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합유산 (380) / 스페인
이비사의 생물 다양성과 문화(Ibiza, Biodiversity and Culture; 1999)
이비사는 발레아레스 제도[Balearic Islands]에 위치하며, 바다와 연안 생태계의 상호 작용을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지중해 유역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인 ‘포시도니아(Posidonia oceanica; 해초)’의 빽빽한 군락은 다양한 바다 생물의 서식처이다. 이비사 섬에는 긴 역사를 증명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특히 사 칼레타(Sa Caleta; 주거지)와 푸이그 데스 몰린스(Puig des Molins; 공동묘지)의 고고학 유적은 원사시대[protohistoric age], 특히 페니키아・카르타고 시대에 이 섬이 지중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새화된 어퍼타운(Upper Town) 알타 빌라(Alta Vila)는 르네상스 양식 군사 건축의 탁월한 사례로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 요새의 건축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비사의 어퍼 타운은 초기 페니키아 정착지 시대의 모습, 아랍 및 카탈루냐 시대의 모습,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의 성채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흔적이 도시 구조와 성벽에 이례적으로 잘 보존돼 있는 요새 도시의 훌륭한 사례이다. 이비사의 어퍼 타운은 초기 페니키아 시대의 거주지 유적과 아랍, 카탈루냐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요새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요새 성채의 뛰어난 사례이다. 오랫동안 방어벽을 건설하면서도 초기의 모습이나 거리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함으로써 궁극적인 도시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16세기에 지어진 요새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의 군사 건축, 공학, 미학 등을 이례적으로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이탈리아・스페인 양식은 요새 도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 도시를 건설하고 요새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비사의 해안가에서 이루어지는 생물의 진화는 포시도니아가 바다와 연안 생태계의 상호 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어퍼 타운은 가장 오래된 곳이다. 어퍼 타운은 바다를 향해 있는 곶 위에 서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도시처럼 보인다. 도시의 구조와 외관은 르네상스 시대 군대의 수칙에 따라 16세기에 건설된 이후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성벽과 성채가 그 이전부터 있었던 방어시설과 통합되어 있어서 시대에 따른 요새 구축의 전 과정을 연구할 수 있다. 에비소스(Ebysos; 이집트의 신 ‘베스(Bes)의 도시’라는 뜻)는 기원전 654년에 카르타고 인이 건설한 것이다. 이 도시와 부속 요새의 항구는 2,000년 동안 지중해 항해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의 경제적 기반은 염전에서 채취한 소금, 모직물, 무화과 열매였다. 로마와의 동맹이 끝난 후 이 섬은 서기 902년에 아랍 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내부 정원을 볼 수 있는 창문이 달려 있고 세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주택, 주택들 사이로 난 좁은 도로로 이루어진 메디나(Medina) 식 도시 계획을 비롯해 튼튼한 흙벽의 잔해가 발굴 조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1235년에는 기독교도가 지배하면서 현재 건물의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카탈루냐 양식의 성과 중세 요새 및 고딕 양식의 성당을 건축했다. 1530년부터 1540년까지 펠리페 2세(Philip Ⅱ; Felipe II de Habsburgo)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이의 교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도시 계획을 마련했다. 1584년부터 1585년까지 조반니 바티스타 칼비(Giovanni Battista Calvi), 야코보 팔레아초 프라틴(Jacobo Paleazzo Fratin) 등 이탈리아 출신 건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새 요새가 세워졌다. 푸이그 데스 몰린스의 페니키아・카르타고 시대 공동묘지[로마 제국 말까지 사용됨]는 어퍼 타운의 남서쪽에 있다. 기원전 6세기 초에는 시신을 화장한 뒤에 뼛가루를 자연 동굴에 두었다. 그 이후에 갱도와 묘실이 만들어졌고, 하나의 돌로 만든 석관이 갱도를 통해 지하 무덤에 안치되었다[가족 묘]. 이 공동묘지는 가장 오래 보존되어 온 곳이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무덤과 조각상, 제의 도구들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묘지는 도시 경관 안에 포함되어 있고, 지하 묘실의 습기를 이용해 재배한 올리브나무를 테라스에 심어 놓아 유적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사 칼레타의 페니키아・카르타고 시대 고고학 유적은 염전 부근에 있으며, 기원전 590년경 사람들이 이비사 지역으로 이주한 후 바닷물에 침식되었다. 발굴 작업을 통해 이 지역에서 성벽이 발견되었다. 발굴을 통해 흩어져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건물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선 도로와 삼각형 모양의 광장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평등한 사회 구조와 농업, 야금업, 소금 채취, 어업 등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제에서 8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의 원형이 드러났다. 옛 이슬람 공동묘지와 기독교 예배당을 비롯해 카르타고 시대의 저수조, 푸이그 데스 몰린스 공동묘지를 확장한 무덤들이 포함된 완충지역에도 여러 건물이 있다. 어퍼 타운의 맞은편, 항구 반대쪽에 해안을 따라 펼쳐진 세스 페익세스(Ses Feixes)라는 지역에서는 독창적인 관개 시설을 기반으로 한 경작 형태를 볼 수 있다. 물을 모으고 빼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 수로들이 그물처럼 좁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밭을 분할하고 있다. 이런 시설은 건조한 토양과 습한 토양의 균형을 잘 맞추어 집약 재배를 가능케 한다. 마지막으로 섬 남쪽 끝에 문화경관인 라스 살리나스(Las Salinas)가 있다. 이곳은 고대인의 활동을 통해 자연 환경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변모된 지역으로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가치를 지녔다. 소금 채취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 지역에는 독특한 동식물과 운하, 댐, 제방 등의 시설이 있다. |
첫댓글 동서양의 차이를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