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長陵)의 바람소리

장릉(長陵)의 바람소리 이재부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 간에 돈독히 지내라는 종훈(宗訓)을 받들어 봄, 가을 일 년에 두 번씩 조상의 능, 원, 묘역을 둘러본다. 문중(門中) 종친(宗親)님들이 모여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친목을 도모하며 생활정보를 공유하는 단합 행사다. 후손들의 능(陵) 참배(參拜)는 참으로 화기애애한 돈종(惇宗)의 마음을 다지는 뜻 깊은 행사다. 조상의 유적을 돌아보고 유덕을 기리며 참된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역사적 사실을 화제에 올리며 자아를 다독이는 현장 교육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비춰보는 역사 관광이다.    수회를 거듭하다 보니 관광지화 되어버린 능은 반복 가게 되고, 외돌아지고 먼 곳에 자리 잡은 능은 소원 해 진다. 숭조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먹고 즐기며 화합하는 돈종에 마음을 중히 여긴 탓이리라. 임원 회의에서 이런 점이 지적되어 이번 가을 행사는 멀리 떨어진 장릉을 참배하기로 결정하였다.     「장릉」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선시대의 능이 세 곳이나 된다. 한자(漢字)로 쓰면 다 다른 이름이다. 풀 성할 장(莊)자 장릉[莊陵]은 사적 제196호로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 4리에 있는 6대 단종 능이다. 글장(章)자 장릉[章陵]은 사적 제202호.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능이다. 원종은 1620년 양주 군장리에 처음 장사지냈다가 1627년(인조 5년) 김포로 개장하고 흥경원이라고 했다가 1632년 원종으로 추존 된 후 장릉이라 하였다한다. 긴장(長)자 장릉[長陵]은 사적 제203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는 제 16대 인조의 능이다.    장릉 중에서도 제 16대 인조대왕을 모신 장릉(長陵)과 이웃한 파주 삼릉을 참배하기로 하였다. 파주삼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원비(元妃) 장순왕후(추존) 한씨(韓氏)의 공릉(恭陵)과 제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순릉(順陵)과 21대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 진종(추존)과 그의 비 효순왕후의 영릉(永陵)이 있는 능군(陵群)을 말한다. 장순왕후나 공혜왕후 모두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이다.    파주삼릉은 다 스무 살도 넘기지 못하고 요절(夭折)한 비애의 원혼이 묻힌 능이란다. 왕가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 능원 초입부터 낙엽을 쓸고 가는 바람소리가 쓸쓸하다. 부귀와 수복을 다 갖추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슬픔을 토하는 갈바람소리가 애원의 소리로 들린다. 우수수 바람이 밀려가는데, 왜 낙엽도 쓸려가야 하는지…….    삼릉에서 좀 떨어진 장릉(長陵)에 찾아왔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권좌를 차지하기위한 투쟁이 그리도 치열했을까. 당쟁에 휩쓸린 왕가를 생각한다. 큰아버지인 광해군의 폭정을 밀어내는 반정의 함성을 생각하며 참배를 올린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당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리. 당쟁의 역사가 정치사가 아닌가. 권력 투쟁의 비화는 인륜의 도리도 망각하는가. 패륜의 길을 가면서도 명분을 정당화 시키는 말 많은 정치싸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리. 오늘도 계속되는 당쟁의 시위언어가 역사의 여울목 물소리로 들린다. 민심을 흔드는 바람소리로 들린다.    인조의 장릉을 찾아가면서 회자되는 역사의 중심 말은 “인조반정” “정묘호란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다 불행한 일들이다. 이 불행한 일은 왜 만들어지는지. 시기와 질투, 당쟁의 쓸쓸한 세상사가 냉기가 섞인 찬바람소리로 들린다. 인조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서인은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무시하고 친명정책으로 기울어 정묘호란, 병자호란 국난을 부르지 않았던가. 항복의 치욕, 역사의 찬바람소리가 장릉에서 들린다. 무상한 권력이여! 그 고독의 떨림, 밤을 지새우는 갈등이 권좌의 업적이 되는가. 흘러간 역사 속에서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보인다. 인생사 살아가는 바람소리여! (2015년 11월 6일 장릉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