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 김여정 담화 속 “대한민국” 4차례…‘민족→국가관계’ 전환 신호?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한겨레 (hani.co.kr)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 10일과 11일 <조선중앙통신>으로 두 차례 발표한 대미·대남 비난 담화에서 “남조선”이라는 표현 대신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남쪽의 정식 국호를 네 차례나 써 눈길을 끌었다.
김 부부장은 두 담화에서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들” “‘대한민국’의 군부” “‘대한민국’의 군부깡패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북쪽은 남북정상선언이나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은 남북 당국회담 합의문에선 “대한민국” 국호를 명기해왔지만, 대남 비난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쪽이 공식 성명·담화 등 입장 발표 때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지칭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대외관계를 맡은 외무성의 김성일 국장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을 불허하는 담화에서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91년 맺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서로의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로 들어간다는 뜻의 입국이라는 단어 대신 ‘입경’이란 말을 써 왔다. 유엔총회와 올림픽경기 등엔 별도로 참가해 왔지만, 남북 경협을 ‘민족내부거래’로 간주해 관세를 매기지 않고 남북 왕래에도 여권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상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집 1층 접견실 벽에 걸린 ‘두 개의 시계’. 서울은 오전 11시46분, 평양은 오전 11시16분, 30분의 시차가 있다. 북이 광복·해방 70돌인 2015년 8월15일을 기해 표준시를 30분 늦춘 “평양시간”을 선포한 탓이다. 그날 이후 남과 북의 시공간이 분단됐다. 남과 북의 ’시간 분단’은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 뒤 표준시 복원 조처를 취해 993일 만에 해소됐다. 하지만 “평양시간”은 한때의 소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징후다. 사진 청와대 제공
그럼에도 ‘김여정 담화’와 ‘외무성 담화’에 담긴 북한의 남북관계 인식은 돌출 현상은 아니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집권 뒤 줄곧 ‘국가성’을 강조해왔다.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당규약을 개정하면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 과업 수행”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대남혁명 노선 및 통일담론의 쇠락”이라며 “‘사회주의 북한’이라는 국가성을 강조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일국주의 경향의 심화”라고 풀이했다.
북한은 비록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폐지하긴 했지만, 2015년 8월15일 남쪽과 같던 표준시간을 30분 늦추는 “평양시간”을 채택하기도 했다. 8차 당대회 이후 대남 전문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공개 활동도 확인되지 않는다.다만, 북쪽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공식 전환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란 단어에 따옴표를 붙여 직접 인용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공식인정한 것이 아니라 남쪽의 표현을 그대로 끌어왔을 뿐이라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전직 통일부 장관은 “김여정 담화의 ‘대한민국’ 표현은 국가 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북쪽의 속내가 무엇인지 앞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기사 : 김정은의 평양시간과 우리 국가제일주의, 영구 분단을 꿈꾸나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7367.html
▶참고기사 : [단독] 북, 76년 지켜온 ‘남한 혁명통일론’ 사실상 폐기https://hani.com/u/Nzc3OA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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