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고초려(一顧草廬) -
서서(徐庶)가 떠난 지 며칠 후, 유비(劉備)는 융중(隆中)의 제갈량(諸葛亮)을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도골 선풍(道骨仙風)의 노인이 찾아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높은 관(冠)을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은 고고한 노인께서 주공 뵙기를 청합니다."
유비(劉備)는 혹시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스스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 나와 보니 천만 뜻밖에도 수경 선생(水鏡先生) 사마휘(司馬徽)가 찾아왔다.
"아, 선생께서 웬일이십니까?"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후당으로 모셔들이고,
"제가 군무에 바빠 미처 찾아뵙지 못하였는데 이처럼 몸소 찾아주시니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원직(서서)이 지난번 조조의 군사를 잘 물리치는데 일조했다고 들었소. 그래 지나는 길에 한번 만나 보러 온 것이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근심 어린 얼굴로,
"선생께서는 며칠 전 조조가 그 모친을 옥에 가두어 놓고 부르기에 할 수없이 이곳을 떠나 허창(許昌)으로 가셨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수경 선생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엣? 원직(元直)이 모친의 편지를 받고 조조에게 떠났다고요? 그렇다면 원직은 조조의 술책에 속았구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원직(元直)의 모친(母親)을 좀 아는데 그 어른은 천하에 둘도 없는 현모(賢母)요. 아들에게 그런 편지를 보낼 어른이 아니라는 말이오."
"그렇다면 그 편지는 조조의 위서(僞書)란 말씀입니까?"
"물론 그럴 것이오. 원직(元直)이 위서(僞書)에 속아서 모친을 찾아갔다면 그분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분이오."
"선생이 떠나면서 일전에 선생께서도 말씀하셨던 융중(隆中)에 계신 제갈(諸葛) 선생(先生)을 찾아보라고 하던데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수경 선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원직(元直), 그 사람은 떠나고 싶거든 저나 떠날 일이지 공연한 사람을 끌어들이는군."
"선생, 그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명을 위해서 하는 말이오. 공명은 나의 도우(道友) 중에 한 사람이오."
"선생의 도우(道友 : 함께 도를 닦는 벗)는 어떤 분들이 계십니까?"
"융중(隆中)의 제갈공명(諸葛孔明), 박릉(博陵)의 최주평(崔州平), 영천(潁川)의 석광원(石廣元), 여남(汝南)의 맹공위(孟公威) 그리고 며칠 전에 이곳을 떠난 서원직(徐元直) 등이 모두 출중한 인물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대략(大略)이 통하는 사람은 오직 공명(孔明)이라오."
"공명(孔明) 선생(先生)이 그렇게도 대단하신 분입니까?"
"주(周) 나라의 태공망(太公望)과 한(漢) 나라의 장자방(張子房)과 비겨도 결코 손색이 없는 분이오." 수경 선생(水鏡先生)은 이렇게 말을 하고 고개를 쳐들며 <허허!>하고 웃더니,
"와룡(臥龍)이 비록 주인(主人)을 얻겠으나 때는 얻지 못할 터이니 아깝도다 아까워!"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표연(飄然)히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유비는 이런 일이 있고 나자 더욱 제갈량(諸葛亮)에 대한 마음이 앙모(仰慕)하여 다음 날은 관우(關羽), 장비(張飛) 두 아우와 함께 융중(隆中)으로 그를 찾아갔다.
맑게 갠 날이었다.
유비가 두 아우와 함께 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는데 멀리서 나무꾼 하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간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이러했다.
"하늘은 둥근 뚜껑 같고, 땅은 바둑판과도 같네, 승자는 유유자적하고, 패자는 전전긍긍하네"
유비가 듣건대 노랫말이 신선하고 그 뜻이 세상 이치와 틀림없었다.
유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꾼의 노래를 모두 듣고 나자,
"여보시오 나무꾼, 잠깐 나를 보고 가시려오?" 하고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나무꾼이 다가오자 유비가 물었다.
"좀 전에 부른 노래는 누가 지은 것이오?"
유비는 백성들이 부르는 민요는 시대의 정신을 담은 것이라는 서서가 남겼던 말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무꾼에게 약간의 돈을 쥐여주었다.
그러자 나무꾼은,
"아, 네! 와룡강(臥龍江)에 와룡선생(臥龍先生)이 지은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劉備)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묻는다.
"와룡선생(臥龍先生)? 와룡강이 여기서 얼마나 가면 되오?"
"북쪽으로 십여 리 가면 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아, 고맙소." 하고 예를 표해 보였다.
세 사람은 대나무가 울창하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숲을 지나 한참을 더 가서 계곡물이 폭포가 되어 흐르는 제갈량이 살고 있다는 초당 앞에 이르렀다.
과연 현인이 사는 집은 예사롭지 않았다.
초당(草堂)은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 바위 위에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지었는데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떠있는 배와 같았다.
유비가 집 앞에 이르러 홀로 예를 표하며 큰 소리로 주인을 청하였다.
"이곳이 와룡선생(臥龍先生)의 댁이옵니까? 선생을 뵈러 왔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미소년 하나가 달려 나오며, 허리를 굽혀 손님을 맞으며 묻는다.
"손님은 뉘신지요?"
"나는 한(漢)나라의 좌장군(左將軍) 의성정후(宜城亭侯) 예주목(豫州牧) 황숙(皇叔) 유현덕(劉玄德)이라는 사람이오. 와룡선생(臥龍先生)을 뵈러 왔다고 전해주시오."
"이름이 너무 길어 모두 기억을 못 합니다."
"그럼 신야(新野)의 유비(劉備)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말씀해 주시오."
"아, 유비 선생(劉備先生), 선생은 손님께서 오실 줄 알고 유람(遊覽)을 떠나셨습니다."
유비(劉備)가 미소년(美少年)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리하여,
"예? 다시 한번 말해주겠소?"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미소년은 태연하게,
"선생께서는 손님께서 오실 줄을 알고 유람을 떠나셨습니다." 하고, 다시 한번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유비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리고 이내 눈을 깜빡이며 생각한다.
(공명 선생은 내가 찾아올 줄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헛 참!)
"그러면 어디를 얼마만큼 다니러 가셨소?"
"언제든지 다녀오실 곳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가시기 때문에 언제 돌아오실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자 장비(張飛)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껏 찾아왔는데 없다니 그만 돌아갑시다." 하고 퉁명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관우(關羽)도,
"형님께서 오실 것을 알고도 자리를 비운 것을 보니 만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사람을 보내 계신 것을 알고 나서 다시 찾아옵시다." 하고 말한다.
유비(劉備)는 공명선생(孔明先生)이 없다는 것에 섭섭함을 금치 못하며 미소년에게 부탁 조로 말한다.
"그러면 말 좀 전해 주시오. 유비라는 사람이 공명 선생을 뵈러 찾아왔다고 말이오."
"알았습니다." 미소년은 배웅 인사로 절을 해 보였다.
그러자 유비가 잊었다는 듯이,
"아, 그리고 이 말도 전해주시오. 며칠 뒤 유비(劉備)가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이오."
"알았습니다."
돌아오며 보니 부근 일대는 절경이었다. 산은 높지 않으나 매우 아름다웠고, 물은 깊지 않으나 매우 맑으며, 땅은 넓지 않으나 평탄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숲은 우거진 나무로 무성한 것이 과연, <무릉도원이 이럴 것인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연한 별천지(別天地)였다.
그렇게 유비 일행은 울창한 숲속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고요한 숲의 적막을 깨뜨리는 고고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귀를 세우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함께 눈길을 보냈다.
잠시 후, 종자(從者) 하나를 거느린 도도한 중년 사내 하나가 불던 피리를 멈추고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도 이런 울창한 숲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새로웠던지 세 사람의 앞에 이르러서는 발길을 잠깐 멈추었다.
그러자 유비(劉備)는 그를 향하여 두 손을 들어 예를 표하며,
"실례(失禮_)하지만 혹시(或是) 와룡 선생(臥龍先生)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다가온 사내는 마주 예를 표해 보이며 말한다.
"한데 누구신지요?"
"신야(新野)의 유비(劉備)입니다."
"압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명(孔明)이 아닙니다. 저는 공명의 도우(道友), 박릉(博陵)의 최주평(崔州平)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선생의 이름은 익히 들어 전부터 뵙고 싶었습니다. 최 선생, 조금 전에 와룡 선생 댁을 다녀왔는데 공명 선생께서는 유람을 떠나셨다는군요. 시간이 되시면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지요. 저도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어디를 가든지 이 피리 하나와 다기(茶器)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이런 자리에 대비를 한답니다. 괜찮으시다면 요 앞에 냇가로 가셔서 차 한잔하실까요?" 하고 최주평(崔州平)은 유비의 청을 순순히 받아준다. 유비는 기쁜 얼굴로 대답하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장비(張飛)는 물론 관우(關羽)는 제갈량을 만나 보러 먼 곳까지 와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러나 큰 형님 유비가 앞장서 나서고 있으니 불평을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던 유비는 두 아우를 가리키며 말한다.
"둘째, 셋째, 나는 최 선생(崔先生)과 냇가에 가서 차 한잔하고 있을 테니 자네들은 이곳 풀밭에서 쉬고 있게나."
"예, 그러지요. 말씀들 나누시오. 나도 와룡(臥龍 : 누워 있는 용)처럼 잠이나 자야겠소"
그러잖아도 장비는 공명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 답답하던 차에 불만이 잔뜩 담긴 소리로 대답한다.
이윽고 두 사람은 차를 끓이고 마시면서 최주평(崔州平)이 입을 열어 묻는다.
"공 께서는 무슨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천하(天下)가 크게 어지럽고 사방(四方)에 풍운(風雲)이 급하기로 공명 선생(孔明先生)을 찾아 뵙고 국태민안지책(國泰民安之策)을 구하러 찾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주평(州平)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한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치란(治亂)에는 도리(道理)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치란의 도리를 선생께 듣고자 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자고로 치(治)와 난(亂)은 항상 무상(無常) 한 것입니다. 평화가 오래 계속되면 반드시 난이 오는 법이고 난이 오래 계속되면 그 뒤에는 반드시 평화가 오기 마련이지요. 광무(光武) 이래로 태평세월이 계속되기를 이백여 년.. 이제 세상이 어지러울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어지러움이 시작된 지 벌서 이십여 년째가 되었군요."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이십 년이란 세월은 길다고 하겠으나 무궁무진한 대자연으로 보면 이십여 년이란 일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변화를 알리는 바람은 이제 시작했다고 보는 것도 무방하겠지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참된 현인을 모시어 만민의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는 동시에 그 재앙을 최소한도로 막아내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지신 생각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 하였으니 부디 애쓰셔서 원하는 바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높으신 가르침을 받게 되어 고맙습니다. 선생은 공명 선생께서 어디로 가신지는 모르십니까?"
"저도 공명(孔明)을 찾아보려 하였는데 출타하였다면 저도 발길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유비는 최주평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생을 저의 곁에 모시고 싶은데 선생의 의향은 어떠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최주평은 대번에 고개를 흔든다.
"산중의 유생(儒生)이 어찌 번잡한 세상 공명(功名)에 뜻이 있겠습니까. 인연이 있으면 훗날 다시 만나지요."
이렇게 유비는 최주평과 작별을 하고 관우, 장비와 함게 신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헹! 오늘은 만나러 온 사람은 못 만나고 쥐새끼 한 마리 때려잡지 못할 썩어빠진 졸장부 선비의 잔소리만 듣는 것으로 하루 해를 허비했구려!" 장비가 못마땅한 어투로 투덜거린다.
이에 유비는,
셋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람이 제구실을 하려면 지혜로운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하는 법이네." 유비는 장비를 넌지시 나무랐다.
이렇게 유비(劉備) 삼형제(三兄弟)는 융중(隆中)의 공명(孔明)을 찾아갔으나 그를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 모두 세 편에 걸쳐 연재되는 현인 공명을 모셔오기 위한, 유비의 삼고초려... 이 글은 열 번 고쳐 쓰고 수정하여 완성한, 초 편과 함께 가장 심혈을 기울인 글임을 알립니다. 이렇듯, 좋아하는 일과 스스로 임하는 매사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는 눈앞에 현실로 벌어지는 매사에 정성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 162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