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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 유적 탐방 및 화산.태백산 등정개요
○ 일 시 : 09. 8. 4 ~ 8.8 (4박5일)
○ 장 소 : 시안의 화산 및 태백산
○ 여행사 : TNC투어
중국 서안 유적 및 화산·태백산 등정기
09년 8월 4일부터 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서안의 화산. 태백산을 등산하고 서안의 진시황 병마총 등 중국의 역사 문화 현장을 탐방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중국 여행은 5번째다. 첫 번째는 1999년 백두산 등산을 목표로 북경, 연길, 백두산. 청도 등을 여행했으며, 두 번째는 2003년 실크로드 탐방, 가련산, 화염산, 명사산, 천산산맥 등을 트래킹 했으며 우루무치, 돈황, 가욕관, 트루판의 유적지를 탐방했다.
세 번째는 2004년에 천자산 등산을 목적으로 장가계, 중경 등을 여행했으며, 네 번째는 2005년에 장춘시 조양구의 초청으로 장춘. 길림을 방문한바 있다.
<화산의 케이블카>
대부분 시청산악회 주관으로 여행했으나 이번의 경우 일정이 여의치 않아 트래킹 전문 여행사인 티엔씨 여행사의 여행상품을 선택하여 평소 가보고 싶은 서안으로 신청을 하였다. 다행히 목포의 사립 중고교 선생님 과 가족 10명 단체 트레킹 팀에 나혼자 참여하여 그런대로 여행의 즐거움을 누렸다. 여행경비는 팁등 모든 경비를 포함하여 89만원 들었으며 나는 혼자이기 때문에 싱글룸을 신청 1박당 15달러 총 60달러를 추가 부담하였다.
8월 4일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꾸린 짐을 다시 살펴보고 조금 이른 시간인 6시 20분에 목동역을 출발 김포공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다. 8시에 같이 출발하는 목포 덕인중고 선생님들과 수인사를 하고 탑승절차를 밟아 10시 5분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3시간여 비행 후에 서안 함양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각 12시(서울시각 13시)다.
<시안 번화가의 만두전문집 덕발장>
참고로 우리 일행은 11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여행사의 직원은 공항에서 수속만 밟아주고 서안에서 현지 여행사와 랑데부하여 여행하여 에피소드 한가지 소개하겠다. 중국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한면은 영어로 되어있고 또다른 한면은 중국어로 표기되었다. 대부분 영어로 표시된 질문에 답했지만 현지 숙박장소를 기재하는 질문에 여행사 일정표에 있는 한글로 적어 입국신고가 지연되기도 했다. 여행사 직원이 동행하지 않으면 입국신고서 작성 요령을 미리 터득하고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공항 1층 중국식당에서 간단하게 중국식 식사 후 중국 5대 명악의 으뜸이며 무협지 화산파의 근거지인 화산으로 출발했다. 버스로 두 시간여 가는 동안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위수평원에 옥수수 밭의 지평선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삼국지의 삼국시대 최대의 격전지인 위수평야는 사방이 500킬로에 가운데로 위수가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아는듯 모르는듯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시안 뒷골목 시장통>
서안은 전에 장안으로 불리워 졌으며 약 3천년간 중국 정통 왕조의 도읍지로 당시에 140만 인구를 가진 세계 최대의 도시로 오랫동안 흥망성쇠를 겪어왔다. 확인된 왕릉만도 130여개가 넘으며 일대에 수많은 유적이 있고 현재 발굴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참고로 세계 역사상 4대 고도로 서안(장안), 로마, 아테네, 카이로를 든다.
서안은 면적으로는 서울의 16배인 1만 평방킬로미터. 인구는 920만이고 섬서성의 성도이며 기온은 여름에는 38도 이상의 무더위 550밀리의 연간 강우량 등 사막성 기후이며, 중국 대륙의 한 중앙에 있다. 실크로드의 시발점으로 당 현종시절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서남공정으로 서역을 정벌하여 실크로드를 개척하였고 이방인으로는 중국 최초의 군 통수권자까리 올랐지만 말년에는 토사구팽으로 이방인의 설움을 면치 못하였다.
16시에 화산 입구에 도착하여 셔틀 버스로 갈아타고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산길 운행 20분만에 곤도라 승강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곤도라 1대에 6명이 승차하여 15분 올라가니 해발 1694미터의 화산 북붕에 도착하였다.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등산길을 조심스럽게 3시간여 트래킹 하여 서봉 아래 연화산장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 부부 관리인이 모든 것을 서빙하기 때문에 서비스가 엉망이지만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장에서 이정도면 평지의 호텔 이상이다 위안을 삼고 하룻밤을 지낼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애주가인 선생님들이 5명정도 있어 산행중 쉬면서 한잔. 식사하면서 한잔. 그들과 함께 여행의 낭만, 산행의 즐거움을 토로하면서 일배 일배 하니 천상천하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으랴...
<화산의 주봉 남봉>
여행 2일째인 8월 5일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서 큰 것을 보려 하는데 화장지가 없구나. 1층 2층 다 찾아 봐도 뒤처리 할 신문지조차 없어 난감해 하고 있는데 궁 즉 통이라 메모지를 물에 적셔 뒤처리를 하니 화장지 이상으로 부드럽게 해결. 식사 전 산장위로 산책하고 있는데 천하제일동굴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가보니 조그마한 동굴에 문을 닫아 자물쇠로 잠궈 놓고 천하제일동굴에 복이 나가지 말라는 열쇠를 채워 걸어놓으면 대대손손 복을 받는다나. 하여튼 중국인들의 해학과 뻥은 알아줘야 하지.
6시에 아침을 먹고 2038미터의 연화봉(서봉), 2100미터의 조양봉(동봉), 2160미터의 낙안봉(남봉)을 차례 차례로 나의 등산화 발굽아래 눞이고 중봉을 거쳐 곤도라 타는 북봉까지 5시간 동안 사진도 찍고 장엄한 자연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잔도 체험도 하고 정상주도 마시고. 안개끼고 흐린날씨기 때문에 멀리 멀리는 볼 수 없었지만 사진 찍기는 별로지만 아쉰대로 조망하는대는 지장이 없었다.
<화산에서의 잔도 체험>
조양봉 아래 암벽에 잔도를 설치하고 자일에 의지하여 체험 하도록 하는데 요금은 20위엔(4000원정도) 하여튼 중국사람들의 상술은 알아줘야 하지. 우리도 북한산 인수봉에 자일 체험을 하게 하고 1만원씩 돈을 받으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정부에서나 환경단체에서 허용 해줄는지...
화산은 거대한 바위가 통째로 하나의 산, 그리고 봉우리가 형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풍화작용에 의하여 갈라진 틈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고, 자연의 신비스러움에 경탄할 수 밖에... 장엄하고 웅장한 절경은 중국 5대 명악중 으뜸이라는 말이 허구가 아님을 느낀다. 참고로 5대 명악은 화산, 항산, 숭산, 형산, 태산을 일컬으며 기회가 닿으면 5대 명악 모두를 정복하고 싶다.
등산로는 돌계단으로 대부분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 계단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에 의한 등산로를 건설하였다. 15억 인구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니 어쩔수 없었겠지만.
곤돌라 입구에서 산장까지 군데 군데 가게가 있고 쉼터가 있는데 그 곳의 물품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운반하며 어떤사람은 100킬로 이상의 물건을 지고 5킬로의 거리를 운반한다고 한다. 곳곳의 괴암 괴석과 이상한 나무에는 신령이 깃들어져 있다 해서 복나가지 말라는 자물쇠가 빨간 줄에 엄청나게 매달려 있다.
참고로 화산의 입장료는 120위엔(24000원), 왕복 곤돌라요금 150위엔정도.
<화산 어온천>
14시경에 하산을 완료하고 30분 정도 이동 화산어온천에서 늦은 점심식사후 1시간정도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달랬다. 온천장은 수십만평의 대지에 수만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으며 남 녀 모두 수영복을 입고 입장이 가능한 노천탕으로 30여개의 크고 작은 이벤트탕과 수영장, 음식점, 주점, 안마점 등이 함께 있다. 노천탕에 들어서자 마자 많은 여직원들이 타월과 음료 등을 서비스 하고 있어 황제 대접 받는 기분이다. 어쨌든 30개 이상의 탕을 골고루 체험하고 싶어 한군데 1~2분씩 잠깐 들러보고 닥터피쉬 목욕탕에 갔다. 닥터피쉬 목욕탕은 별도 28위엔(5600원)을 추가 부담하기 때문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 혼자 목욕탕에 있으니 수많은 물고기들이 나의 온몸의 못쓰는 각질을 쪼는데 처음에는 간지럽고 약간 따가운 느낌이었으나 몇분 지나고 나니 아주 기분이 상쾌하다. 양귀비는 독탕에서 한 두명의 시녀들의 시중으로 목욕을 하지만 나도 독탕에서 수천마리의 물고기로부터 목욕시중을 받으니 양귀비 목욕에 비하리... 목욕료는 천차만별인데 우리는 1인당 150위엔(3만원)
<태백산 국립공원>
16시에 화산 어온천을 출발하여 서안 서쪽에 있는 태백산 입구로 3시간 이동하였다. 중국은 전국이 공사중으로 주요도시마다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고 거대도시마다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며 거대도시간 고속철도 공사가 진행중이라 한다. 곳곳에 도로 확장공사. 보수공사로 체증이 있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차안에서도 일배 일배 하면서 여행하니 지루함을 모르겠다. 저녁 8시에 태백산도가촌 호텔에 도착하여 중국 4대 명주중 하나인 서봉주와 섬서성 명주인 태백주, 대한민국 국민주인 소주를 반주로 저녁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호텔앞 슈퍼에서 1캔 4위엔(800원)의 청도 맥주를 마지막으로 이틀째 일정을 마쳤다.
<태백산 칠여봉 입구>
셋 째날인 8월 6일 6시에 기상하여 식사하고 7시에 등산시점인 칠녀봉으로 2시간정도 이동하였다. 아름다운 절경 사이로 길이 나 있었으며, 곳곳의 아름다운 폭포가 있고 삼국시대 제갈량이 만든 군사 이동로인 잔도도 보인다. 2천년이 지나도록 잔도가 유지된 것은 태백산이 희귀 약초의 보고로서 약초꾼들이 약초를 채취하기 위하여 계속 보수하였기 때문이란다. 올라 갈 때 아름다운 폭포 아래 잠깐 내려 사진도 찍고 현지 안내원의 양해하에 진귀한 나무의 열매도 따서 먹었다. 참고로 태백산에서는 동식물의 채취가 엄격히 규제된다고 한다. 내려올때는 이태백이 술먹던 계곡에서 계곡에 물담그고 소주한잔 쫙.
9시에 해발 2290미터의 칠녀봉 입구에서 해발 2730미터의 하반사까지 3시간 30분에 걸쳐 산행을 했다. 입구에서 가이드가 고산 적응을 위하여 얼마나 강조하는지 긴장을 했지만 별 무리없이 해발 2730미터의 하반사까지 7봉우리를 넘고 넘어 산행했지만 설악산 공룡능선의 아기자기한 산행에는 비할바가 아닌것 같다.
<태백산 상반사>
하반사 식당에서 소맥을 반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해발 3150미터의 상반사 까지 2인승 곤도라로 이동하였다. 다시 해발 3280미터의 상반사 배선대까지 약 한시간정도 트래킹하였으나 3767미터의 정상까지는 군부대의 통제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상은 아니지만 배선대에서 아쉬운 정상주를 마시고 하산. 하산은 곤돌라와 버스로 이동.
참고로 우리나라도 태백산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지명과 성씨가 중국에도 있다고 한다. 물론 중국의 것이 원조라고 한다. 한국인이 한반도로 이주하게 되는 경로로 여러학자들의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 시베리아쪽. 바이칼 주변의 몽고 쪽. 중국쪽에서 한반도로 유입되어 오늘날 한민족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단군조선의 선조가 중국의 태백산 기슭에 오랫동안 지배계층으로 살다가 한반도로 이주했을 것이라는 설명. 태백산의 토템사상, 풍습, 지명 등이 한국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약 4시간에 걸쳐 서안으로 이동 한국식당에서 삼겹살에 술한잔으로 저녁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오니 10시가넘었다. 밤에 호텔주변을 산책하면서 깔끔한 안마집이 잇어 손짓 발짓으로 흥정하여 90분에 80위엔으로 발맛사지 겸 전신 마사지를 받으니 온몸이 상쾌하다.
참고로 중국여행시 비자가 있어야 하며 비자에는 개인 비자와 단체 비자로 나뉜다. 단체비자는 한국에서 따라가는 여행사 직원 또는 단체의 리더가 책임지고 간수하면서 출입국시와 호텔 체크인시 제시하게 되어 있다. 우리 일행의 리더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가끔 이탈된 행동을 하는데 서안의 당동호텔에서 단체비자를 어디에 두었는지 헤매고 있다. 내가 차분하고 냉정하게 각자의 소지품을 점검하시오 하니까 일행중 여자분의 소지품에서 찾을 수 있어 불행중 다행이었다.
여행 나흘째인 8월 7일은 서안의 역사 유적을 탐방하기 위하여 먼저 찾은 곳은 서안 중앙 박물관이다.
<서안 중앙박물관>
중국의 전통건축의 미를 살린 섬서성 역사박물관은 서안 남쪽 교외 대자은사 대안탑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건축면적 5만 6천㎡의 넓은 부지에 개관된 섬서성 역사 박물관은 고전과 현대의 건축예술을 한데 어울려놓은 건축물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박물관이다.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주, 진, 한, 수, 시대의 역사유물들을 중심으로 11만여 건에 이르는 진품 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당대 능묘에서 출토된 40 여 폭의 채색벽화는 중국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방문객들에게 백미로 꼽히고 있다.
7000년의 역사를 시대별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만리장성 부분에서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이어진다고 지도에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북한까지도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서안 비림 박물관>
다음으로 찾은 곳은 비림박물관으로 비석이 숲을 이룬다라는 뜻으로 3000여개의 석비가 있으며 여섯 개의 방과 야외에 1000여개가 전시되어 있다. 글자의 변천, 종교의 포교활동 등이 석비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대 페르시아 문자는 이집트, 인도와 이곳에 각 1개 밖에 남아있지 않은 희귀한 석비도 있다. 중국의 초서체 석비는 일본의 글자의 원조라는 설명도 들었다.
<장안성>
다음으로 찾은 곳은 장안성이다. 장안성은 중국 고성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는 성곽중 하나로 전체 길이가 13.7킬로, 높이가 12미터. 성위 로폭이 12~14미터이고 성벽 밖으로 해자가 둘러 쌓여있어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문은 4개의 큰문이 있고 사이사이 작은 문이 있어 4통8달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듯 하다. 입장료는 40위엔, 위에는 커다란 3층 건물과 곳곳에 망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종 병장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넓은 곳에서는 미니 축구도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광장이 있다. 전체를 도보로 관람할 수 없기 때문에 자전거로는 20위엔, 전기자동차로는 50위엔의 별도 비용이 필요하다. 여행중 느끼는 것이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다.
점심식사후 찾은 곳은 양귀비의 목욕탕이 있는 화청지를 찾았다. 화청지는 2800년전 중국 주나라때 황실이 사용했던 온천으로 시간당 114톤 43도의 온천수가 용출된다. 양귀비가 사용했다는 탕. 당 황제 이세민이 이용했다는 탕과 수행원들이 이용했다는 탕 등 다양한 탕들이 있다. 정원의 연못에서는 저녁에 장한가가 연출되는데 요금은 100달러 내외. 이 곳 화청지의 입장료는 70위엔. 정원의 양귀비 조각상을 보니 좀 뚱뚱한 모습. 아마 당나라 시절에는 날씬한 몸매보다는 조금은 풍만한 몸매가 미인의 기준인가보다.
<화청지>
오늘의 마지막 유적 탐사로 중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곳 두곳이 이곳 병마용과 북경의 만리장성이란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진 병사와 말을 뜻하며 진시황 사후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총 8000 여개중 천개정도 발굴되었으며 세계 8대 불가사의중 하나란다. 요금은 90 위엔. 매표소에서 병마용 입구까지 약 1킬로 구간을 전기차로 이동하는데 별도 5위엔 추가. 당시 병마용 1개를 제작하는데 3사람이 3개월 걸렸다고 하니 8000개를 제작하려면 천문학적인 돈과 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8000개가 모두 형상이 다르다고 한다. 유적지 답사가 산행보다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덥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여 나머지 전시실은 대충 대충 주마간산격으로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1킬로를 걸어가면서 아이쇼핑을 즐겼다. 일행중 한명이 병마용 조각품을 사기 위해 기념품 가게에 들리니 한 개 80위엔 두게 150위엔이란다. 흥정 끝에 반값인 75위엔에 사려하니 일행중 다른 한분이 그것도 비싸다고 말려서 그냥 나오려 하니까 50위엔에 사라고 한다. 도대체 중국의 가격 흥정은 어디까지 하여야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는 여러번의 중국여행에서 느낀 것은 차라리 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되어 이번 여행에서도 기념품을 전혀 사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고, 체험하는데만 최소한의 경비를 지출했다.
<병마용갱>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태후도 사랑했다던 서안의 명물 코스 만두를 먹기 위해 덕발장으로 갔다. 100년 전통에 140개 이상의 만두를 수공으로 만들며 우리가 먹은 코스요리는 약 90위엔 정도 20여종의 만두가 나온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마친후 발맛사지를 받았다. 전신마사지를 추가하려면 15달러를 추가 부담하라 해서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얼마나 세게 주무르는지 아파서 혼났다. 어쨌든 의미있는 4박 5일간의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호텔에 들어와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는 아쉬워 호텔 앞의 중국인 먹자 골목을 1시간정도 산책하면서 중국 서민들의 생활상을 간접 체험했다.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고 무질서해보이지만 나름대로 그들만의 질서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들의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은 무한한 중국의 발전을 예상케 한다.
8월 8일 여행 마지막 날은 호텔에서 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6시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면서 어제 저녁에 갔던 먹자골목도 가보고 호텔 반경 1킬로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중국인의 생활상을 관찰했다. 먼저 어제의 지저분한 거리는 밤새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이른 현재의 시간에도 청소원들이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시내버스는 학생과 출근자로 붐비고 있으며 과거 몇 년전에는 안내양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또한 우리나라 버스 요금체계와 같이 카드 결재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벤치마킹한 것 같다. 거리에 직원 채용 공고가 많이 붙어 있는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풍토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채용공고를 보니 단순노무직은 일당 50위엔, 월 1000위엔 내외. 전문직은 월 2000위엔 이상인것 같다. 과거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적어보이고 차는 많아 보이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전기 자전거가 많이 보인다. 전기자전거는 밧데리로 운행되는데 전혀 공해가 없으며 폐달을 밟으면 밧데리가 충전된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전기자전거를 도입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으로 24시간 영업하는 마사지 가게가 있어 90위엔에 서안에서의 마지막 마사지를 받고 종업원에게 팁으로 10위엔을 주니 아주 흐뭇해 한다.
<위수평야>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국제적인 에티켓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 식당에서의 에티켓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에 가면 가이드의 당부에 의하여 에티켓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중국이나 동남아등 우리보다 못하는 지역을 여행하며는 제멋대로인것 같다. 식당에서 공공연하게 소주를 내놓고 마시는 것은 조금은 지나친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지역의 술도 마셔보는 것이 예의이자 보람이 아닐른지. 또 하나는 자기의 생수병에 중국의 쟈스민 차 등 식전에 나오는 무료 차를 전부 따라서 붓고 또다시 차를 달라고 하는 것도 지나친 행동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은 호텔에서의 에티켓이다. 여러 가지 있겠지만 호텔 숙박후 1불은 국제 매너 아닌가. 왜 선진국 호텔에서는 1불을 놓고 가지만 중국이나 동남아 호텔에서는 놓지 않는가? 일본인들은 좋은 매너로 후에 오는 일본인에게 대접받게 하는데 왜 우리는 자기도취에 빠져 자기만을 알고 후에 오는 한국인을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마사지를 받고 10위엔(2000원)의 팁을 받는 중국인 종업원의 흐뭇한 표정을 보니 나엮시 즐거움이 배가 됨을 느끼면서 앞으로의 여행은 그 나라를 미리 알고 그 나라의 에티켓에 맡게 행동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면서 이번 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