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가하마 / 김석수
에도 시대 스님이 이곳 바닷가 풍경을 보고 “여기가 극락정토다.”라고 말한 데서 조도가하마(浄土ケ浜)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일본 동북부 해안가 미야코역에서 버스로 20여 분쯤 걸린다. 모리오카역에서 아침 여섯 시 32분 제이알(JR) 야마다선 기차를 타려고 호텔에서 새벽에 일어나서 짐을 맡기고 역으로 나왔다. 4월 중순이지만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역사 경비원에게 미야코로 가는 기차 타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엉뚱한 곳을 가르키며 가라고 한다. 한참 이곳저곳 헤매다 플랫폼을 찾았다.
기차는 기관차가 딸린 한 칸이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골짜기로 들어간다. 손님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양버들의 연두색 실가지가 실실이 풀어 늘어져 있다. 개울물은 맑고 깨끗하다. 산비탈에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끔 바람에 벚꽃이 만발한 나무가 흔들거린다. 개나리와 동백꽃도 한창이다. 내가 갑자기 봄을 만끽하면서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다. 깊은 산속에 선로를 만들어서 기차를 운행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이 노선은 1892년 철도부설법으로 계획했는데 고도 천 미터가 넘는 산골이라 계획만 세우고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1920년 이 지역 출신 하라 다카시 19대 총리가 야마다선 시공을 결정했다. 인구도 적고 길도 험한 곳에 철도를 놓는다고 야당에서 반대가 심했다. 의회에서 야당 의원이 “이런 곳에 철도를 깔다니 수상은 원숭이라도 태워 줄 작정인가?’라고 총리에게 물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라 다카시는 “철도 규칙을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원숭이는 탈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말이 있다.
아홉 시에 미야코에 도착했다. 역은 기대보다 작았다. 개찰구 왼쪽에 관광 안내소가 있다.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더니 기다리라고 한다. 한참 후에 여자가 와서 영어로 말을 건넸다. 내가 조도가마하 여행하러 왔다고 했더니 버스 시간과 정류장 그리고 관광할 곳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아홉 시 30분 버스를 타고 10여 분쯤 가니 바닷가 산비탈로 들어섰다. 운전 기사에게 유람선을 탈 수 있는 곳에 내려 달라고 했더니 고개만 끄덕인다.
버스에서 창밖으로 푸른 바다와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잘 어울리는 곳을 바라보다 어느새 종점에 이르렀다. 배를 어디서 타느냐고 했더니 이미 지나왔다고 한다. 기사에게 왜 그곳에서 내려 주지 않았냐고 하면서 다시 태워 달라고 하니 차비를 더 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원래 요금은 230엔인데 150엔을 더 내야 한다고 다그쳤다. 역에서 처음 버스에 오를 때 내가 분명히 선착장에 내려 주라고 했다면서 그와 한참 동안 실랑이했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하고 나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서 서로 난감했다. 휴대 전화 앱으로 소통하려고 해도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방문자 센터에서 1,500엔 주고 유람선표를 샀다. 열 시 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우리나라 홍도나 백도에 구경하러 온 것 같다. 바다가 푸르고 깨끗하다. 물에서 고기가 몰려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가 선착장에서 멀어질수록 바다 갈매기가 많이 배를 따라온다. 그들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사람 때문이다. 여자 안내원이 일본말로 열심히 설명한다. 배는 먼바다에 나갔다가 미야코 어판장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다른 관광객을 태웠다. 그들은 대부분 결혼식 하객이다. 열한 시 20분쯤에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선착장에서 조그만 터널을 지나니 해수욕장이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니 언덕에 군데군데 쓰나미 대피소가 있다. 2011년 쓰나미가 몰려와 완전히 부서진 시설을 다시 복구했다. 처참한 현장을 보존한 쓰나미 기념관도 있다. 오랜 세월 태평양의 거친 파도로 침식과 풍화 작용이 일어나서 이런 지형이 생겼다. 고요하고 푸른 바다 가운데 바위가 수석(壽石)처럼 놓여 있다. 바위 위에 소나무는 잘 가꾼 분재 같다.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한동안 자연이 만든 절경을 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감상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겐지 미야자와 기념관 근처 식당에서 950엔 주고 새우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방문자 센터로 다시 돌아오면서 전망대에 올라갔다. 누군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있어서 봤더니 오전에 함께 기차를 타고 왔던 청년이다. 내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며 멋진 배경으로 사진 여러 장을 찍어 주었다. 아내에게 카톡으로 보냈더니 너무 멋있다고 한다. 오후 한 시 15분쯤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버스로 모리오카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