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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서 선한 싸움을 하십시오 (딤전1:18-20) 주혜성 목사
지난 주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하고 세속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순종하기 원하지만, 영적인 삶이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활에서도 날마다 무언가를 선택하며 갈등하는 문제가 있지만, 영의 생활에서도 육신의 속한 일과 영의 속한 일로 갈등관계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탄은 육신의 욕구를 강하게 부추기며 영의 선한 마음을 무너뜨리려는 영적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싸움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의 삶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그가 전도한 제자들에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 가도록 권면하는 말씀을 기록하였고, 그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주었습니다.
1.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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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3년 반이나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에 유대의 율법주의 구원론이 들어 와, 바울이 가르친 믿음을 통한 구원론을 희석시키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때(A.D 61-63경) 에베소교회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와 ‘영적 전쟁’에 대한 서신을 썼습니다.
그리고도 바울은 로마 감옥의 1차 연금생활에서 일단 방면된 A.D 63경에 서머나와 그레데등 전도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 남기고 온, 아들 같은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초는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할 때 사탄의 방해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날도 믿음의 도리를 바로 알고 있지 않을 때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 합니다.
말씀이 의심되지 않고 믿어지는 것이 은혜요, 은사입니다.
롬12:3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 말씀같이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지 않았다.’라고 변명하거나 믿음 없음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3)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얼마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십니까? 대화를 하지 않거나 대화를 하여도 건성으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어찌 만나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경우, 진심으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 친구와는 무엇이든지 나누고 함께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진심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경우 사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 옵니다. 물론 자기의 모습,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양의 옷을 입고 우리를 위하는 양 속입니다.
“교회 가려 했는데 오늘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성경 말씀 읽으려니깐 아까 하다 만 일이 생각이 나서 그 일을 먼저하다 보니….”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사탄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잘 만들어 우리에 생각 속에 넣어 줍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삶의 우선 순위에 놓아 두어야 사탄은 머리 굴리며 들어 오고 싶어도 들어 오지 못합니다. 믿음 좋은 그런 사람 넘어뜨리기가 힘드니 그 시간에 금방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갑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성경 말씀은 내 혼,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깨닫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전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큐 두 자리, 혹은 세 자리의 나의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합니까? 아이큐가 세 자리라 하여도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큐가 한 자리 수라 하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심을 믿어 영이 살아난 사람은 성경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고 날마다 그 뜻을 더 깨닫고 싶어합니다.
믿음이 식은 줄도 모르고 ‘내가 집사인데, 장로인데, 목사인데…’하며 마음이 교만해지니 성경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을 굳게 지키라고 합니다.
믿음이 물건이 아닌데 왜 지키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해도 그것이 마냥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깨어 지키지 못할 때 사탄은 믿음을 훔치려 내게 들어 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에게 믿음을 도둑맞은 줄도 모르고 믿음이 여전히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 가 구하면 줄 터인데 도둑맞은 줄을 모르니깐 믿음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굳게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날마다 영적 무장을 하여야 합니다.
2. 옳다고 판단되는 일들을 하십시오 (실천)
파푸아뉴기니의 문성 선교사님과 이민아 선교사님은 그 곳의 미히 부족에게 20여 년간 복음을 전하며 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돼지만 많으면 여자를 얼마든지 사 올 수 있다고 합니다.
부인이 6명인 한 남자가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되니 부인이 6명인 것이 죄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교사님께 와. ‘부인들을 다시 돌려 보내야 되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니 죄를 깨닫고 옳은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미히 부족에게는 ‘죄’라는 단어 조차 없어서 도둑질을 하여도 죄를 짓는다라는 인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 죄’라는, 죄의 단어가 문장으로 만들어졌답니다. 죄를 깨달은 뒤로 그들은 이전 같으면 쉽게 훔치던 물건도 절대 훔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서로 서로 섬기며 사랑을 실천한다고 합니다.
부인 이민아 선교사님이 미히부족 여인들에게, ‘때로는 내 마음 속에 당신들을 향한 미움과 편견이 생기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말하니, ‘만일 선교사님이 예수님이 필요하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한 분’이라고 했답니다.
문명이라고는 전혀 배우지도 보지도 못한 문맹인이지만, 무엇이 옳은 일인 지 배운 뒤로는 잘못된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을 행하여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원더’라는 영화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선천적 희귀병인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 (Treacher Collins Syndrome) 으로 인해 안면장애가 있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어기는 자신의 흉한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항상 헬멧을 쓰고 다닙니다. 어기는 어머니로부터 홈스쿨링을 받다가 하이스쿨을 앞두고 학교에 보내집니다. 엄마는 처음 등교하는 날 ‘제발 다른 아이들이 자기의 아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혼잣말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어기의 모습을 보고 흘깃거리며 보다가 피해 버립니다.
점심을 먹을 시간에 어기는 홀로 앉아 먹다가 못생겼다는 놀림을 받습니다. 아무도 어기와 친구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기와 몸이 닿으면 나쁜 균이 옮길 거라고 말을 퍼뜨립니다.
자신의 아들이 친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엄마는 마음 아파 말합니다.
‘만일 옳은 것과 친절한 것에서 택하여야 한다면 친절한 것을 택하여야 한다.’고, 그리고 이 말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SNS 등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입는 현대인들에게 격려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같은 상황이라면 물론 저도 ‘친절’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속에 숨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의의 길에서 떠나게 하려는 사탄의 궤계를 분별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옳음과 친절’ 중에 ‘친절이 우선이다.’ 라고 이념을 퍼뜨린다면 이것은 바로 휴머니즘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기는 삶인 신본주의 삶보다, 세상에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의 존엄성만을 최고로 여기며 인본주의가 세상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휴머니스트들을 이용하는 사탄의 말입니다.
만일 미히 족속을 전도하는 문선교사님이 미히족속에게 친절하기 위하여 죄를 지어도 좋은 말만 하고 옳은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들이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분별하고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본주의를 배격하는인본주의의 휴머니즘은 이렇게 가만히 들어 와 우리의 신앙에 혼란을 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보다 더 빨리 곳곳에서 퍼져 나가고 교회가 없는 지역이 거의 없지만, 신앙의 본질, 복음을 잊어 버리고 개인의 안일함과 번영만을 추구하는 어둠이 짙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 가고 있습니다.
겔33: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의의 말씀임을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면, 듣고 배운 말씀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행하는 믿음이 적습니다. 세속의 문화는 양보와 타협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의와 불의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가득한 인본주의는 신본주의이념을 독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비난하는 사탄의 말입니다. 그들은 독선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모든 종교가 서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다신교가 훨씬 아름다운 종교생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정말 계신 것을 믿는다면 옳은 것을 택하여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착한 양심을 따라 살아 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만을 믿고 그 옳은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 선한 싸움에 승리자가 되십시오. (승리)
유대인들은 본토를 떠나 유랑하는 삶을 살면서도 대부분 성경의 이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후메내오는 그의 이름이 그리스의 ‘결혼의 신’의 이름 ‘히멘’을 따서 지은 것을 볼 때, 그가 유대인이었겠지만, 이미 헬라 문화에 젖어 든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그 당시 화려한 헬라 문화를 더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란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하는 말이 악성 종양처럼 퍼져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딤후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딤후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후메내오의 말이 교회 안에 악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이 악성 종양처럼 퍼져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도 바울에게 많은 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했지만, 자신의 욕망과 세속의 유행을 따라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결국 선한 싸움에서 탈락되는 자들, 패배자가 되어 구원의 길에서 버림을 받겠다고 합니다.
후메내오가 악성 종양 같은 악의 말을 할 때 에베소 교인들이 ‘아, 저건 하나님이 원치 않는 말이다.’라고 분별할 수 있도록 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사탄은 언제든지 양의 옷을 입고 옴으로 믿음의 눈을 멀게 합니다.
후메내오조차 자신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줄 진정 알았다면 바울에게 해를 입히거나 방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의롭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선한 싸움에서 사탄이 주는 유혹에 넘어진 자들이며,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이 진실인 양 퍼뜨려 다른 영혼까지 생명의 길에서 무너지게 합니다.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래서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이단이 아닌 이상,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을 의심하고 사랑하지 못할 때, 어떻게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앙이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자주 사용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게 하는 도구입니다.
건물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부르신 걸어 다니는 교회 우리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그리고 빌레도는 바울을 괴롭히는 일에 앞장 섰고, 거짓말에 현혹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바울에게서 돌아 선 것입니다.
기껏 복음을 전해 구원의 길에 들어 서게 하였는데 악한 자의 말을 듣고 지옥길로 간다는 것이지요.
딤후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니라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부활은 이미 옛날에 일어났다고 말하며 믿음이 약한 자들을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쉬운성경)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후매네오와 알렉산더 그리고 빌레도는 진리의 말씀을 떠났고 믿음이 약한 자들을 넘어뜨린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은 목표를 잃어버린 자들이라고 바울은 강력하게 말합니다.
‘선한’ (칼로스) 아름다운, 좋은, 유익하다, 도덕적으로 선한, 흠이 없는, 흠잡을 것 없는, 훌륭한, 이란 의미이며, ‘싸움’ (스트라테이아) 군’복무’, ‘사도직; 힘든 일이나 위험한 일의 하나로서, 싸움을 말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진실로 믿지 못할 때 결단하고 행하여도 넘어지는 일이 부지수입니다.
반드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가지 못하도록 궤사한 일을 꾸미는 악한 영과의 싸움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로 불림을 받은 순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리를 위하여 악을 분별하고 물리치는 것은 선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후메내오가 바울을 떠난 것은 선한 싸움에서 악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악을 뿌리는 이유는, 세상에서 이름대로 결혼의 신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한 모든 가정 위에 신이 되어 그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기를 얻고 싶었던 것이겠죠. 오늘 날에도 이렇게 자기가 높아지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에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기기를 응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할 때, 당장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잠언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언27: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혼란을 가져다 주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첫 편지, 에베소서 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 승리할 수 있도록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영적 생활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엡6:11-12
11사탄의 악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12우리의 싸움은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들과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속임에 넘어져서 사탄이 원하는 일을 할 때, 사탄은 우리 마음에 마음대로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을 모신 우리 마음에 마음대로 들어 와서 사탄의 생각, 영적 쓰레기를 채워갑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그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으면 거룩하신 성령님은 날마다 그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우리의 마음의 성전이 더럽혀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 인간처럼 ‘이렇게 하면 안 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이렇게 야단이라도 치시면 좋으련만 성령님은 우리가 결정하고 하는 일들을 컨트럴 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고 참고 인내하실 뿐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갈등이 아닙니다. 직장의 동료와 보스와의 갈등이 아닙니다. 가족과 친족, 친구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갈등과 싸움을 조장하는 연약한 우리의 성품과 거기에 힘을 실어 주는 사탄의 악한 속임수에 더 이상 허수아비처럼 당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영적 전쟁, 선한 싸움에서 패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손해 볼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믿음을 실천하십시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작은 희생이 어두움을 물러 가게 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빛으로 우리의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밝게 빛나게 할 것입니다.
말씀묵상과 더불어 기도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며,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착한 양심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사람에게 친절한 것과 하나님의 옳은 일 중 결정해야 한다면 하나님께 옳은 일을 택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웃 사랑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 순위가 옳은 일을 택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날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아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