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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른 말씀에 순종. 1992.02.06. 김준호 선생
그 40여 년 동안 한울타리에서 한솥밥을 먹은 식구들 어머니 같이 늙어 가신 분들은 제가 얼마나 약골인 걸 다 아시지요? 26세 25세 때에는 거의 생명이 끝났습니다. 병은 무서운 병이 걸렸는데 약을 안 먹었기 때문에 완전히 이제는 병사, 핏기가 없고 음식은 못 먹고 바짝 말라가지고 거의 생명이 왔다갔다 그랬지요. 지금도 그래요. 연년이 아파서 누어있고 그런데 제가 참 부끄럽고 감사한건 69세가 되었답니다. 한 살 더 먹으면 70살이요. 이 김준호가, 나는 얼굴을 안보니까 40년 되어 내가 늙는 줄 모른다는 거예요. 내 생각은 아직 28청춘이여. 자기가 자기 얼굴 안 봐버렸으니 항상 소년 아니겠어요? 남이 볼 때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배경을 들으셨지요? 약 안 먹는 울타리니까 약 안 먹으니까 얼마나 사랑했겠어요? 금이야 옥이야. 그러니까 그것도 일종의 파벌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되었든지 이 선생님은 저만은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했습니다. 환자니까, 그래 먹으라고 해서 먹는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도 고기를 먹으면 입에서 누린내가 나서 어떤 십자가인 줄 알고 먹지요. 좋아서 먹은 건 아니었어요. 죽기보다 어려워서 먹었지 좋아서 먹지는 않았어요. 먹으면 육체가 유지를 한다고 허락하시니까 그건 죽기보다 어려우니까 먹었지 안 먹었으면 좋았지요. 그게 좋아서 먹은 것 아닙니다. 선생님이 먹게 하신 건 그게 자비심이지요.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선생님이 깨닫기 전에는 법이 엄했지만 자기가 깨닫고 모든 걸 헐어버린 다음에는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이 없어요. 지도자는 성령 한분뿐이십니다. 누가 우리 회원 가운데 이럽시다. 저럽시다. 할 사람이 없어요. 철없는 소리지. 그건 소경이지. 법을 지키다가 저주를 받고 정죄를 받고 파벌이 되었기 때문에 헐어버렸는데 이제 늦게 사 다 와서 이럽시다. 저럽시다. 그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지요. 철이 없어 하는 소리지요. 이왕이 면 잘못하면 용서해주고 안아주고 같이 눈물 흘리고 그러고 예수 사랑으로 감격할 것뿐이지 찬송할 것뿐입니다. 이제는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이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오. 나는 입으로 말을 할 줄 알지만 믿음이 있는 분은 오집사요. 당신이 나를 찾아왔으면 나를 본받으면 안 되어요. 내 말만 듣고 본은 이 오 집사를 본받으십시오. 그렇게 권하셨어요. 십년이가도 오년이 가도 아무리해도 오 장로님은 말을 안 하시기 때문에 몰라봤지요. 이 선생님은 말을 잘하시니까 믿는 것 같고, 그때 오 집사는 말을 안 하니까 아주 무식해요. 목수일 하시니까 전혀 몰라봤지요.
그런데 이 선생님이 한번 두 번 그 소리 한 게 아닙니다. 때가 있으면 그 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그래 싸니까 아, 대체 선생님의 말은 허언이 아니다. 이 선생님은 재치가 있고 말을 잘해서 존경받고 있지만 실제 원 믿음은 오 장로님이 가지고 계시구나. 그래 나중에는 믿음이 딱 갑디다. 요, 자꾸 나는 믿음이 없고 오 장로님이 믿음이 있소. 그 말 한 번 말했으면 그만 들었어요. 선생님이 겸손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알았어요. 그러나 그 말을 몇 번 되풀이하시기 때문에 그때부터 선생님 말씀은 내가 믿어야겠다. 그렇게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럽니다. 아무리 규모가 없는 공동체라는 것은 웃어른이 계셔야 합니다. 허수아비라도 할아버지 한분이 계시면 할아버지 말씀에 전 식구가 네네 해야 되요. 막둥이라도 몰라가지고 ‘그 거 안 되어요’ 그렇게 하면 그 집안이 불화가 일어나지요. 그러니까 자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어른들 다 가셨지요? 그러면 이 선생님께서 오 장로님을 본받으시오. 하신지가 40여년입니다. 벌써 50년 되어가지요. 오늘날까지 오 장로님이 믿음이 더했으면 더했지 한 50년 47년 전보다 더 못 믿지는 않거든요. 더 확실하지요. 이제 말씀까지 하시니까 그때는 말씀하지 않으셨지요. 그러면 허세비도 좋아요. 오 장로님 허세비도 좋아요. 오 장로님이 웃어른이십니다. 오 장로님이 지붕으로 올라가자면 올라가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복 받으려면 자손들은 예, 예만 있을 뿐입니다. 오 장로님이 지도를 잘못하시면 오 장로님이 지옥가시겠지요. 지도 잘 못하시면 잘 잘못은 그분께 있는 것이고 그 분이 하나님께 빌어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예가 있을 뿐입니다. 공동체는 어른이 있어야해. 질서가 있어야해. 질서가 생명입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고 신교신앙이라고 해도 어른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우리가 순종해야지요. 중구난방으로 성경 많이 안다고 성경보고 이말 저말 해서는 안 되겠어요. 집안이 항상 불화가 있어 항상 불안하고 이번에 제가 이야기 하나 보았습니다.
옛날이야기인데요. 그 임금이 아주 덕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왕이 어쩔 수 없는가 봐요. 부인을 넷째를 두었습니다. 다 정식 부인으로 맞이했지요. 인도 왕통 이야기니까 둘째 부인이 위가 낮은 게 아니에요. 위는 같아요. 부인 넷이 똑같이 왕후입니다. 그 네 분이 다 아들하나씩 낳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더도 안 낳았어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아내가 넷인데도 이상하게 셋째 부인을 마음이 갑니다. 대왕께서 셋째 부인이 정이가요. 그렇게 안 할라 해도, 그런데 왕위를 이어갈 큰 부인이 난 아들이 젤로 총명하고 용기가 있고 왕위를 이어갈 만한 자질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왕은 큰 부인의 아들을 왕위를 계승시켰습니다. 임금이 큰아들이 되어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을 보고 셋째 부인이 욕심이 났습니다. 자기가 난 아들이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큰 부인의 아들을 임금 삼았는가? 유감이에요. 그래서 울며 통곡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 같다고, 왜 내가 난 아들을 임금을 삼지 않고 큰 부인의 아들을 왕을 삼았느냐? 나는 못살겠다고 그 너무 임금의 마음이 약해가지고 많이 마음이 약해가지고 졌습니다. 셋째 부인한테 마음은 쓰리고 아프지만 큰아들 왕위를 폐위시켰습니다. 이년 왕 노릇 했는데, 폐위 시켜버렸어요.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셋째 부인의 아들을 등극을 시켰습니다. 임금이 되게 한 거예요. 그러면 큰일 나지요. 집안이 싸움이 나겠지요. 큰아들은 왕위를 폐위할 때 감사합니다. 왜 둘째부인 아들이 억울해 합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대왕께서 망령이다. 형님이 우리 4형제 가운데 가장 덕이 높으시고 생명을 버릴 만큼 용기가 있으시고 뭣이 손색이 없는데 셋째부인의 엄마의 간사한 마음에 아버지가 녹아났다. 시험이 들었다. 그러니까 형님은 왕위를 내놓지 말라. 아버지 말에 불복하라. 그럼 내가 형님을 도와드리겠다. 형을 막 울며불며 폐위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큰형이 그래요. 동생 말도 고맙네. 우리가 아버지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되겠나? 이 사람아, 아버지가 잘했던 못했던 우리 아버지 일세. 아버지 원이 셋째 동생을 왕을 삼고 싶어 하면 왕이 되었던들 큰아들인들 무슨 상관인가? 우린 순종해야 집안이 평안하네.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 둘째 동생도 의분이 났지만 형님이 그러니 어떻게 해요? 형님 말이 맞소. 집안이 평안 해야지요. 그러고 셋째 동생한테 왕 위를 이어줬어요. 그러고 아버지는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셋째 아들이 왕위를 오르고 보니 이런 참 안되었어요. 이 어머니의 간계 간사스런 말 때문에 마음 좋으신 아버지가 이렇게 마음약하셨구나. 그걸 알아요. 자기가 왕위가 받지를 않아요. 왕위를 보류시켜 놓고 형님이 어디 숨어계시나 비밀히 밤중에 찾아갔습니다.
산중에 형님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 잘못을 내가 대신 용서를 빌러 왔습니다. 이건 어머니의 잘못이고 아버지의 잘못도 아니니 아버지는 평소에 마음이 약하시고 그러셔서 할 수없이 눈물을 머금고 허락하신 것 같으니까 형님이 안심하시고 오셔서 그 왕위를 계속하심시오. 그랬다고요. 형이 이렇게 말해요. 자네는 오핼세. 아버지의 마음이 기쁜 것이 내 마음이 기쁘네. 아버지의 원이 자네를 임금 삼고자 하는데 내가 아버지의 원을 안 들어 드리고 내가 임금이 다시 된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는가? 설령 내가 임금이 되면 나라가 잘되고 태평성사가 되고 자네가 나라를 다스린다면 잘 못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왕통 일세. 아버지 원대로 해야 하네. 자네가 임금이 되게. 형님의 어지신 형님이 그렇게 하신단 말을 듣고 보니 동생이 어찌할 수 없소. 나는 눈물을 머금고 형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득위를 했어요. 임금이 되었어요. 그러나 아버지가 무슨 명령을 했냐하면 죽기 전에 두 큰아들 둘째아들 둘이, 둘째아들이 고발한줄 아니까 내가 죽더라도 십년 안에는 이 땅을 밞아서는 안 된다. 그런 부탁을 했어요. 십년이 다 됐어요. 아버지 죽고 십년이 되어서 동생이 찾아갔어요. 형님 용서하십시오. 형님이 아버지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십년을 이산에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은 끝났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습니다. 형님이 임금이 되셔야지. 어찌 큰아들이 임금이 안 되고 셋째 아들놈이 되어야 합니까? 이것은 이치에 안 맞습니다. 이 동생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부디 형님 오셔서 득위를 하셔야 왕위에 오르셔야 이 집안이 편케 되겠습니다. 내가 어머니도 이해 시켰습니다. 아무 염려 없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할 수없이 내려왔지요. 그래 형님이 아버지 죽은 지 십년 후에 다시 왕위를 계승합니다. 그게 참말로 있던 인도나라의 이야기거든요. 소설도 아닙니다. 인도가 세계적으로 지금 영적 왕국입니다. 영혼이 풍부한 나라에요. 우리 세계에 인도 같은 나라가 있기에 희망이 있지요. 앞으로 인류가 희망이 있어요. 그러니까 누가 뭔 일을 잘해서 잘된 건 아닙니다. 우리가 도움 받는 것은 누가 잘했던지 못했던지 질서가 서야 해요. 그래야 평안해요. 허수아비라도 제일 나이 많이 잡순분이 어른이 돼야 지요.
그 중국에 이런 고사가 있지 않습니까? 칠대 팔대 그러니까 몇 대 할아버지에요. 물론 돌아가시니까 5대 6대 그렇게 안내려가지만 끝이 없이 한 집안에 산 집안이 있었어요. 중국에 그런 가정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증손 고손 죽 한집안에 다 사니까 그런데 말이 없어요. 한사람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건 임금은 왕을 해먹으면 불평이 많거든요. 백성들이,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를 불러왔어요. 당신은 무슨 덕이 있어서 그 자손이 수 백 명인데 어떻게 집안이 조용한가? 그 비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서 붓을 들어 큰 종이에 참을 인(忍)자를 천에 쓰지 않습니까? 할아버지가, 윗사람이 된다는 것은 간장이 녹지요? 그러나 간장 녹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지요? 모두들 참고 말 안 하는 것뿐이지 할 말이 없겠습니까? 아버지가 말해버리면 불화가 일어나 버리잖아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말이 없으세요. 천하 인류가 아무리 큰 죄를 짓고 있어도 말이 없어요. 몰라서 말씀 안 하시겠어요? 참는 것이지요? 우리는 믿음직해요. 오 장로님은 말씀을 안 하세요. 집안에서 별일이 일어나도 전혀 말씀을 안 하세요. 말씀을 못 하시지요? 참 그야말로 웃어른의 덕이 갖추어 계시지요? 어찌되었든지 어른들이 말을 잘하면 될 것 같지요? 아니에요. 웃어른이 경우를 밝히고 말을 잘합시다.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리고 산산조각이 나버려요. 그저 별별 정신고통이 있어도 마음에 서러움이 있어도 말씀을 안 하시므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세요. 스스로 깨달아야지요.
그런 뜻에서 우리에게 두 원장님 다 하늘나라 가시고 안 계시는 마당에 오늘 총회를 열었습니다. 총회를 모이는 목적이 설교를 들으려고 한 게 아닙니다. 백에 한 칸도 그런 것이 아니지요. 그 어른들이 살아계실 때 그 친구들 다 80객이시니까 우리 선생님이 계신 것처럼 왔다 갔다 하시도록 우애를 도모해야 해요. 우애, 그 어른들이 말씀을 해달라고해도 바쁘니 오실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말씀 해주시지요. 그것은 어떠한 의미에서 인사의 말이고 또 말씀을 하시든지 안하시든지 이 선생님의 친구고 또 한 분은 정 원장님의 친구시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 어른들이 자기 친구들의 집이니까 스스럼없이 내 자식같이 왔다 갔다 하시도록 기회를 드리자. 기회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 어른들이 말씀을 잘 하면 어쩌고 못하면 어쩝니까? 이 선생님을 만나본 것 같고 정 원장님을 만나본 것 같고 우애가 좋은 것 이지요. 우애가 또 오 목사님도 어른들이 살아계실 때 친구들입니다. 뭐 말씀 잘 하시는 분오시라고 하시는 것도 아니에요. 옛 우리 어른들의 친구들이시니까 왔다 갔다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오시라고 하시도록 해드리는 겁니다. 그래 말씀해주시라고 하니까 얼마나 반갑잖아요? 다 듣던 말씀이지만 얼마나 감사하고 우리에게는 효심이 요구됩니다. 이제 우리 공동체 자녀 자손들한테는 그저 말없이 순종하고 웃어른들을 존경하고 하고 싶은 말 있어도 딱 참고 순명 순종하는 것이 덕입니다. 우리사이에 누가 똑똑한 분 있겠어요? 말 잘하는 분 우리 식구들 귀는 너무 도가 높아가지고요. 말 잘해가지고는 한사람도 고개 끄떡이지 않아요. 웃어른들이 얼마나 고상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귀가 넘어가지고 사람 말 안 들린다고요. 그분들은 피를 뿌렸기 때문에 피가 마음에 적셔졌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성경말씀 한 구절 제가 보고 싶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9절 10절입니다. 제가 공동번역 읽게 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개역을 공부 못했습니다. 공동번역을 잘 읽어봤습니다. 보실 분은 보지만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가 견책해도 우리가 그를 존경한다면 영적인 아버지께 복종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0절,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 판단대로 우리를 견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며 우리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 일전에 식구들끼리 있을 때 같이 봤지만 같이 안 계실 때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다시 봤습니다. 그럼 저로서는 이 성경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열흘 전에 이 말씀을 봐가다가 우리주변에서는 표어가 거룩입니다. 거룩하게 살자. 거룩하게 살자. 그 말 빼놓으면 모두 벙어리지요. 다른 말 몰라요. 거룩하게 삽시다. 거룩하게 삽시다. 그랬으니까 한 40년을 배웠어도 막연해요. 어떻게 살아야 거룩하게 사는 것인가? 이말 들으면 이 말이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인데, 다 말이 달라요. 그런데 성경 본문에 거룩하게 만드는 길이 있는데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하시는 것이다. 우리 여기 앉은 우리 식구들이지요. 하나님의 아들딸들, 우리를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하시는 것입니다. 구역에는 징계한다고 징계 꾸중한다. 충고한다. 그런 뜻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애기 때도 매를 맞아봤지만 어찌 매를 맞을 때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프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매를 맞으면 종아리도 아프고 몸도 아프지만 마음이 아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애기 때부터 나이가 80, 70, 90 평생을 진행하는데 마음이 아프게 하시는 것은 내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마음을 아프게 하신다. 내 몸이 아플 수도 있어요. 몸도 내 몸이 병이 났든지 아픈 것은 나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아프시게 하신다. 그 뜻이겠지요?
그러면 제가 유 선생님이 여름에 와계실 때 저 윗집에 계실 때 병원에서 70노인이 울며 찾아왔습니다. 유명한 할아버지가 선생님이 동산에 있단 말을 듣고 그때 결핵병원에 그때 제중병원이 결핵 병원 아닙니까? 3대 독자가 숨이 왔다 갔다 해요. 폐병으로, 거기서 식구들한테 들었어요. 유 영모 선생님이 여기 와있는데 아주 유명하신 분이란 말을 듣고 쫒아왔단 말이에요. 막 울어요. 선생님, 선생님 우리 아들 살려주십시오. 3대 독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 살려주십시오. 그 애절한 통곡을 선생님이 듣다가 같이 흑흑 울어요. 도와줄 수가 있어야지요. 폐가 다 녹아나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을 유 선생님인들 어찌 할 길이 없어요. 도와줄 수가 없어요. 3대독자가 죽어 가는데 병원에서도 못 살렸어요. 그 사람 죽었어요. 의사도 못 살리고 유명한 선생님도 도와주지 못하고 그냥 아버지는 선생님을 의지해요. 살려달라고, 피차 아프지요. 마음 아프질 않아요? 참 옆에서 제가 삼자지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딱 하고 딱하고 그런 일이 그 할아버지 하나뿐이요? 집집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3대 독자 아버지만 그렇게 정신고통이 오겠습니까? 누가 자식이 죽을 때 그만큼 아프지 않겠어요? 누군들 또 참 효자라면 자기 부모가 병들어 죽어 가는데 어느 자식인들 맘 아프지 않겠어요? 그게 정상이지요. 그게 고통이지요. 그게 인간고라고요. 그게 견책이지요. 뜻이 있어서 아프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냥 팔자가 험해서 아픈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있어요. 또 아주 사랑하는 여자가 죽어요. 사별하지 않아요? 남편이 죽어요. 왜 과부가 되어요? 그건 하나님이나 그 마음을 알지 누가 알아줍니까? 그 절통하고 가슴이 아픈 게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몸은 살아있지만 마음은 같이 죽어버린 거지요. 사랑하는 남편이 죽을 때 어찌 같이 죽어요. 사나 무슨 희망이 있어요? 항상 서럽지요? 그러니까 아프게 하시는 것은 거룩하게 되라고 하시는 거예요.
거룩하게 되라고 또 우리를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아주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병아리같이 이 못난 것들을 찾아가지고 얼마나 고통 했습니까? 얼마나 울었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살라고 아픔을 주신 거요. 가슴에 아픔을 준다. 그 쪼끔 덜 아프다가도 사업이 망하면 절망이지요. 하루아침에 재산이 나가 봐요. 이번에 이 선생님 사재가 미국 있다고요. 이 선생님 친구가 한국 와서 내가 다시 한국 올 때 가지고 오마. 그분이 신 장로신데요. 나이도 그분이 80이 가까워 오세요. 그분은 아 내가 이 선생을 이제야 이해했소. 미국 가서 사업해 돈 좀 많이 벌고 자식도 다 여우고 참 팔자가 늘어져 행복하셨답니다. 하도 사업이 잘 되어서 하나님, 저 사업을 하면 내가 돈을 더 빨리 벌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저기 그전에 하던 사업체를 팔아가지고 저 사업체를 바꾸려는데 자본이 그것뿐이에요. 그러니까 그전에 사업하던 사업체를 전부 팔았습니다. 한 개도 안 남겼습니다. 한데 저쪽사업체를 살라면 시간이 다툽니다. 내 것이 팔려야 저것을 인수인계 할 텐데 내 것이 안 팔려 그래 밤새도록 잠을 안자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한번만 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저 사업을 하면 제가 성공하겠습니다. 요 사업체를 팔게 해 주세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팔리지 않을 것 같던 사업체가 밤사이에 팔려버렸어요. 그래 어떻게 감사한지 감사해요. 감사해요.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딱 샀어요. 전부 도장 다 찍어주고 돈 다줘버리고 그 이튼 날 가서보니 협잡 군이라. 협잡이란 말도 우리 어머니들은 모르네요. 하도 선하시니까 거짓말 계약 했다고요. 그러니까 속아먹었단 말이에요. 뭐 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이 있더라고 신 장로님을 완전히 속여가지고 전 재산을 쏙 빼앗아 가지고 내빼버렸어요. 그러니까 신 장로님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렸어요. 자식 볼 면목도 없고 며느리 볼 면목도 없고 부인 볼 면목도 없고 탈탈 거지가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거지가 되어서 깨달았다 이거에요. 우리 예수님 멋쟁이 하나님 멋쟁이 내가 그 부자로 지금까지 있으면 내가 예수 잘 믿든 이 현필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이거에요. 이 선생은 가난하고 거지고 그 사람은 예수 잘 못 믿는 줄 알았는데 항상 그분이 잘 믿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해가 안 되더라는 거예요. 이렇게 부자 되고 잘살아야 믿음이 좋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는데 쫄딱 망해가지고 완전히 거지가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생각해 볼수록 돈 없이 살다보니 참 신세가 말이 아니지요. 장로님, 우리 장로님 오셨어요? 하던 예배당에 가보니까 연보를 안 하니까 외면해 버려요. 목사님부터 신 장로 오나마나 우리 예배당이 뭔 상관이 있소? 그렇게 되어버리더라는 거예요. 어떻게나 맘이 아프던지 예배당도 안 가버렸어요. 아아, 내가 거지가 되고 보니 예배당도 필요 없구나. 그러면 가난한 예배당에 가면 기뻐할 것이다. 막 시작하는 가난한 예배당을 갔어요. 그 연보할 돈이 없으니까 방소제해 드리고 안내해 드리고 청소하며 다녔어요. 몇 달 다니다보니까 연보를 안 하니까 새로 시작한 예배당 목사가 싫어해요. 짐 덩어리에요. 할아버지가 와서 소제나 해쌓고 연보도 안하고 눈치를 보니까 새로 시작한 예배당도 무용지물이야. 돈이 없는 장로는 그때 사 아 아버지(끊김)
그런데 안 들어주면 부자에요. 아직도 재산이 있으니까 자기 기도를 들어줬기 때문에 자기가 망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셔서 망할 수 있도록 기도를 유도하시고 망할 수 있는 기도를 들어주셔서 내 영혼이 구원받았다. 아, 이 신 장로가 기뻐서 훌훌 뜁니다. 그런데 예배당에서 나를 다 싫어하지만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거지가 되어서 오늘날 나같이 행복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나는 예수를 만났네. 나는 예수를 만났네. 가난하신 예수를 만났네. 그리고 가난했던 이 선생을 내가 이제야 이해하겠네. 그렇게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제가 아파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사로 한 5분만 하려고 했더니 두 시간을 자꾸 이야기해요. 밥 달라고 해서 밥상을 드렸더니 밥도 안 잡수시고 기뻐서 그냥 이 사람은 빨리빨리 밥 먹고 쉬어야겠는데 그냥 종일 말씀을 들었거든요. 너무 기뻐서 사사건건 된 이야기를 하세요. 결론은 아버지 내 기도를 들어주신 아버지, 내가 기도를 잘했기 때문에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내 기도를 들으신 아버지 그 기도를 들어 줬기 때문에 내가 망했습니다. 망한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첨 봤네. 그렇게 기뻐하세요. 망한 것을 정각(正覺) 바를 정(正)자 바로 깨달았어요. 그런 분도 만나봤단 이야기인데요. 그럼 그렇게 되기까지의 신 장로의 설움, 고통, 절망 그 누가 그 속을 압니까? 죽었지요. 죽어, 오늘 오목사가 그랬지 않아요?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되 역설적이라고, 병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한번 죽도록 하신다. 고통을 통해서 부활을 주신다. 사랑하는 자식한테 꼭 십자가를 주시고 십자가를 진 다음에 부활을 주신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글로 썼다고. 그 책이 곧 나온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자 따라 읽으십시오. 10절입니다.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 판단대로 우리를 견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며 우리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아주 유명한 분의 말 하나가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동시에 고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사랑을 견고하게 만드시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 길은 물론 사랑을 의지하고 가는 거지요. 그렇지만 하늘나라 가는 길은 사랑을 의지하고 가지만 정비례 고통이 정비례해요. 꼭 기차 레일 같아요. 반드시 고통이 동반 한다는 것, 고통이 하늘나라 가는 길이라는 것. 저는 이 말씀 듣고 가슴이 얼마나 참 기쁜지요? 하늘나라 가는 길은 고통의 길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고통의 길 뿐이다. 그 길만이 하늘나라 가지, 고통 없는 곳은 하늘나라가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되고 싶은 사람은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지요. 고통이 없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가 길도 도(道)가 아닌 길을 가는 거지요. 정도(正道)라는 것은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는 거예요. 십자가가 있다는 거. 십자가,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꼭 따라 읽을 필요가 있어요. 찾아보겠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 저는 마가복음 8장 34절은 제가 이 선생님 교훈을 첫 번 받던 여름, 그 양림동 회관인데 거기서 하루 세 번씩 예배 보던 때에요. 낮 12시 예배시간에 몸이 제가 약하지 않아요? 날이 더우니까 잠을 잤지요. 잠을 다 자고 요절을 한번 따라 읽었습니다. 그 요절만 한번 따라 읽고 기억합니다. 그거에요. 34절. 따라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 예수님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와야 한다. 예수님처럼 사랑의 왕이 되고 싶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 그래 예수님처럼 되고 싶거든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아까 예수님을 본받으라. 그랬어요. 하나님을 본받으라. 그랬고 예수님을 본받는 길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이다.
자, 노래하나 불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