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보좌관 좀 바꿔주세요" 떨리는 제보자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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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0 09:00:00수정 : 2021-07-08 15:26:33게재 : 2021-07-10 09:00:00
부산일보DB 자료사진.
제보가 늘 정의로운 건 아니다. 국회에선 특히 그렇다.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거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거짓 제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정의로운 제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제보가 늘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내용이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어도 실체를 끝내 못 밝히기도 한다. 제보자에 대한 배신이요, 사회적 손실이다. ‘정의로운’ 제보를 접하고 ‘해결’도 하려면 상당한 운과 실력이 필요하다. 나는 운이 나쁜 건가, 실력이 부족한 건가. 어쩌면 둘 다 일지도. 그날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제보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수화기 너머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사무실은 아니었다. 말은 빨랐지만 첫 마디는 명확했다. 우리 대학에 부정입학한 사람이 있어요! 허리가 뻣뻣해졌다. 한창 사회 유력인사 자녀의 대학원 부정입학 의혹이 이슈이던 때였다.
제보자의 얘기는 놀라웠다. 대학원생의 부정입학 사실을 덮기 위해 대학이 그 학생의 입학서류를 없앴다는 것이다. 부정입학 자체도 놀라운데, 대학이 나서 관련 증거까지 없애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유명대학에서 말이다. 제보내용은 솔깃했지만 덥석, 무는 건 위험하다. 정의로운 제보인가.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제보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건 제보자의 신뢰다. 제보자가 소문으로 들은 내용을 전해주어선 안 된다. 본인이 직접 보거나 들은 내용이어야 한다.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일까? 신원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교직원이에요”
짧게 답했다. 말허리를 잡고 좀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20년 경력의 교직원이며 우연히 동료 직원과 얘기하던 중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서로 보고 들을 것을 짜 맞추었다고 했다. 전체 그림을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워 여러 번 자기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퍼즐을 맞췄다고 했다.
제보자를 믿을 만한가. 이때 수화기 너머에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주기적으로 뚝, 뚝 떨어지는 소리였다. 오호, 공중전화라니. 누가 요즘 공중전화를 사용하나. 사무실 전화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번거롭게 동전을 써서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연락하는 이유는 뻔하다. 제보는 하되 신원은 감추기 위해서다. 믿어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물었다. 부정입학 근거가 뭐에요?
“서류가 달라요”
지원자가 입학서류를 제출하면 대학본부는 그것을 스캔해서 파일형태로 교내 서버에 저장하고, 서류는 인편으로 각 단과대학으로 보낸다. 단과대학은 이것을 복사해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하고 원본은 캐비닛에 보관한다. 따라서 서버에 저장된 입학서류와 캐비닛에 보관된 입학서류는 서로 다를 수 없다. 제보자는 두 서류가 다르다고 했다.
캐비닛에 보관된 입학서류에는 칼로 오려서 풀로 붙인 증명서가 추가돼 있다고 했다. 공익관련 연구센터에서 발급한 경력증명서. 도대체 누가 이걸 몰래 갖다 붙인 걸까. 입학서류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사람이고 그게 가능한 사람이라면 몇 명의 교수와 교직원 정도다. 제보자가 스스로 교직원임을 밝혔으므로 범인은, 교수일 가능성이 좀더 높다. 대학입학공정관리위원회에 신고했나요?
“아뇨, 그 사람들이 서류를 없앴어요”
세상에. 교수와 행정직원이 모의해서 서류를 없앴다고 했다. 처음에는 입학서류가 조작된 것을 알고 교수들도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내뱉은, 잘못하면 우리 다 죽는다, 이 한 마디에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증거자료를 없애야 나도 살고, 대학도 살고, 대학명예도 살 수 있다는 데 범죄 합의가 이뤄졌다. 설마, 유명대학이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를 리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얼마 전 세계대학평가 2위인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부정입학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일보DB 자료사진.
증거 없애기 작전은 대범했다. 우선 캐비닛에 보관된 입학서류를 없앴다. 서버에 저장된 입학서류와 비교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학생 서류만 없으면 의심받을 수 있어 해당 학기 입학서류를 모두 없애버렸다. 일이 점점 커졌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며칠 뒤 다시 캐비닛을 열어 몇 년 치 입학서류를 없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특정 단과대학 입학서류만 없으면 ‘여전히’ 의심받을 수 있다. 결국 다른 단과대학 입학서류도 함께 없앴다. 단 한 명의 부정입학을 덮기 위해 백여 명의 멀쩡한 입학서류를 없애버린 초유의 사건이었다. 머리가 아득했다. 제보가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을 흔들만한 일이었다. 도대체, 부정입학한 학생은 누구에요?
“여권 고위층 자녀에요”
팔등의 혈관이 곤두섰다. 제보자에게 만나자고 했다.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직접 만나 하나하나 짚어봐야 했다. 제보자는 거부했다. 대신 이메일로 내용을 정리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사이 교육부를 통해 해당 대학에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은 막무가내였다. 자료제출 할 의무가 없다고 버텼다. 자료제출 법정기한 10일을 넘겼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메모를 남겨도 회신하지 않았다. 교육부가 자료제출 독촉을 할 수 있지만, 정권 눈치를 보는 교육부가 나설 리가 있나.
열흘 뒤 이메일이 왔다. 부정입학 사실을 알게 된 경위, 그날 대학원장의 지시사항, 대책회의에 참여한 멤버, 대학에 찾아온 국회의원, 교수가 했던 말, 입학서류 은폐에 가담한 교수와 행정직원의 명단, 연락처까지 상세히 적혀있었다. 제보자는 검찰에도 똑같은 내용을 보내겠다고 했다.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권은 한계가 있다. 강제수사권이 있는 검찰에서 조사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제보자는 이후 연락이 끊겼다.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매일 아침 신문 1면을 펼쳤지만 고위층 자녀 부정입학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증거는 사라지고 입을 맞추기는 쉬워진다. 방법이 없을까. 국회 법제실에 물어봤다. 사립대가 국회의 자료제출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금세 답변이 돌아왔다.
사립대에 대한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교육부를 통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 국회가 ‘직접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할 수도 있지만, 정유라 때처럼 어느 정도 부정행위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야 가능한 일이다. 제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면 뭔가 대단해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출근하면서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평범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이대로 묻히면 안 되는데. 한손에 커피를 든 국회 출입 기자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챙겨 기자에게 향했다. 기자들이 과연 내 말을 어디까지 믿어줄까.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정치기사를 써야 하는 국회 출입 기자로서 취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탐사보도팀을 연결시켜주었다. 마침 해당 대학 출신 기자가 있었다. 취재에 열을 올렸다. 연락이 닿는 교직원도 찾았다. 한 달이 흘렀다. 조용했다. 진전이 없었다. 그 교직원은 계속 머뭇거리기만 할 뿐,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기자가 들은 말이라곤 겨우 몇 마디였다.
“아... 나중에요” 뚝.
바람 부는 어느 날 가느다란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던 그 교직원과의 연락마저 뚝, 끊겨버렸다. 한 줌 기대가 사라졌다. 도대체 뭘까. 교직원은 두렵거나,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발 두렵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두려움은 가라앉을 테니까.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관련 보도가 나왔다. 입학서류 분실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대학 관계자들이 전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교육부의 종합감사 결과를 넘겨받아 1년여간 수사했지만 입학서류가 고의로 없어졌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속이 쓰렸다. 증거는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니. 어쨌거나 그걸로 끝.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대한민국이 흔들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대학은 조금 흔들렸다. 교직원은 자체 징계를 받는다고 했다. 여기에 제보자도 포함될까.
포함되어서 억울한 마음이 마구마구 샘솟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시 연락이라도 될 텐데, 라고 상상해봤다. 나는 나쁜 놈일까. 제보자가 내게 준 이메일을 검찰에도 줬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검찰에 제보내용이 들어갔다면 대대적인 수사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전원 불기소 처분 받은 걸로 봐선 검찰에 제보하지 않은 듯했다. 고발인 조사를 받기 싫어 검찰에 제보하지 않았나. 익명으로 제보해도 되는데도? 속 편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무슨 말인들 못 하랴.
제보자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뭔가 말해줄 것 같던 교직원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더 지나야 할까. 얼마나 더 지나야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사라질까. 그날 떨리는 제보자의 목소리는 아직 내 목덜미를 쥐고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검찰은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제보내용이 허위일까. 검찰 수사가 미흡한 걸까. 어쨌거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보는 사실이 아니다. 그래도, 난, 모르겠다. 오직 제보자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 제발.
이준우 객원기자 kickthehouse@naver.com / 황보승희 국회의원실 보좌관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70815263194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