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 김민기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하나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하나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하나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1972)
감상 –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버지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중학교 때 미술반을 하고 진학도 서울대 미대로 했지만 고등학교 때 선물받은 기타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기타는 피아노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를 다니던 셋째누나가 선물해준 것이다.
미대에 진학한 후 김민기는 듀엣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로 활동하기도 하고, 양희은에게 <아침 이슬> 등 곡을 주기도 한다. 김민기는 1971년 첫 앨범을 냈지만 다음해 운동권 노래 지도가 문제가 되어 경찰에 연행되고 앨범도 전량 회수된다. <꽃 피우는 아이>를 시작해서 해서 여러 곡들이 금지곡이 된다.
1971년의 음반을 도운 방송인이자 음악평론가인 최경식은 <가을 편지>의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라디오 방송을 같이하던 고은 시인이 <세노야>를 쓰고 곡을 김민기에게 부탁했는데 김민기는 누나 친구인 김광희에게 재부탁했고, 그 곡을 자신의 동생인 최양숙이 불렀다는 것이다. 이후 <가을 편지>는 최양숙의 부탁으로 고은이 즉석에서 쓰고, 김민기가 즉석에서 직접 곡을 붙인 것이라 한다.
<상록수>는 1977년 부평의 어느 공장에서 일할 때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다. 1978년 카세트테이프로 제작된 <공장의 불빛>은 여러 노래동아리가 연주를 돕고 송창식이 녹음실을 몰래 내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원본이 계속 복제되어 나가면서 세상에 알려진 경우다.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고, 그 운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993년 <김민기 전집> 4장을 낸다. 학전의 히트작인 연극 <지하철 1호선>은 여러 스타 배우를 배출한 인기 장수 프로가 된다. 그런 학전도 2024년, 33년 만에 폐업 신고 되고, 넉 달 후 김민기도 생을 마감한다.
이상은 『김민기』(김창남 엮음, 2004)를 뒤적이며 간단하게 줄인 김민기의 연보다. 최경식은 김민기를 열 살 많은 밥 딜런에 견주기도 했는데, 실제 노랫말 하나하나가 시편으로 읽힌다. 이십 대 초반에 쓴 「아름다운 사람」은 서울대 미대 후배인 ‘현경과 영애’에게 준 곡으로 〈김민기 전집1〉에도 실렸다.
시나 노래는 제목에 비해 밝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두운 느낌은 더욱 아니다. 아름다워야 밝고, 밝아야 아름답다는 것은 속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둠을 견딜 만한 이유 중의 하나는 빛으로 연결되어 있는 데다 그 자체로 성찰의 깊이를 더해주는 면도 있어서다.
<아름다운 사람>을 처음 들으면 어떤 아름다움인가를 우선 생각하게 되겠지만 그 과정에 시상의 흐름에 질서가 잡혀있다는 게 눈에 뛸 법하다.
어두운 비- 처마 밑의 사람 하나- 맑은 두 눈에 빗물
세찬 바람- 벌판의 사람 하나- 더운 가슴에 바람
새하얀 눈- 산 위의 사람 하나- 고운 마음에 노래
병치된 구조를 보면, ‘시적 대상이 놓인 상황(외부 환경)- 시적 대상이 존재하는 공간- 시적 대상의 상태(내면과 외면)’를 반복 표현하되 모든 것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귀결되게끔 해놓았다. 매 시기 놓인 비, 바람, 눈은 시적 대상을 괴롭히는 달갑지 않은 환경에 가깝다. 시적 대상을 둘러싸고 그 안의 고립감을 강화하는 면도 있어 보인다.
그런 고독 속의 사람 하나는 처마, 벌판, 산 위로 삶의 공간을 확대해간다. 맑고 고운 성정을 지키며 개인사의 슬픔에서 오는 눈물을 흘리던 사람은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벌판의 바람에 맞설 줄도 알게 된다. 벌판의 사람 그 “더운 가슴”에서 이웃의 아픔에 대한 연민과 공감의 감정을 읽었다면, 산 위에 “우뚝” 선 사람은 자아실현 모습으로 보아도 좋겠다. 자아를 표현하고 연대를 실천하는 무기는 가슴으로 오고 가슴으로 전해질 그 사람의 “노래”일 것이고, 이후 김민기의 삶이 그러했다.
<아름다운 사람>의 “처마 밑의 하나이”에서 “하나이”를 “한 아이”로 고쳐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는 ‘한 사람’을 얘기하는 ‘하나’로 썼다고 한다. 이 점은 김민기 본인의 노래를 들어도 쉽게 분간이 안 된다. 소싯적 처마 밑의 경험을 가진 이들은 “한 아이”로 부르고 싶은 유혹이 더 클 것이고 이는 나무랄 일도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 누군가는 아이 안에 이미 어른이 들어있다고 할 것 같고 또 아름다운 사람 누군가는 어른이 부끄럽다고 아이를 고집할 것 같기도 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