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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첩자식이라고 친정으로 쫓겨왔고, 마누라는 평생 본처로 알고 살아왔건만 난데없이 첩으로 밀려나 허탈해 하고 있는 상황. 이진은 결심하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겠어.”
“이 아저씨가 이미 당신 가정은 박살이 났는데, 지금 무슨 소리야!”
“저기, 마누라 너무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지금 흥분 안하게 생겼어? 딸 하나 있는 거 소박맞아 돌아왔는데, 가만 앉아 있을 수 있어? 당신 어쩔 거야? 엉? 나야 이렇게 살아 왔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저 새파란 딸년은 어쩔 거냐고?”
“내가… 내가 알아서 해결한다니까.”
이진… 결심은 섰으나, 방법이 없었다. 이미 법적으로 모든 게 정리 된 상황이 아닌가? 최씨 부인은 명백한 ‘첩’으로 기록되어져 있고, 이진의 본처는 정신줄을 놓은 김씨 부인으로 등재되어 있는 상황. 결국 최씨 부인의 자식들은 전부 첩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초법적인 해결책’밖에 없었다.
“그래 결심했어! 이 상황에서 남은 방법은 상소밖에 없어.”
그랬다. 지금 어떻게 행정소송을 걸 수 있는 사안도 아닐뿐더러, 설사 건다 해도 이길 확률이 없었던 상황. 방법은 임금에게 직접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략) 이 때문에 딸자식이 그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사오니, 신의 불행함이 이같이 되오매 눈물과 콧물이 턱으로 쏟아지나이다. 신이 본디 외로운 신하의 자식으로서 항상 선대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와 조심하고 몸을 경계하기를 밤낮으로 조심조심 하옵는데, 어찌 문명(文明)한 시대에 감히 국법을 범하여 두 아내를 기르겠나이까. 김씨 집에서 온 사람은 그 어미와 외가가 다 남의 첩이온데, 그 여자로써 주부(主婦)를 삼는 것은 자신을 낮출 뿐 아니오라 또한 죽은 아비까지 낮추어서 종사(宗祀)를 가볍게 하는 것이 되오니, 장차 무슨 낯으로 사림(士林)의 사이에 나란히 설 수 있사오며, 무슨 낯으로 가묘(家廟)에 들어갈 수 있사오며, 무슨 낯으로 지하(地下)에 가서 아비를 만나보오리까. 다만 그 갈 데 없음을 불쌍히 여겨 머물러 두고 병을 요양하게 할 따름이옵고, 실상은 워낙 정실이 아니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씨 가문의 딸로서 주부(主婦)를 삼아서 소신(小臣)의 종사(宗祀)를 받들게 하고, 신유년에 이미 부인(夫人)의 직첩(職牒)을 받았사옵니다. (하략)
- 조선왕조실록 세종 29년(1447년) 9월 7일 세종에게 올린 이진의 상소문 중 발췌
이진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전해들은 세종은 마음이 짠해졌다.
“아 쉬파, 나름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네?”
“전하! 이진 그 색희는 마누라를 둘이나 둔 아주 파렴치한 놈입니다! 그 놈 말 들어선 안 됩니다!”
“야야, 그래도 공신의 자식인데…”
“공신 자식은 마누라를 둘 얻어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나라의 공이 있는데…”
“전하 이진을 벌해야 하옵니다!”
살자고 시작한 일이 죽자고 커져버린 형국!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상략)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이진이 조강지처(糟糠之妻) 김씨(金氏)를 첩이라 사칭(詐稱)하고 후취(後娶)한 최씨(崔氏)로 적실(嫡室)자리를 빼앗으려 하여 작첩(爵牒)까지 참람하게 받은 것은 실로 간사(奸詐)하옵니다. ‘속형전(續刑典)’의 당해 조문에 ‘유처취처(有妻娶妻)한 자는 엄히 징치(懲治)하여 이혼시키라.’ 하였고, ‘자손이 적계(嫡系)를 다투는 자는 먼젓 부인의 자손으로 적계를 삼는다.’ 하였사오니, 최씨와 소생 자녀를 성헌(成憲)에 따라 명분(名分)을 바로잡아 작첩(爵牒)을 추탈(追奪)하고, 또 진의 죄를 다스려서 후래(後來)를 경계하소서. (하략)
- 조선왕조실록 세종 29년(1447년) 9월 23일 기록 中 사헌부의 고발 내용.
(상략) 이진은 벼슬이 추부(樞府)에 이르렀사온데 후처(後妻)의 아들을 적자(嫡子)로 삼기 위하여 먼젓번 아내 김씨(金氏)를 첩이라 일컬어 망령되게 천총(天聰)을 모독하와, 경박한 행위가 이러하오니 죄주기를 청하나이다. (하략)
- 조선왕조실록 세종 29년(1447년) 9월 29의 기록 中 사간원의 고발 내용
대신을 감찰하고, 조정의 언로 역할을 맡았던 사헌부와 사간원이 동시에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사위였던 원구의 무과시험 응시 무산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는 본격적인 ‘나랏일’로 발전한 상황! 과연 이진은 최씨 부인을 본처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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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본처 인줄 알았는데 ......
과연 본처로 인정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