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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지독한,
악 몽 을 꿨다.
내 기억 저편 어딘가에, 아주 깊이 묻어버린. 그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날 향해 환히 웃는다. 난 아이의 그 싱그러운 미소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떳떳이 고개를 들고 널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새벽 내내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것만 같은 나른한 기분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개가 낀 듯 흐릿했던 그 아이의 잔상이 점점 선명해질 때쯤, 성난 듯 크게 울려 대는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에 놀라 깨버렸다. 고마워해야 되는 건가. 커튼이 쳐진 캄캄한 방안에 창문 조그마한 틈새 사이로 바람을 타고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스며들어왔다. 그 희미한 불빛을 한참이나 응시하고 있자니 머리가 핑 돌아, 눈을 꽈악- 두어 번 끔뻑였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킴과 동시에 베게 밑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권 대안'
액정에 떠 있는 괴로운 이름을 보자, 내 의지와는 다르게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자꾸만 떨렸다. 그리고 일 톤짜리 추라도 매단 듯, 잔뜩 무거워져 움직여지지 않는 엄지손가락을 겨우 들어 확인 버튼을 힘겹게 눌렀다.
「10분 준다. 알아서 찾아와.」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난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팔 년 전,
심장이 터지도록 사랑했던 넌.
지금,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렇게 내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그것이 사랑인지, 너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확실히 알 순 없었다.
다만….
“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 앞에 거뭇한 한 인영이 긴 그림자를 띄우며 나에게 다가왔다. 코끝을 간질이는 익숙한 향기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에 묻혀있던 그의 얼굴이 비릿한 웃음을 띤 채, 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붉은 입술을 달싹여 내게 안녕이라 말한다.
냉기를 풍기는 그의 미소가, 그의 눈빛이. 내 온 몸을, 내 온 마음을 온통 차갑게 얼려버린다. 그리고 원치 않는 눈물이 터져 나온다. 툭- 투욱. 한 방울. 두 방울. 주룩- 주루루루욱. 소나기가 되어 흘러내린다. 눈앞이 뿌옇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분명한건.
지금, 이 불안하게 뛰는 심장이 더럽게 싫었다. 자꾸만 널 원하고 또 원한다.
제발, 이대로 멎어버려라. 망할 심장아.
어느새 가로등 불빛이 꺼지고 푸르른 새벽이 찾아왔다. 차디 찬 새벽 공기가 콧속에 스며들어 눈물이 나도록 콧등이 시큰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아스팔트 위에 선 너와 나는 그 어떤 말도 없었다. 가빴던 숨은 점차 제 속도를 되찾았지만, 왼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박동은 더욱 더 빨라졌다. 흐트러짐 없는 눈동자로 날, 또렷이 바라보는 널 피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빌어먹게도 참 맑았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은은한 여명 속, 바다 빛 푸르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날 그 하늘처럼.
“십 분 지났어. 정 윤.”
보운아.
이런 내 모습……. 참 우습지?
이제 좀 속이 시원해?
근데, 말이지.
난 오늘따라. 네가 더….
미워.
-1-
「그 해, 이른 나의 봄」
뭐가 그리들 좋은 건지 교실이 떠나가라 웃는 아이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만나면서 저리도 할 말들이 많을까…. 몇 반의 누구와 누가 사귄다느니 어제 드라마의 남 주인공과 여 주인공의 키스신이 어쨌다느니, 교실 안은 온통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 투성이였다. 정말, 유치해서 더는 못 들어주겠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새파란 하늘에게 빌어본다.
창가에 비치된 라디에이터에 앉아 어울리지 않는 공주 풍의 손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설픈 솜씨로 진하게 그려 넣은 아이라인이 눈 밑으로 번져 지저분해 보였다. 태생부터 작은 눈을 그렇게 치장한다고 커질 리가 있겠느냐마는…. 그 여자아이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돌려 필통에 쑤셔 넣어 둔 귀마개를 꺼내 귀를 틀어막았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교실이 귀마개를 꽂는 순간 고요해졌다. 들리는 거라곤 내 숨소리와 쿵쿵-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 아주 잠시 마음이 편해졌다. 늘 이렇게 고요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 고요함도 잠시. 어디 브랜드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독하디. 독한 향수 냄새와 썩은 담배 냄새가 섞인 역겨운 향이 내 코를 더럽혔고, 그 향은 점점 진해졌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조용히 지나가기는 글렀구나.
“야.”
작은 귀마개로는 성난 암캐의 왈왈거림까지는 막을 수 없었는지, 귀마개를 꽂은 두 귀의 작은 틈새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날 부르는 소리란 걸 알면서도, 개의 짖음이라 치부해버리고 신경 쓰지 않으려, 감은 눈에 힘을 줘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더욱 꽉 감아버렸다. 툭툭- 새까만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이 내 머리를 투욱 툭. 건든다. 어김없이 어제와 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역겨운 냄새가 어제보다 오늘, 더 싫어졌다는 것뿐.
못 이기는 척 귀마개를 빼고 고개를 들어 그 아이를 올려다봤다. 날 내려다보는 그 아이의 눈이 양쪽으로 쫙 찢어져 여우를 연상시켰다. 그 아인 날 향해 콧방귀를 뀌어댔다. 성난 코뿔소 마냥. 밀가루 반죽 같은 하얀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날 위아래로 훑었고, 무엇을 처발랐는지 새빨간 입술을 연신 달싹이며 여우 눈은 그렇게 날 향해 짖어댔다. 짖든지 말든지.
“좀 꺼져.”
제발 내 눈앞에서 좀.
“이년이!”
여우 눈의 손이 우악스럽게 내 머리채를 잡아챘다. 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금방이라도 내 머리가 뿌리째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시끌벅적하던 교실은 한순간 조용해졌고, 아이들은 제각각 눈을 빛내며 나와 여우 눈을 바라봤다. 지들 딴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여우 눈. 이름이 뭐더라. 난 이 아이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내게 더러운 년이라 소리치는 이 아인 날 알긴 하는 걸까?
여우 눈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조용히 머리를 쥐어 잡혀 준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 아이들에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흔히들 말하는 우리 반 왕따? 그래서 날 못살게 하지 못해 안달 인 걸까. 왕따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정말, 진부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불편한 진실에 식도를 타고 시큰한 것이 올라왔고, 주체할 수 없이 토악질이 나왔다. 내 입에서 나온 시큰한 그것은 여지없이 여우 눈의 교복 치마에 묻었다. 시뻘게져 더욱 못생긴 얼굴을 종잇장처럼 잔뜩 구긴 여우 눈은 돼지처럼 꽥꽥 비명을 질러댔다. 왠지 모를 통쾌함이 내 온몸을 뒤덮었다. 어제오늘 입맛이 없어 먹은 것이라곤 물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 * *
어디 아프냐는 너의 물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모르고 있진 않을 것이다. 분명. 이 학교 내에서 나는 모두의 공공의 적이었으니까. 지금 수군대며 우리 옆을 지나가는 쟤네들에게도 저 앞,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저 아이에게도…. 넌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날 향한 걱정스러운 표정과 말투는 뭘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아니면 그것조차 전부 다 거짓으로 뒤덮인 가식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둘 다 최악임은 분명했다. 그래 이 모든 것의 답은 하나겠지.
넌 날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이 따갑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 심장을 콕콕 찌른다.
어느새 봄이 온 건지 향긋한 꽃 내음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살랑였다. 바람은 저 여자의 윤기 나는 머리칼을 흐트러트렸고 저 남자의 소매 끝을 건드린다. 그리고 저 아이의 발등을 스치며, 나를 지나간다. 그리고 너에게 닿았다. 나를 피해 간다. 나는 바람을 보았지만, 느낄 순 없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날 휘감았다.
“할 말이 있어.”
성큼성큼. 같은 걸음으로 걷고 있지만, 긴 다리 때문에 나보다 조금 앞서 가던 녀석이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봤다. 무슨 할 말? 너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난 결심한 듯 입을 열었지만, 오늘도 가슴 속에 묻어 놓았던 그 말은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말할까, 하루에 수십 수천 번도 연습했던 말이지만, 정작 네 앞에선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린다. 목 언저리까지 그 말이 올라왔지만, 꿀꺽. 그대로 삼켜버렸다. 체라도 한 듯 답답한 느낌에 주먹을 들어 가슴을 두어 번 쳤다. 아까와 같은 자세로 서서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너에게 왜 난 그 짧은 한마디를 내뱉지 못하는 걸까. 좋아해. 혹은 사랑해. 오늘도 이렇게 또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꽁꽁 묻어버렸다. 입에서 한참을 맴돌다 이내 삼켜버린 그 한마디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뱉어내지 못했다. 갈증이 자꾸만, 끈덕지게 날 핥았다. 입안에 가득 침을 모아 꿀꺽 삼켰지만 이 갈증은 도저히 사라지질 않았다. 말라 버린 입안에선 역겨운 단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
“배고파.”
피식- 싱거운 놈.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던 녀석이 내 어깨를 감쌌다. 내 어깨에 녀석의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지자 쿠웅. 쿠웅. 천천히 정상 수치를 유지하며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이 금방이라도 정지할 것처럼 쿵. 쿵. 쿵. 빠르게 뛰었다. 붉어진 얼굴로 살짝 올려다본 녀석은 오늘 뭘 먹을까 고민하는 듯 했다. 나와 달리 너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지금껏 너에게 내 마음 한 번 전하지 못한 나도 바보 등신이지만, 너 역시 둔해 빠졌다.
둔한 것도 병이다. 바보 등신. 권 대안.
비 명 [悲 名]
돈가스를 먹을까 스파게티를 먹을까 메뉴판을 손에서 놓지 못하며, 한참을 고민하는 널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스파게티를 시켰다. 내 앞에 앉은 녀석은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모두 제 것인 냥 다른 사람에게 한 줌도 양보하지 않은 채, 제 혼자서 저 따사로운 햇살을 흠뻑 머금었다. 봄 햇살의 마력일까. 수저를 입에 문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네가 오늘따라 더욱 빛이 나 보였고, 그 모습은 내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요새 좋은 일 있어?”
언제나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있는 녀석이 요샌 왜 저렇게 싱글벙글 인지…. 저 아름다운 미소가 내 마음을 불안케 했다. 둥둥- 기분 나쁜 두근거림이 드럼비트처럼 크게, 내 온 몸을 진동시켰다.
“응.”
녀석의 대답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녀석의 눈이 다이아라도 콕 박힌 듯 반짝였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불길함이 엄습해 와, 난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내가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듯 내 눈을 빤히 바라봤지만, 난 입을 앙 다물어버렸다. 눈을 내리깔고, 손에 쥔 애꿎은 휴지만을 벌써 네장 째 북북 뜯는 나 때문에 우리 사이엔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내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휴지조각을 입으로 후- 불었다. 공중에 제각각 흩어진 휴지조각들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 중 제일 작은 한 조각이 홀로 바닥에 떨어졌다. 너도 참 외롭겠다.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우리 사이에 흐르는 고요한 정적을 깨준 건 다름아닌 주문한 음식을 들고 온 종업원이었다. 테이블 위에 접시를 가지런히 놓은 그 종업원은 자신이 밟고 있는 휴지 조각이 거슬렸는지 손으로 주워 사정없이 구겨버린다. 그와 동시에 내 미간도 잔뜩 구겨졌다.
“저기요.”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 깃드는 미소를 날린 채, 뒤돌아 가려는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난 손바닥을 쫙 펴 그에게 내밀었다.
“네.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손님?”
“주세요.”
“네?”
“그거요.”
“뭐를….”
“손에 쥔 거.”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종업원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서렸다. 이거요…? 내게 묻는 종업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벙벙한 얼굴로 날 바라보던 종업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손바닥 위에 휴지조각을 살며시 올려주었다.
“그게 뭐라고….”
내게 묻는 녀석의 물음을 무시하고, 너덜너덜해진 휴지 조각을 바라봤다. 그러게. 이게 뭐라고. 이게 대체 뭐라고 난 버려진 휴지조각 따위를 주워 담았을까. 어쩌면 나도 너에게 갈기갈기 찢겨진 채 버려져 짓밟힌 휴지조각 따위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식겠다. 어서 먹자.”
“응.”
한동안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있던 나에게 대안이가 말했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포크를 집었지만, 왠지 입맛이 없어 그대로 내려놓았다. 탁- 본의 아니게 큰 소리가 나자, 열심히 돈가스를 썰던 녀석이 나를 바라봤다.
“안 먹어?”
“별로. 생각이 없네.”
“맛이 없나?”
좋아하지도 않는데 맛있을 리가 없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끔찍할 정도로 스파게티가 싫어. 자신의 포크를 든 대안이는 내 앞 접시에 놓인 스파게티 면을 쭉 늘여 돌돌 말아 자신의 입 속에 쏙 집어넣었다. 맛있는데…. 중얼거리는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접시를 쭉 밀어 녀석 앞에 가져다 놓았다.
“너 다 먹어.”
너 좀 이상해. 녀석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녀석의 말에, 의도한건 아니지만, 코웃음이 절로 쳐졌다. 근데 그거 알아? 그칠 줄 모르고 자꾸만 실실 웃어대는 너. 네가 더 이상해.
비 명 [悲 名]
사람들과의 거의 모든 만남이 다 그렇듯 녀석과 나의 첫 만남도 이렇다 할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만났고, 평범하게 친해졌다. 지랄 맞게도 난 널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사랑해버렸고, 넌. 처음부터 나를 친구란 틀 안에 콕 쑤셔 박아 넣어버렸다.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적당한 사이. 사소한 일로 틀어져버리면 언제든지 관계를 끝낼 수 있는 그런 관계. 난 그게 싫었다.
너와는 애초부터 품은 마음이 다르다는 게.
어제 그렇게 대안이와의 어색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도 ‘너 이상해.’ 만을 주구장창 외쳐대는 녀석에게, 난 바보같이 신경질을 내버렸다. 그리고 뒤돌아서자마자 후회 해 버렸다. 우리 절교야. 어느 초등학생 입에서나 나올 법 한 그 유치한 말이 네 입에서 나올까 두려워 난, 미안해 미안 미안. 한껏 애처롭게 중얼거리다 자리를 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끝이 없는 듯 너무도 길었고, 그 길 위를 자박 자박 걷는 내 발걸음은 너무도 힘겨워 절로 숨이 헐떡여졌다.
수업시간 내내 난,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녀석의 생각에 빠져 있다, 종례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제야 도리질을 치며 정글의 늪과도 같은 녀석에게서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교 길. 회색의 시멘트 바닥을 운동화 앞코가 닳도록 툭툭- 거리며 교문 앞에 서 있었다. 널 기다리며 생긴 고약한 버릇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우르르 학교를 빠져나가는 아이들 틈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은 왠지 초라해 보였다. 왠지 오늘따라 내 옆, 보운이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졌다. 어제, 며칠 째 연락이 없던 보운이는「나 많이 아파 윤아.」란 문자 한통을 덩그러니 내게 남기고, 오늘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문득, 손수건에 조심스레 싸, 교복 마이 안주머니에 넣어 둔 어제 그 휴지조각을 꺼냈다.
별거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참 유치한 짓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이 조그마한 휴지조각에 내 생에 처음으로, 아주 큰 의미를 담았다. 내가 이것을 오래토록 소중히 간직한다면 나도 너에게 버려지는 일 따윈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미신. 횡단보도의 하얀 선만 밟으면 하루 종일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와 같은. 그렇게 믿고 싶은 나만의 미신.
절대로 너에게 버려지면 안 된다는 나의 처량한 발 버 둥이었고,
넌 날 버려선 안 된다는 나의 못난 오 기였다.
지갑 깊숙이 감춰 둔 녀석의 사진 끄트머리가 구깃구깃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 모양새가 나와 너무 닮아 내 미간도 잔뜩 구겨졌다. 중학교 졸업앨범을 정성스럽게 오려 크게 확대한 사진. 그 시절 유행하던 (삐죽한 머리를 왁스로 한껏 힘을 준) 머리를 한 앳된 얼굴의 너. 사진 속 넌 참. 빛나고 있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유치한 짓까지 하며 너에게 버려지지 않길 바라는 내 애처로운 마음을 너는 알까. 교문에 비스듬히 기대, 녀석의 사진과 휴지조각을 번갈아 바라봤다.
너. 나.
빛나는 너. 바래진 나.
버릴 너. 버려질 나.
왠지, 입 안이 쓰디쓰다.
저 앞, 나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점점 다가오는 네가, 오늘따라 매우 쓰다.
“많이 기다렸냐?”
“별로.”
태연하게 너의 얼굴을 마주했지만, 얄미운 침샘은 점점 더 쓴 침을 뿜어내었다.
“가자.”
어제와 같은 오늘.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어제와 다를 게 없는 너의 마음.
설탕 한 봉다리를 통째로 입 안에 털어놓아야만 이 씁쓸한 맛이 조금은 가실 것 같았다.
“단거 먹고 싶어.”
“얘가 요새 들어 자꾸 뜬금없네. 아픈가?”
걱정스런 눈빛을 띄우며 내 머리를 짚는 널 가만히 바라봤다.
“열은 없는데.”
“…….”
만약에 내가 지금 이 얘기를 꺼낸다면.
넌 어떤 얼굴을 할까.
아마도.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겠지.
넌 그럴거야.
아니, 그래야만 해.
“보운이.”
멈칫.
내 이마와 자기 이마를 번갈아 짚던 넌 멈칫. 손을 멈추고 날 빤히 바라봤다. 어서 말하라는 듯 너의 눈이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날 재촉했다.
“많이 아픈가봐.”
너의 눈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지금껏 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지었다. 나를 걱정했던 얼굴과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어디가 아픈 거래?”
“…….”
“왜 아픈 건데, 어? 대답해 정 윤.”
내 어깨를 힘주어 잡은 너의 손이 떨렸다. 너의 손이 닿은 어깨가 아릿했다. 그런 거였구나.
이로써 확실해졌다.
“진짜 엿 같다.”
너의 물음을 뒤로 한 채, 난 너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한 발짝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다. 투둑. 투두욱- 타이밍도 개 같이, 하늘에선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봄비가 내린다. 어쩌면 지금 내 처지를 불쌍히 여긴 신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내 눈물을 감춰주려는 넓디 넓은 신의 마음일지도. 난 그에 보답하듯,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에 맞춰 힘차게 흐느꼈다.
그래, 어쩌면 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운이를 향한 너의 낯선 눈빛.
언젠가부터 변해버린 너의 모습.
내 어깨를 축축이 적시는 비가 너무도 찼다. 난 억지로 가시지 않은 겨울을 녹이고 깨었던 것이었나. 환상처럼 만들어 낸 그해, 나의 살랑이는 봄은, 맹수가 되어 내 마음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할퀴었다.
뚝뚝. 머리칼 끝에 송골송골 맺혀 있던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짠 내음을 풍기며 떨어진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난, 끝나지도 않은 겨울을 억지로 끝내려 하였다. 그리고 억울하게도 끝나버린 겨울의 앙갚음이 그렇게. 서서히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차근차근 날 짓밟으려 하였다.
타닥 타닥. 나의 빗방울은 점점 거세졌다.
“최악이다. 오늘.”
아니길 바랐던 그 모든 것이 뚜렷해진 지금.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이 내 18년 인생의 가장 최악인 날이었다. 빌어먹게도.
부족한 글로 찾아왔습니다.
반수중이라 입시가 겹쳐서 한동안은 연재주기가 들쑥날쑥 할것같지만, 성실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트로가 짧아서 1편이랑 합쳤어요! 그래도 분량은 병 to the 맛이네요..핳........
저기 땡스투의 굵은 글씨는 가상에 댓글 두번이상 달아주신 분 and 제 사랑들 낄낄
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쪽지나 댓글로 살짝콩 알려주세요!!!!!♥
업쪽 문구는 비명.
인물표 ▶ 내새끼 ♥박떼성♥ 제공◀
소재 도용 금지.
Thanks to (가상에 댓글 달아주신 고마운 분들)
내새끼 소루떼(박떼성)님 카푸치노˝ 님 ARISA님 조현.님 박띨구님 메이츠님 앗싸홍삼님 쪼꼬달님 세이티님 시애틀노인님 봄 날님 오즐님 발롱님 신이연님 예민님 아이스이온님 호야호야링님 이소프님 겸둥21님 따뜻한쪼꼬렛님 달그바님 LEE 작가님 달콤한악보님 뤼나튀크님 B˝라나에님 새빨간 거짓말.님 인빠님 어느날오후님 시나몬걸님 덤벼라세상아,.님 러닝님 kell님 간지애(艮只愛)님 어별님 네잎♬님 권지용아잉님 어이무님 유하수님 강 예주님 별리안님 다리긴고무줄님 데카르트님 R.지아님 진꽁이님 진준님 휭 휭님 쪼꼬맛리본님 쵸코빛 하늘님 kisjs12님 유자 차님 유발자님 빨갱이 ★님 신추녀님 몽롱.님 에스링고님 왜왜왜왜왜왜님 duswn11님 난비싸님 포아유님 모리암님 삐에로가울어님 娜緣님 □강동원□님 미친히메님 바나나상님 비혼비회가님 러닝님 필은님 모로미님 팽야님 너의 봄날님 혓바닥님 웃자!!^^님 간격님 더블에이님 류단、님 싸구려프리덤님 쮸쮸쭈님 이와님 냠냠씽어님 su희는별ㅇi님 엘렌(Ellen)님 정윤호심장님 써리짱님 찹케님 극해님 꽃을잡다님
안녕하세요 업스타일님,.너무 늦게 온건가 ..정말 죄송합니다 이러니저러니 사정때문에 오질 못했어요
비명 아주 잘봤읍니다.오지 않았더라면 후회할뻔했어요 아직은 피새가 더 끌리긴 하지만...시간이 지나면서 비명을
읽다보면 또 빠질것 같아요.업스타일님 다시 돌아오신거 정말 환영해요!!!저는 정말 정윤이가 불쌍한데요...왜 정윤이를 보면 자꾸 한새가...ㅋㅋ 무튼 제 쓸데없는 잡담은 여기서 끝내구요 어서 2편으로 고고씽하겠습니다!!!추천~
♡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스이온님
꺅 완전 늦어버렷서........... 컴고장으로 어쩔수가 없엇다능 ㅠ.ㅠ 후딱 이편보러 달려가야겟서! ㅎ.ㅎ 그나저나 이거 뭔가 분위기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라는 ㅠ.ㅠ!!!!
♡ 엘레니 너무 고마워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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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kisjs12님
너무재밌어요!!ㅠㅠ
♡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꼬숨도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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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재밌어여 ㅠㅠㅠ!! 이렇게 재밌는 소설 연재하시면서 알려주시지도 않고 ㅠㅠㅠ!! 다음편은..... 휴대폰으로 봐야겠네여 ㅠㅠㅠ! 완전 재미있어여, 언니. 추천하고 가여!
♡ . ♡ 우아앙 우리 비어 ♥
비명/가상보고 인상이 깊어서 한번 봐야지봐야지 했는데 이제야 보게됬네요. 웃기고 로맨틱한 소설도 재밌지만 이렇게 분위기 있고 진지한 소설도 꼭하나쯤 읽고 싶어질때가 있는데 그럴때가 지금이고 그런 제가 고른소설이 비명이네요~~ 가상에서 부터도 표현할수없는 포스팡팡풍기시더니 역시나 본글에서도 실망시키지않네요!! 끝까지 기대할께요
♡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늘푸르나님
우와 진짜 재밌어여..ㅠㅠ
♡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명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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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카브카브님
우왕! 3화 읽고나서 처음부터 읽으러 왔는데 ㅋㅋㅋㅋ 재밌네여ㅠㅠ 아마 2화를 읽으면 3화랑 내용이 좀 연결 되겠져?'-'ㅋㅋ 추천 쾅!하구 가여!
♡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최설희님
오옹! ㅋㅋㅋㅋ 업쪽 받고 늦게나마 달려와서 읽었어요! 완전재밌어요~ 추천도 하고 갈게요!
잘 읽었어요^^
재밌게 잘봤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