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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성일여고 도서부 아란야 10기 소담 6기 박승현입니다
11/4일 아란야의 날이 이제 얼마 남지않았는데요 ^^
다들 꼭 와주실꺼라 믿구요 ~ !
오시기전에 책 읽고 오셔야겠죠 ?! +ㅁ+
책 올리니까 재밌게 읽으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성일여고로 3시까지 늦지말구 와주세요 ^0^
그럼 항상 즐거운 하루되세요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박성원
며칠째 해는 먹구름 속에 갇혀 있었다. 장마라곤 하지만 장마다운 비는 도통 내리지 않았다
가끔씩 찔끔거리며 내리긴 했으나 손을 뻗어 확인 하지 않으면 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온몸을 무겁게 쏘아 붙이는 습기는 시간을 더디게 만들었고, 공간은 덩달아 비틀리고 있었다. 통풍을 위해 난초들을 내다 놓았지만 높은 습도 때문에 이미 난초 몇은 달리아 반엽병과 모잘록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작년이맘때도 꼭 이랬다 . 세상은 정물화에 갇혀 있는 그림처럼 고정되어 있었고 나 또한 온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습기에 마냥 정지해 있었다, 하늘은 여름 내내 조금의 재잘거림도 없이 끄느름했다. 차라리 태풍이나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갈증의 폭이 줄었을 텐데 하늘은 여름 내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 D시 인근에 있는 학교에 여름 계절학기 시간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강의 시간이 3주 동안이어서 출퇴근하기에 어중간했다. 그러나 도시와는 떨어져 있어 난초 연구에는 적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4,5일 정도를 머무르며 연구를 하기위해 작은 방 하나를 얻기로 했다. 내가 얻은 건물은 학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관광지에 있었다. 말이 관광지였지 관광지라는 안내판이 없었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지극히 평범한 마을 이였다. 산들이 지루하게 이어져 있을 뿐, 강이나 아니 하다못해 하천이나 적은 개울도 없었다. 나무들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푸석한 땅 위에는 잡초만 곰팡이처럼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오직 눈에 띄는 것은 칠이 벗겨진 흉한 철제 안내판 뒤에 쓰러져 있는 헐벗은 놀이기구 몇 개가 전부인 이상한 관광지였다. 건초더미처럼 쓰러져 있는 놀이기구는 대부분은 동전을 넣으면 2, 3분가량 몸을 흔들다 멈추는 유나용 기구였다. 운전대가 빠진 자동차나 코 역할을 하는 포신이 뭉개져 있어 용맹하기보다는 우습게 보이는 탱크, 그리고 이착륙할 수 있는 바퀴가 시멘트로 단단히 막혀 있어 영원히 날 수 없을 것 같은 비행기가한 구석에 매복해있었고, 반대편에는 서부의 총잡이가 허리춤에서 막 총을 꺼내는 마네킹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눈알 빠진 사슴이 있었다. 학교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연구를 위해 나는 그 이상한 관광지에 방을 얻었다. 내가 방을 얻은 건물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내가 방을 얻은 건물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아마도 망해버린 러브호텔을 자취하는 학생 들을 위해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학교와는 10여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누가 방을 얻어 살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주위에는 수해를 입은 듯한 버스 정류장 말고는 구멍가게조차 없어 살려고 들어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난초를 연구하기에는 적당할 것 같아 나는 그곳에 방을 잡기로 하였다. 나는 옷이나 책도 많이 가지고 가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들은 그때그때 오가면서 챙기면 될 것 같아 연구에 필요한 난초 몇 종류만 챙겼다. 그중에서도 파리난초를 많이 가져갔는데, 아무래도 내가 살던 곳보다는 말벌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난초는 꽃가루를 구하기 힘들어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파리난초는 암컷 말벌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꽃을 피운다. 뿐만 아니라 페로몬 향내로 수컷말벌을 속인다. 생김새며 페로몬 냄새까지 똑같아 교미를 하기 위해 수컷 말벌이 날아올 수밖에 없는데 이때 수컷 말벌은 이미 다른 꽃에서 묻혀온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있다. 그래서 파리난초는 수컷 말벌의 발에 묻어있는 꽃가루를 통해 자신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파리난초를 암컷 말벌로 착각한 수컷말벌은 암컷 말벌처럼 보이는 또 다른 파리난초를 향해 날아가고, 그래서 파리난초는 번식하는데 당시에 나는 파리난초의 교접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은 줄곧 방에만 있었다. 방을 얻은 날부터 다리가 심하게 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리가 가끔씩 마비되는 느낌도 들었고 걸음은 고사하고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더군다나 엄지손가락으로 부은 다리를 누르면 찰흙을 누른 것처럼 눌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움푹 들어가 다시 올라오지 않는 피부를 보면서 공포감보다는 기이함을 느꼈다. 아마도 그 동안 연구를 한답시고 제대로 먹고 자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이틀 정도 쉬고 나면 괜찮을 것 같아 온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습기에 파리난초처럼 마냥 정지에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으면서 만난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관리인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옆방 여자였다. 관리인이라는 사내는 처음부터 달갑지 않았다. 그는 건물 주인의 조카라고 했는데, 잠시 동안 관리를 맡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적 사항을 자세히 기재해야 한다며 하얀색 입주자 카드를 내밀었다. 얼마 있지도 않을 텐데 이런 것을 작성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군말 없이 종이를 받은 즉시 대충 써주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최종학력 칸과 종교 칸이 비어 있다며 다시 내밀었다. 나는 다시 적어 줬지만 이번에는 휴대폰번호가 빠졌다고 또 내뱉었다. 내가 빈 칸을 한 곳도 남기지 않고ㅡ물론 순 엉터리로 기재했지만
ㅡ 적어 주자 그는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또 내가 차에서 난초들을 꺼내 옮기자 사내는 퉁명하게 바라보며 뭔지 물었다. 내가 난초라고 말하자 사내는 난초는 여자들이나 기르는데, 하고 비웃었다. 그런 것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여도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식사로 그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두부를 사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자동차 안에 넣어둔 것을 잊고 있다가 나중에야 생각났다.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이미 쉰 냄새가 은근히 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을 물었을 때 그는 내손에 쥔 두부를 코에 박더니 이 정도면 아직 괜찮다고 했다.
ㅡ 여기 두부가 왜 유명한지 모르는 군요. 이건 쉰 게 아닙니다. 여기에 식초를 넣고 간장,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버무려 봐요. 이곳 두부의 참 맛을 알게 될 테니.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래도 상한 것 같아 나는 글쎄요. 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사내는 안으로 들어가서 식초와 여러 가지 양념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그 때문에 두부를 버리지도 못하고 사내가 준 양념을 한 아름 안은 채 방으로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올 때부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는 나사가 빠진 것처럼 헤근거렸는데, 발걸음을 딛는 게 아니라 다리라는 수레를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계단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겨우 올라왔을 때 옆방에서 한 여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의외의 상황에 무척 놀랐다. 방이 여럿 있으니 그중 하나에 여자 혼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퇴색한 관광지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건물에서 그런 만남을 가지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밝은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아직 진정되지 않은 심장 때문에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ㅡ어머, 제가 놀라게 했나 봐요. 나는 그녀의 말에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손짓을 하며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녀는 순간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녀는 눈치를 살피면서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ㅡ 저기요, 혹시 방에 계시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지 않나 유심히 들어주시지 않겠어요? 나는 처음에 그녀의 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작게 말하는 통에 무슨 소리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소린지 되물었을 때 여자는 ‘쥐들이 내는 소리
같은‘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부터 이 건물에 쥐가 있는 것 같아요. 관리인은 그럴 리 없다고 말하지만 제 방에서는 잘 들리거든요. 소리는 계속해서 나는데 아무 증거가 없으니 관리인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말이 예요.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양념이 들어있는 봉투가 떨어졌다. 봉투를 집어 들려는 순간 다시 다리가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냥 주저앉았다. 그녀가 넘어진 나를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잠시 쉬었다.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어 나는 일 때문에 며칠 잠을 안 잔 데다, 또 잘 먹지 못해서 그렇다고 필요이상으로 말을 많이 했다. 그녀가 바닥에 흩어진 양념통 들은 열심히 주워주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이 흔들렸는데, 모처럼 느껴보는 바람인 것 같았다. 비 내리지 않는 장마 때문에 무거운 습기에 질식할 것 같았는데 그녀의 상쾌한 움직임은 새뜻한 기운을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양념을 건네받은 뒤 억지로 다리를 끌고 방으로 향하였다. 두어 시간 앉아 있으니 조금은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무척 배고팠고 그의 말대로 식초 두 스푼과 약간의 간장과 참기름을 넣은 뒤 두부를 버무렸다. 그때 사내가 마침 막걸리를 가지고 와서 기웃거렸다. 나는 그에게 두부를 같이 먹자고 했다. 그는 두부? 하고 되묻더니 두부 말고는 먹을 게 없어요? 하고 이마를 약간 찌푸렸다. 그런 뒤 잠시 옆방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아마도 옆방 여자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커서 복도를 울리는 반면에 여자의 목소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목도에는 사내의 목소리만 메아리쳤다. 사내의 메아리에 묻혔기 때문인지 옆방 여자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의 소리만 듣고도 여자가 사양하고 있으며 사내는 여자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혼자 떠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 닫는 소리가 들렸고 사내가 막걸리를 흔들며 퉁바리맞은 얼굴로 들어왔다. 내가 버무린 두부를 그에게 보여주자 사내는 오후에 그랬던 것처럼 두부에 코를 박았다. 그는 냄새를 맡더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기름을 두르며 팍팍 튀어오를 만큼 그는 달아있었다. 그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이런 상한 음식을 주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이렇게 상한 음식과 우리 동네 두부를 구분하지도 못할 만큼 바보로 보이는 거요?
그는 무엇이 분한지 손끝을 달달 떨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막걸리 통이 경운기 엔진처럼 떨렸다. 그는 안녕히 계세요. 하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고는 막걸리를 들고 씩씩하게 나갔다.
-아니, 저 댁이 말한 대로.....
하자만 그는 내말을 체 듣지도 않고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사내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두부냄새를 맡아 보았다. 양념냄새가 진하게 풍겼지만 두부는 오후에 맡았던 시큼한 냄새 그대로 풍기고 있었다. 나는 사내가 나간 방문 옆에 있는 휴지통에 두부를 쑤셔 넣었다. 그날 밤 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사내가 여러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사내가 여로 톱을 곁에 두고 널빤지를 자르고 있었다. 사내의 톱질은 서툴러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힘껏 자른 후 자신이 자른 널빤지를 들어 여러 각도로 재어보았다. 특별한 형태를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는 널빤지를 자르고 나서 항상 자른 결을 관찰했다. 비행기 모양을 한 놀이기구에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널빤지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겹겹이 기대어 있었다. 사내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것을 모두 자를 태세였다. 나무 자르는 소리는 밤새 이어졌고 나는 그 소리 때문에 이가 시렸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갑자기 조여 오는 다리 통증 때문에 제대로 일어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재촉하는 초인종 소리 때문에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미적거리며 문을 열었다.
ㅡ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초인종 소리에 이엉 옆방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을 열자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ㅡ 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나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간밤에 사내가 나무를 자르던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말에 여자는 매우 속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표정으로 봐서는 사내가 톱질하던 소리와 자신이 들었다는 소리는 다른 것 같았다. ㅡ 거참, 이상하군요. 밤새 톱질하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상하기는 여자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큰 평수의 아파트도 아니고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이런 좁은 곳에서, 그것도 바로 옆방에서는 잘 들리는 쥐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한 것에 대해 그녀는 이해 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ㅡ 쥐들이 돌아다니며 찍찍 소리를 내는 통에 이제는 더 이상 방에 있지 못하겠어요. 저에게만 들ㄹ리는 것도 아닐 테고...... 관리인에게 한번 말해보라고 내가 말하자 여자는 다시 바닥을 샅샅이 훑으며 말했다. ㅡ 그렇지 않아도 몇 번 말했는데, 그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그 사람과 단둘이 방에 있기가 좀........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내가 함께 있어주길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제야 그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팔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언제쯤 찾아가면 좋겠냐고 묻자 그녀는 조금 전에도 소리가 났고, 또 정해진 시간 없이 수시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언제라도 오라고 했다. 나는 별일도 없으면서 시계를 잠깐 보고는 그녀의 방으로 같이 갔다. 그녀의 방은 살림살이들을 꽤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앉아 있을 곳이 부족했다. 나는 바닥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고, 여자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작은 소리라도 잡으려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름 벌레들이 한껏 소리를 낼 계절인데도, 모두 습기에 지쳐 녹아버린 것인지 벌레들의 날갯짓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둠에 절어 있었고, 때문에 초록은 더욱 망연해 보였다. 오직 들리는 것이라곤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뿐이었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내 얼굴을 건드릴 때마다 그녀의 냄새를 봄바람처럼 전해주었다. ㅡ 다리는 왜 그래요?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는데 손가락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내가 봐도 흉했다. ㅡ 가만, 각기병인가 봐요. 그녀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내 다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각기병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내가 무서운 병인지 물었지만 그녀는 보드레하게 웃으면서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약국에서 비타민 B이 들어있는 비타민제를 사먹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생리병과 같은 경우군요, 하고 말하자 그녀는 나를 보았다. 생리라니요? 옷이 구겨지듯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나를 홀겨 보았다. 내가 식물에게 있어 영양 부족으로 오는 생리 장애 병해를 통틀어 생리병 이라 한다고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살짝 미소를 지었다.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 그림자가 그녀의 벌어진 가슴위에 드리워졌다.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녀는 깊게 파인 가슴 부분을 손으로 여미며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ㅡ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소리를 찾는 데 집중하세요. 이렇게 떠들다가는 소리를 놓칠지 모르잖아요. 그녀는 정말 쥐 소리를 찾기 위해 집중했다. 나 또한 가만히 있으면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하고 집중했지만 우스운 일 같았다. 도대체 쥐 소리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지루했다. 나는 구름 속에 가려 무기력한 태양처럼 아무런 할 일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일 때문에 그만 가봐야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조금 더 같이 있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나는 핑계거리를 찾다가 다리 때문에 병원이나 약국이라도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ㅡ 그 정도 일이라면 관리인에게 부탁해요. 관리인은 하루에 한번씩은 꼭 읍내로 나가니까요. 나는 알았다고 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소리를 찾기 위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진지했다. 관리인은 탱크 모양의 놀이기구에 앉아 톱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내가 앉아 있던 탱크는 화나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포신 역할을 하는 코가 뭉개져 있어 용명해 보이기는커녕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관리인 사내를 찾아 혹시 약국까지 태워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쥐고 있던 톱을 놓으면서 나를 홀겨 보앗다. ㅡ 이거는 주로 홈을 만들 때 사용하는 붕어톱이고, 또 이거는 정확하게 자를 때 사용하는 등대기톱, 또 이게 바로 쥐꼬리톱인데, 어디 쥐꼬리하고 닮았습니까? 사내는 톱을 들이밀며 내게 말했다. 나는 놀이기구들을 돌아보며 놀이기구들을 만드는 것이냐고 물었다. ㅡ 만들긴 뭘 만들어요. 그냥 톱질하는 게 좋으니까 하는 거지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내가 보던 놀이기구들을 따라 보았다. ㅡ 꿈이 있기는 한데...... 뭐 , 생각 같아선 여기에 대형 리조트를 세워서, 그러니까 라스베이거스처럼 카지노도 넣고... 라스베이거스가 사막에 세워진 건 알죠? ㅡ 아, 라스베이거스.....예, 언젠가 들은 것 같습니다. 사막에 세워 졌다고...... 내가 사내의 말을 거들자 사내는 라스베이거스를 세웠다는 마피아가 마치 자신의 친척이라도 된다는 듯 자세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댁은 톱질 잘하슈? 하고 입술을 올리며 물었다. 내가 그저 그렇다고 대답하자 사내는 톱날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ㅡ언제 시간 나면 열중해서 톱질을 해봐요. 톱질만큼 집중력을 키워주는 것도 없단 말입니다. 톱질을 할 때면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요.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게 바로 이 톱질입니다. 나무를 자르면 나무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데 그 냄새를 한번 맡아봐요. 얼마나 상쾌한지. 사내가 나무를 들어 내 얼굴 가까이에 댔다. 코를 쑤시는 것이 진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사내는 나무 냄새는 살아 있을 때 보다 이렇게 잘려 파편이 될 때 잘 난다고 말했다.
-난, 톱으로 나무를 잘나 냄새를 만드는 게 좋아요. 또 톱질할 때 나는 소리를 들어봐요.
슥삭슥삭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소리는 아마 당신의 귀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거요. 또 톱밥은,...... 나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리에 한 번씩 마비가 오는데 운전 중에 마비가 오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으니 병원까지 좀 태워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내의 포정은 마땅치 않아 보였다. 사내는 귀에 꽂고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가 한번더 부탁하면 아마도 바쁘다는 핑계를 댈 것 같았다.
-각기병이라는데, 지금 바쁘면 나중에 나갈 일 있을 때 약국에 서 비타민을 사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타민 B1이 많이 들어 있는 걸로요.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차는 댁의 걸로 이용할 테니, 열쇠나 줘요.
내가 돈과 열쇠를 주자 사내는 내차가 있는 쪽으로 향하다가 갑자기 생각 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면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면 내 방에 가 있어요. 문은 열려 있어요. 수족관에 피라냐가 있는데..... 당신은 피라냐 알아요 ? -뭐라구요?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큰 소리로 더ㅣ물었지만 이미 사내는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가속 페달을 급하게 밟아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사내는 사막 횡단 경주에 들어간 레이서처럼 차를 심하게 흔들었고, 산더미 같은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도로로 올라갔다. 사내의 방은 불과 몇 걸음이면 갈 수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려다 말고 사내의 말대로 사내의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사내의 방문 앞에는 붉은 페인트로 ‘열대의 왕자 피라냐’
라고 씌여 있었다. 나는 ‘피라냐’라는 글자를 한참동안 피라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고 평범한 물고기를 두고 왜 왕자라는 거대한 수식어를 붙였는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피라미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물고기 인데 왜 열대어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도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문에 씌여 있는 글자를 밀치며 문을 밀었다. 사내가 말한 대로 문은 열려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보인 것은 수족관이었다. 수족관은 아래와 위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꽤 컸다. 수족관 뒷벽에는 아주진한 파란색 천을 덧대고 있었고, 약한 조명이 그곳을 비추어 마치 심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래에 있는 수족관에는 역시 페인트로 ‘열대의 왕자 피라냐’라고 씌여 있었는데, 문에 적혀있는 것보다 훨씬 작은 흰색 이였다.
수족관 안에는 서너 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피라미가 아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크기였고, 다부져 보였지만 흉측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배 부분부터 위로 솟구친 주홍색 무늬가 마치 핏줄처럼 보여 피에 굶주린 것 같았다. 나는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를 보고 나서야 내가 착각했음을 알았다. 식육성 열대어인 피라니아를 피라미로 착각 했을까. 위에 있는 수족관에는 미꾸라지와 송사리 등 많은 물고기들이 있어 세 마리 피라니아가 들어있는 1층 수족관에 비해 같은 크기인데도 무척 작아 보였다. 커다란 소도 순식간에 뜯어 먹힌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피라니아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피라니아는 천천히 오가면서 가끔씩 하품을 하듯 입을 벌렸는데 번뜩이는 이빨이 그렇게 작은 물고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 기이했다. 수족관유리를 당장이라도 박살낼 것 같아 나는 유리에 손도 대보지 못하고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끼운 채 피라니아를 보았다. 그때 휴대폰이 간지러운 벨 소리를 뱉었다.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수강생이 얼마 없어 폐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방까지 얻었는데 낭패였다. 나는 애써 웃음지으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음 학기에 한번 보자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할 수있는 말은 예, 아니요 같은 단순한 대답뿐이었다. 통화를 끝냈을 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미리 방을 잡은 것이 나였으니 누굴 탓 할 수도 없었다.
- 어때요 내 피라냐.
언제 들어왔는지 사내가 봉투 여러 개를 들고 들어왔다. 사내는 봉투 하나를 열고 돼지고기를 꺼내 피라니아가 있는 수족관으로 던졌다.
- 이놈들은 얼마나 강한지 그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예리한 이빨과 강한 턱을 보세요. 저 턱으로 소뼈도 손쉽게 부수어버린다니까요. 인간들은 나무 자를 때도 톱으로 쩔쩔매는데 피라냐 들은 달라요. 저놈들은 저보다 몇 배 큼 물고기가 와도 절대 피하지 않아요. 절대로 굽실거리거나 양해를 구하는 법이 없습니다. 당당함 그 자체죠. 강하니까 키우기도 얼마나 쉬운데요. 돼지고기는 처음인데 잘 먹네. 사내의 말대로 피라니아 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으로 고기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재미있는 걸 보여 줄까요. 이런 죽은 고기 말고 내가 붕어 몇 마리를 넣어볼게요. 아마 스펙터클 그 자체 일 겁니다. 몇 년을 봐도 지겹지 않은 유일한 구경거리일 거요. 사내는 위에 있는 수족관에서 뜰채로 물고기를 몇 마리를 건졌다. 그리고는 아래 피라니아가 있는 수족관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피라니아들이 달려들었다. 붕어의 몸통은 이내 흩어졌다. 새까만 눈동자가 달린 붕어 머리가 수족관 안을 잠시 둥둥 떠다녔다. 그러나 수족관 끝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온 피라니아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이내 그 작고 새까만 눈동자까지 뜯어 먹었다. 사내는 스펙터클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잔인한 쇼였다. 내가 사내에게 비타민을 달라고 하자 사내는 돼지고기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소주와 삼겹살이 들어있었다. 내가 봉투 안을 뒤지며 비타민이 없다고 하자 사내는 돼지고기에 비타민 B1이 많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 비타민을 사러 약국 가는데 마침 정육점을 하는 후배를 만났지 뭐요. 나보고 어디 가느냐기에 각기병 약을 사러 간다니까 그런 병은 돼지고기를 먹어도 단박에 낫는다 하데. 이사 온 기념으로 함께 술이나 하면 서로 좋잖아.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피라니아를 보느라 넋이 빠져 있었다. 내가 어이가 없어 서 있자 사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왜? 비타민으로 바꿔다 줘?”하고 물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부르지도 않은 사내가 다시 올라왔다. 손에는 막걸 리가 아닌 소주를 몇 병을 들고 서 있었다.
- 아무리 기다려도 고기 굽는 냄새가 나질 않기에......
내가 다리가 아파서 고기를 굽지 못했다고 말하자 사내는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판을 가지고 와서 굽기 시작했다. 사내는 소금을 고기에 뿌리며 나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어떻게 옆방 아가씨와는 잘되어갑니까?
나는 사내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매가 보니까 한 방에서 아주 오래 있더 구만. 뭐 떡이라도 함께 먹었어요??
나는 술을 마시고 빈 잔을 건네주며 옆방 아가씨와는 별 관계 아니라고 말했다. 쥐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같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자 사내는 “아, 쥐 소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확하게 뭐 하시는 분이오? 카드를 보니까 무직이라도 했던데, 일자리 구하러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 테고.... 나는 그냥 식물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내는 입안에든 고기가 튀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마구 웃었다.
-나도 이곳에서 자라 나무며 풀이며 보고 자랐는데, 그놈의 식물들은 죄다 비슷하게 생겼고 이름부터가 당최 어려워서. 난 어려운건 딱 질색이어서 말입니다 풀이란 놈들은 바람이 불어도 굽실, 빗방울에도 굽실, 밟혀도 굽실, 하다못해 토끼 같은 놈들에게도 뜯기는 놈들이니 뭐 보고 배울 게 있나. 나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도 식물이 있어야만 생태계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광합성으로 자족을 하며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생을 마친다고 했다.
-그 뭐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난 어려운 이야기는 딱 질색이어서 말입니다. 우리 남자들끼리 솔직하게, 진솔하게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댁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 카드를 보니까 천주교라고 했더구만. 그것은 그냥 생각난 대로 적은 것이고, 사실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죽으면 내 시체 위에 기념 나무를 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내가 썩는 만큼 나무가 자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잘됐네. 종교도 없으면 뭐 죽어서 천당이나 지옥 간다는 걸 믿지도 않을 테고. 그러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은 원 없이 한번 해봐야지. 왜 자제하면서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그렇게 재미없게 살지?
나는 사내의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내방을 훑어보다가 참 재미없게 산다고 말했다.
-이방은 뭐 볼게 하나도 없네. 저따위 식물이나 보지 말고 좀 재미난 일을 찾아보지 그래? 젊은 사람이 말이야. 맥 빠지게 말이야. 그러니 희한한 병에 걸리는 거지. 피라냐는 비록 몸집은 작아도 그 어떤 질병에도 끄덕 없는 놈이라고.
그러면서 사내는 다시 사막에 건설된 라스베이거스와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마피아의 초인적이고도 헌신적인 노력과 숱한 역경, 그리고 당당한 저돌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는 더 이상 듣기 싫어 세상이 오락 천지인데 나까지 오락거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내가 사내의 말을 중간에 잘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말한 내용이 사내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어쨌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내는 젓가락을 세차게 놓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사내와 그런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뒤집으며 변명을 주섬주섬하였다. 호텔이며, 카지노며 그것을 건설하는 데서 발생하는 고용 효과와 산업효과 그리고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을 생각하면 사회적으로도 큰 발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사내의 마음 좋아 보이는 미소와 달리 나는 속이 편치 않아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습기 때문에 통풍이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고기를 태우며 나온 연기가 창가에 있는 난초 주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나는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심호흡을 하고 싶었지만 사내가 잔을 들고 내 옆으로 와서 귓속말을 하였다.
- 그건 그렇고, 그럼 옆방 아가씨는 당신 타입이 아닌 거지? 그렇지? 하긴 자네가 옆방 아가씨를 마음에 들어 해도 어쩔 수 없겠지. 자네는 유부남이니깐 말이야.
나는 사내를 피해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러자 사내는 좁쌀이 굴러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와서 내 앞에 앉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히히. 카드에 자네가 다 적었잖아. 기혼, 이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사내는 무엇이 흡족한지 소주를 흘려가며 웃었다.
-하긴 그 여자 나도 싫어. 있지도 않은 쥐 소리만 찾고 말이야. 그 여자는 세상에 존재 하는 게 오직 쥐 소리밖에 없는 것처럼 굴어. 에잇, 나도 그런 여자 싫어. 차라리 톱질하는 게 낫지. 그깟 소리 때문에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처박혀 있는 게 이해 할수 없어. 만일 쥐가 있다면 피라냐에게 줄거야. 피라냐가 먹이를 먹는 그런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보면 아마 그 여자도 반할지 모르지.
사내는 샐샐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나는 사내에게 강한 것이 좋은지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수족관에 있는 피라니아가 제아무리 강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과 당당함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사육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한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가 노려보든 말든 그가 나가주기를 바랐다.
-당신은 내가 카드에 써준 대로 나를 보는군요.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믿고 따르는 법이지요. 저는 사실 종교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기혼자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모든 빈칸에 빠짐없이 쓰라고 해서 그냥 쓴 것뿐입니다. 제아무리 강한 피라니아 라 할지라도 아마 자신이 몇 미터도 되지 않는 수족관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모를 겁니다. 그처럼 당신이 좋아하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좋아하도록,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도록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카드 운운하면서 엉터리로 작성한 카드에 기대지 말고, 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말고 혼자 여러 가지 가늠 좀 하면서 살아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내는 고개를 흔들며 “당신은, 당신은”이라고 말했다. 나는 사내의 흐늘거리는 얼굴을 뒤로 하고 당장 창가로 가서 방충망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원한 공기를 찾고 싶었다. 방 안이 습기에 연기까지 가득 차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다리는 내 생각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엉덩이만 잠깐 들고 자리에 주저앉자 사내가 나를 향해 버럭 큰 소리로 말했다
-카드에 적은 건 순 거짓말뿐이었어. 그걸 봐도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결국 토끼에게도 당하는 풀과 똑같아.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기를 찾았다. 새까맣게 탄 몇 조각밖에 보이지 않자 사내는 젓가락을 놓았다.
-고기도 없군. 피라냐들 밥 줄 시간이네.
사내는 제멋대로 들어왔듯이 제멋대로 나가버렸다. 나는 입주자 카드에 뭐라고 썼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적어준 대로, 보이는 대로 믿었을 뿐이고 나는 지어냈을 뿐이다.
사내가 나간 뒤 나는 창가에서 돌아와 남은 술을 혼자 마셨다. 술을 마시는 동안 사내가 톱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시 창문으로 톱질하는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내는 자신의 말대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톱질에만 열중하는 것 같았다. 정말 저런 톱질로 관광지를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사내는 다만 쥐가 본능적으로 나무를 갉듯이 그렇게 톱질을 해댔다. 사내는 그날도 밤새 톱질을 했다. 옆방 여자는 밤새 쥐 소리를 찾는데 열중할 것이고. 나는 그날 밤 죽은 쥐의 몸에서 빠른 속도로 병균이 퍼져 나와 피라냐가 그랬던 것처럼 내 난초들을 모조리 뜯어 먹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하루 종일 어지러운 탓에 나는 거의 누워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술을 마신 통에 회전의자에 앉아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밤새 톱질하는 소리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다가 해뜰 무렵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그 소리는 분명 쥐의 울음 같았다. 그러나 찍찍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쇠를 비빌 때 나는 소리처럼 기이했고 또 매우 길게 이어졌다. 그 날도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은 온통 꾸무럭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습기는 더욱 무거워져서 내 몸조차 녹이는 것 같았다. 방바닥에 깨엿처럼 찰싹 달라붙은 내 살들은 구름에 가려있는 태양처럼 무기력 했다. 온몸을 소름끼치게 만드는 기이한 소리는 조금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제발 저 이상한 소리가 그치기를 바랐지만 뇌가 빠져나간 듯한 어지러움과 겹쳐 나는 그대로 의식불명에 빠질 것만 같았다. 그 때
옆방 여자와 관리인이 함께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문을 잠그지 않은 게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관리인은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늦잠이나 자고 풀만 껴안고 빈둥대니까 병에 걸리지. 어서 일어나봐.
사내의 말에 이어 옆방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정말 대단해요. 제가 드디어 해냈다고요.
여자는 두 손을 모은 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이 나를 데리고 나간 비상계단 문 앞에는 쥐덫에 한쪽발이 걸린 퉁퉁한 쥐가 있었다.
-제가 오늘 아침 시장에 가서 쥐덫을 몇 개 사왔거든요. 이곳저곳에 그동안 소리가 나오는 곳마다 쥐덫을 모조리 설치했지요.
여자의 밝은 표정 못지않게 사내의 얼굴도 무척 밝았다. 사내는 쥐의 허벅지 깊숙하게 박힌 덫의 날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하, 쥐의 다리를 꽉 물고 있는 저 날 좀 봐. 저놈의 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 깊이 들어갈 뿐 절대 놓아주질 않네.
쥐는 뻑뻑한 쇠가 서로 부딪힐 때 나는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 소리 때문에 다시 이가 시려왔다.
-이제 저 쥐를 좀 치워줘요 저놈의 소리 이제 더 이상 듣기 싫어요.
옆방 여자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관리인 사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보기 좋은데 그냥 두죠.
사내의 말에 옆방 여자가 “뭐라구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내가 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말했다.
-저는 쥐를 제일 싫어해요. 차라리 사자나 호랑이를 만지는 게 낫지. 저런 치사한 동물은 곁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왜 치웁니까? 쥐를 잡은 사람이 치워야지.
-아니, 아저씨는 관리인이잖아요. 쥐가 있으면 당연히 관리인이 처리를 해줘야지요.
-여보세요. 그러게 왜 하필이면 쥐덫을 놓았어요? 차라리 쥐약을 둬서 저 혼자 어디 깊숙한 데 들어가 죽도록 두지. 쥐덫을 놓았을 땐 뒤처리까지 생각하고 놓았어야지.
사내와 여자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내가 그만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여자는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저기요, 저 소리 듣기 싫으시죠? 저런 일을 여자에게 맡길 수 있겠어요? 미안하지만 좀 도와주시겠어요? 참, 다리는 어때요? 제가 쥐덫 사러 나갈 때 같이 가려고 했지만 오늘 아침에 늦잠 주무시는 것 같아 그냥 뒀는데......
내가 그녀에게 쥐덫을 어떻게 사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외진 곳에서 차도 없이 어떻게 살겠냐며 오히려 내게 물었다.
그리고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운전 경력이 벌써 6년째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병원이나 약국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고 관리인에게 부탁해보라고 말할 때처럼 그녀는 습기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맑은 미소를 지었다.
사내가 톱질이나 하러 가겠다면서 뒤돌아서다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간밤에 그랬던 것처럼 귓속말을 했다. 쥐덫은 버리고 피 흘리는 쥐를 가지고 자기 방으로 오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피라냐가 쥐를 먹는 모습을 함께 보자고 했다.
나는 나 또한 쥐를 만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손짓하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옆방 여자는 나에게 쥐를 부탁한다면서 일 끝나면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사내와 옆방 여자가 가버린 뒤 덫에 걸린 쥐와 나만 남았다. 격렬하게 몸을 흔드는 쥐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든 생각은 이곳이 무슨 관광지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초라한 버스 정류장 앞에 휑뎅그렁하게 서 있는 간판에는 분명 한자로 ‘國民 觀光地’라고 씌어 있었다. 그러나 칠이 벗겨진 간판은 부패한 시체마냥 녹슬어 있었고, 땅은 피부병을 앓는 것처럼 흉했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글씨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찰과 약수터, 그리고 산책로와 산성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거리와 도로는 나타나 있지 않고, 지명은 뱀처럼 굽은 길 위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 순간에도 사내는 톱질을 했다. 사내의 어깨 위로 솟구친 땀방울이 곡선을 타고 흘렀다. 사내가 톱질할 때마다 곡선을 타고 흐르는 땀은 침 튀기듯 앞뒤로 떨어졌다. 내가 사내에게 어떤 관광지인지 물었다. 사내는 톱질을 하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면서 땀을 닦았다. 그때 옆방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저놈의 쥐 소리 듣기 싫어 죽겠어요. 저놈의 쥐는 성대가 강철로 된 모양이지? 어째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고도 상하지 않나? 제발 저 놈의 쥐를 치워주세요. 제발.
여자는 자신이 언제 쥐 소리를 찾았냐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사내가 뭐라고 말했지만 옆방 여자의 소리에 묻혀 그냥 허공으로 사라졌다. 덫에 걸린 쥐도 옆방 여자의 소리가 듣기 싫은지 더욱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사내가 톱질을 하다 말고 나를 보았다. 습기에도 무게가 있는 것일까? 습기가 무거운 것을 처음 알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을 짓누르는 땀과 습기를 손으로 닦아냈다. 나는 바닥에 있는 톱을 보면서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있는 톱 중에서 가장 큰 톱을 들었다. 큰톱은 내가 흔들 때마다 습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를 냈다. 사내가 위험하다는 듯이 몸을 뺐다. 그 순간 나는 큰톱으로 사내를 쳤다. 나무 냄새는 살아 있을 때보다 톱으로 자를 때 더 진하게 풍긴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사내는 피가 흐르는 머리를 움켜쥐고 덫에 걸린 쥐처럼 버둥거렸다.
사내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내 구두까지 흘러들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그 이상한 관광지는 정물화에 갇힌 그림처럼 조용하였다. 사내가 발작하듯 허리를 한번씩 퉁겼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꾸 흔들지 마. 피 튀잖아. 내가 말했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계에 박힌 초침처럼 천천히 땅바닥을 기었다. 사내의 머리에 박힌 톱을 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내의 말대로 진작에 톱질을 배울걸. 나는 톱을 힘들게 빼낸 뒤 사내의 몸 위로 던지고 다시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남자는 초침이 되어 한 바퀴를 돌았고, 피는 정확하게 원을 그렸다. 그 순간에도 해는 구름에 가려 사위가 온통 어두웠다.
거대한 비는 협박과 공갈만 일삼고 한번도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옆방 여자의 방문을 열었 을때 여자는 방 한가운데 앉아 또다시 소리를 찾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쥐 소리가 사라진 후부터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러다가 내 구두와 바지에 튄 피를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내가 머리카락을 만져도 그녀는 땀과 습기에 갇힌 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이상한 소리밖에 없다는 듯 오직 소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땀은 무척 매끄러웠다. 내 등을 점령하고 있던 축축한 땀과는 달랐다. 그녀의 등에서 배까지 오는데 내 손바닥은 너무나 잘 미끄러져 아무런 마찰력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제야 그녀가 떨리는 소리로 싫다고 말했다. 난 그녀의 귀에 대고 아주 나직이 말했다. 그딴 소리들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 몸을 뒤덮고 있는 기분 나쁜 땀을 그녀의 부드럽고 촉촉한 땀과 섞고 싶었다. 그러면 찬물로 시원하게 샤워하는 것보다 기분이 더 상쾌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습기처럼 무겁고 끈적끈적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울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상쾌함을 두고.
그녀의 몸에 있던 부드러운 땀을 느끼며 나는 세상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난초처럼, 그림속의 세상처럼 마냥 정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왜 그렇게 살면 안될까. 하다못해 쉬지 않고 빛을 내뿜던 태양도 며칠째 숨어있는데.
거대한 비는 협박과 공갈만 일삼고 한번도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자처럼 그 소리를 듣기위해 집중하였다. 쇠를 비비는 듯한, 저 소리는....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덫에 걸려 버둥거리는 쥐였다.
-저놈의 쥐 소리 듣기 싫어 죽겠어요. 저 놈의 쥐는 성대가 강철로 된 모양이지? 어째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고도 상하지 않나? 제발 저 놈의 쥐를 치워주세요. 제발.
여자가 거의 발악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사내가 톱을 쥔 손을 흔들며 나에게 뭐라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여자와 사내의 소리에 정신을 차렷을 때도 쥐는 몸을 이리저리 틀어가며 뼈를 갉아내는 듯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다리에 살이 박혀있는 쥐를 보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망상을 하며 내려앉은 습기에 몸을 맡긴 채 서 있었다. 나는 다음날 그 곳을 떠났다. 폐강하여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을 뿐더러 난초 연구는커녕 난초들은 높은 습기 때문에 모두 병에 걸려 죽어버려 정말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운전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무작정 나는 출발했다. 내가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사내는 톱질을 하다말고 미리 낸 월세는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증금도 다른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내는 쥐를 치우게 해서 떠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왜 떠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생각 좀 하면서 며칠 쉴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내는 피라니아 같은 강인한 턱과 이를 드러낸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지 마세요. 그렇게 무기력하게 사는 것은 이 땅에서 죄악입니다.
내가 떠날 때 옆방 여자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내가 떠난다고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여자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방안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밤새 어떤 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가 알겠다고 하고 돌아서는데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내가 들은 소리가 어떤 소리 인지 물었다. 그 소리는... 나는 내가 들었다는 소리를 지어내며 말했다. 그 소리는 발정 난 고양이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갓난아기가 우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그제야 여자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맞아요, 바로 그 소리에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 말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맞아요, 분명 그 소리에요.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 아니면 갓난아기가 우는 소리 같은....
맞아 꼭 그 소리가 들렸어요.
아마도 옆방여자는 내가 말해준 소리를 찾느라 정신이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어떤 소리인지도 모를 소리를.
다리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무사히 약국까지 도착했다. 약국에서 비타민을 구입해 한꺼번에 여러 알을 먹었다. 순간 난초들에게 이때까지 아무런 처방도 하지 않은게 생각났다. 약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찾을 때 까지도 해는 구름 속에 안주한 채 무기력하게 숨어있었다.
그곳을 간 지 꼭 일년 만에 나는 그 국민 관광지를 지나갔다. 다시 계절학기 강의 제안이 왔기 때문이었다. 들판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을 가 보지는 않았다. 옆방여자와 사내가 아직까지 있을지 궁금했다. 사내는 아직도 톱질을 하고 있을 것이며 옆방 여자는 소리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칠이 벗겨진 채 흉하게 서 있는 철제 안내판만 보고 차를 돌렸다. 차를 돌리는 순간 안내판 옆에 널빤지에 무언가 삐뚤은 글씨로 적혀 있는게 보였다.
열대의 왕자, 피라냐 쇼 관람료 업슴. 먹이값: 붕어, 미꾸라지, 개구리 하나당 삼천원 두 마리는 활인가격 오천원
사내가 만든 것 같은 널빤지에선 사내가 말한 상큼한 나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날씨는 .... 작년과 똑같았다. 하늘은 꾸무럭했고 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며칠째 숨어 있었다.
습기는 시간을 더디게 만들었고 공간은 덩달아 비틀리고 있었다. 하늘은 조금의 재잘거림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한움쿰의 땀을 닦으며 무기력하게 서 있다 한 가지 바뀐게 있다면 그 이상한 국민 관광지에 볼거리가 하나가 더 생겼다는 것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그런 게 전부인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