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라는 단어가 있다.
한글로 '파자'라고 하면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한자로 '破字'라고 쓰면 조금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파자'는 한자의 획을 풀어서 나누는 것을 의미 한다.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었지만 과거엔 더러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를 '파자'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아무튼 '파자(破字)'는 어렵고 복잡한 한자에서 한 획씩 글자를 떼어내 설명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예컨대 '죽을사’(死) 자를 파자(破字)하면 이렇게 된다.
어느(一) 날 저녁(夕)에 갑자기 비수(匕)처럼 날아오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의미다.
긴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가 숱하게 겪는 '죽음'이나 '위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비수'와 같은 것이다.
'파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것이 곧 '죽을사’(死)란 글자의 뜻이다.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사이렌처럼 예고도 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사건사고'나 '병고'에 뒤따르는 무수한 죽음들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목도하며 살아간다.
특히 '사건사고'의 '죽음'은 그 시기와 장소를 모른 채 갑자기 당하기 때문에 더 두렵고 더 애통한 것이다.
요즘 연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나도 '연말연시'엔 조금 바쁜 체하면서 살고 있다.
실제적으로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어젯밤은 '금요일'이었다.
'신도림역' 부근 어느 일식집에서 '진즈팀' 송년모임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의 첫 팀이었다.
그러니 그때 그 형제들이 더 그립고 살가울 수밖에 없었다.
'인지상정'이었다.
일식당에 남성 여덟, 여성 하나, 총 아홉 명이 모였다.
1년간의 노고와 열정에 서로가 심심한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아주 오래 전에 퇴사하여 각각 반듯한 사업체를 이끌고 있는 두 명의 형제가 있는데 한 후배는 '부친'께서, 다른 한 후배는 '모친'께서 심각한 치매를 앓고 계셨다.
한 사람의 치매는 더 이상 그 한 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집안에 심각한 파열음을 야기시켰고 더 심하면 집안 전체에 '격동의 쓰나미'가 밀려들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치매'와 '암' 그리고 온갖 '병고'는 정말로 슬프고 아픈 상처였으며 동시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도 부모님 두 분의 소천을 온전하게 경험했기에 진즈팀 후배들의 그 마음과 지경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사랑하는 선,후배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와 위로를 전한 뒤 모임을 파했다.
오늘 아침엔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내 어머니, 그리운 '옥 권사님'의 7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3남 2녀의 형제자매들과 각각의 배우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찬송과 기도를 드렸고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추억들을 반추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 감사 또 감사였다.
모든 것이 감사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났다.
예배 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보니 바로 아랫동생의 '장모님'도, 막내 여동생의 '시부님'도 치매가 더욱 심해져 이제는 자식도 몰라 본다고 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여 엄중한 상태인 지는 몰랐다.
각자의 사정들이 결코 만만치도 않았고 간단치도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했다.
함께 웃고 떠드는 살가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모든 어르신들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진정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또한 우리 형제자매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언제나 건승하기를 그리고 마음과 정신의 균형을 잘 유지해 주기를 빌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고향에 가는 길도, 귀경하는 길도 많이 막혔다.
명절을 방불케 할 만큼 그 시즌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장거리를 왕복으로 혼자 운전하다 보니 몹시도 고단했다.
곳곳이 병목에 따른 극심한 '지체상황'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귀가해 쉬고 있는데 갑자기 친한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친구의 부친은 '약사'였다.
그 아버지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오늘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아이고, 주여"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우리들 '커뮤니티 게시판'에 부고를 올렸다.
친구들 DB를 열어 모든 이들에게 일대일로 부고를 알렸으며 조화도 주문하여 보냈다.
내일 다시 날이 밝으면 조문을 가려 한다.
늘 하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마음이 상당히 바빴다.
생과 사, 병마와 고통, 기쁨과 슬픔이 빠르게 교차하며 지나갔다.
11월과 12월.
세모 두 달 사이에 23번의 '송년모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 3할 가량은 이미 모임을 끝냈다.
안부를 나누고 한 해 동안의 수고와 땀에 대해 서로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내년도 소망을 나누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송년모임'은 그립고 소중한 자리일 터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온갖 '길흉화복'과 다양한 '형편'을 여과 없이 캐치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나무 뿌리가 더욱 깊어 지고, 삶의 가지가 사방팔방으로 넓게 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는 것일 게다.
26년도 1월부터 12월까지 예정된, 가문이나 친구 그리고 선후배 자식들의 '혼사'도 숱하게 메모해 두었다.
벌써 내년도 다이어리에 SCDL이 빼곡하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인생은 분명 기쁘고 행복한 여정이지만 때로는 몹시도 아프고 슬프며 정신 없는 여로이기도 했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죽을사’(死) 자의 '파자'(破字)로 돌아가 보자.
'생명'은 임신과 출산까지 약 열 달 동안 예정된 시간표에 따라 치근차근 진행되지만 '죽음의 사자'는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날아든 비수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각자의 방문을 노크할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렇기에 늘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며, 죽음을 예비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성실하고 알차게 살아야 한다.
각자의 삶도, 각자의 가정이나 사업장도 어느 날 불연듯 날아드는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음을 상기하면서 항상 낮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자신만의 고요한 침잠과 함묵의 시간에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면서 늘 기도하는 자세로, 예비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전운'이 감돌 때 '전쟁'을 대비하거나 '위기'가 감지될 때 비로소 '위기'를 준비할 것인가.
그땐 이미 늦었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없는 때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서도 초장수에 대한 '플랜 A'와 어느날 갑자기 귀천할 수도 있기에 그에 걸맞는 '플랜 B'를 유효적절하게 안배하여 균형과 조화를 유지한 채 최대한 즐겁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분명한 캐릭터로 각자의 삶을 향기롭게 엮어갔으면 좋겠다.
요즘 바쁘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이런저런 사유들로 인해 생각이 자꾸만 많아 지고 깊어 지고 있다.
그래서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외삼촌의 소천, 많은 어르신들의 애통한 치매와 병고, 그립고 그리운 내 어머니의 7주기 추도식, 친구 부친의 선종을 지켜보면서 더욱 그랬다.
잠도 오지 않고 '생노병사'에 대한 사유를 하던 차에 '사’(死)의 파자(破字)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보았다.
늘 그렇지만 오늘은 내가 가장 젊은 날이고 역동적인 날이며 생의 에너지가 제일 충만한 날이다.
그러니 감사한 마음으로 각자의 일상을 알차게 모자이크 해보자.
어느새 밤이 깊었고 이윽고 새벽이 되었다.
지금은 11월 23일 새벽 01시 10분 경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하루도 최고의 일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파이팅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