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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적과의 동침 (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에 김형진이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너무 거칠게 일어났던건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과 의자가 마찰하며 큰 파열음을 내었고.
놀람에 묶여있다는 사실도 잊은채 일어서려했던 나도 우스운 꼴을 당할 뻔 했다.
김형진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창고 옆에 딸려있던 작은 컨테이너 박스 안이었는데 나를 묶은 걸로 저항을 완전히 차단했다 생각한건지 그 안에는 나와 김형진밖에 없었다.
물론 밖에 그의 밑에 있는 많은 조폭들이 대기를 타고 있을게 분명해 나도 어리석은 반항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이 나, 혹은 박규원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음은 틀림없는 사실인듯 했다.
"..........박규원?!!"
후인파의 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듯 크게 소리치고, 나는 열린 문틈 사이로 바깥 상황을 내다보았다.
박규원이 문턱에 서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후인파의 조직원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걸로 보아, 현재 상황은 단 조직이 우세한듯 하다.
바깥 상황을 보던 나는, 다시 눈을 돌려 현재 대치중인 김형진과 박규원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너무 단 조직을 우습게 본 건 아닌가 묻고싶군. 인질로 정의건을 잡은건 꽤 현명했던 방법이지만, 그대로 이 단 조직이 당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나?"
건방짐을 넘어선 오만한 그의 발언에 내가 작게 코웃음 치자 박규원의 시선이 내게로 닿았다.
그 어색했던 날 후로는 처음 보는 그의 얼굴이다.
그도 싸움을 했던건지 그의 늘 깔끔하고 반듯했던 정장은 여기저기 피가 튀기고 구겨져 그 답지 않지만, 그에게 썩 어울리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뭐랄까, 반항적인 이미지인데 귀족적이다 싶은 그의 얼굴과도 잘 맞는 차림새였다.
"게다가....... 그 인질 작전은 아마 효과적이었겠지만 정말 거슬려. 정의건이 내게 있어 어떤 사람인줄 알고도 그렇게 했다니, 정말 죽고싶어 몸이 달은 놈인가보군?"
그렇게 말하며 살기등등한 눈빛을 후인파의 보스에게 보낸 박규원은 천천히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간격이 좁아진 만큼, 나와 박규원의 관계도 좁혀졌다.
그나저나 인질 작전이라더니, 인질을 이렇게 방치해두면 효과가 없잖아?
아직도 박규원이 나타난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김형진에게 조금 질렸는지, 박규원은 옷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총을 꺼내 그를 향해 겨냥했다.
"이건 예방차원에서. 아직 인질이 남아있어 니가 허튼 짓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말했지만 그건 곤란하거든."
여전히 총구를 김형진에게 향하고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채로 박규원은 내게 다가와, 총을 들지않은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 가지고 뭘 하라는거야? 하는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 보자, 그가 대답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직접 풀어주지는 못하겠고, 알아서 좀 풀어줘. 왠만하면 내가 해주고 싶지만 저래뵈도 꽤 위험한 놈이니까."
........나또한 보통 이런건 구하러 온 사람이 풀어주는걸로 알고있어 조금 당황한 나는 아무말 않고 그를 묵묵히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내리고 내 손으로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이거, 자칫하면 베일 위험이 있는데 꼭 나를 시켜야 했단 말이야? 그것도 나를 사랑한다는 놈이?
그 사실이 꽤 화가 나 거친 동작으로 밧줄을 긋다 보니, 빠른 시간에 밧줄은 풀려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미안해, 정말로. 물론 방금 그것도 위험했지만, 혹여 내가 너를 풀어주다 니가 위험에 처할 상황이 되는건 정말로 곤란하거든......."
"알았으니 괜찮아. 그럼 이제 난 우리 동료들을 구하러 가봐도 될까?"
"아아, 그건 걱정 마. 이미 너네 동료들은 우리에게 있거든."
"......그럼 이제 여기서 나가도 되지 않을까."
그렇군, 이라고 짧게 대답한 그는 위협적으로 김형진에게 총을 가까이 하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여전히 아무말 하지 못한 김형진이 느린 발걸음으로 박스 안에서 나가고, 그 뒤를 따라 천천히 나온 나는
김형진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간 그 순간 문 옆에 서있던 단 조직원들이 그를 때려눕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
생각해보면 꽤 허무했던 쿠데타였다.
후인파와 그 연합 조직들은 단 조직을 쓰러트리지 못했고 오히려 철창 안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됐으니 어떻게 보면 흔히 말하는 정의가 실현됐는지도 모른다.
물론 가장 극악무도한 조직, 단 조직은 여전히 밖에서 나돌아 다닌다는것을 감안하면 정의가 실현됐다는 말, 그것이 적용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약간 예상 외로 박규원은 형사들을 아무말 않고, 아무짓도 하지 않고 놓아주었다.
서로 돌아갈 때까지 기절해있던 그들은 누가 그들을 데려다 준건지, 그리고 기절해 있던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모른다. 단지 후인파가 기습했다는것만 알았다.
물론 나도 그들의 틈에 섞여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기절해 있던걸로 처리되었다.
기절해있던 형사들이 왠지 몸이 쑤신다며 이곳저곳을 두드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뻘쭘히 서있던것 말고는 꽤 그럭저럭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남아있다.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박규원이 내게 품은 감정.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할 필요도 있고, 내 마음을 말해야 할 필요도 있고 등등. 여러것을 정리해야 한다.
어느새 내 손은 박규원의 번호를 누른 뒤,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다.
***
"........후, 그냥 바로 말할게. 너, 나 좋아하냐."
술잔을 손에서 가지고 놀며 눈은 나를 향한 채로 있던 박규원이 그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순간 손짓을 멈췄다.
조금 무료하다 느껴졌던 눈이 어느새 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니가 꺠달았다는 그거, 혹시 나에 대한 니 마음이........ 뭔지 깨달았다 이거냐?"
어떻게 이렇게 민망하고 쪽팔릴 수가. 내 마음을 말하는것도 아닌데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도저히 박규원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맞아. 정확히 말해서는 사랑이지. 우리가 좋아한다, 따위의 풋풋한 연애를 할 시절은 지났잖아.....?"
"그런가......"
"........그래서 니 대답은 뭐야. 내가 전에 했던 질문, 내가 했던 짓 모두 잊어줄 수 있냐는 그 질문 말이야. 그 질문의 대답도 함께 해주면 좋겠군."
"우습지 않아? 그렇게 싫어하고, 증오하고. 그렇게 눕히고 싶어 하던 상대와 이렇게 앉아서 얘기하고 있다는거."
"하나도 안 웃겨. 솔직히, 나 참을만큼 참았고 기다릴만큼 기다렸어. 더 이상 참다가는 어떻게 될 지도 몰라. 그러니 더 끌지말고 대답해."
그의 말이 정말인지, 박규원은 더 이상 참기 힘든 얼굴로 보였다. 기다리기만 하고, 참던 그 시절이 생각나는지 조금 화가 난 얼굴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작게 웃으며 어느새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웃기기도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지. 정말 그렇게 싫어서, 미국까지 간 주제 너랑 이렇게 앉아서 얘기하다니. 일단 너한테 궁금한게 좀 있다. 나 미국가고, 너 뭐했냐?"
"그런게 궁금해? 대답하지 못할것도 없지만.......... 일단 담임한테 너 어디갔냐고 물었지. 대답해 줄 수가 없다더군, 니가 비밀로 해주라했다고."
그래, 그랬지. 혹시 니가 미국까지 쫓아올까봐 절대로 가르쳐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때가 떠오른다.
"하지만 뭐, 그거 알아내는게 그렇게 힘든가..... 하하, 너 미국갔다는거 알고. 너 따라갈까 생각하다 참았어.
그때는 솔직히 내가 정말 너를 한번 깔아보고 싶어서 이러는건가, 아니면 정말 사랑인가. 잘 확신이 안 섰거든. 그래서 결심했지.
앞으로 니가 돌아와서 내 눈에 띌 때까지. 그 때동안 니 생각 계속 나고 너 잊지 못하겠으면 그건 사랑이니까, 그 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그럼..... 내가 미국으로 갔던 그 5년동안, 날 잊지 못했다 이거군? 큭큭, 조금 괜찮은 기분인데."
"..........더 궁금한 거 없으면 대답해줘. 정말 나 미치는거 보기 싫으면."
".........난, 아직 너랑 진지한 사랑, 뭐 이런거는 싫어."
단호한 내 말에 박규원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동작에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처음인가, 박규원이 먼저 내게서 눈을 돌리는것.
상대방이 먼저 시선을 돌린다는거............... 이런 기분인가?
".....하지만, 단순한 연애라면 좋지. 그래, 솔직히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니가 보여준 모습들 때문에 너한테 남아있던 안 좋은 감정 없어지고 꽤 좋은 감정 생긴거 사실이야.
진짜 신기하게도 말이야. 정말 내가 알던 박규원과 다른 사람일까, 했지. 어쨌건...... 나는 좋아한다 따위의 풋풋한 거, 좋은데 너는 싫은가?"
웃음기 가득 섞인 내 말에 다시 굳은 듯, 아래로 향했던 시선만 들어올려 나를 향하는 박규원을 보니 나는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 왠지 귀엽다.
정말 박규원 답지 않게 믿지 못해하는 저 표정. 혼자 보기 아깝다는 말, 지금 해야하는 말인것 같은데?
그러다 다시 눈을 아래로 깔았다, 다시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뭐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마저 귀엽게 느껴진다.
정말 나도 미친 놈이 되어버린걸까.
잔을 몇 번 비운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아무말 하지 않고 있던 박규원이 예의 그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곱게 접고 말했다.
".....싫을리가....... 그런데 너한테는 조금 곤란할텐데? 나랑 연애 한 번 하면, 진지한 사랑은 바로 내일 이야기가 될텐데."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지랄 마."
"너무하네. 내 능력을 뭘로 보는거야? 근데 니가 지금 그걸 지랄로 표현했다 이거지....... 후회하게 될거야. 먼저 반한 사람이 죄라고, 지금은 내가 이정도로 물러나지만 기대하라고, 정의건."
그냥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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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이런식으로 내게 되서 읽어주신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원래는 이것보다 조금 더 길고, 연애 과정이라던가 하는것들도 쓰고 싶었지만
이제 소설 쓸 시간도 별로 없을것 같게되서 이렇게 마칩니다.
조금 여운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허무하기만 한것같구요......여하튼 고맙고 죄송합니다.
다른 작가님들처럼 땡스투 뭐 이런것도 못써드려서 죄송하구요..ㅜㅜ
완결을 내서 후련하기도 하고 제대로 끝낸것 같지가 않아서 찝찝하기도 합니다만 뒤는 여러분의 상상으로 끝내주시면 좋겠네요......
다음에 만약 다시 글을 쓰게된다면 이것보다 좋은 글 쓰겠습니다..ㅜㅜ
이때까지 봐주신분들 정말 감사해요...
첫댓글 ㅋㅋㅋ 잘되서 좋은데요? ㅋㅋ
ㅋㅋㅋ 잘되서 좋은데요? ㅋㅋ
완결 축하드려요~~~^^
둘이 이뤄져서 기뻐요~~
여운이 남네요...ㅎㅎ축하드려요~~~
결말이 좀 허무한것 같기도 하지만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음에 또 뵈요
이때까지 잘봣습니다... 다음에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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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완전잼있어요 이제 이 둘 좋아하는..감정에서 사랑하는.. 감정으로의 외전 또 적어줘요적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