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친구가 '대봉감'을 보냈다.
우리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용케도 알고 보냈다.
이게 얼마인지 나는 잘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 가격이란 것이 내겐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저 마음으로 느꼈다.
그 친구의 우정, 배려, 감사의 마음을 말이다.
자신의 고향에서 직접 수확한 감이라고 했다.
특히 올 여름, 가을엔 여기저기서 많은 '농수산물'이 택배로 왔다.
대봉감, 포도, 귤, 고구마, 옥수수, 풋고추와 오이, 깻잎, 소고기, 참기름, 건어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모두 아무 조건 없는 감사의 표시였다.
"허허, 이를 어쩌지?"
나는 매번 '유구무언'이었다.
친구들, 선후배들이 어떻게 주소를 알았는지 몰라도(나는 알려준 적이 없었으니까) 택배가 심심치 않게 왔다.
더 사랑하고, 더 섬기며 살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선물로 온 걸 보낸이에게 다시 되돌려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번거롭기도 했지만 비용이 더 들어갈 게 뻔했다.
보낸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고.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고,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빚'이었다.
'배려의 빚'이었고 '감사의 채무'였다.
귀천하는 그날까지 행동과 실천으로 더 나누고 더 헌신하며 살겠노라고, 오늘 새벽 '큐티시간'에도 그리 기도했다.
세상은 감사와 사랑의 '공동체' 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삶의 명제'였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