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1
장흥위씨도문회 족보편찬준비위원회 2차회의 자료3...
2) 대종회
- 대전종친회의 뿌리공원 사례 : 2008년 8월 26일 장흥위씨 유래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처음에는 전면에 '장흥위씨' 후면에는 '長興 '성위'氏'라고 표기하고 설치했다. 작고하신 위기량 前 대전종친회장님이 고민 끝에 현재와 같이 전면에는 '長興 '성위'氏'로 후면에 '장흥위씨'로 변경을 지시해서 2008년 9월 28일 다시 변경 설치했었다.
- 2016년 5월 23일 성씨 표기 통일원칙 : 대종회 산하 전국 각 지회를 통해 사전에 서면 여론조사를 실시했었다. 이를 바탕으로 내린 발표사항은 '성 위'자, '삐침을 뗀 위'자, '나라 魏'자 모두 장흥위씨를 뜻하는 글자라 하였다. 세 글자는 모든 종원들이 인명에서 표기,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단, 자판이 없다.(호적 등록, 아래 한글)"고 하면서 불편이 뒤따라 장래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자판에 있는 '나라 魏'자로 표기해나가자 함을 권고하고 이에 따른 사항을 자녀들에게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사례는 실제 읍·면·동사무소의 가족관계등록부 호적 등록 과정을 확인하지도 않고, 자판이 없어 '성 위'자로 표기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종원들에게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관북종친회 주장에 대한 견해 : 1950년 6.25사변으로 인해 함흥 쪽에서 월남한 종원들로 구성되어 재경종친회와 대종회 발족시 기여했었다. 특히 성씨 표기에서 '성 위'자가 아닌 '나라 魏'자 표기를 강력히 주장해왔으나, 관북종친회에서는 정확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관북 족보를 살펴보면 1698년 기사보(己巳譜 미간행) 이후 1767년 정해보(丁亥譜), 1824년 갑신보(甲申譜), 1875년 을해보(乙亥譜), 1915년 을묘보(乙卯譜), 1940년 경진보(庚辰譜), 1981년 신유보(辛酉譜, 6.25 월남한 종원 중심) 등 6번을 편찬하였다. 1999년 기묘보는 남북합보이다.
이중, 중요한 근거는 모든 관북족보 제목은 '나라 魏'가 아닌 주로 '삐침을 뗀 위'자로 표기하였고, 일부 '성 위'자로 표기하였으며, 1824년 갑신보(甲申譜) 내용 중에는 편찬집행부 도유사 이하 임원의 인명에서 모두 '삐침을 뗀 위'자로 표기했다. 이밖에 용산면 상금리 뒤 남은동 아래 야산에 위치한 성균생원공(自恭) 배 의인 수원백씨의 비는 통훈대부 前 사간원정언 종겸(鍾謙)이 삼가 기록하고, 1919년 4월 24일 북파 21대 종손 도환, 남파 18대손 봉환 삼가 세웠다. 또 참여 종원 28명의 인명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전서에는 「成均生員 '성 위'公諱自恭配 宜人水原白氏之碑」라고 새겼다.
특히 6.25사변 때 월남한 종원들의 연령은 주로 20~30대였다. 전쟁이 끝나고 1952~1953년 서울에 정착하면서 호적을 새롭게 만들어 등록 시 동사무소 공무원이 수기로 인명을 '성 위'자 또는 '삐침을 뗀 위'자로 표기하지 않고 '나라 魏'자로 표기하였음이 추정된다. 위에서 기술한 사례를 보면 관북종친회에서 주장하는 '나라 魏'자로 성씨를 표기하자는 주장은 타당치 않다고 사료된다.
- 호산(신복) 간사의 아래 한글 프로그램에서 구현 방안 : 1999년 기묘대동보를 인쇄했던 “낭주인쇄사”에 전화하여 족보를 인쇄할 때 '성 위'자를 어떻게 인쇄했는지 문의하였다. 글자를 만드는 고가의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없는 글자들을 새로 만들고 이것을 활자로 제작하여 인쇄를 했다고 한다. “한글과 컴퓨터” 회사에 문의하니 아래 한글 프로그램에서 구현되는 각종 한자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고, 만들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아래 한글 프로그램에서 구현되지 않는 '성 위'자 같은 한자를 우리가 회사에 제공한다면 아래 한글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화 받은 직원이 회사에 건의를 해 볼 수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용자가 윈도우에서 글자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다고 알려주어서, 성씨 표기 관련 설문조사 할 때 나왔던 한자를 컴퓨터에서 쓸 수 있게 글자를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글자의 크기 조절은 되지만, 여러 글꼴로 변환이 되지 않으므로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한다.
6. 문제점
1) 가족관계등록부에서 호적 등록시 관계 공무원들의 인식 결여 및 종원들의 '성 위'자 표기에 대한 지식 부족
2) 아래 한글 프로그램에서
'성 위'자가 구현되지 않음
3) 종원들의 성씨 표기에 대한 불편함과 무관심이 팽배
7. 향후 추진 과제
장흥위씨의 '성 위'자로 표기 단일화는 가장 기초적인 일이면서 추진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고 사료된다. '성 위' 자로 표기되기 위해서는 가정법원에 소송을 제기(민원 신청)하여 판결을 받아 당위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어느 컴퓨터에서나 '성 위'자가 구현될 수 있도록 방안을 찾는 문중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끝-
장흥위씨도문회 족보편찬준비위원회 홍보 위현동
대전광역시 뿌리공원의 장흥위씨유래비...
1759년 장흥에서 발간된 남쪽 최초의 장흥위씨 족보...기묘초보
1824년 함흥에서 발간된 갑신족보...
1824년 갑신족보의 임원록...
1981년 발간된 관북(함흥) 신유족보...
(삐침을 뗀 성 위자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