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믿는 사람들은 죄와 무관하다는 입장들
이 부류에는 믿는 이들의 본성 안에 '내주 하는 죄'(the indwelling sin)가 없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 믿는 사람은 생전에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던 완전주의자들'(원죄제거설 주장자들), 요일3:9, 5:18을 잘못 해석하여 거듭난 사람은 죄성이 뿌리 채 뽑혔다고 믿는 사람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더 넓게 보아서 구원받은 사람은 죄사함 받는 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해결되었다고 믿는 것도 여기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찌하든지 이러한 입장들을 취하게 되면 위 사례에서 보듯이 죄에 대한 경계나 자백의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참고로 요일 3:9의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그에게서 났음이라"라는 말씀은 믿는 이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한 로마서 6:2 말씀처럼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습관적으로 죄 안에 살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일 3:9의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문구에서 쓰인 동사인 '포이에오'는 'doing(things) habitually and continually by abiding (in the things)'의 뜻이 있습니다. 즉 양도 어쩌다가 진흙에 더렵혀지긴 하지만 돼지처럼 습관적으로 흙구덩이에 살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RcV 요일1:6 각주 5참조).
믿는이는 절대로 죄를 안 짓는다는 착각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라고 한 요일 5:18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잘못 해석하는데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요 17:15에 근거하여 그것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또 어떤 분은 이것을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거듭난 사람의 영'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요3:6, 고전6:17).
둘 중 어떤 해석을 취하더라도 이 구절이 믿는이가 죄를 안 짓는다는 근거일수는 없습니다. 위 구절을 성도들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실제 체험과도 맞지 않습니다. 즉 바울은 로마서 8:6에서 거듭난 믿는 이들의 상태를 다루면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육신의 생각의 결과인 사망이 죄로부터 오는 것임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또한 자신은 거듭난 이후 육신의 생각을 단 한순간도 해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3. 믿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본성의 죄가 남아 있다는 주장
이것은 성경이 밝히 증거 하는 것임으로 많은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즉 요일1:8은 '만일 우리(믿는이)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요일1:10도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이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sin that dwelleth in m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7절). 이런 표현은 같은 장 20절에서도 반복해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거한다'는 말의 원어(오이케오)의 뜻은 잠시 머무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죄가 우리 안에 '자기 집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는 죄가 빠져나갔다거나 뿌리 채 뽑혔다는 성경근거가 없는 한, 이 구절이 기술하는 시점이 바울의 회심 전인지 후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죄가 거하는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도 어떤 분은 롬7:17절과 18절을 함께 보아 죄는 우리의 육체 (flesh)안에 거한다고 해석하고 또 어떤 분은 이런 해석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어찌 해석하든 '내 속에 거하는 죄'라는 성경 본문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성경본문의 관점에 일반 신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즉 존 칼빈은 '원죄는 죽을 때까지 신자 안에 존속하며 신자의 성화는 죽음 또는 죽음 직후에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웨슬리는 '원죄로부터 깨끗하여 지는 온전한 성화가 신자 생전에 이뤄진다'고 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두분은 성화의 시기에 대해 이견이 있을 뿐 믿은 후에도 여전히 성도들 안에 죄성이 남아 있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성기호, 교회와 신학논쟁, 성광문화사, 1995, 72-79쪽).
첫댓글 궁금합니다. 타락된 육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나. 완전한 성화는 죽을때 까지 이루어 간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화된 단계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1~1000단계가 있다면. 1의 단계이 있는 사람 1000의 단계에 있는 사람.. 다 다르겠죠? 아니면 하나님앞에서 십자가 외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으므로 아무리 성화되었다고 노력하나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만히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는 건가요? 혼란이 옵니다.
많은 분들이 성화든 칭의든
진리의 양면을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성화)과 칭의는
위치가 바뀐 것과 성분이 바뀐 것 두 방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는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위치가 바뀐 사람들이기에 '성도'라고 불리웠습니다(고전 1:2).
그러나 그 성도들에게는 여전히 문제가 많았지요.
따라서 그들 안에 거룩이신 그리스동의 생명과 본성이 자라갈 때
점점더 성분적으로도 거룩한 삶과 표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칭의도 우리가 믿을 때 주님의 피로 위치적으로 의인이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 의는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삶속에서 내가 아니요 의이신 그리스도를 살아 표현할 때
하나님 앞에와 사람 앞에 의롭게 나타나는 것이지요.
히12:10
빌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