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자(蛤子)에 대해서
마산합포구 구산면 면소재지는 수정이다. 수정마을 앞이 수정만으로 오래전 상당 부분 매립을 마쳤는데 부지 활용 방안을 놓고 주민들과 갈등을 빚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다. 예전 중학교 운동장이 해안과 경계를 이루어 아이들이 공을 세게 차면 바다로 날아갈 정도였다. 그 중학교는 분교로 격하되었다가 인근 현동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이전해 갔다.
합포만 바깥으로 나가면 바다에 점점이 뜬 양식장 부표가 눈길을 끌었다. 쪽빛 바다에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줄을 지은 스티로폼이다. 홍합은 광어나 돔과 같은 활어를 키우는 가두리 양식장과 달랐다. 거제나 통영 연안에 많이 양식하는 굴처럼 바다에 수하식으로 키웠다. 겨울에서 봄 사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홍합은 껍데기를 깐 살로 팔거나 껍데기째 세척해 출하하기도 했다
수정만(水晶灣)은 합포만 바깥으로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해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만은 진해만 내해라 파도가 잔잔해 양식업이 발달한 곳이다. 진해만과 이웃한 진동만에도 양식업이 발달했는데 어패류가 달랐다. 수정만에는 홍합 양식이 주종을 이루고 그 바깥인 진동만에는 미더덕과 오만둥이를 양식했다. 홍합은 조개의 일종이고 미더덕은 패각 없이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이다.
언젠가 갯가 트레킹을 나섰다가 수정을 지나니 마을 어촌계 사무실에 붙여둔 ‘대한민국 홍합 1번지’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수정만에는 부녀들이 겨울에서 봄까지 동남아 수상가옥과 같은 바지선에서 갓 건져 올린 홍합을 까는 손길로 분주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대부분 홍합이 그곳에서 생산되니 자부심을 느낄 만하고 어민들의 소득 증대에도 톡톡한 몫을 하는 듯했다.
겨울철 식당에 들리면 밑반찬이 나올 때 홍합은 껍데기 채 삶아 따뜻한 국물로 나왔다. 중국집에선 우동이나 짬뽕 요리에 홍합이 빠지지 않았다. 술꾼들은 포장마차에 들어서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합탕을 국물과 함께 맛볼 수 있다. 홍합은 음식을 만들 때 주재료라기보다 보조재로 쓰였다. 가정에서는 파전이나 부추전을 부칠 때 홍합을 다져 넣으면 풍미가 더 좋았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 조개껍질로 쌓인 홍합은 보질 못했고 ‘합자’라는 이름으로 꼬챙이 끼어 말린 것을 봤다. 제사 때 문어와 명태와 함께 탕국을 끓일 때 국물을 내고 건져 제상에 올렸다. 쇠고기 대용으로 미역국 끓일 때 맛국물을 내는데도 홍합을 말린 합자가 쓰였다. 담치나 담채라고도 하는 홍합을 말린 합자였다. 살이 붉은 조개였으니 홍합(紅蛤)이었고 말린 것이 합자였다.
합(蛤)이 조개라는 사실은 대합에서도 연상이 된다. 두 개의 뜻이 결합한 회의자이기에 왼쪽에 붙은 벌레 충(虫)이 뜻을 나타내고, 오른쪽 합할 합(合)은 음을 드러낸다. 조갯살이 붉었으니 홍합이고 조개가 컸으니 대합이었다. 엊그제 한림정역으로 나가 강변 따라 걸어 대산 들녘 지나 주남저수지까지 트레킹을 했다. 바닷가나 어시장이 아닌 들판에서 조개를 봤기에 소개해 보련다.
겨울철새가 날아와 베이스캠프를 차린 주남저수지였다. 동읍과 대산 들녘에서 북쪽의 산남저수지와 남쪽의 동판저수지 사이에 낀 주남저수지였다. 저수지 동쪽은 넓은 들판으로 벼농사 지대다. 저수지 서쪽은 구룡산이 백월산으로 뻗친 산기슭에 단감농사를 짓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산남저수지 제방 중간 들판에 합산(蛤山)마을이고, 주남저수지와 수문으로 연결된 곳이 용산마을이다.
짧은 해가 설핏 기우는 즈음 합산마을 앞을 지나니 마을 소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몇 차례 지나치면서 궁금했던 지명 유래였는데 두 가지 설이 적혀 있었다. 마을 뒤 저수지 둑과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이 조개처럼 보여 합산이라고 했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산언덕에 선사시대 묵은 무덤인 조개무지가 나와 그렇게 불린단다. 두 가지 설이 그럴듯해 고개가 끄떡여졌다. 2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