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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원구(元矩)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추궁! 이진은 황당하기만 했다.
“야, 네가 뭘 착각했나본데…”
“착각은 무슨 착각입니까? 이렇게 단자(單子 : 조상의 내력이나 가계 등을 작성한 문서)에 나와 있는데!”
“단…자?”
당시 내금위(內禁衛) 수 부사정(守副司正)으로 근무하던 이진의 사위 원구는 친시무과(親試武科 : 임금이 친히 과장에 나와 지켜보는 무과시를 뜻함)에 응시하려 했던 원구는 무과 응시에 필요한 단자를 훈련관(訓鍊觀)에 제출했으나, 문제가 있는 집안이라며 서명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보자… 원구라고? 어디보자…. 어라, 너 마누라가 누구냐?”
“지금 추부(樞府 : 중추원)에 계신 이진 대감의 딸입니다.”
“호…야, 너 장가하나는 끝내주게 갔다?”
“헤헤, 제가 좀 나름 먹어주는 얼굴이잖슴까?”
“색희가 어디서 구라를… 그래, 여하튼 시험 잘 보… 어라? 야, 너네 장인 좀 이상하다?”
“예?”
“네 마누라 엄마…에 그러니까, 너 장모가 누구냐?”
“우리 장모요? 최씨부인으로 아는데… 뭐 잘못됐슴까?”
“최씨부인? 아닌데? 이진 대감의 마누라는 김씨부인으로 되어 있는데?”
“그럴리가요, 울 마누라는 분명 이진 대감의…”
“뭔 소리야. 너네 장인의 본처는 김씨부인으로 되어 있는데…. 아! 너 딱 보니까, 첩 자식이랑 결혼했네.”
“첩…자식이요?”
“본부인은 김씨부인이고, 최씨부인은 세컨드로 들어간 거네. 그리고 넌 그 세컨드 딸로 결혼한 거고.”
“아…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이진 대감의 본처인…”
“야야, 호적등본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
“안됐지만, 넌 과거시험 못 보겠다. 너네 장인이 법을 어겼거든… 어쩌겠냐? 법이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이건 명백한 사기 결혼입니다! 장인어른 때문에 제가 시험도 못 보게 생겼잖아요! 사위 출세길을 이렇게 막아도 되는 겁니까? 예?”
“아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원래 김씨 부인이 있긴 있었는데, 아 쉬파… 직첩(職牒 : 조선시대 관리로 임명된 사람에게 내려지는 증서로서 관리뿐만 아니라, 관리의 아내에게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직첩이 내려졌다. 예를 들면, 영의정과 같이 정1품 당상관의 아내에게는 정경부인의 직첩이 내려졌다) 받을 때에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왜 여기서 걸리는 거야?”
그랬다. 당시 이진의 아내였던 최씨 부인은 직첩을 받았던 것이다. 직첩이란, 본처에게만 내려지는 것이었으므로 법적으로 최씨 부인은 이진의 아내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이다.
“장인어른, 제가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요. 그럼 장인어른이 주장하시는 옛날 마누라… 그러니까 김씨부인하고는 기별(棄別 : 이혼)은 하셨슴까?”
“아니, 그게… 사는 게 바빠서…. 그게 또 법원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심까?”
“그렇게 화내지 말고… 나도 이해가 안 간다니까! 직첩까지 받았는데, 지금 와서 본처가 아니라니… 분명히 무슨 행정적인 오률 거야. 내가 확인해 볼 테니까, 좀만 기다려 봐.”
이진은 그렇게 사위를 달래며, 자신의 본처가 누군지를 여기저기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한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야! 너 친정으로 돌아가.”
“여…여보, 갑자기 왜…”
“이게 어디서 연기를 하고 있어? 너도 다 알잖아? 첩자식이 어디서 안방마님 행세를 하겠다는 거야?”
“누가 그래요? 제가 왜 첩자식이에요?”
“등본에 다 나와 있어! 너 때문에 내가 과거시험도 못 보게 됐는데 어디서 발뺌이야?”
“아니라니까요! 전, 울 아빠랑 울 엄마의 딸이란 말이에요!”
“그래, 너네 엄마가 첩이잖아.”
“아니라니까요!”
“아니든, 기든…넌 아웃이야! 당장 짐 싸서 친정으로 가!”
이진의 딸은 그렇게 원구의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원구로서도 할 말이 있는 것이 마누라의 출신성분 덕분에 출세 길이 막혔으니 원통하고 억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원구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엄마! 엄마 첩이었어? 세컨드였냐구?”
“내가 미쳤니? 멀쩡한 본처자리 놔두고, 첩실로 들어가게?”
“그런데 이게 뭐냐고?”
“나도 몰라! 네 아빠한테 물어 봐! 나도 미치겠어 지금!”
“아빠!”
두 모녀의 비명소리 앞에 이진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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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엽기인물 한국사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