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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께끼는 일본산이죠 .비가.오다마.이까....
아이스께끼~아이스께끼~소리는 한낮 뙤앗볕아래 들려오면 동네아이들은
너나할것없이 께끼통 주변을 애워싼다...
10원짜리 지폐한장이 흔지않던 어린시절 이라 아버님 심부름으로 께끼둘을
사들고 ,집에도착 하나는 내입속에 하나는 아버님 등에 닭살 처럼돋아난
땀띠를 사망시키 위해 묻지른 지도 모르고 철없던 나는 하나를 꿀꺽하고
기다려본다. 이윽고..... 어머님은 아버님 등에 닭살이 없어저라 주문을 외우며 연신 문지르신다 녹아 내리는 께끼국물이 아까워, 이제나 줄려나 저제나 줄여나 인력으로 농사를 지을때라. 아버님은 이른 새벽부터 벼농사를 돌보고
한낮이 대어서야 때앗볕에 밀려들어오신다...들어오시자 마자 ..막걸리 반되만 사오니라 ,, 아버님 주량은 어제나 반병이셨다.. 두사발 드리키시며..
뒷마루 동창문을 열고 목침베게 삼아 비스듬이 누우시며 앞마당 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방한가운데로 통과하여 튓마루 턱을 넘어서 셔한 공기로
전환 낮잠에 유혹에 빠져들게한다.. 나는 그틈을 타 동네어귀에 나가동네
아이들과 멱을 감으며 퐁당퐁당 야외수영장 둥벙에서 맹호부대..1.2.3.....
아이들은 차례대로 띠어들며 퐁당퐁당 1시간가량 물속에서 술래잡기 ,누르기
잠수하여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 어느덧 뱃속은 꼬으륵 지친몸으로 집전개로
골인(부억) 솟꼬리 안에 흰국수 한덩어리 스덴 대접에 사카리 네다섯개 넣고
숟갈로 발살내면 달잘지근한 ~ 사카리물~ 거기에 국수한 뭉텅이 풍덩너어
휘~ 저으며 ,,후르르~ 짬.짬,~ 그맛 못잊어 .. 재탕 두그롯째는 첫째맛보다
떨어지지만 ~ 꾸역~ 꾸역~ 세그릇을 비워야 ~ 꺼억 하며 젖가락을 놓는다..
아이스 께끼는 용돈이 없어서 맛있었고,, 비가, 오다마. 1원에 2개.....
국산으로 해석하면 비가는 핀엿.오다마는 .눈동자 사탕.. 10원에20개
기분좋으면 하나더 끼워주며 .... 구판장 주인맘이였음...
나는 오늘 비아5일장에 마눌님은 페이스메이커 되어 나는 뒤따르는 주자되어
꽁무니 따라 짐꾼되어 나선다 ,,,,, 마눌님대 할머니 불꽃튀기는 흥정코너
할머니 고구마순 얼마예요 .? 이천원 이거 다해서 얼마예요 일만원..
비닐루 한차뎅에 일만원 이란다. 나는 그곳을 주시한다...!!
나어려을 때는 고구마는 간식,또는 점심으로 고구마순은 소먹이로 줄기는
어쩌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먹었는데 .... 일만냥이란다...
고구마.보리밥. 옥수수,된장국.먹기 실을정도로 많이 접한음식이라 손도안되는데
오늘날 웰빙 식품되어 선호하니.. 추억이라 아니할수없다...
산봉오리에 서산해 지며 니엇니엇 넘어갈때 마당한가운데 화닥 걸어놓고 아궁이에
불지펴가며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훔쳐가며 손칼국수 꾾이시던 어머님,,,,,손길 ~
~~, 아직도 멀었야며 갓난아이 젖보채듯 한그릇 떠주기를 손꼽듯 기다리던 모습
그팥죽맛은 그시절 야밤에도 이어져 이웃집 장돗대를 넘어 도둑고양이 야옹되어 훔쳐먹기을
몇번이던가 그래도 쪽박은 깨지말아야 했기에 다시그자리에 갖다놓던 죽서리
아침이면 팝죽없어 졌다며 이웃집 아주머니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담장을 넘는다
그때는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정이있었다... 익지도 않은 수박서리 해다먹던 추억....
흰뿌연연기 모락모락 피우며 마당에 편상펴놓고 그위에누워 부채로 살랑살랑 흔들면....
눈동자는 별하나 별둘,,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별...... 별사탕 꺼내먹던 껀빵....
백원에 열봉지 넣을 주머니가 없어 동네 아이들에게 인심쓰면 ...
나는우상 용돈떨어지면 빈깡통 신세.....
설날이면 때때옷 오가옷 입고 뽀드득 내발자국 동생발자국 건너마을 할아버지 댁으로
세배 큰절한번 올리면 장롱서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십환짜리 지폐한장 ....
할머니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국과. 약과.등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하시며
궁딩이 또닥또닥 거리며 내강아지들 많이 먹어라 하시던 그말씀을 우리는 지폐한장에
눈이 어두워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종종걸음을 옮기던 철부지 시절....
눈보라가 휘날리면 마을동구 밖에서~ 이까~ 이레쓰~~ 잣치기 한던모습....
호롱불 등잔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않아 김고르시던 형님.누나.들. ...
나는 거기에 턱바치고 않아 호기심에 만지작 거리면 공부나 하라던 그말씀...
동네 청년들이 군입대 하면 으레것 치러지던 송별의밤 ~~ 밤하늘에 울려퍼지던 .....
김상진의 야~야~~ 타향이 실어 고향이 좋아 .기타줄 하나없는 야밤에 들려오는
젖가락 장단은 구성지다 못해 이별의 작별을 아쉬워 하며 새벽 종소리가 되어..
똑딱선 뒷머리 노젖봉 밑에 보내는이의 전주곡 되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수색대 최전방에서 민정 경찰 제복차림의 처렁 처렁 ,링. 오까 구두발자국 소리....
아버님 저~왔읍니다 .. 하시던 큰형님의 ,멋진모습은 어린 내가슴에 우상이였고...
그모습은 고향 안방 벽에걸린 액자 한컷의 빛나던 군복차림 ,,, 군시절 마라톤으로
부대를 주름잡던 그모습이 한장의 추억되어 빛바랜 색깔로 끼워져 있다...
그한쪽에 끼어들고파 나는 울트라에 도전 완주하였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회갑에 나이인데도 앙상한 뼈만남은 농어촌 어부 모습이지만 젊은날에
그모습은 나의 우상이였고 아버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오늘도 동생들 밖에 모릅니다..
장남은 다르나보다 .. 어쩌면 ,타고난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 숨은 싸인 받아 스쳐가는 추억이였읍니다~~ |
'러너스 하이' 왜 느낄까?
장거리 달리기를 즐기는 마라톤 애호가라면 한번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고통스럽게 달린 후에 찾아오는 희열감을 뜻하는 러너스하이는 마약과 같은 중독 증세로도 유명하다.
러너스하이를 경험한 이들은 운동을 하는 것보다 운동을 하지 않을 때에 쉬이 피로감을 느끼고 불안 증세를 느끼는데,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운동에 대한 강박감을 느낀다.
많은 학자들은 러너스하이의 원인을 '엔도르핀'의 분비에서 찾는다. 흔히들 엔도르핀을 '웃을때마다 생성되는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구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엔도르핀이란 몸속에서 만들어 내는 일종의 모르핀, 즉 진정제로서 우리 몸의 고통을 완화하고 흥분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따라서 러너스하이의 겅우, 오랜 달리기로 몸이 소진되어 있는 상태에서 고통 요인을 감소시키기 위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이야기이다. 고통 요인 없이 엔도르핀만 저절로 분비되지는 않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러너스 하이는 고통을 가라 앉히고, 강한 충족감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초보자의 경우, 희열감에 도취되어 마구 질주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럴 때 속력을 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고통 요인을 잠재우려고 분비된 엔도르핀만 믿다가는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전력 질주의 70~80%의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그렇게 한다면 더욱 오랫동안 충족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참고로 러너스하이는 실내보다 실외에서, 밤보다 낮에 더 잘 나타난다고 한다. 햇빛을 받으면 활성화되는 엔도르핀의 분비체계 때문이다.
접수할 용기가 없어 박익성 회원에게 접수를 부탁했었다.1주일 정도 여유를 줄테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란다.
무조건 접수완료를 해버리라고 말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 신청완료를 했단다.
무언가 마음에서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2008년 1월 1일 부터 동마 대회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3월 16일 처음으로 중앙대회 출전.
나름대로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달림이들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회사일과 겹쳐 훈련 부족으로 이어졌다.토끼같은 새끼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면 밤 10시, 11시 화, 목 달리기가 있는 날은 하루 전 밤 12시까지 마무리를 하고 다음날 훈련에 참가, 부족한 훈련량은 집에서 직장까지 4.4km 출퇴근으로 뛰어 다녔다.아침 6분 페이스 4.4km,저녁 6분 페이스 8km 아무리 늦은 밤시간에도 밤11시, 12시까지 근무하고 나면 몸은 피곤하지만 훈련은 뺴놓을 수 없는 상황. 회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뛰고나면 하루 일과를 마치는 것 같은 개운함이 이어졌다.
그렇게 당일 코스로 동마대회를 완주하고 와서 나에게 느낀점이 너무 많았다. 내가 잠을 안자고 당일 풀코스 완주를 했다는 나 자산이 놀라웠다. 풀코스는 그것떄문에 뛰는 것 같았다.하지만 올해 풀코스는 이걸로 마무리 하고 싶었다. 부상 후유증도 있고 해서 무리하지말자 했는데, 한달 뒤 4월 17일 해남대회 하프를 뛰었는데 개인 기록을 박살을 냈음!!!^^ 그렇게 안 꺠지던 1:45분 벽이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 골인을 하고 나서 잠깐 자신에게 대견해하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회원들을 만나보니 ,단체전 우승, 개인 풀코스 우승, 첨단 날인 것 같았다. 회원의 한 사람으로써 가슴 벅차오르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4월을 마무리 하고 보니 어느덧 회사일도 마무리되어갔고, 5월에는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았다.부상 후유증은 조금 남아있지만, 무리만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그래! 이쯤에서 그 악명높다던 빛고을 울트라를 살포시 내밀
본다 , 여기서 잠깐! 2년전 내 모습을 잠시 회상해 본다.
첨마에 가입해서 훈련하는 날만 살며시 나와,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훈련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새치기 하듯 슬그머니 끼어들어 뛰던 나.그렇게 따라 뛰다 보면 뒤쳐지기 싫어 이를 악물고 뛰고, 뛰다보면 2km도 못가서 퍼지기 수십번,
지쳐서 혼자 뛰다 보면 그 허무함은 그냥 처음부터 혼자 서서히 뛸걸,. 다음부터는 꼭 그렇게 뛰리라 마음 먹었건만,
다음 훈련에 참가해보면,마음은 오늘 꼭 내 페이스 대로 서서히 뛰자,그렇게 뛰다 보면 발은 또 이미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풀이 하다보니 조금씩 첨단 회원으로 흡수되어가고 있었다. 비록 잃은 것은 족저근막염이지만 얻은 것은 너무 많다.
운동을 함으로써 얻은점을 몇자 적자면, 첫번쨰 면역력과 저항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예로 감기를 이겨내는 힘이 생겼고,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감기가 와도 이웃집에 놀러왔다 그냥 가버린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감기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두번쨰 , 건강이 좋아졌는데 왜 좋아졌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예로 신문을 보더라도 건강면부터 먼저 보게되고 음식도 어떤음식이 몸에 좋은가 등에 관심이 쏠린다.
세번쨰, 가정에 보이지 않는 미소가 흐른다. 예로 나는 청소와 설거지를 의식적으로 한다. 마누라는 난리다.무슨 남자가 설거지 하냐고 ~ 그러면 나는 또 꺠끗이 뽀도독 뽀도독 반짝 반짝!! 내가 봐도 너무 꺠끗해 , 마누라 왈:뭔 남자가 .......?하면서 빙그레미소를 짓는다.여자는 다 그런가보다~ 작은것에 미소를 ㅎ
그렇게 2년여가 흐른 지금, 난 울트라에 울 자를 꺼내기까지 되었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5.25일 지리산 종주를 끝으로 장거리 훈련 마무리. 나머지 3주간을 빠지지 말고 하루 1시간 연습량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25
월 26
화27
수28
목29
금30
토31
지리산종주
휴식
10km가볍게
휴식
10km가볍게
5km걷기
휴식
일 1/8
월2/9
화3/10
수4/11
목5/12
금6/13
토7/14
1시간걷기
4km6분페이스
10km6분페이스
휴식
10km6분페이스
휴식
어등산등산
1시간걷기
10km6분페이스(배낭메고)
10km6분페이스(배낭메고)
2km뛰고,2km걷고,(배낭메고)
10km6분페이스(배낭메고)
스트레칭&휴식
오전까지최대한 휴식
그렇게 해서 6.14일 오후 3시 회사에서 퇴근, 집에 와서 태이핑하고 이것저것 짐챙기고 나니 어느덧 오후 5시.
가까운 거리라 동마떄에 비교하면 확실한 홈그라운드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마누라가 승용차 태워줘 쌍암공원 도착.
서약서에 그냥싸인 하고 회원님들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기에 함께 기념촬영하고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회원님들 나와 있으니 기분이 들뜨기도 하다.
출발 10분전. 사회자님의 구령에 맞춰 가볍게 스트레칭도 하고 출발!!!!!
나는 맨 마지막 꼴찌로 출발하였다. 그렇게 출발선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달림이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울트라맨들에 대한 열정을 보았다. 울트라 대회를 처음 참가한 나는 일반대회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복장, 베낭, 그것들이 새삼스러우면서 이색적이었다. 저마다 그속에 무엇을 넣었을까 하나같이 깜빡이는 다 달았다. 의무사항이니까 ㅎ 아니면 가장 소중한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고예방이니까 ㅎㅎ 배낭 속 내용물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 나는 생각해본다.
출발 할 떄 마음., 골인 할 떄 마음 똑같이 담아 올 것이다. 그렇게 5km 정도를 지난 것 같다. 나는 익숙한 곳이라 6분 페이스 정도로 뛰었다. 주재경씨를 만나 같이 페이스를 맞춰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아본다.
저수지 입구까지 왔을때 나 먼저 가란다. 평소 말이 없는 사람인줄 알았지만 , 10 km쯤 왔는데 앞서 가란말이 쉽게 나온다.
예감이 이상하다. 그래도 200km를 뛴 사람인데 하지만 연습부족일수도 있다. 아무튼 가다보면 만나겠지 하며 앞서가본다.
근데 낯익은 모습이 옆을 지나간다. 불러보니 박익성씨 동생 박익수씨다. 오다가 태이핑이 잘못 되어 , 한재중학교에서 태이핑 다시 하고 오느라 설동환씨를 놓쳤단다. 뛰어 보니 페이스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따라 붙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한재골 약수터까지 서서히 뛰었다. 약수터에 도착하니 황동수, 정우성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깜빡이도 켜고, 물도 먹고 , 화이팅 한번 외치고 정상까지 걷기 시작!익수씨와 페이스 관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한재골 정상까지만 주로를 알뿐, 그 이상은 가본 적이 없다. 내리막 부터 뛰기 시작. 그떄부터 동반주가 시작되었다.
익수씨가 페이스 메이커가 되었다. 거리, 시간, 주로사항, 오버페이스에 대한 자제, 완주를 목표로 한 레이스를 계속 나에게 일러준다. 나는 내심 출발전부터 뛰다가 엉뚱한 길로 가버리면 어쩌나 ㅋㅋ 또 오밤중에 산에 오르다가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산길에서 오버페이스에 걸려 힘들어지면 어쩌나 내심 걱정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동반주가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달리는 데만 열중할 수 있었고 여유를 갖고 달리다 보니 즐거웠다. ^^
어둠속에서도 자연히 보인다는 것을 느꼈고, 직선도로에서는 수많은 깜빡이들이 반딧불이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에 잠겨보기도 하였고,구부러진 도로를 꺽어질때 불빛들이 가로수에 가려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껴보았다. 그렇게 25km쯤 도달.!
익수씨꼐서 발가락 태이핑 자리가 아프단다.어느 주유소에 들려 태이핑 다시 하고 , 화장실도 좀 가고~ 그렇게 있는데 완철이 동생이 어디선가 나를 부른다. 반가웠다. 포카리 음료 한잔 하고 있는데 다른 주자도 달려들어 연신 퍼주기 작전! 어쩌랴~
다같이 달림인데 ㅎㅎ 그렇게 또 뛰기 시작 ! 아직은 25km 지점이라 몸도 괜찮고 컨디션도 좋고 ~ 이마에 불빛 하나 의지하며 뛰는 맛도 괜찮았다. 이마에 불빛으로 나뭇잎 사이를 한번 비춰도 보고 논바닥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는 너무나 청명해서 고개들어 논바닥을 들춰도 보고 오늘 개구리 소리는 울음소리가 아닌 울트라 맨들을 위한 응원가였고 나에게는 즐거운 노래소리였다. ♬♬♪~~~~~~~~~~~~~~개굴개굴개굴개굴~~~~~~~~목청도 좋다~~~~♬
그렇게 평지를 뛰다 보니 30km급수대에 도착.
내가 제일 좋아하는 먹는 시간. 먹을 떄 만큼은 괴롭던 시간도 다 잊어버리고 차분히 먹자! 그래야 오늘 반환점까지 갈 수 있다.
초코파이, 바나나, 떡, 일단 하나씩 맛을 보고 ㅋㅋ 더 먹고 싶지만 뛸 걸 생각해서 참는다 ~
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 마누라 왈 어디쯤이냐고 묻는다. 뛸 만 하냐고 묻는다. 예썰! 대답하고 편안히 주무세요~~~
아직까진 컨디션이 좋다 . 7분 페이스 정도 유지 . 장성댐 상류를 지날때는 밤에 보는 호수도 아름다웠다. 달리면서 바라보는 장성호는 달림이들을 소리없이 응원하고 있었고 , 나는 손을 들어 답례했다.
익수씨는 계속 페이스메이커다운 주로사항, 시간계산, 등을 나에게 일러준다.나는 달리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자기도 힘들텐데 상대방을 배려하니 박익성씨 동생다웠다. 나는 답례하고 싶었다.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필요했다. 우리는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부터 시작해서 훈련할떄 느낀점, 사사로운 점, 사생활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 순간은 형제 이상의 그 무언가를 느끼면서 ..내가 마음을 열어 이야기 하면 상대방도 열어 보인다.함꼐 공유함을 느낄때 사람 사는 것이 크게 벗어나지 않다.그렇게 지루함을 달래며 뛰다 보니 곰재가 나온다. 달리면서 걷지 말아야 하는데 , 걸어야 한다는게 너무 좋고 포근하다. 걷기도 하고 야산을 구경하는 재미또한 울트라맨들만이 느낄 수 있는 권리인양 생각해본다.
곰재를 걸어 오르면서 마누라가 사준 사탕도 꺼내 옆에 사람과 나눠주고 먹으면서 올라간다. 또 내리막이 시작되 뛰어본다.
솔재를 향해 정상을 향해! 그랜드모텔 입구까지 왔다. 오르막 시작!
솔재를 오르면 오를수록 솔솔~~ 불어오는 솔재바람은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도 잊은채 나의 피로함을 한순간에 날려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환점. 솔재 정상!!
현무, 완철 아우 나명주 형님 , 반갑게 맞아준다. 너무 반가웠다. 사진 두세방 펑펑 찍고 , 무릎 꿇고 된장국 밥 먹으란다.
이 무슨 훼괘한 일인가 싶어서 거부할까 했다. 명주 형님 왈 고참이 시키면 시킨대로 해~! 네 형님! 그대로 무릎꿇고 국밥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신발도 갈아신고 속옷, 팬티도 갈아입고 , 시원~~하니 좋았다. 자봉하신 첨마 회원들이 있엇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부러울 게 없었다. 저절로 힘이난다! 반환점까지 시간이 6시 30분, 남은 거리 50km 6시간 30분 에 골인할 자신이 마음속에서 살~~며시 싹튼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힘들단다.하지만 마음에 큰 부담으로 와닿지 않는다.
밤 12시 48분에 출발 ! 다른 한 사람과 더 동반주 세명이 되었다. 독립군으로 운동하신 분이란다 . 몸무게가 95kg 정도란다.
"이제부터 아저씨도 우리를 따라붙으세요! 같이가시게요 ~" 말을 건네본다. 아저씨는 말없이 따라뛴다.
우리는 내리막 시작으로 6분페이스로 30분 뛰고 5분 걷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보니 63km지점에서 박익성, 정우성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시간에 나와 쭈쭈바와 이온음료를 건네서 맛있게 먹고 고맙다 인사하고 뛰었는데 내내~
고맙고 즐거웠다. 그러니 컨디션이 좋을 수 밖에 ~ ㅎ 그런데 신발을 바꿔 신었던 게 화근이었다. 발바닥 통증이 오더니 무릎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현무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현기 형님 골인하는 걸 보고 다시 나한테 오는 중이란다.
70km지점에서 만나잔다 . 그떄까지 통증을 참아야 했다. 악으로 참고 가자! 그렇게 뛰다 보니 통증이 무뎌져 견딜만 했다.
그래, 이렇게만 가자. 70km지점에서 갈아신게. 마음이 편해졌다. 첨마의 자봉이 아니면 내가 그지점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게 장성고가 및 68km 급수 지점 도착!
물 한모금 먹고 물었다. '앞으로 몇사람이나 갔소?" 80여명 정도 지나갔단다~나는 꼴찌로 가는 줄 알았는데 중간정도는 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완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해양조 앞을 조금 지나니 현무, 완철 두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시간이 새벽 4시 30분쯤 가리키고 있었다. 뛰는 사람 뛰는 맛에 그러려니 하지만 자봉은 그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다. 자기 피곤함을 잊은채 연신 화이팅을 외친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속으로 고맙다 . 아우들아! 여러번 외쳐본다. 수박과 빵으로 허기와 수분을 맘껏 섭취해 본다. 그리고 허겁지겁 신발을 바꿔 신었다. 부상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가볍다. 뱃 속도 든든히 채웠겠다. 완주할 자신이 있다고 하니 완철 동생 왈 지금부터 은근한 오르막 시작이라 만만치가 않단다 . 다시 또 뛰기 시작! 걷고 뛰기를 반복 , 그렇게 긴 오르막과 싸우면서 새벽공기에 흠뻑 젖어본다.
그런데 왜 자꾸 김태균의 My way 노래가 중얼 거려질까?ㅋㅋ ♬아~ 정말 높이 올랐다 생각했는데 내려다볼 곳 없네 ~
그렇게 고개를 넘나 보니 내리막길 저멀리에 컵라면 급수대가 보였다. 또 무릎을 꿇고 라면을 먹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소리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그대와 함께 거닐고 싶어요~ ♬ 나도 모르게 따라 불러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웃어 버렸다.
잠시 고통을 잊고 싶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런데 무릎꿇는 스트레칭이 아주 효과가 있었다. 울트라를 뛰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스트레칭 나명주 형님 고마워요~ㅎㅎ 한수 가르쳐줘서 ~~~~~~~?
마지막 한재골을 향해 뛰고 걷기를 시작! 저수지 밑을 통과할쯤 먼동이 트기 시작 조금 더 오르다보니 화물차 한대가 내려온다. 갑자기 끼이이익! 문이 철커덕 열리더니 회장님 내리신다. 어~~ 동한이 대단해 ! 하시며 손을 잡아준다. 사모님은 수박화채 한그릇씩을 떠주신다. 워낙 좋아하는 거라 허겁지겁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사탕도 건네받고 고맙다는 인사하고 한재골 정상향해 걷기 시작! 익수씨 시계를 보고 13시간 안에는 들어가야 한단다.
한재골 정상을 향해 걸으면서 동반주 한 세사람 동반주 세사람 모두 완주하면 목표했던 점. 자신과 약속했던 점. 주머니에서 사탕 꺼내듯 하나씩 이야기 보타리를 풀어본다. 한 사람 딸과 약속을 했다며 전화가 온다.
그떄까지 잠을 안자고 아빠 어디쯤이야? 괜찮냐고 묻는다 완주 할 수 있다 하니까 아빠 옷 선물한다며 이제 자야겠단다. 익수씨는 아들과 약속했단다 13시간 안으로 완주하기로 나는 무엇과 약속을 했나. 순간 되돌아 본다. 비록 딸과 아들에게 구체적인 약속은 없었지만 완주한 자체만으로도 그 무엇인가를 느낄 것이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의 약속.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한재골 정상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비축하며 힘차게 걷고 있다!
따르릉~ 전화가 온다 , 현무 완철이 아우들이 정상에 기다리고 있단다. 알았다고 끊었다. 익수씨가 시계를 보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13시간 안으로 골인하기 힘들단다. 정상에서부터는 무조건 6분페이스를 유지해야한단다.
드디어 정상. 두 아우를 뒤로 하고 출발! 내리막이라 잘들 뛴다.
나는 내리막에 약하다. 약 2km정도 내려왔을까? 무릎과 허벅지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세사람 중에 내가 계속 처진 느낌이다.
이제는 고통을 느낄 여유가 없다. 참고 뛸 수 밖에 그러나 맘 한구석은 내리찍으면 부상이 오래간다는 생각이 뇌리를 떄린다.
그렇게 고통을 받아들이며 뛰다 보니 저수지 앞까지 왔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내리막만 아니면 평지든 오르막이든 자신있다
익수씨와 거의 10m 정도 떨어졌다. 약간의 평지에서 따라붙었다. 그 사이에 한사람은 거리가 멀어졌고 어쩔 수 없다며 먼저 인사하고 고맙다고 답례한다. 다음에 꼭 첨마에 가입하겠노라고 그렇게 뛰고 있는데 순길이 형님 정채형님 둘이 사이좋게 걷고 있다.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 하며 탄력받은 자동차모냥 치고 달려본다 . 사거리쯤 왔을떄 너무 빨리 왔단다.
5분 페이스로 뛰었단다. 어쩐지 숨이 넘어가기 일보직전이었다. 2분정도 걷고 물 한모금 마시고 6분 페이스로 뛰어본다.
훨씬 부드럽다. 지금까지는 즐거운 울트라였다면 이제 남은거리는 13시간안에 골인하기 위한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익수씨와 나는 지금까지 동반주였으나 이제부턴 경쟁자가 되어 거친 숨소리만 들릴뿐.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7km 남은 지역 삼거리에서 마지막 주최측 서비스 쭈쭈바 뚜껑 따서 달려와 주자에게 건네주는 배려가 너무 좋았다.
쭈쭈바 먹고 걸으면서 시계를 보니 6분 페이스만 유지하면 13시간을 5분전에 골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원초등학교부터 다시 6분페이스로 뛴다. 1km쯤 가니 또 회장님이 마중나오신다. CJ우회전 드디어 직진코스에 진입
좌회전 우회전 남은거리 노면표시 1KM, 시계를 보니 12시간 50분! 한재골 정상에서 시계를 보니 5시 20분. 남은 거리 약 16km 6분 페이스 이상을 유지해야함. 마지막 그 압박감은 서브쓰리 주자를 연상케 하는 긴박감이었다.
끝으로 자봉해주신 회원님들 덕택에 제가 완주할 수 있었고 첨마 회원여려분들이 있었기에 울트라에 도전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첨마 회원의 한 사람으로써 여러 회원여러분들이 읽어보시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함께 공유해보시고 , 문장이 서툰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고 ,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면 활짝 웃어주세요 . ^^
한번 웃으면 10년을 더 달릴 수 있습니다.
첨마 화이팅!!!!!!!!!!!!!!
접수마감까지도 망설였던 울트라.
장거리 달리기가 3월 18일 동아마라톤으로 끝이었는데 50k도 아닌 100k를 과연 기권하지 않고, 큰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을까?
막걸리 먹을 때는 해볼까?, 술이 깨면 고민.
에라 모르겠다. 해보자. 접수마감 몇일전에야 덥썩 등록하였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보자 .
클럽의 지리산 당일 종주에서 왕복종주로 바꾸고, 불태산과 병풍산도 빠른 속도의 산행으로 바꾸었다.
연습 부족의 아쉬움이 있었으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 쎄미 식이요법도 실시하였다.
배낭을 꾸리면서도 먹을 것을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알사탕 5개, 젤리 5개, 카보샷4개,캔 이온음료 1병, 한재골 넘어올 때 먹을 꿀물 1병, 물 담을 빈 용기1개만을 넣었다.
걱정이 되어 울트라 선배님(한샘, 임샘)에게 자문도 구하고
드디어 결전의 날!
오전부터 미리 잠을 자 두려 노력해 보았지만 눈만 말똥 말똥거린다.
5시 20분에 공원에 도착하니 격려차 클럽 회원님들이 많이 모여 있다.
5월 지리산 중주때 찍은 클럽의 다섯 미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주면서 힘을 전해준 노미옥 부회장님과 양희라, 황국장님의 격려품을 지급받고 6시 정각에 출발.
한재골 오를 때는 무조건 걸으라던 한선생의 조언을 깊이 새기면서 후미에서 6분페이스로 달린다.
9.9k인 원촌 사거리까지 1시간이 소요되었다. 혹시 내년에도 도전하게 될지 몰라 구간당 소요시간을 기록할 메모지를 준비하였다.
한재골을 오르면서 보니 많은 분들이 걷고 있어 느린 속도의 달리기와 빠른 걸음의 걷기로 올라가다보니 꽤 많은 분들을 추월했다.
약수터에서 황국장이 떠준 병풍산 진기가 듬뿍 담긴 약수 1잔 마시고, 빈 용기에 물을 조금 채운 후 계속 올라 정상에 서니 1시간 40분이 걸렸다.
내일 아침에 다시 힘들게 올라오게 될 한재골 정상에 준비한 꿀물을 숨겨놓고 출발.
내리막길을 다시 조심스럽게 달려가면서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고 몹시 길어 내일 아침 이 길을 다시 오를 때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 80k 지점인 연동마을을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을련지.
많은 앞선 주자를 추월하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제1CP인 백양사 앞이다.
많은 분들이 자봉하고 계시고 대회장이신 고화중님이 반갑게 반겨준다.
도착시간을 적으려 메모지를 꺼내려는데 아뿔싸! 지퍼가 열려 있지 않는가.
기록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나나 2조각을 먹고 물을 조금 넣은 후 바로 출발하여 곰재를 향했다.
깜깜한 밤에 적막한 시골길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생활을 더듬어 보는 맛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를 자랑하던 임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어릴 때 편상에 누워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죽석 부채로 모기를 쫒던 추억 속에 젖어 몇km는 가볍게 갈수 있었다.
완만한 경사로만 여겼던 곰재가 왜 이리도 긴지.
준비한 파워젤 하나를 먹고 곰재 정상까지는 느린 속도이지만 달려서 올라 가고 1명을 추월.
주유소에 들러 머리와 무릎에 찬물을 부어 식히고 단숨에 백양사역 사거리에 도착.
굴다리가 나타나 일단 통과하니 길이 많아 헷갈린다.
오른쪽으로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고 왼쪽엔 톨게이트가 있는데 직선길을 선택하여 달리다가 혹시 몰라 운행중인 차를 세워 다시 확인하고 출발.
방장산은 속도를 좀 줄여 느린 속도로 달려 올라 가면서 2명을 추월.
느린 속도라 해도 달리기는 너무 힘들다. 작전 변경.
흐흐 하하! 흐흐 하하! 고개를 숙이고 150번 호흡수 만큼 달리고 20번 호흡수 만큼 걷기를 반복하면서 오르다보니 어느새 양고살재 정상(45.6km)에 도달하게 되었다.
정상에서는 고창에서 왔다는 아마추어 농악대의 흥겨운 농악소리와 애절한 창소리가 힘들어 하는 달림이에게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맥주한잔 허실라유”
정겨운 북도 말씨에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1위는 고창사람이라 자랑하면서는 난 5위라 한다. 뜻밖이다. 많은 주자가 앞서 간줄 알았는데
방장산 내리막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고창읍의 야경은 장관이었다.
시원하고 상쾌한 산바람은 그동안의 힘듬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산에 미쳐 산속에서 몇 날을 해먹에 누워 맑은 하늘의 별과 달을 보면서 주어진 나의 생활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던 옛날의 추억이 새삼 그리워진다.
적막한 산속에서 밤을 보내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산행의 맛과 지금의 이 맛은 색다르면서도 일맥 상통한 부분이 많은것 같다.
울트라는 울트라대로 새로운 맛이 있다고 이야기 하던 임선생이나 설동환총무가 이 맛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보다.
내리막길도 잠시.
다시 계속된 오르막길이다.
처음에는 방장산 오르막과 같은 방법으로 올라 갔으나 힘이 들어 100번 달리기, 20번 호흡으로 다시 수정.
고개 몇 번 숙이고 긴 한숨을 몇 차례.
드디어 50.1km 체크포인트인 솔재에 도착 ( 총 5시간 01분정도 소요)
된장국에 밥을 말아줘 두 그릇이나 먹었다. 누구는 밥 맛이 없다는데 난 왜 그리 된장국이 맛있던지.
스트레칭과 근육 맛사지를 한 후 물을 보충하고 7분만에 출발.
출발할 즈음에 4명의 주자들이 힘들게 올라 온다.
지금까지는 km당 6분대였는데 남은 절반의 거리를 어떻게 달리게 될지 경험이 없어 걱정이 된다.
시골길을 지나면서 개짖는 소리에 혹시나 쫒아오면 어쩌나 자꾸 뒤돌아봐진다.
농수로로 흘러가는 물로 머리와 무릎에 찬물 한번 끼얹고 전열을 재정비해본다.
2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날 무렵 차가 멈추면서 필요한것이 없냐고 묻는다. 박익성님이다.
스포츠음료를 조금 공급받고 힘을 받는다.
또 잠시 후 김현무,임완철님들이 나타나 또 힘을 전해 준다.
자기들의 생활도 있을건데 이렇게 이 늦은 시간까지 자봉해주는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미안하고 고마우면서 내가 첨.마 소속임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힘을 많이 받았는데도 굴다리가 있는 부근에서 한분에게 추월당하였다.
피로가 갑자기 몰려온다.
준비한 제리와 사탕을 먹으면서 저 사람과 거리를 100m이상 벌리지 말자.
잠시 후엔 불빛만 놓치지 말자.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장성읍 3번째 체크포인트에서 물만 조금 배급받고 앞선 주자를 의식하면서 나도 출발.
보해소주를 조금 지나니 고가 도로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75km지점인 야은3거리를 지날 때까지도 km당 6분 페이스였으나 그 이후에는 6분30초로 많이 떨어졌다.
나명주님과 정우성님의 힘을 받으면서 경사도가 완만한 꽤 긴 언덕길을 텅 빈 마음으로 달리니 어느덧 정상에 도달하였다.
여기서 다시 김현무, 임완철님의 써비스를 받고 사진도 한 장 찰칵.
78.8km 지점인 월성리 사거리에 도착하여 컵라면 한그릇 뚝딱.
그런데 라면발이 고무줄 같다.
잠시 누워있다가 온갖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은 다하고서 출발.
“남은 거리 20k중 5.5k정도만 고생길이고 나머지는 나에게 행복을 주는길이 잖아”.
“이젠 모든 고통은 5.5k에서 끝나고 나를 재발견할 수 있는 뿌듯함을 전해주는 길이 눈앞에 있잖아” 라고 몇 번이고 최면을 걸어본다.
육체의 반응에 나의 의지가 얼마나 버텨나갈지?
마지막이다.
연동마을 저수지를 지나 한재골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텨본다.
그러나, 조금 달리면 다리의 모든 곳에서 반응이 온다.
고개를 쳐박고 달리다 걷기를 몇 십번 반복.
갑자기 눈앞이 훤해진다. 한재골 정상이다.
이야! 이야! 이야!
나 자신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눈 앞에 훤하게 펼쳐진 시내 야경의 황홀함은 첫 썹-3 때의 진한 감격을 전해 준다.
저기 저기에 나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꿈을 끼고 있을 이 새벽 시간에 높다란 산봉우리에 올라 나만의 감격을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은 뛰어보지 않은 사람을 정녕 모르리라!
한번 느껴 보시라!
출발할 때 숨겨놓았던 꿀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 심호흡 한번.
이제부터는 이까이 것 이젠 꺼-엄이여...
좌우로 두 팔을 벌려 날개짓 하면서 내리막길을 단숨에 달려 약수터에 도착하고 물 한 바가지씩 머리와 무릎에 부어 열을 식히고 출발.
그러나, 가깝게만 여겼던 공원이 왜 이리도 멀던지.
지금부터 상상법으로 달려보자.
헬스장 런닝머신에서 경험했던 호흡수와 거리를 연관지으면서 거리를 줄여본다.
1km당 4분 페이스이면 호흡수 180회, 5분 페이스이면 200회정도, 6분 페이스이면 230회정도였던 경험으로 240회로 맞추고 달리니 거리가 금방 금방 좁혀진다.
마지막 2km부근부터 나명주님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공원에 도착.
임완철, 김현무님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면서 골인.
정말 꿈만 같다.
등록한 후부터 과연 100k를 무탈하게 뛸수 있을까? 얼마나 걷지 않고 뛸 수 있을지? 기록은 얼마나 나오게 될지?
걱정 걱정하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 쎃다가 지우기를 수십번.
밤만 되면 이 시간쯤이면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이 시간쯤 달렸을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생활했던 것이 어제까지 였는데.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 걱정이 태산 같았으나 그래도 무탈하면서, 많이 걷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클럽 회원님들의 많은 격려와 헌신적인 봉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번 자봉해주신 회장님부부 및 여러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첨단 마라톤 파이팅!
사람들은 내게 왜 10km만 뛰냐고, 이제는 풀코스에 도전해볼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하는 말 "저는 인생은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데 마라톤은 굵고 짧게 끝내고 싶거든요."
그렇게 얼버무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반문해봅니다.
"인생은 굵고 짧게, 마라톤은 가늘고 길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고작 10km를 뛰고서 마라톤을 한다고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풀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구요?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는 법인데 제 나름대로 이유가 왜 없겠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보아도 결국 마지막 변명의 귀착점은 제게 열정이 없기 때문이겠죠.
마라톤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부록 정도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시인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고픈 마음이 제 발길을 가로막기에 저는 10km 달리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
언젠가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산악인 박영석씨의 책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상 공격에 나섰던 후배 하나가 마처 내려오지 못하고 비박을 하게 됐답니다. 고산등정에서 비박이라는 건 악천후 등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암벽 등에 기대 하룻밤을 지내는 일을 말합니다. 산악 관련서를 읽으면 심심찮게 비박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아마도 고산 등정에서는 가장 힘든 일인 듯합니다.
그 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겠죠. 두세명이 서로 몸을 비비며 비박해도 힘들 텐데, 혼자서 그 밤을 새웠으니 오죽했겠어요? 나중에 산에서 내려온 후배는 너무나 추워서 밤새 어두운 골짜기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그 다음에는 또 그 충동이 너무나 유혹적이어서 이겨내느라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더랍니다.
영하 40도의 히말라야 산중에서 밤에 일어난 일이니 해발 100m도 안 되는 곳에서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이해하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겠죠.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고통이 극대화되는 지점에 이르면 오직 한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건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히말라야 발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은 그 높은 봉우리 근처에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욕망은 그 정도가 다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는 것은 자신이 안전지대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극지의 인간은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합니다.
어떤 마라토너는 왜 달리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35km를 넘어서면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결승점까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 그 한 가지 생각만 할 때, 주자는 어떤 안전판도 마련해 놓을 수 없습니다.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고, 다른 선택 사항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 풀코스를 뛰는 마라토너라면 다들 경험해본 느낌일 것입니다.
이번에 울트라에 도전한 사람들도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안전판이 없는 극한 상황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에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합니다.
저처럼 용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은 그런 극한 상황에 제 몸을 들이밀지 않습니다.
오직 살아남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 결승점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런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일.
히말라야에서의 비박을 그저 상상속에서 경험해보듯 밤새 100km를 뛴다는 것 역시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몸으로 이겨나가야 하는 극한 상황에 용기를 가지고 뛰어든 당신!
그리고 마침내 극한 상황을 이기고 결승점에 들어온 당신!
당신은 위대합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 있기에 첨마는 행복합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당신에게 영원히 기억될 역사의 한페이지를 함께 채워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 담아 이 글을 씁니다.
오경민 누님 이왕이면 시상식때 첨마 유니폼입고 찍사에게 찍혀으면 우리 첨마도 더욱 멋있었을 건데 쬐금 아쉽네요.
(고생하신님에게 참 못할소리를 하네 짜식)
멋진 모습이 있어서 사진 올려봅니다..
첨마회원들이 화순 도로를 달리던 지난 10월 19일에 저는 부천 복사골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답니다.
왠 부천이냐구요?: 저희 시부모님이 부천에 살고 계시거든요. 마라톤대회 입상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드릴때면
"언제 응원한번 가려고 해도 멀어서 갈 수가 없구나. 서울에서라도 하면 새벽에라도 일어나서 응원가련만..."하고 아쉬워하셨는데 마침 부천에서도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더라구요. 비록 마라톤대회라 이름을 붙이기에는 민망스럽게 5km,10km 단 두 종목밖에 없었지만 10km만 뛰는 저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게 3가지 있었는데,
1.하프나 풀이 있으면 잘 뛰는 사람들이 분산될 수 있는데 5km,10km밖에 없다보니 선수들이 10km에 몰릴 수가 있다는 점.
2.전년도 입상자 기록을 봤더니 39분대 뛰는 사람도 있어 내 기록으로는 겨우 3등정도에 턱걸이할 정도로 꽤나 수준 높은 대회라는 점.
3.코스때문에 뛰는데 무척 힘들었다는 전년도 참가자들의 후기로 봐서 경사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그러면 항상 평지에서만 연습해온 내가 불리하다는 점.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선뜻 내키기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부모님 계신곳에서 한번은 뛰는게 좋을 듯 싶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일요일 아침!! 10시에 출발한다기에 시간맞춰 갔더니 참가인원이 4500명이라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오더군요.
하프와 풀이 없는 대회치고는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니어서 내심 긴장이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사람들 면면을 훑어보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내 앞을 '휙~'하고 지나가대요. 김영아였습니다. 주최측에서 대회홍보차 섭외했겠지요.
"설마 김영아가 이곳까지 왔겠어?" 반신반의하며 참가자 명단을 훑어보던 남편이 "자기, 순위 하나 뒤로 밀려나게 생겼네." 말하는 순간 3위안에 못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이제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한 탑브라에 핫팬츠차림의 김영아가 단상에서 스트레칭을 주도하는 모습은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출발시간. 긴장을 풀어주는 심호흡을 하며 '탕~'소리에 맞춰 출발을 했는데 아뿔싸~ 이게 뭐랍니까?
늦게 달리는 사람들이 앞에 서 있었던지 빨리 나가려는 사람과 뒤엉키는 와중에 제가 넘어져버린 겁니다.
넘어진 저를 피해 사람들은 달려나가는데 저는 무뤂이며 어깨, 얼굴까지 찰과상을 입어 시큰거리고 번호표도 옷핀이 뜯어져 달랑거리니 망연자실해서 잠깐 멍하니 있었습니다. '포기해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제가 넘어진 것은 꿈에도 모른채 앞쪽 출구에서 이제나 저제나 제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계실 시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몸을 추스리고 번호표를 대강 달고 달려가니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예상보다 늦게 나온 나를 보며 어서 빨리 달리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500m쯤 달려나갔을까~ 한무리의 선두그룹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너명의 여자들을 젖히고 나니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덧 제 앞에는 김영아와 또 다른 여자 선수 1명만이 있었습니다. 다른때 같으면 한참 앞서가서 가물가물해야 할 김영아가 바로 코 앞에 있다는게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낯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출발선상에서 가까이 봤을때 이곳저곳에 군살이 많이 붙어있어 '몸이 안 좋아서 훈련을 등한시 했나 ?' 스치듯 했던 생각이 떠올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래도 설마 이정도 일줄은 몰랐죠.
조금 속도를 높혀 김영아를 떨어뜨리고 나니 그때부터는 한여자와 저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키는 155cm정도 될려나? 몸집도 저처럼 갸날픈데 보폭이 좁은 대신 걸음이 빨라서 잡힐듯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앞선 때도 몇번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악착같이 달려서 제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달리니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기'처럼 저를 애태우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코스는 또 얼마나 힘든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산길 1km를 달릴때는 달리는 게 아니라 숫제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속도 내기가 힘들더군요.
산악마라톤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나명주씨가 제 말을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거예요.
" 산악마라톤 뛰어봤어? 안뛰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
오르락 내리락 아무리 힘든 코스라도 끝은 보이는 법!!
마침내 트랙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힘을 내야되는 순간이 된거죠.
'마라톤의 꽃은 트랙에서의 순위경쟁이라지.그래, 가뿐 숨 몰아쉬며 젖먹던 힘까지 내서 달려보자.' 보폭을 넓게해서 달리는데 그여자라고 저와 같은 생각을 안했겠어요? 안간힘을 내서 달리는 그녀를 보니 '아무래도 2등인가보다.' 체념이 되면서 서운한 맘이 불쑥 들대요.
이제 코너를 돌아 직선거리로 들어서니 남은 거리는 20m!! 피니쉬라인에서 줄을 잡고서 일등이 빨리 들어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마지막이다.자~ 오경민! 조금만 힘을 내.넌 할 수 있어. 어서 박차고 나가.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잖아~"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마지막 스퍼트를 했더니 테이프를 가장 먼저 끊은 사람은 그여자가 아닌 바로 저였습니다.
당연히 일등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여자의 당혹스런 얼굴과 짧은 순간 일등을 제끼고 가장 먼저 들어온 나를 보며 미처 감격해할 사이도 없이 멍하니 서있는 남편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는 비장한 각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시부모님의 찬사가 뒤따른 건 물론이죠. 제 몰골을 보고 그때서야 넘어진 걸 아시고는 안쓰러워 하시며 오른쪽 눈 아래는 흉터가 생길지도 모르니 신경써서 치료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10km 를 뛰는 사람과 풀코스를 뛰는 사람이 고통을 경험하는 양은 다를지 몰라도 그 안에서 배우는 건 같다는 게 이번 대회를 뛰면서 가져본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라는게 뭐냐구요?
1.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부단히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국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2.어느 대회에서나 다크호스는 존재하므로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3.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으므로 미리 포기해서는 안된다.
마치 인생살이가 그러한 것처럼...
인생은 영원히 머무는 것에서가 아니라 스쳐가는 것을 통해서 배운다는 말이 있더군요.
스쳐가는 순간들에 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배움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말이죠.
"내안의 존재가 내는 소리를 주의깊게 들어보라. 그러면 아무리 짧은 거리를 뛸지라도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다"고 감히 말해보렵니다.
풀코스 뛰는 사람들은 철모르는 소리 한다고 야단을 치겠지만 말이예요.
올해로 첨마가 창립 10주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허허벌판이던 첨단은 지금 광주에서 가장 번화한 신도시가 되었고, 첨단과 맥을 같이한 첨단마라톤도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되어 광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라톤클럽이 되었습니다.
10년 세월을 돌이켜보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첨단마라톤은 2002년 4월 김병렬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회원들 30여명이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창립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첨단에 큰 건물이라고는 KT밖에 없어서 중심가를 질주하며 달려도 걸리적거리는 게 없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2003년 2기 김용석 회장을 모시고 회원수 50여명으로 발전해서 그 위세에 걸맞게 제1회 첨단건강마라톤대회를 개최하여 1300여명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행사를 치루었습니다.
대회를 알리느라 전 회원들이 하남 사무실을 일일이 방문해서 홍보전단을 돌렸다는 얘기를 저는 나중에 전해들었답니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창립 2년만에 치뤄진 행사임에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요?
2004년 3기 김범석회장이 취임하였으며 춘천대회에서 김기로님이 처음으로 서브3를 달성합니다. 첨마에서 처음 달성한 서브3였기에 회원들 모두가 자기 일인양 기뻐했었죠.
저 개인적으로는 마라톤 입문 3개월만에 10km에 출전해서 2위 입상을 하였습니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그 떡잎이 자라 이젠 첨단에 없어서는 안될 재목이 되었네요. 후훗~~자화자찬이 너무 심했나요?
2006년 5기 김성년회장이 취임하여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10km만 뛰던 김성년 회장님이 회원들 앞에서 꼭 풀을 뛰겠노라 약조했는데, 꾸준히 훈련한 결과 3시간 30분대의 좋은 기록을 달성한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하지를 말고, 약속을 했으면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 생각됩니다.
2007년 첨마 지휘봉을 잡았던 윤석포회장님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김대식 회장님이 지휘봉을 넘겨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해는 첨마가 연합회회장직까지 겸임을 했던 터라 첨마회장 교체가 연합회 전체 차원의 일이 되어 난감했습니다만, 덕분에 회원들이 더욱 단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해 김용석,장현기님의 서울대회를 필두로 섬진강대회에서 장창균님이,고성대회에서 진교설님이 서브3를 달성하여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물론 풀코스를 완주하는 자체가 마라토너로서 영예롭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찾는다면 서브3를 달성할 때가 아닐까요? 특히 김용석, 장현기님 두분은 5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고의 훈련과 노력, 심지어 식이요법까지 병행했음을 알기에 그 소식을 들으며 우리 모두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교설님은 첫풀 기록이 4시간 30분대였는데도 8번째 도전만에 서브3를 달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달리기에는 꾀나 술수가 통하지 않고 오직 노력만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2008년 7기 김용석회장의 주도로 함께하면 즐겁다는 구호를 외치며 내실을 다졌습니다.
그 결과 그해 해남 대회에서 오경민님 10km 여자부 2위, 정창균님 풀코스 남자 1위, 남자 5인조 하프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아마도 첨마 창립 이래 가장 경사스런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했던 이가 천재 복서 알리였다면, 타고난 마라토너 정창균님은 마치 한마리 나비인양 42.195km를 나풀나풀 날아와서 벌처럼 잽싸게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는데, 그 모습이 동네 마실 다녀온 듯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어서 회원들의 감탄사를 자아냈습니다.
2009년 8기 한상도회장님이 추대되었으며, 첨마에서는 처음으로 30대 두사람이 서브3를 달성한바 그 이름도 찬란한 김기출,임성길님입니다.
김기출님은 동아에서 서브3를 달성함으로써 첨마의 영원한 훈련팀장으로 자리매김 할 수가 있었고, 임성길님 고향 영암군 금정면에서는 서브3달성 축하 플랭카드가 한달동안 나부꼈음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합니다.그 현수막은 아마도 서브3가 뭔지도 모르는 시골 어르신들에게 사시 합격 못지않게 달음박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켜 드리지 않았을까요?
2010년 9기 박익성회장님이 추대되어 전 회원이 해남대회에서 하프를 동반주 하면서 함께하면 즐겁다는 것을 체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김원용님의 서브3, 그리고 첨마의 울트라맨 설동환님은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 200km를 5위로 골인함으로써 첨마인의 근성과 끈기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직장내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던 김원용님은 첨마에는 뒤늦게 합류했으나, 월등한 실력으로 강호의 고수들이 각축을 벌이는 하프와 풀에서 수차례 입상을 하며 첨마의 위상을 드높혔습니다.
2011년 10기 김종구회장님의 진두지휘하에 10주년에 걸맞는 첨마가 되도록 회원들이 하나로 뭉쳐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비아초등학교에서 10주년맞이 창립기념일 행사를 하였고, 곡성에서 서용석님, 순천에서 이형근님, 고흥에서 김길범님과 박춘열님이 첫풀 도전에 성공함으로써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서용석,이형근님은 고향땅에 첫풀의 발자취를 남김으로써 더욱 더 의미있는 완주가 되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단체투어가 아닌 개인대회에서 첫풀에 도전한 김길범,박춘열님 두분은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리며 마의 38km 지점을 힘들게 넘었다고 하더군요.
12월 연합회 대회는 김종구회장님과 정우성사무국장님이 입술과 발이 부르트도록 뛴 결과 역대 어느 대회보다 성대한 대회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대회를 주도한 팀답게 김원용님 하프 2위, 양희라님 하프 3위,오경민님 10km 1위를 차지하여 광주에 첨마의 기개를 드날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을 반추하고 나니 앞으로 다가올 첨마의 10년이 궁금해지실테죠.
첨마의 미래를 그려보매 지금보다 더 발전되어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왜냐면 첨마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신입들 특히나 젊은 세대들이 끊임없이 영입될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첨마호의 엔진이 되어 힘차게 이끌고 갈테니까..
첨마인들이여!!과거가 화려한 사람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이 되어라!!!
첨마의 미래를 기대하며 이만 연혁보고를 마칩니다
무안대회~참으로 감격스러운 하루였다. 다시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소중한 하루 정말 눈물겹도록 행복하다.
추석에 어머니~아버지께 무안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는데 시간 되시면 오세요..사실 그냥 빈말이였다.
매주마다 농사일로 모임으로 바쁘신 부모님께서~ 구경삼아 응원하러 오시진 않을거란 생각이였다.
혹시 몰라 이틀전에 설마 하면서 전화 드렸더니 막내아들 막내며느리 대회 나가는데 열일 제치고 응원 오신다며 더욱 나에게 힘을 주신다. ㅎ ㅎ ~아 막막했다. 예전처럼 잘 달리지도 못하는데...보여 드릴게 없는데 ...연습도 게을리 했는데...
입상이라도 해서 선물이라도 안겨 드려야 응원 오신 보람도 있으실터인데...앗~비상이다.
피니쉬 라인에 부모님께서 보고 계실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 같다.
남편을 졸라 거금 13만원을 들여 대회용 운동화도 마련했다. 남편~~ㅎ ㅎ 순순히 사준다.
대회 전날 시골에 도착하니 부모님께서 저녁밥으로 고기도 구워 주시고 새벽녁에 일어나셔서 손수 준비하신 아침상도 차려 주신다. 먹고 힘내라고....너무 감사했다.
10킬로 출발라인에~오랜만에 뵙는 김종수 선배님이 계신다. 52분에 달리신다며 같이 달리자 하셨다.
그말씀이 넘 감사했지만 난 그시간에 자신이 없었기에 괜히 나땜에 힘드실까봐 일단 혼자서 먼저 달렸다.
몇발짝 뛰었을까~느낌이 바로 내뒤에서 오시는 분이 김종수 선배님이시다.
2킬로를 지나면서 아~~역시 오늘도 넘 고통스럽고 힘들구나. 내가 왜 또 달리고 있는걸까~~힘들어 할때마다.
선배님이 옆에서 힘을 주신다. 벌써 3킬로 왔네...벌써 5킬로까지 왔네....어머니,아버지도 오셨다며 힘내라신다.
이렇게 달리면 10등안에 들겠다고...뒤에서 밀어 주시고 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힘을 주신다.
그래~~피니쉬 라인에 계실 어머니 아버지~사랑스런 울까꿍이들...나를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겠지...힘을 내보자.
내 최고 기록이였던 해남대회 이후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었다. 살을 빼서 몸을 가벼워 지게 한다음
더 잘 달려보자는 내 나름대로의 치밀한 계획을 세웠었다.
밥을 굶어 가며 친구가 줬던 식욕을 억제하는 보약을 먹어가며ㅋ ㅋ 과일과 야채. 물만 먹으면서~5킬로 감량 성공....
다음 대회때부터 더 잘달릴수 있을거란 나의 생각은 큰 오산이였다. 참 바보같은 생각이였다.
몸의 기력이 모두 바닥이 났던지 그뒤로 5개월 정도 넘 뛸때마다 힘들어 버렸다.
요요현상으로 살은 더 쪄버리고 몸의 체력은 딸리고~~~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슬럼프도 왔었다.
힘에 부쳐하는 내모습을 보고 언니들이 힘을 준다. 수완지구 근처로 맨날 오면 언제든지 같이 달려 주겠다던 지희언니.
저녁마다 베드민턴 치자고 하던 지민언니~과기원으로 나만 따로 불러 두시간동안 걸으며 이런 저런 참 좋은 이야기로
큰힘을 주었던 경민언니...참 고마웠다. 언니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가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겨낼수 있도록
얼마나 크나큰 힘이 되었었는지 언니들도 알고 계실까......
어떻게 피니쉬 라인에 도착했는지...앞이 보이지 않았을 만큼 넘 고통스럽게 달렸었나 보다.
도착하니 52분5초로 11위란다. 기쁨도 잠시 속도 안좋고 머리도 빙빙 돌고 제대로 일어날수가 없다.
우리딸 다영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며 졸졸 따라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운다.
엄마가 이러다 죽을것 같단다. 우는 딸을 보니 고통스럽게 달렸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다시 할수 있다는 감격스러움에
둘이서 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ㅎ ㅎ ~~~
10킬로 달리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주셨던 김종수 선배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완주할때까지 마음 졸이면서 응원하고 계셨을 우리 어머니 아버지...장하다시며 점심으로 몸의 기력을 되찾아야
한다며 장어로 몸보신까지 시켜 주시고...때론 불평 불만도 많았던 속좁고 철없던 막내 며느리...늘 이해해주시고
이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엄마이지만~~ 엄마 최고라며 응원해주는 울까꿍이들도 넘 고맙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완주하신 모든 선배님들 고생 많으셨고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힘을 주시는 여러 선배님들~그리고 울언니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첨마라서 행복한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첨단 마라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