도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자리에조차도 하나님을 갈망하지 못해요. 예배는 하나님이 전부인 자리예요. 하나님이 목표가 되고 하나님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의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되는 자리가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길을 가요. 그래서 자기 방식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불편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기가 편한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는 어떤 시간이냐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맞추는 시간인 거예요. 나의 생각과 나의 방식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 맞추는 시간인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하나님께 강요해요. 하나님 나는 이런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 나는 이런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서 예배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방식이나 인간의 생각이 그 제사 안에 그 예배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거예요. 하나님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철저하게 방어막을 쳐놓으신 거죠 규칙과 규례를 만드셔서 예법을 만드셔서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다 막아놓으신 거예요.
예배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맞춰져야 하는 시간인 겁니다. 하나님께 나를 맞추는 시간이고, 하나님께 우리 가정을 맞추는 시간이고, 하나님께 우리 교회를 맞추는 시간이 예배인 거예요.
광야에서 예배하는 것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그 당시의 문화로 봤을 때 보편적이었을까요?
아니면 최상위였을까요? 잠깐 우리가 광야로 돌아가 보면 이스라엘 성전이 성전에서 예배 제사하던 때로 이렇게 돌아가 보면 성막은 그 당시에 보편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수준이었을까요? 아니면 최상위였을까요? 성전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었을까요? 아니면 최상위였을까요?
누구나 그 어떤 사람도 부인하지 않고 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막을 보면 성전을 보면 그 당시의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최상을 드리는 것이요. 보편을 드리는 게 아니었고 최상을 드리는 거였어요. 중간은 더더욱 아니었고 최하은 더더욱 아니었어요.
최상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 땅에 여러분과 제가 드린 예배는 어떻게 준비해도 천상의 예배와는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어디에서 드리든 간에 어떤 장소에서 드리든 간에 어떤 공간에서 드리든 간에 최고의 예배가 되고 최상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의 예배는 최상의 예배일까요? 지금 우리의 예배는 최고의 예배일까요?
그러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답을 하면 철거와 최상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명령하십니다. 무엇을 명령하냐 하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인생이 어떤 인생일까요? 하나님께 집중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인생은 예배에 집중한 인생이 위대한 인생인 거예요.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자녀에게 집중하는 부모일까요? 아니요. 하나님께 집중하는 부모예요. 좋은 목회자는 어떤 목회자일까요? 성도에게 집중하는 목회자일까요? 하나님께 집중하는 목회자일까요?
당연히 하나님께 집중하는 목회자입니다. 천사들이 전국 백성들에게 하는 명령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일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금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의 임무를 하다라는 거예요. 너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라라고 명령하는 거예요. 이 땅이 천국은 아니지만 이 명령은 천국 백성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어지고 명령되어지고 내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성도는 예배의 명령을 하달받은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예배하라라고 이 명령을 하달받은 사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이 예배의 이 명령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결혼하는 일이 되게 어려워요. 이제 젊은이들을 보면 어떤 좋은 남편을 만나고 싶고 좋은 아내를 이렇게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그 만남이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불신 만남이 많이 이루어지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남편과 아내를 만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보여주는 거죠. 함을 향한 나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남자 청년들이 새벽 제단을 쌓고 그 하나님의 중심이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매들은 당연히 그 형제를 좋아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최상으로 보여요. 최상으로 좋은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가 자신을 잘 다듬어야 되는 거죠.
예배자로 여러분 예배를 정말 진정으로 온 삶을 다해 드리는 사람이 좋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겠어요 예배를 삶을 다해 드리는 사람이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겠어요?
또 제 이야기하는 걸 그냥 용서하고 또 들어주십시오.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이제 아내한테 물었어요. 왜 저랑 결혼했냐고 저는 정말 이렇게 찢어지게라는 단어가 잘 맞는 집에 장남이에요. 장남 지금은 그때보다 낫지만 어쨌든 결혼할 30년 전쯤에는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잘 맞는 집이었어요. 저희는 결혼 자금이나 이것도 없어서 빌렸다가 다시 이제 부모에게 갚고 이렇게 어떤 저의 결혼 생활이 30년 전에 시작이 됐습니다.
이 대화를 저는 저희는 좀 자주 하는 편이라 가족들이 이렇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남편이 전도사인지 그건 크게 상관없었고 어쨌든 그동안 거쳐갔던 많은 교육자들과는 달랐던 거예요. 달랐다는 거예요. 사역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을 보고 전도사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얼마나 당황스럽겠어요. 사모를 꿈꿔본 적도 없는데 그런데 그래서 허락을 했다는 거예요.
제 자랑이라고 아무도 아멘도 안 하고 좋아하지도 않으시고 이러시면 안 돼요. 남의 자랑도 감수할 수 있어야지
청년들이 어떤 엄마 아빠를 원할까요? 예배하는 엄마 아빠예요. 할렐루야 예배 때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고 그 받은 은혜를 막 집에서 나누려고 하는 엄마 이게 진짜 우리 젊은이들이 원하는 엄마라고요. 아버지가 세상에 사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근데 그런 아버지가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해요. 그걸 보면서 자녀들이 감동을 받지 않겠어요? 우리의 다음 세대가 감동을 받지 않겠냐고요.
여러분 우리가 34세 이하가 5% 이하인 이 퍼센트를 극복하려면 우리 교회의 퍼센트는 저 교회는 또 훨씬 더 많죠. 34세 이하가. 그런데 어떤 유튜브 시청자층에 대한 거 분석이에요. 되려면 여러분과 제가 예배자가 돼야 돼요. 그래야 젊은이들이 여기 왔다가 다시 이 예배를 갈망하고 이 자리에 오는 거예요. 할렐루야
야 저 교회에 갔더니 살 것 같아. 저 교회에 가니 갔더니 살 것 같아. 난 예배가 뭔지 잘은 모르지만 저 교회에 갔더니 살 것 같아.
여러분 이런 일들이 일어나려면 여러분과 제가 예배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다면 예배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거룩한 신부로 이 땅의 삶을 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 잠깐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예배자는 거룩한 신부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 여겨주는 것은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여기서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그랬어요. 거룩한 삶이 신부의 자격이고 성도의 자격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격을 갖춥니까? 우리 아이들 이렇게 원서 이렇게 쓰는 거 보면 청년들 정말 많은 자격을 갖춰야 어떤 직장에 들어가요? 여러분 우리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그런 자격을 한번 갖춰 보셨나요? 하나님 예배자의 자격이 더 엄격할까요? 세상에 좋은 회사의 자격이 더 엄격할까요?
당연히 예배자의 삶이 훨씬 엄격하죠.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신부로 부르셨어요. 세마포 옷을 입은 그러니까 옳은 행실로 그 삶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배할 때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요. 내가 하나님을 만나서 믿거나 아니면 옆 사람이 만난 하나님을 보고 믿는 거예요. 저분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나님을 만났구나 저건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는구나라고 우리 젊은 세대들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고, 믿음이 경고하고 든든하지 않아요.
그러나 교회에 있는 어른들 때문에 천국이 있고 믿음의 세계가 있고 영적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가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올 한 해 예배하라라고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거예요.
너희는 예배자가 되어라.
조만간 여러분 천국 가실 분들도 있을 텐데, 하나님 만나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면 막 즐겁고 좋을 텐데, 겨우 구원해 주신 나를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못 죽을 수 있을까요?
그냥 의아해서 설명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거룩하지 않은 삶 때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순결하지 않으면 정결하지 않으면 예배의 명령이 귀에 들리지 않아요.
여러분 순결해야 하나님의 명령이 귀에 들려요. 왜 이 땅에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못할까요? 거룩한 신부로의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인 거죠.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아야 여호와의 음성이 우리 귀에 들려요. 그래야 우리 영원히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목장 교회가 거룩한 신부로 살아 하나님의 명령이 뒤에 들리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삶으로 예배하는 것은 길을 막고 예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신을 벗어라 순결하라 명령합니다. 2025년 목장 교회 가 예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 예배자가 되어서 주를 기쁘게 예배하는 날이 이 재단에서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명령이 우리의 귀에 들려서 예배자로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이곳으로 올 거예요.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있다고 확신하게 될 거예요. 아직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 보고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한다고 깨닫게 될 거예요. 예배는 그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자로 살아 집게 영광 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예배자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