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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진해제 덱스트로메토르판 단일제를 소주에 섞어 마시는 이른바 ‘정글쥬스’가 청소년 사이에 번지며 사회문제가 됐다. 정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대통령령 제18078호, 2003.7.30.)해 2003년 10월 1일부터 이 성분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이후 단일제는 사라졌다. 약국에서 자유롭게 팔리던 약이 마약류가 된 이 사례는 일반의약품도 의존과 오남용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처방약 의존은 처방 단계에서 걸러진다. 그러나 일반의약품 의존은 환자 스스로 “약을 사 먹는 것뿐”이라 여기는 사이 진행되고, 이를 알아챌 수 있는 유일한 의료인이 판매 시점의 약사다. 본 편에서는 약국에서 실제로 상담이 발생하는 세 성분군을 중심으로 의존 기전과 개입 지점을 정리한다.
PART 1. 약국에서 만나는 세 가지 모습
절대다수는 ① 반복 구매형이다. 일반의약품은 구매 이력이 남지 않아 환자가 약국을 바꿔가며 사면 의존은 완전히 가려진다. 단골 약국 약사의 기억이 사실상 유일한 모니터링 수단인 셈이다.
PART 2. 성분군별 정리
(1) 비충혈제거 비강분무제
자일로메타졸린, 옥시메타졸린 등이 포함된 비강분무제는 비점막 α-수용체를 자극해 코막힘을 즉시 해소하지만, 이 즉효성이 의존의 출발점이다. 연속 사용 시 수용체 반응성이 떨어지고 약효 소실 후 사용 전보다 심한 반동성 울혈(rebound congestion)이 나타난다. 환자가 분무 횟수를 늘리며 악순환이 지속되면 만성 코막힘 상태인 약물유발성 비염으로 진행한다. 반동성 울혈은 빠르면 3일 사용에서도 보고되며, 국내 사용설명서가 1주 이내 단기 사용을 권고하는 이유다.
치료는 원인 약물 중단이 원칙이며, 장기 사용자는 이비인후과 진료를 권장하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다. 판매 시 “언제부터 쓰고 계세요?”라는 질문을 루틴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이다.
(2) 자극성 하제(변비약)
자극성 하제(비사코딜, 센나, 피코설페이트 등)에는 오래된 통념이 따라붙는다. “오래 쓰면 장이 무력해지고 내성이 생겨 점점 용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근거는 조금 다르다. 2024년 리뷰는 비사코딜·센나의 장기 사용이 장신경이나 장평활근에 구조적·기능적 손상을 일으키거나 대장암 위험을 높인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으며, 고용량에서 관찰된 표면세포 변화도 가역적이고 임상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정리했다. 국내 진료지침도 자극성 하제의 장기 복용이 대장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연관성은 명확하지 않다고 기술한다.
그렇다고 ‘마음껏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극성 하제의 진짜 문제는 대장 손상이 아니라, 반복 구매가 진짜 원인을 가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직장 출혈·체중 감소·빈혈·대장암 가족력 같은 경고 증상이 있으면 대장내시경이 필요한데, 매일 사 가는 환자가 이를 ‘그냥 변비’로 넘기면 기저질환이 가려진다.
여기에는 배변 불안으로 약을 끊지 못하는 심리적 의존도 흔한데, "장이 망가진다"고 겁주는 것은 근거도 약하고 불안만 키운다. 국내 만성 변비 진료지침에서 자극성 하제는 부피형성·삼투성 완하제로 조절되지 않을 때 쓰는 약으로 권고된다. 따라서 자극성 하제를 매일 상용하는 환자에게 약사가 건넬 말은 “위험하니 끊으세요”가 아니라 “삼투성으로 바꿔볼 수 있고, 경고 징후가 있으면 진료가 먼저”라는 방향 제시다.
(3) 수면유도제
1세대 항히스타민 수면유도제의 핵심 문제는 내성이 빠르다는 것이다. 건강 성인에게 디펜히드라민 50mg을 1일 2회 4일간 투여한 무작위 이중맹검 교차시험에서, 1일 차에 뚜렷하던 진정 효과가 4일 차에는 위약과 구별되지 않는 수준까지 소실됐다. 매일 복용하는 환자는 수면 효과 없이 항콜린 부담만 떠안고 “약을 먹어야 잘 수 있다”는 심리적 의존만 남는다.
허가사항도 독시라민은 2주 이상 투여하지 않도록 하고, 디펜히드라민은 불면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가와 상의하도록 명시한다. 고령자에서는 더 단호해야 한다. 2023년 미국노인병학회 Beers 기준은 1세대 항히스타민제를 강한 항콜린 작용을 이유로 노인에서 회피할 약물로 분류하면서, 수면제로 사용할 때 내성이 생기고 항콜린제 누적 노출이 낙상·섬망·치매 위험 증가와 연관된다고 명시한다. 상담의 핵심은 “계속 먹으면 오히려 안 듣는 약”이라는 내성 설명이며, 3주 이상 지속되는 불면은 진료 연계가 원칙이다.
PART 3. 마무리 — 판매 거절이 아니라 말 걸기
세 성분군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이것이다. 환자는 자신이 의존 상태라는 것을 모른다. 약이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믿는 동안, 약이 문제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간극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처방전 없이 약이 오가는 현장을 지키는 약사뿐이다. 개입은 판매 거절이 아니다. “언제부터 쓰셨어요?” “한 달에 며칠이나 드세요?”라는 질문 하나로 시작해, 의존의 고리를 환자에게 보여주고 다음 단계를 안내하는 것이다. 일반의약품의 문턱이 낮다는 것은 약사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1) 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정글쥬스 오명 '러미나' 우울증치료제로 환골탈태. 2022.8.
2)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대통령령 제18078호, 2003.7.30.) — 향정신성의약품 지정(2003.10.1. 시행).
3) 약학정보원. 약물백과 — 덱스트로메토르판(dextromethorphan).
4) Zeitlin J, Shermetaro C, Sutton AE. Rhinitis Medicamentosa. StatPearls. NCBI Bookshelf (2026 update).
5) Ramey JT, et al. Rhinitis medicamentosa. J Investig Allergol Clin Immunol. 2006;16(3):148-155.
6) 식품의약품안전처. 자일로메타졸린염산염 함유 점비제 허가사항(의약품안전나라).
7) Whorwell P, Lange R, Scarpignato C. Review article: do stimulant laxatives damage the gut? A critical analysis of current knowledge. Therap Adv Gastroenterol. 2024;17.
8) 신정은, 정혜경, 이태희, 외. 만성 기능성 변비의 진단과 치료 임상 진료지침 개정안 2015. 대한내과학회지(Korean J Med) 2016;91(2):114-130.
9) Richardson GS, et al. Tolerance to daytime sedative effects of H1 antihistamines. J Clin Psychopharmacol. 2002;22(5):511-515.
10) 약학정보원. 약물백과 — 독시라민(doxylamine).
11) 약학정보원. 약물백과 — 디펜히드라민(diphenhydramine) 및 수면개선 일반의약품.
12) American Geriatrics Society. 2023 Updated AGS Beers Criteria. J Am Geriatr Soc. 2023;71(7):2052-2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