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나폴레옹·히틀러·김일성이 벌인 실수, 푸틴이 반복했다”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 1시간 전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각종 무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고전(苦戰) 중이다. 여기에 대전차 미사일의 활약으로 ‘전차 무용론(無用論)’이 재등장했다. 기갑병과 출신 군사 전문가는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볼까.
“나폴레옹·히틀러·김일성이 벌인 실수, 푸틴이 반복했다”
지난 4월 8일 육군 제1기갑여단장을 지낸 주은식(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육사 36기) 예비역 준장을 만났다. 그는 “전차는 지상전에서 여전히 중요한 무기”라며 “러시아가 전차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다. 주 예비역 장군은 2001년부터 2년간 러시아 총참모대학(우리나라의 국방대)에서 공부했다.
주 부소장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을 침해하기에 러시아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미국이 전쟁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각종 무기만을 지원한 채 정작 군대는 배치하지 않아 전쟁을 부추긴 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약자에 대한 동정심만으로 푸틴을 악마화하거나 러시아를 적대시해선 안 된다”며 “국익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주 부소장은 ‘루스키 미르(Russkiy mir)’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태에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루스키 미르는 ‘러시아 세계(Russian World)’를 말한다. 러시아 정교회를 정신적 기반으로 한 범슬라브 국가를 건설해 서방의 도덕적 부패로부터 문명을 구원한다는 사상이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중국의 중화(中華)사상, 지금의 ‘중국몽(中國夢)’과 유사하다.
주 부소장은 “러시아가 루스키 미르 때문에 ‘스스로 제한된 군사 작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대규모 공습은 하지 않았고 공습을 벌였으면 러시아군의 피해도 지금보다는 적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4년 이후 도입한 ‘대대전술단(BTG)’에 기반한 작전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BTG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쟁을 치르며 고안한 새로운 부대 편제(編制)다. 특징은 대대급(600~800명) 부대가 현장 지휘관(대대장·중령)의 재량권을 바탕으로 기동성 있게 운용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단(병력 약 3000명)에 바탕을 둔 BTG가 규모와 병과의 한계로 합동작전(타군과 연계)과 협동작전(동일 군 내 다른 병과와 연계)에서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사단(약 1만 명)이나 군단(5만 명)은 각종 병과가 한데 모여 전투를 치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와 집중 효과를 낼 수 있다.
◇히틀러의 실수 되풀이한 푸틴
— 푸틴은 왜 기습과 집중이라는 전쟁의 대원칙을 지키지 않았나.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문이다. 중국 시진핑을 배려하느라 적기(適期)를 놓쳐 기습의 원칙을 지키지 못 했다. 전쟁을 실제로 할 생각이었다면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2월경에 예고 없이 행동해야 했다. 또 집중의 원칙도 사라졌다. 광활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고작 병력 15만 명을 동원했다. 문제는 이 병력이 키이우(북부), 돈바스(동부), 크름반도(남부) 등으로 분산돼 투입돼 BTG 단위로 따로 움직였다.”
― 러시아 군 수뇌부도 적극적이지 않다.
“푸틴이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군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점령이 아니다’고 했다.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밝히는 바람에 군 지휘부도 우왕좌왕했다. 히틀러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 히틀러의 실수가 무엇인가.
“독소(獨蘇)전쟁 당시 히틀러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수도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로 병력을 나눠 투입했다. 병력을 분산시키는 바람에 소련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 왜 병력을 분산시켰나.
“공산주의를 창시한 레닌, 그 레닌이 탄생한 이념의 도시 레닌그라드(북부)를 장악하겠다는 욕심, 수도 모스크바(중부)를 점령하겠다는 욕심, 공업도시이자 원유와 식량이 풍부한 스탈린그라드(남부)를 손에 넣어 군수 물자와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욕심, 이 욕심들 때문에 ‘집중의 원칙’을 깼다. 독일 북부집단군, 중부집단군, 남부집단군이 따로 움직였다. 푸틴도 마찬가지다.”
— 당시 히틀러는 어떻게 해야 했나.
“모스크바로 곧장 진격해야 했다. 수도를 장악하면 전쟁은 끝나기 때문이다.”
— 푸틴도 병력을 집중해 곧장 키이우로 갔어야 했나.
“키이우 인근인 북부(벨라루스)에 한데 모은 뒤 수도를 점령해야 했다. 키이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동부나 남부 지역에 병력을 집중해 이곳을 확실히 장악해야 했다.”
러시아는 개전 이후 한 달여가 지난 4월 초부터 북부에 배치한 병력을 동남부 지역으로 재배치했다.
◇ 기습과 집중에 실패한 푸틴, 패착에 빠져
— 키이우를 장악한 뒤에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수도를 장악한 후 동부 지역으로 진격했으면 유리했을 것이다. ‘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해하기 쉽다. 우크라이나 동부·남부는 이미 친러 세력이 장악했기에 굳이 이곳에서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강력한 망치로 키이우(북부)를 힘 있게 내려치고 돈바스(동부)로 진출한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6·25전쟁 당시 전황을 반전시킨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여기에는 ‘망치와 모루’의 원리가 담겼다. ‘망치’는 상륙작전(기습전), ‘모루’는 방어선이 해당된다. 대장장이가 쇠질을 하기 위해선 망치와 모루가 모두 튼튼해야 한다. 러시아에 있어 충분히 장악된 우크라이나 동부·남부 지역은 ‘쓸모 있는 모루’와 같다. 문제는 망치질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6·25때 김일성이 한 실수와 비슷한 점도 있어 보인다
“김일성이 소련제 T-34 전차를 바탕으로 기습에는 성공했다. 문산-의정부 방면으로 내려온 북한의 주공(主攻)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니까. 하지만 우리 국군 6사단이 춘천-홍천 부근에서 북한군 조공(助攻)의 진출을 이틀동안 지연시켰다. 당초 북한군 조공은 수원 방면으로 진출해 주공과 조공이 국군을 포위할 셈이었다. 하지만 한강 철교가 폭파되는 바람에 북한군은 도하를 준비하느라 3일을 허비했다. 우리는 춘천에서 이틀, 서울에서 사흘 총 5일을 벌어 다행히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기습에는 성공했으나 힘을 한곳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김일성이 저지른 실수를 이번에는 푸틴이 범한 것이다.”
◇ 러시아, 전차 제대로 운용 못해
주은식 부소장은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로 ‘라스푸티차’를 들었다. 라스푸티차란 러시아어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지에서 봄가을에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말한다. 해빙기가 되면 동토(凍土)가 녹아 진창으로 변한다. 봄(3~5월)에는 얼었던 땅이 녹고, 가을(10~11월)에는 해양성 기후로 인해 가을비가 내려 늪지대로 바뀐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라스푸티차의 혜택을 본 것은 러시아였다. 독소전쟁 당시 독일 기갑부대의 모스크바 진격을 저지한 게 가을철 진흙탕이었다. 탱크의 무한궤도는 진흙에 빠져 헛돌았다. 그사이 소련은 방어선을 구축한 뒤 독일군에 반격했다.
프랑스 나폴레옹도 러시아 원정 당시 라스푸티차 때문에 고생해 결국 패전했다. 러시아를 외세로부터 구원한 진흙탕이 지금은 푸틴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 왜 러시아는 전차 운용을 제대로 못했나.
“전쟁을 지휘하는 지도부부터 일선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대대전술단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차(기갑)부대는 혼자 움직일 수 없다. 제병협동(諸兵協同), 즉 항공부터 정비, 포병, 공병, 수색, 군수 등 각종 병과와 함께 움직여야만 한다. 그런데 대대전술단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러시아군은 이런 제병협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차 무용론이 재등장했다.
“현대전이라 전차가 쓸모없어진 게 아니다. 무용론은 전차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지상전의 교리가 변하지 않는 전차는 물론 ‘전차 무용론’도 사라지지 않는다.”
— 전차는 어떤 존재인가.
“지상전의 왕자다. 지상군 무기는 ▲화력 ▲기동 ▲방어(장갑)를 축으로 발전해왔다. 화력의 정점(頂點)에 있는 무기가 대포(大砲), 기동의 정점은 차량, 장갑의 정점은 벙커(bunker)와 같은 진지(陣地)다. 탱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한데 집약한 무기이다.”
— 지상군 ‘최정점’ 무기라고 보면 되나.
“그런 차원을 뛰어넘는다. 실제 전쟁은 ‘준비된 진지’에서만 할 수 없다. 전장(戰場) 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보병은 진지를 바탕으로 참호를 구축하고 싸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탱크는 다르다.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전차는 신속한 공수(攻守) 전환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 미 해병대는 오는 2030년까지 전차를 모두 없앤다고 한다.
“굉장한 실수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첨단 화력 우위의 사고’이다. ‘화력만으로 무혈(無血)입성할 수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또 첨단 무기를 도입하는 데 따르는 비용 증가도 따른다.”
— 재블린이 탱크를 잡는 대명사가 됐다.
“전차는 전면부의 장갑이 가장 두껍고 그다음이 옆구리다. 제일 취약한 부위는 상판이다. 재블린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전차 상판에 내리꽂기 때문이다.”
— 재블린에 대응할 방법이 있나.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이 개발한 능동방호체계(APS) ‘트로피’가 유일하다. 트로피는 전방위에서 날아오는 적탄이나 미사일을 사드처럼 요격한다. 실전에 배치돼 성능을 입증했다.”
— 러시아 전차에는 APS가 없나.
“러시아군도 신형 전차에는 APS가 설계돼 있다. 다만 APS를 전차에 탑재했으나 실전에서 작동하지 않은 것인지, 비용 문제로 설계에만 반영하고 실제로 설치는 하지 않은 것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 우리나라 전차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주력 전차인 K-1 전차에는 APS 탑재 설계가 빠져 있지만 복합장갑을 덧대 보호하고 있다.”
— 최신형인 K-2 흑표는 어떤가.
“설계에는 반영돼 있으나 비용 문제로 실제 설치돼 있지 않다. 흑표에 APS가 달려 있어도 재블린을 막을 순 없다. 국군 전차는 대전차 미사일을 방어할 수단이 제한된다. 우리나라도 대전차 무기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군이 보유한 APS는 러시아 기술에 기반한다.
주은식 부소장은 “푸틴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전쟁을 하루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쟁이 오래갈수록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국가는 중국이고 가장 큰 피해는 서방 국가들이 입는다”며 “서방이 러시아를 상대로 각종 제재를 벌이지만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고난에 대한 내핍성(耐乏性)이 강하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인도를 ‘우회 시장’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주은식 부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실수를 했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는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이 전쟁을 부추겼다. 전쟁을 막으려면 오히려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주 부소장은 ‘재블린’으로 상징되는 서방의 각종 무기 지원이 과대 평가됐다고 했다. 러시아의 고전은 대전차 미사일 때문만이 아니라 러시아 지도부의 전략적 실수, 러시아군의 훈련 부족, 러시아군 개혁 실패, 우크라이나 특유의 지형,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드론의 활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 비핵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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