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통한 청년들의 부활 체험
루카 복음 24장 13-35절이 전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자칫하면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잃을 뻔했다. 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아라고 철석같이 믿고 그분께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그분이 너무도 허망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크나큰 실망과 좌절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길에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나 그의 깨우침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두 제자는 자신들의 목적지인 엠마오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 그 나그네와 빵을 나눌 때 비로소 눈이 열려 그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알게 된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한다.
이렇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분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빵을 나눔으로써 그분께 대한 신앙을 되찾게 된다. 오늘날도 미지근한 신앙생활 또는 아예 냉담상태에 있다가 성경 말씀과 성사를 통해 주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울대교구 소속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의 연수 지도를 하면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 신앙이 활성화되는 ‘작은 부활’을 체험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3박 4일 동안의 성경 연수를 통해 적지 않은 청년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과 유사하게 신앙에 활력을 얻는다. 두 제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던 실망과 좌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듯이 연수생들은 그룹 나눔에서 자신들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서로 나누게 된다. 또한 두 제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나그네가 다가와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설명해 줄 때 마음이 뜨거워졌듯이, 연수생들은 강의 중에 성경 해설을 들으면서, 공동 기도 시간에 다른 연수생들의 기도를 들으면서, 또는 자신의 고민거리를 하느님 말씀 안에서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이 열리고 뜨거워지게 된다.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진 두 제자들은 그들과 함께하였던 낯선 나그네가 빵을 나누어 줄 때(루카 복음에서 빵을 나눈다는 것은 성찬례를 암시한다.) 주님을 알아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이 열린 연수생들도 성찬례를 통해서 주님을 강하게 체험하게 된다. 또한 연수 중에 이루어지는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가깝게 체험하고, 마지막 날 저녁 미사 때, 특히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누는 평화의 인사를 통해서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주시는 하느님을 강렬하게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 연수생들 중에서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본당이나 대학에서 성경 모임 그룹을 조성해서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두 제자들이 실망과 고통을 안겨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주님의 부활을 선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는 오늘날도 여기저기에서 계속된다. 나는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의 연수를 통해 이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미지근한 신앙, 식었던 신앙이 놀랍게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작은 부활’을 거듭 체험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예수님 한 분에게만 일어난 신비한 기적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경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새롭게 변화되었다고 전한다. 제자들은 이 만남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아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부활로, 그리고 오늘 우리의 ‘작은 부활’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작은 부활’을 체험하는 이들은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궁극적인 부활을 확신 있게 믿고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 2004년 4월호, 손희송(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