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를 통해 작은 부활의 목격 증인이 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시어 그에게 당신의 양떼를 맡기시고(요한 21,1-17), 다른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평화를 기원하신다(요한 20,19-21). 그분은 위기의 순간에 당신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불러 당신의 사도로 삼으신 것이다.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제자들은 스승을 저버린 잘못을 용서받고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로 바뀌게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제자들은 과거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용서를 통해 죄에 물든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서 부활하신 분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하겠다.
사제품을 받고 발령을 받기 전에 나의 소속 본당에서 잠시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평일 아침미사를 마치고 주임, 보좌 신부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막 끝내려는데 현관 문 앞에 누가 와있었다. 축 처진 어깨에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본당 신자가 아니라 다른 본당 신자인 듯했고, 아무래도 사연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주임신부님은 새 신부인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고해성사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면담실로 그 신자를 데리고 가서 성사를 주게 되었는데, 과연 예상대로 사연이 길었다. 거의 2시간에 걸친 성사를 마치고 나오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그 신자는 고해성사 보러 올 때 그 침울하고 어두운 표정에서 벗어나, 밝은 얼굴을 하고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죄의 굴레와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모습으로 떠나가는 그 신자를 보면서 고해성사를 통해 선사되는 용서의 은총에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일종의 ‘작은 부활’을 경험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죽음의 세력만이 아니라 죄의 세력도 그 예봉(銳鋒)이 꺾였고, 따라서 죄가 극복되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이미 부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제생활의 큰 보람 중의 하나가 바로 고해성사 집전을 통해서 무수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작은 부활’의 목격 증인이 되는 것이다.
[사목, 2004년 4월호, 손희송(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